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01화
36. 기록의 사나이(3)
자이언츠의 파르한 제이디 사장이 카일러 하셀 보좌역의 말에 설득당하던 그 시각.
다저스의 사장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어제 썬이 만루 홈런 치는 거 봤어?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공을 향해 달려드는데 온몸에 닭살이 돋았어.”
오늘도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박유성의 이야기부터 꺼내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보며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앤드류. 지금 썬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조쉬 연락 못 받았어요?”
“조쉬? 조쉬 애버튼? 그 빌어먹을 새끼?”
“앤드류.”
“오, 미안. 내가 특정 이름을 들으면 흥분하는 병이 있어서 말이야.”
“앤드류.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라니까요. 이러다 브라이언은 물론이고 피터까지 놓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즌 후반기에 접어들면 대다수 구단은 장기 계약 대상자들과의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간다.
전반기 때 주고 받았던 긍정적인 교감을 통해 협상 테이블을 펼친 뒤에 최종 계약이 진행되기 전까지 줄 건 주고 양보할 건 양보하면서 계약서에 채워 넣을 내용들을 합의해야 하는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다저스의 주요 고객인 에이전트 조쉬 애버튼을 피하고 있었다.
다저스의 40인 로스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 중에 조쉬 애버튼이 관리하는 선수는 무려 5명.
조쉬 애버튼과 척을 지면 전력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빌어먹을 놈의 요구를 받아주자는 거야?”
“저도 조쉬의 요구가 과하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만나서 얘기해야죠. 문전박대로도 모자라 걸려오는 전화까지 받지 않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럼 자네가 대신 만나면 되잖아?”
“만났죠. 만나서 앤드류 대신 온갖 푸념을 들어줬습니다. 그럼 뭘 합니까? 저한테 결정권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현재 다저스의 주전 중견수는 브라이언 조던이었다.
2001년생으로 대학교 2학년 때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한 이후 2024년에 처음으로 콜업이 됐는데 타격은 조금 아쉽지만 발이 빠르고 수비가 좋은 선수였다.
2026년 풀타임으로 출전해 0.266에 8홈런, 21도루를 기록했고.
2027년에는 0.275에 11홈런, 28도루로 성적을 끌어올렸으며 지난해에는 커리어하이인 0.282와 13홈런, 21도루를 달성했다.
올 시즌도 0.280의 타율과 10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작년과 엇비슷한 성적을 내는 중.
이 정도 선수라면 FA가 되기 전에 장기 계약으로 묶어두는 게 좋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엉뚱한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앤드류. 썬이 메이저리그에 오려면 앞으로 3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로이. 정보력이 그렇게 어두워서야 되겠어? 어디가서 내 보좌역이라고 말하지 마.”
“한국에서 국가 대표 포인트 제도를 확대하려는 계획이라는 건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타즈가 허락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스타즈에서 썬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반대할 거라는 거야? 하하. 로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썬은 지금 한국 프로 야구를 씹어 먹는 중이라고. 저렇게 잘하는데 메이저리그를 못 가게 막는다면 야구 팬들이 가만둘 것 같아?”
“설사 스타즈에서 허락하더라도 아시안 게임과 프리미어 12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합니다.”
“그래서?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는 게 쉬워, 아니면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게 쉬워?”
“앤드류.”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가득했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끈 썬이야.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대부분 불참하는 프리미어 12에서 설마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시즌 중에 부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끔찍한 얘기는 집어 치워. 그렇게 따지면 브라이언 조던도 계약할 필요가 없지. 발목이 좋지 않잖아?”
“발목 부상에서 이미 회복했습니다.”
“몸은 회복했지. 하지만 우리가 극찬하던 브라이언 조던의 멋진 호수비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그게 팩트야. 그래서 내가 브라이언 조던과 계약을 망설이는 거라고.”
메이저리그 전체 중견수들 중에서 브라이언 조던은 딱 중간 정도의 선수였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확도와 살짝 아쉽지만 그렇다고 부족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장타력.
그리고 한 시즌 20개 정도 가능한 도루 능력까지.
중견수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이 정도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2027년 발목 부상 이후 달라진 브라이언 조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 그래. 인정해. 한 번 안 좋은 일을 겪으면 다시 그 일을 겪게 될까 봐 겁이 나겠지. 그런데 말이야. 우리 팀의 외야 라인은 수비 능력이 좋지 않아. 좌중간과 우중간으로 빠지는 타구들을 브라이언 조단이 처리해 주지 못하면 곤란하다고.”
