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04화
36. 기록의 사나이(6)
“사실 이 정도면 박유성 선수에게 더 많은 휴식을 줘도 됩니다.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4월 25일 경기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4타석 이하를 소화한 적이 없습니다.”
“규정 이닝을 소화하려면 전체 경기 수의 3.1배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데요. 박유성 선수는 올 시즌 4.85타석을 소화 중입니다. 이미 규정타석은 채운 상태고요.”
“만약에 스타즈에서 박유성 선수의 성적을 관리해 줄 생각이었다면 경기 후반에 교체하는 것보다 체력 보전을 핑계로 결장을 시켰을 겁니다. 하지만 김석률 감독은 박유성 선수가 요청하지 않는 한 선발 결장은 없을 거라고 못을 박았고 박유성 선수 역시 전 경기 출전에 대한 욕심이 상당합니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까지 부상 없이 전 경기 출전하는 게 목표라고 밝힌 바 있는데요. 경기 후반에 교체하는 건 괜찮은 건가요?”
“박유성 선수는 스타즈의 핵심 전력입니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적으로는 대체 자원이 없습니다. 경기 후반에 교체하는 것도 스타즈 입장에서는 상당한 전력 손실을 감안하는 셈이죠.”
“그런데도 후반에 교체하는 건 아무래도 무더위 때문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지금도 한낮 기온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있는데 이제 막 프로에 데뷔한 선수를 계속 굴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거야말로 선수 학대입니다.”
“오죽하면 미국 언론에서도 박유성 선수에 대한 혹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메이저리그에서는 신인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출전 경기를 철저하게 제한하는 편입니다. 투수에 비해 타자는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관리하지 않지만 박유성 선수만큼 활약해 주는 신인 선수가 있다면 아마 구단에서 알아서 관리를 할 겁니다. 타석에서 뺄 수가 없다면 최소한 수비를 빼주는 식으로 말이죠.”
김석률 감독이 무더위에 대비해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 신경을 쓰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박유성의 타율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이들은 박유성의 경기 후반 교체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중 일부는 커뮤니티를 통해 승부 조작이나 다름없다고 떠들다가 야구팬들의 뭇매를 맞곤 했다.
“사실 지금 홈런과 타점을 제외하고는 박유성 선수의 기록을 뒤집을 수 있는 선수가 없는 상황인데요.”
“그렇습니다. 이제 42경기 남았고 박유성 선수가 남은 전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를 쳐도 5할 타율이 넘습니다.”
“담당 PD 말로는 0.504라고 하는데요.”
“타율이 5할이 넘으면 출루율과 장타율은 말할 것도 없죠.”
“지금까지 쌓아놓은 스탯만으로도 출루율은 0.616이고 장타율은 1.065입니다.”
“과거 몇몇 타이틀 경쟁 때 순위를 지키기 위해서 얌체처럼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만 박유성 선수는 상황이 다릅니다. 3할 타자는 두 타석 중에 안타를 하나만 쳐도 타율이 오르지만 박유성 선수는 7할 타자입니다. 세 타석 중에 두 번 안타를 쳐도 타율이 떨어져요. 하지만 매 경기 4타석 이상 타석에 들어섭니다.”
“4월부터 시작된 박유성 선수의 월간 타율 7할 행진이 8월에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박유성 선수의 타격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 자체가 무례처럼 느껴집니다.”
“워낙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보니 믿기 어려운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타국의 선수도 아니고 대한민국 선수입니다. 음주 운전이나 성범죄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학교 폭력 문제도 없고 약물에도 깨끗한 선수가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드는 중인데 응원은 못 해줄망정 어떻게든 흔들려고 난리를 치는 건 같은 인간으로서 용납이 안 됩니다.”
<베이스볼 X 심층분석>을 본 대다수 야구팬은 이선철 해설위원의 질타에 공감을 쏟아냈다.
└진짜 사이다가 따로 없었음.
└솔직히 이선철 해설위원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제 방송은 리스펙. 프로 야구 레전드이자 야구인으로서 박유성을 위해 나서준 거 진짜 멋졌음.
