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97화 (297/412)

타자 인생 3회차! 297화

35. 리얼 올스타(12)

-지금 신민아 씨가 경기장을 찾아주신 것 같은데요.

-신민아 씨가 누구죠? 배우인가요?

-어제 박유성 선수와 기부 행사 때 만났던 사람입니다.

-아, 그분이요? 경기장에 왔습니까?

-저는 놓쳤는데 채팅으로 계속 신민아 씨 이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채팅을 치는 팬들은 다시 신민아를 비춰 달라고 난리였지만 중계석에서는 적당히 언급만 하고 넘어갔다.

스타즈 구단에서 보도 자제를 요청했는데 호들갑을 떨 수는 없었다.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3번 타자 박준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박준수 선수. 올스타전이 끝나고 조금 주춤한 상태인데요. 박유성 선수가 선취점을 만들어낸 만큼 편안하게 타석에 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자막으로 나오고 있습니다만 박유성 선수가 선취 득점을 올렸을 때 스타즈 승률이 94퍼센트거든요.

-사실 박유성 선수가 어지간하면 선취 득점을 올리는 선수라 94퍼센트라는 데이터가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이번처럼 간결하게 득점을 하면 분위기는 확실히 살아나니까요.

-말씀드리는 순간 박준수 선수가 초구를 공략해냅니다. 우익수 앞에 안타. 무사 1, 2루로 이어집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말처럼 박유성은 매 경기 꾸준하게 출루를 이어나갔다.

안타나 홈런을 때리지 못하더라도 볼넷을 얻어냈고.

루상에 나가면 악착같이 움직여 투수를 괴롭혔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 선취 득점이 났다.

다만 최근에는 시원시원한 적시타보다 희생 번트와 희생타 등으로 한 점을 쥐어 짜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모처럼 멀티 안타가 터지면서 타자들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따악!

4번 타자 다니엘 브리토의 타구가 중견수에게 잡히면서 추가 득점이 무산되나 싶었지만.

따악!

5번 타자 장영호가 바깥 쪽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3유간으로 빠지는 안타를 때려냈고.

따악!

1사 만루 상황에서 이동엽이 우익수 방면으로 큼지막한 플라이를 날리며 3루 주자 블레이크 테일러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어진 2사 1, 3루에서 장태수가 우익수 뒤쪽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때려냈다.

-아, 큽니다! 쭉쭉 뻗어 나갑니다!

-이건 넘어갔는데요?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이 타구는 우익수가 잡지 못하는 곳으로 떨어집니다! 홈런! 쓰리런! 장태수 선수가 이번 시즌 두 자릿수 홈런포를 쏘아 올립니다!

“크아아아!”

9수에 걸려서 30경기 연속 홈런이 없던 장태수는 미친 사람처럼 그라운드를 돌았다.

순간 존 소렌토가 장태수를 향해 욕지거리를 쏟아냈지만.

홈런의 쾌감에 빠진 장태수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박유성도 입이 찢어진 채로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장태수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10홈런 축하한다.”

“고맙다. 짜샤.”

“그런데 너 다음 이닝에 빈볼 조심해라.”

“뭐? 빈볼?”

“너무 요란스러웠어. 존 소렌토 열받았다고.”

박유성의 잔소리에 장태수는 뒤늦게 존 소렌토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존 소렌토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사과를 했다.

“존! 쏘리 쏘리!”

고작 그 정도로 화가 풀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장태수는 홈런을 때려낸 방망이를 꼭 움켜쥔 채로 한참 동안 유난을 떨었다.

“1절만 하지?”

“너는 모른다.”

“모르긴 뭘 몰라? 나도 얼마 전까지 아홉수였는데.”

타이거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39홈런을 때려낸 이후 박유성도 5경기에서 홈런을 때려내지 못했다.

상대 팀의 견제가 나날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스타즈의 패배가 늘어나자 선두 타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스윙을 간결하게 가져간 탓도 있지만.

첫 풀타임 시즌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친 감도 없지 않았다.