“그 점에 대해서는 조쉬와 충분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브라이언도 이번 시즌이 끝나는 대로 발목을 단련해서 예전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고요.”
“그럼 그 수비 능력을 보여준 다음에 얘기하자고 해.”
“앤드류! 그러다 브라이언을 다른 구단에 뺏길지도 모릅니다.”
“뺏겨? 브라이언을? 하하. 로이. 말은 똑바로 해. 조쉬가 요구하는 그 터무니없는 계약을 받아줄 구단이 있을 것 같아?”
올 시즌 브라이언 조던이 받는 연봉은 550만 달러.
작년보다 250만 달러가 오른 금액이었다.
솔직히 그 정도 인상될 만한 활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조쉬 애버튼은 1번 타자로서 제 몫을 다 했다는 점을 강조했고 무려 13번이나 추가 협상을 요구하고서야 계약에 합의했다.
당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조쉬 애버튼의 행태에 격분해 새로운 중견수를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먼저 떠들어대는 바람에 실패했고.
오히려 조쉬 애버튼을 달래기 위해 예정보다 100만 달러를 더 쓰게 됐다.
“작년에 누군가 중견수 영입 계획을 흘렸을 때 그냥 넘어갔던 건 내가 제대로 입단속을 시키지 못해서였어. 내가 충동적으로 움직였으니까 그 결과에 책임을 진 것뿐이라고.”
“알죠. 아마 그 직원들도 앤드류의 배려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 아닐걸? 시즌이 끝난 다음에 느긋하게 진행해도 될 계약 문제를 두고 언론에서 연일 입방아를 찧고 있잖아?”
“구단 내부에서 누군가가 계속 소스를 흘리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월급을 주는 구단보다 가끔 뒷돈을 챙겨주는 에이전트에게 충성하는 직원이 어디 한둘일까? 로이, 자네는 어때?”
“저는 절대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자네를 내 보좌역으로 앉혔지. 내 불만을 듣더라도 발설하지 말라고 말이야..”
“맹세컨대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습니다.”
“그렇다고 고작 비밀 유지를 위해 자네에게 그 많은 연봉을 주는 건 아니야. 보좌역이면 날 도와야지. 에이전트 편에 서면 쓰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푸념에 로이 홀랜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쉬 애버튼은 조쉬 애버튼대로 난리인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까지 감정적으로 굴고 있으니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하기만 했다.
“그럼 이것 하나만 말씀해 주세요. 브라이언 조던 계약, 어떻게 할까요?”
“해야지. 합리적인 조건으로.”
“빙빙 돌리지 말고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말씀해 주세요.”
“정확한 가이드라인이라. 흠……. 4년에 3천만 달러 정도 어때?”
“그걸 조쉬가 받아들일 리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2+2년에 4천만 달러. 그 이상은 안 돼.”
“하아. 앤드류. 조쉬가 원하는 조건은 알고 있습니까?”
“글쎄. 말 같잖은 소리를 지껄여서 잊어버렸어.”
“…….”
조쉬 애버튼이 원하는 계약 조건은 6년에 1억 달러였다.
연평균 1,667만 달러 수준으로 2천만 달러 이상을 받는 외야수들이 즐비한 리그 기준에서 그렇게 과한 요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난리를 치는 건 머릿속에 다른 선수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앤드류. 썬과 브라이언 조던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무슨 수로? 브라이언 조던을 코너 외야수로 돌리자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죠.”
“헛소리 마. 전문가랍시고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절대 못 까는 게 뭐야? 썬의 수비 능력이잖아? 그런데 그런 썬을 코너로 돌리자고? 제정신이야? 그리고 브라이언을 코너로 돌리면 누굴 빼자는 거야? 바비 그린? 아니면 디에고 후리오?”
우익수 바비 그린과 좌익수 디에고 후리오는 2004년 동갑내기 타자였다.
트리플 A에서 3번과 4번을 번갈아 치며 유망주 랭킹 1, 2위에 올랐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주전 자리를 꿰찬 케이스였다.
힘은 디에고 후리오가 조금 더 낫지만 정확도는 바비 그린이 조금 더 나아서 바비 그린이 5번, 디에고 후리오가 6번을 치고 있었다.
“둘 다 수비가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브라이언 조던을 코너로 돌릴 정도는 아니야. 애당초 브라이언 조던을 중견수로 투입한 이유가 뭔데?”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브라이언 조던의 수비 지표는 작년에 비해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그럼 딱 그 정도만 받으라고 해. 왜 피터를 내세워서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리는 거야?”