└사실 이게 당연한 건데 참…….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민족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ㅠ.ㅠ
└박유성 타율 관리한다고 짖어대던 인간들 다 어디갔음?
└넌센스네요. 인간은 짖지 않습니다. 짖어대는 건 인간이 아니고요.
└일본 극우 개소리 가져와서 기사 쓰는 일부 기레기들과 그들의 의견에 동조해서 박유성 깎아내리는 안티들은 사실 인간이 아니죠. 개XX가 맞습니다.
└박유성 무서워서 볼넷 줘놓고 적극성 타령하는 거 보면서 답이 없다 싶었습니다.
└그런 인간들 전부 바다 건너 국적입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저희 회사 부장님도 박유성이 프로 야구 망치는 주범이라고 난리도 아니심.
└엇, 저희 회사 부장님도 그러시던데요?
└그거 다 박유성 때문에 신성 그룹 잘나가서 그럽니다. 지금 다른 대기업들 비상이래요.
└현아 차 쪽에서도 박유성 엄청 싫어한다던데요? 광고 모델 거부하고 올스타전 부상 기부했다면서요.
└그건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낭설 아니고 사실입니다. 참고로 현아차 직원입니다. 박유성 마케팅으로 매출 늘리려고 했다가 무산된 이후로 사내에서 박유성 금기어 됐습니다. ㅠ.ㅠ
└그런데 박유성은 학폭 논란 없음?
└갑자기요?
└잡았다 요놈!
└심층분석 보다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다른 뜻 없어요 ㅠ.ㅠ
└베팍에서 어그로 끄는 쓰레기들도 전부 별 뜻 없다고 하더라. ㅋㅋㅋ
└학폭 논란이 있었으면 진즉 터졌겠죠. 지금까지 조용하겠습니까?
“이거 또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튄 거 같은데?”
베이스볼 파크를 살피던 나영진 기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 역시도 이선철 해설위원의 일갈에 십 년, 아니, 백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을 덧붙이면서 안티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준 느낌이었다.
“공 기자. 혹시 유성이 후배들 중에 아는 사람 있어?”
“유성이 후배 중에서요? 있긴 한데 왜요?”
“느낌에 학폭 가지고 장난칠 놈들이 나올 거 같아서 미리 체크 좀 해보려고.”
“그런 거라면 걱정 마세요. 제가 진즉에 다 체크했으니까.”
“그래? 언제?”
“선배가 유성이 시즌 타율 가지고 부장님하고 내기하고 있을 때 저는 기자로서 사명감을 잃지 않았죠.”
“많이 컸네. 공윤경.”
“그럼요. 누구 부사수인데요?”
공윤경 기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메신저를 통해 나영진 기자에게 파일을 하나 보냈다.
놀랍게도 파일 안에는 박유성과 함께 뛰었던 신성 고등학교 선수들의 증언이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와, 이걸 다 조사한 거야?”
“신성 고등학교 인터뷰 하러 간 김에 겸사겸사 한 거예요. 인원수가 많아서 대단해 보일 뿐이지 딱히 발품 판 것도 없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한 거야?”
“학폭 논란 있으면 국대 못 가잖아요. 뒤늦게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 들더라고요.”
“아주 유성맘 나셨어.”
“선배도 솔직히 유성맘이잖아요. 아니에요?”
“나야 맘은 아니지. 암튼 이걸로 기사 써봐.”
“벌써요?”
“이런 건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는 게 나아. 나중에 있지도 않은 동창들이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 골치 아파져.”
나영진 기자의 주문대로 공윤경 기자는 곧바로 기사를 작성했다.
[공기자의 시선] 박유성은 정말로 성범죄와 학교 폭력으로부터 떳떳할까?
일부러 자극적으로 단 기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요 포털의 메인 기사로까지 올랐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수천여 개의 댓글들이 달렸다.
└공윤경 기자 기사 결론이 뭐임?
└성폭력 사실 없음(여자를 사귄 적 없음). 학교 폭력 사실 없음. 음주 운전 못 함(차도 없고 면허도 없음)
└박유성 선수를 클린 베이스 볼 홍보대사로 임명합니다.
