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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305화 (305/412)

타자 인생 3회차! 305화

36. 기록의 사나이(7)

모 커뮤니티에서 박유성이 신화 여자 고등학교 체육관에 찾아왔다는 정보를 확인한 홍민호 기자는 곧바로 신화 여자 고등학교 경비실을 찾아갔다.

“수고 많으십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기 제 명함입니다.”

“오선일보요?”

“네. 뭐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잠깐 시간 괜찮으시죠?”

정확하게는 오선 일보 산하 오선스포츠 기자였지만.

홍민호 기자는 스스로를 오선 일보 기자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대중들에게는 오선 스포츠보다 오선 일보가 더 먹혔다.

신화 여자 고등학교 경비원도 오선 일보 기자라는 말에 태도가 달라졌다.

“저한테 말씀이십니까?”

“아이구. 아버님. 부담 갖지 마세요. 그냥 아들이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홍민호 기자는 웃으며 비타민 드링크를 건넸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요즘 좀 어떠세요?”

“저요?”

“일하느라 많이 힘드시죠?”

“다 그렇죠 뭐.”

“요즘은 갑질하는 직원들 없나요?”

“어이구, 그런 거 일절 없습니다. 얼마 전에 옆 학교에서 난리 났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사장님도 가끔 오셔서 안부 물어보십니다.”

“다행이네요. 이 학교에서 근무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제 4년쯤 되어갑니다.”

“그럼 신화여고에 대해 모르시는 게 없겠네요?”

“다 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어지간한 건 다 듣게 되더라고요.”

“그럼 체육관도 관리하세요?”

“어이구, 그럼요. 체육관 관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체육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 나요.”

경비원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주던 홍민호 기자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신화 여고는 배구부가 유명하죠?”

“어이구, 그럼요. 배구로는 전국 최고 아닙니까? 국가대표도 여럿 배출했고요.”

“한소정 선수하고 민지혜 선수도 여기 출신이죠?”

“두 선수뿐만 아니라 송주아 선수하고 김진영 선수도 신화 여중에 여고를 나왔습니다.”

“국대 중에 4명이나 신화 여고 출신이에요? 대단하네요.”

“대단하죠. 박유성만큼은 아니지만 다들 대단한 선수들입니다.”

경비원의 입에서 박유성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홍민호 기자가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었다.

“야구도 보세요?”

“그럼요. 당연히 보죠.”

“배구보다 야구를 더 좋아하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배구는 그냥 룰 정도만 아는 정도고요.”

“좋아하시는 팀이 어딘가요?”

“서울 베어스 좋아합니다.”

“베어스는 올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이 쉽지 않아 보이던데요.”

“그건 모르는 거죠.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았잖아요.”

“하하. 그렇죠? 그런데 혹시 박유성 선수 보신 적 있으세요?”

“실제로요?”

“네. 실제로요.”

“보긴 했습니다.”

“경기장에서요?”

“아뇨. 체육관에서요.”

“체육관이요? 어디요? 학교 체육관이요?”

뭔가 건수를 잡았다 싶은 홍민호 기자가 핸드폰을 꺼내 냉큼 녹음 어플을 실행시켰다.

시즌을 치르느라 바쁜 박유성이 여자 국가 대표 선수들을 다수 배출해 낸 신화 여자 고등학교 체육관에 나타났다면 그 선수들 중 누군가와 만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경비원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네. 동생 경기 보러 왔더라고요.”

“동생이요?”

“박유성 선수 동생이 신화여중 다니거든요. 거기서 배구합니다.”

“아……. 그래요?”

순간 홍민호 기자의 표정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국가 대표 선수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으니 신화 여자 고등학교 출신 배구선수 중 아무나 걸리길 바랐건만.

박유성의 여동생이 신화 여자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박유성 선수 동생은 지금 몇 학년이에요?”

“이제 1학년입니다. 듣기로는 작년부터 배구를 시작했다고 하고요.”

“잘하나요?”

“글쎄요.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죠. 그런데 그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잘한다는 얘기는 들으셨나 보네요.”

“주전으로 뛰는 거면 잘하는 거 아닐까요?”

“주전이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대화를 이어가던 홍민호 기자가 다시 눈을 치떴다.