처음 조쉬 애버튼이 브라이언 조던의 장기 계약에 대해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했을 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뭐라 떠드나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자리에 나갔다.
예상대로 조쉬 애버튼은 철 지난 지표들을 들먹이며 브라이언 조던의 가치를 높이려 애썼다.
그래놓고 마지막에는 피터 페츠도 내년 시즌에 장기 계약을 맺어야 하지 않겠냐며 역겨운 말을 늘어놓았다.
만약 조쉬 애버튼이 6년에 1억 달러를 희망한다는 정도에서 끝냈다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도 절충안을 고민했을 것이다.
에이전트라면 당연히 고객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예상보다 큰 금액을 불렀다고 해서 불쾌하게 여길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피터 페츠는 달랐다.
다저스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피터 페츠가 자신의 고객이라는 이유로 협박하듯 계약을 강요하는 걸 받아줄 만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무르지 않았다.
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브라이언 조던의 문제가 피터 페츠의 재계약에 영향을 끼치길 원치 않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죠. 6년 계약에 9천만 달러. 이 정도면 조쉬 애버튼도 만족할 겁니다.”
“그럼 2년 후 바이 아웃 조건을 삽입해. 바이아웃 보너스는 5백만 달러면 되겠지.”
“앤드류!”
“로이. 난 단순히 썬에게 홀려 있는 게 아니야. 바비 그린과 디에고 후리오를 데리고 다저스의 외야 수비 라인을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찾아보면 썬을 대신할 선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썬을 대신할 선수? 누구? 리그에서 7할을 치는 타자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정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
“앤드류.”
“그렇게 브라이언 조던과 재계약을 하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조건의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와. 그게 싫다면 내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죠.”
“헛소리 마. 전문가랍시고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절대 못 까는 게 뭐야? 썬의 수비 능력이잖아? 그런데 그런 썬을 코너로 돌리자고? 제정신이야? 그리고 브라이언을 코너로 돌리면 누굴 빼자는 거야? 바비 그린? 아니면 디에고 후리오?”
우익수 바비 그린과 좌익수 디에고 후리오는 2004년 동갑내기 타자였다.
트리플 A에서 3번과 4번을 번갈아 치며 유망주 랭킹 1, 2위에 올랐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주전 자리를 꿰찬 케이스였다.
힘은 디에고 후리오가 조금 더 낫지만 정확도는 바비 그린이 조금 더 나아서 바비 그린이 5번, 디에고 후리오가 6번을 치고 있었다.
“둘 다 수비가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브라이언 조던을 코너로 돌릴 정도는 아니야. 애당초 브라이언 조던을 중견수로 투입한 이유가 뭔데?”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브라이언 조던의 수비 지표는 작년에 비해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그럼 딱 그 정도만 받으라고 해. 왜 피터를 내세워서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리는 거야?”
처음 조쉬 애버튼이 브라이언 조던의 장기 계약에 대해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했을 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뭐라 떠드나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자리에 나갔다.
예상대로 조쉬 애버튼은 철 지난 지표들을 들먹이며 브라이언 조던의 가치를 높이려 애썼다.
그래놓고 마지막에는 피터 페츠도 내년 시즌에 장기 계약을 맺어야 하지 않겠냐며 역겨운 말을 늘어놓았다.
만약 조쉬 애버튼이 6년에 1억 달러를 희망한다는 정도에서 끝냈다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도 절충안을 고민했을 것이다.
에이전트라면 당연히 고객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예상보다 큰 금액을 불렀다고 해서 불쾌하게 여길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피터 페츠는 달랐다.
다저스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피터 페츠가 자신의 고객이라는 이유로 협박하듯 계약을 강요하는 걸 받아줄 만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무르지 않았다.
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브라이언 조던의 문제가 피터 페츠의 재계약에 영향을 끼치길 원치 않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죠. 6년 계약에 9천만 달러. 이 정도면 조쉬 애버튼도 만족할 겁니다.”
“그럼 2년 후 바이 아웃 조건을 삽입해. 바이아웃 보너스는 5백만 달러면 되겠지.”
“앤드류!”
“로이. 난 단순히 썬에게 홀려 있는 게 아니야. 바비 그린과 디에고 후리오를 데리고 다저스의 외야 수비 라인을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찾아보면 썬을 대신할 선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썬을 대신할 선수? 누구? 리그에서 7할을 치는 타자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정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
“앤드류.”
“그렇게 브라이언 조던과 재계약을 하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조건의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와. 그게 싫다면 내년 시즌까지 기다리라고 해. 어디 내년에 얼마나 열심히 수비를 하는지 지켜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