└핵심은 학폭입니다. 박유성 프로 입단하기 전에 신성 고등학교 선수들 전부 인터뷰했는데 박유성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음.
└그런데 뜬금없이 왜 학폭 기사를 낸 거임?
└평소답지 않게 제목으로 어그로 끈 걸로 봐서 소리 들은 거 아닐까요?
└무슨 소리요?
└기레기들 주작 나무 태우는 소리요.
└저도 어제 이선철 해설위원 얘기 듣다가 기레기들이 기사 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00퍼죠. 박유성이 밥 먹을 때 조금만 소리 내도 기사 쓸 인간들이잖아요. 식사 예절이 잘못됐다면서요.
└박유성. 볼일 보고 화장지 5칸 씩 뜯어 써. 환경 파괴의 주범.
└박유성. 잦은 도루로 투수들 괴롭혀. 동업자 정신 부재.
└저도 왠지 기사 뜰 거 같아서 새벽까지 모니터링했습니다. ㄷㄷㄷ
└저 같은 분들 많네요.
└인터뷰 시점이 U-18 야구 월드컵 때인데 믿을 수 있는 겁니까?
└박유성 올림픽 차출 전이니까 오히려 더 신뢰도가 높지 않을까요?
└아마 저때는 박유성이 올림픽에서 MVP 받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안 했을걸요?
└요즘 운동부에 학폭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학폭 논란 터지면 선수 생명 끝이잖아요.
└그런데 박유성 정도면 학폭해도 봐줄 수 있지 않음?
└????
└헛소리 마요. 박유성이 진짜 학폭했으면 7할이 아니라 10할을 쳐도 반대입니다.
“젠장할.”
오선 스포츠 홍민호 기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모처럼 기삿거리가 생겨서 좋아했는데 공윤경 기자가 이런 식으로 선수를 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 경인 스포츠 최덕수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홍 기자. 기사 봤어?
“공윤경이 기사?”
-하아. 이것 때문에 밤새 쓴 기사 다 날렸어.
“우리도 마찬가지야. 지금 어뷰징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기사를 올릴 수가 없어.”
지금껏 기득권 기자들이 박유성을 공격하던 방식은 간단했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는 말처럼 별것 아닌 일을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져 부정적인 여론을 만든 뒤에 그 여론에 동조하는 기사를 재차 써올려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번처럼 반대편에서 먼저 기사를 내서 여론을 선점하면 장난을 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인터뷰했다는 거 사실일까?
“그렇지 않아도 후배 기자 신성고로 보냈는데 사실이래.”
-다시 인터뷰하다 보면 생각이 바뀐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박유성 스타즈 입단하면서 신성고 지원금 엄청나게 받았잖아. 걔들도 양심이 있지 박유성을 팔겠어?”
-하아, 그럼 중학교 동창들을 파야 하나?
“중학교 시절은 좀 그렇지. 뭔가 동떨어진 느낌이잖아.”
-그래도 증인 하나 만드는 건 쉬울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것 때문에 전화하셨고만?”
홍민호 기자가 쓴웃음을 흘렸다.
상대가 박유성이 아니라면 박유성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누군가를 섭외해서 원하는 소스를 뽑아냈겠지만.
베이스볼 패치가 선수를 친 상황에서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MVP의 발목을 잡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
-그렇지? 보나 마나 신성 그룹 법무팀에서 나설 텐데 괜히 우리가 연루됐다는 게 알려지면 골치 아프잖아.
“왜 우리야?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내가 걸리면 홍 기자 팔려고 했지.
“그러기만 해.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
-농담이야. 농담. 암튼 다른 건수 없어? 뭐라도 써야 할 거 아냐?
“없는 건수를 왜 나한테 찾아? 최 기자가 좀 던져주든가.”
-그래도 이런 건 우리 홍 기자 따라갈 사람이 없지.
“흰소리하지 말고 뭐 있으면 공유하자고.”
통화를 마친 홍민호 기자는 박유성과 관련된 정보들을 다시 한번 훑었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박유성이 신화여고에 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