뒤늦게 배구를 시작한 1학년 신입생이 벌써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체육관이 어느 쪽에 있나요?”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가서 사진 몇 장 찍어도 될까요?”

“그건 따로 허락을 받으셔야 하는데요.”

“그냥 몇 장만 찍겠습니다. 국가대표 특집 기사 준비 중인데 모교 사진이 마땅한 게 없어서요.”

홍민호 기자는 핸드폰으로 과거 자신이 썼던 기사들을 보여주었다.

“배구 전문 기자십니까?”

“그러니까 신화 여고에 왔죠.”

실상은 LA 올림픽 귀국 기자회견 미튜브 생방송 때 사고를 치고 잠시 배구판으로 쫓겨났다 돌아온 거지만.

홍민호 기자는 뻔뻔스럽게 굴었고 그 능청스러움에 경비원도 속고 말았다.

“원래는 안 되는 건데…….”

“금방 찍고 오겠습니다. 이게 또 취재 요청 하다 보면 학교에서도 기대를 하게 돼서요. 이번에는 국가 대표 특집 기사라 신화 여고 선수들 얘기는 없거든요.”

“그럼 사진만 찍고 바로 나오셔야 합니다?”

“네. 사진 찍고 난 다음에 저도 바로 기사 쓰러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경비원을 적당히 안심시킨 뒤 홍민호 기자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산실이나 다름없어서일까.

체육관 내 배구 코트가 프로 경기장처럼 펼쳐져 있었다.

“일단 사진은 몇 장 찍어놓자.”

나중에 둘러댈 핑곗거리를 위해 홍민호 기자는 핸드폰으로 경기장 사진을 찍어놓았다.

그러고는 관중석 한쪽에 앉아 적당한 인터뷰 대상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체육관 안으로 키가 큰 여학생 둘이 들어왔다.

“친구들! 잠깐만.”

느낌상 배구 선수라 확신한 홍민호 기자는 조심스럽게 여학생들에게 다가갔다.

“혹시 신화 여고 배구부?”

“아뇨. 신화 여중인데요.”

“어이구. 여중생인데 키가 이렇게 커요?”

“요즘은 다 커요. 그렇지?”

“저희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에요.”

“혹시 몇 학년이에요?”

“1학년이요.”

“그럼 박유성 선수 동생 알아요? 신화 여중 배구부라던데?”

홍민호 기자가 운을 떼자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 유선이요? 혹시 유선이 보러 오셨어요?”

“그런데 누구세요?”

“아, 내가 내 소개를 안 했네요. 나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여기 내 명함이요.”

“오선 일보 기자님이세요?”

“내가 작년부터 배구 쪽으로 옮겼거든요. 박유성 선수 여동생이 1학년인데 벌써부터 주전으로 뛰고 있다고 해서 와봤어요.”

“유선이 주전 아닌데요?”

“아니에요?”

“네. 연습 경기 때 한 번 선발로 나간 게 다예요.”

“맞아요. 배구 한 지 이제 2년 차인데 무슨 주전이에요?”

“그래요? 박유성 선수는 주전이라고 자랑하던데 아니었어요?”

뭔가 박유선과 관계가 좋지 않아 보이는 여학생들을 긁자 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완전 어이없네.”

“그러게. 유선이 걔는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한 거야?”

“잘난 오빠 있으니까 곧 주전 될 거라는 거지 뭐.”

“그럼 지난번 연습 경기 때 선발로 나간 것도 걔네 오빠 때문인가?”

“걔네 오빠 지난번에 경기 보러 왔다잖아.”

외지인들에게 내부 이야기를 함부로 전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들었지만.

두 여학생은 박유성이 박유선을 주전이라고 언급했다는 홍민호 기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덕분에 홍민호 기자도 공들이지 않고 박유성을 괴롭힐 만한 기사 소스를 얻게 됐다.

“이거면 팀장도 군말 없이 오케이 하겠지.”

회사로 돌아온 홍민호 기자는 여학생들의 주장을 잘 버무려 자극적인 기사를 한 편 썼다.

“이거 확실해?”

“녹취한 거 있는데 들려 드려요?”

“줘봐.”

홍민호 기자가 사고 치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는 주문을 받은 최성국 스포츠 1팀장은 경비원과 두 여학생의 녹음 파일을 전부 확인했다.

“박유성이 동생에 대해 언급한 게 아니잖아?”

“에이, 이 정도는 그냥 취재 스킬이죠.”

“나중에 박유성 쪽에서 문제 제기 하면 어쩌려고?”

“팀장님. 이건 적폐나 다름없습니다.”

“무슨 적폐씩이나 가?”

“생각해 보세요. 부모가 잘나서 부모덕에 대우받으면 그게 적폐잖아요?”

“하아…….”

“얘들한테 박유성 동생 까달라고 부탁한 거 아닙니다. 슬쩍 찌르니까 이런 대답이 나온 거예요.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일단 알았어. 기사 올리는 건 오케이. 대신에 표현 좀 순화시켜.”

“이미 충분히 소프트한데요?”

“신성 그룹 법무팀에서 걸고넘어질 만한 표현은 빼라고. 이번에도 문제 생기면 신성 그룹 광고 전부 빠질지도 몰라. 그거 홍 기자가 책임질 거야?”

“그걸 제가 어떻게 책임집니까?”

“책임 못 질 거면 책임질 일만 벌여.”

마지못해 일부 표현을 수정한 홍민호 기자는 다음 날 경기 직전에 기사를 터뜨렸다.

그러자 스타즈 구단이 발칵 뒤집혔다.

“팀장님! 이 기사 좀 보세요!”

“또 뭔데?”

“홍민호 그 인간이 기사 올렸는데요. 이번엔 박유성 선수 동생을 건드렸어요.”

“뭐? 박유성 선수 동생이라니?”

기사를 확인한 안재희 운영팀장은 곧바로 김재식 단장에게 뛰어갔고.

김재식 단장은 곧바로 한용준 비서실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비서실장님. 혹시 기사 보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실 확인하고 있습니다.

“추가 기사를 막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최대한 막는 데까지 막아보겠습니다만 후속 기사 전부를 막는 건 힘듭니다.

“일단 최대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회장님께서 박유성 선수 걱정이 크십니다.

“박유성 선수에게는 아직 알리지 못했습니다. 30분 후에 바로 경기에 들어가야 해서요.”

김재식 단장은 가능하면 박유성에게 알리지 않고 구단 차원에서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박유성 주변에는 SNS에 미쳐 있는 선수가 하나 있었다.

“샾 경기 전. 샾 이글스 원정. 샾 박유성 라커룸.”

오늘도 박유성 팬들의 요청으로 박유성의 라커룸에 걸려 있는 유니폼 사진을 찍어 올린 장태수는 스친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평소 자신의 일상을 올릴 때는 댓글 달리는 게 일이었지만.

박유성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기가 무섭게 좋아요와 댓글이 빠르게 늘었다.

“하아. 나는 언제 유성이만큼 유명해지나.”

무겁게 한숨을 내쉬던 장태수는 댓글들을 쭉 살폈다. 그러다 이상한 댓글을 발견하고는 눈을 치떴다.

“박유성 동생 비리는 뭐야?”

댓글 밑에 달린 링크를 클릭하자 홍민호 기자가 쓴 기사가 떠올랐다.

“헐, 뭐야 이거?”

기사 내용을 확인한 장태수는 다급히 박유성에게 기사를 보여줬다. 그러자 박유성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기사 뭐야?”

“나도 몰라. 내 SNS에 누가 기사 링크 걸어줬어. 그런데 이거 진짜야?”

“진짜겠냐?”

1회차 시절이었다면 장태수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박유선에게 운동을 가르쳐 주면서 자연스럽게 배구부 생활에 대해 자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기사에는 1학년인 박유선이 자신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배들을 전부 제치고 주전으로 나서는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실상은 달랐다.

선발로 나선 건 지난 연습 경기 한 번뿐이었다.

신화 여자 중학교에 새로 부임한 감독이 실전 경기를 통한 경험을 강조해서 연습 경기가 부쩍 늘어났고 그 과정에서 주전급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후보 선수들에게 로테이션으로 기회를 준 거지 박유선을 편애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보기에는 박유선이 마치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태수. 너 오늘 무조건 안타 쳐라.”

“갑자기 왜 나한테 그래?”

“무조건 안타 쳐. 내 앞에 밥상 차리라고.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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