게다가 38홈런에서 39홈런까지 8일이나 걸렸던 전례가 있다 보니 아홉수와 40홈런에 대한 갈망이 컸다.

하지만 제아무리 절친이라 해도 자신보다 4배나 많은 홈런을 때려낸 박유성의 사정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너야말로 적당히 해. 그리고 네가 무슨 아홉수야?”

“39개에서 한동안 못 쳤잖아.”

“5경기 만에 쳤잖아. 난 30경기 동안 홈런이 없었거든?”

“자랑이다.”

“와, 진짜 너는 야구 잘하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너야말로 야구 잘하는 친구가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꺼져 인마.”

“여기 내 자리거든?”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장태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박유성의 옆자리로 돌아왔다.

박유성이 얄밉게 굴어도 고등학교 동기만큼 편한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무슨 공 쳤냐?”

“뭐야. 안 봤어?”

“너는 내 타석 다 기억하는 것처럼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호 홈런인데 그걸 안 봤다고? 네가 사람 새끼냐?”

“그래서 넌 내 10호 홈런은 기억하고?”

“그걸 어떻게 기억해?”

“그럼 얼마 전에 친 40호 홈런은?”

“나 그때 화장실 갔었거든?”

“역시 장태수. 뻔뻔한 건 달라지지 않았구나.”

“뭐래? 나보다 네가 더 뻔뻔하거든?”

장태수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자 박유성이 피식 웃으며 장태수의 허리를 툭 때렸다.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야. 너 또 팔로만 스윙하더라?”

“뭐야? 봤어?”

“타석에서 누가 시원하게 선풍기질을 해서 말이다.”

“선풍기질 아니거든? 그거 다 전략이거든?”

“전략같은 소리 하지 말고. 너 다음 시즌에 홈런 배로 치고 싶으면 내 말 들어. 아랫배에 힘 딱 주고 공을 제대로 때리라고.”

“나 그렇게 치고 있는데?”

“……?”

“네가 알려준 대로 친 거라고.”

“……대체 나한테 뭘 들은 거야?”

그때 이동엽이 공 하나를 들고 장태수에게 다가왔다.

“태수야. 이거.”

“홈런 볼?”

“아니. 사인 볼. 홈런 볼 잡은 팬이 공 돌려줬대.”

“그럼 사인 볼로 안 되지. 잠깐만 있어 봐. 유니폼에…….”

“그냥 사인 볼만 달래.”

“……?”

“구단에서 보상했대.”

“아……. 그래?”

살짝 신이 났던 장태수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이동엽이 팩폭을 날렸다.

“너 유성이 아니야.”

“응. 너도 아니야.”

방금 전 장태수가 때려낸 홈런은 개인 통산 10호 홈런이었다.

그래서 스타즈 구단은 곧바로 홈런볼을 잡은 팬과 접촉해 공을 받았다.

사정을 설명하고 홈런볼 반환을 요청할 경우 흔쾌히 내주는 팬들도 있지만 나중에 되팔 생각에 거절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장태수의 홈런볼을 잡은 팬도 사인볼과 사진 촬영을 제안하는 구단 직원에게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고.

구단 직원은 절차에 따라 신성 백화점 상품권과 맞교환을 진행했다.

하지만 모든 팬들이 금전적인 보상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하아. 진짜 나는 그런 팬 없나.”

“어떤 팬? 지난 번에 유성이 40호 홈런 팬?”

“아들한테 사인볼 주겠다고 몸을 날려서 잡았잖아. 상품권 필요 없다면서 생일 축하 영상 요청했고.”

“억울하면 너도 홈런 70개쯤 치던가.”

“놀리냐? 그리고 70개가 뉘 집 개 이름이냐?”

“그래도 7할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긴. 그건 인정. 그런데 유성이 저 녀석, 올해 홈런 몇 개 칠까?”

“글쎄. 못해도 60개는 치지 않을까?”

전반기 89경기에서 박유성이 때려낸 홈런은 39개.

경기당 평균 0.44개로 150경기를 풀타임 출전한다고 가정했을 때 기대 홈런은 65개였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50홈런도 쉽지 않아 보인다며 박유성의 홈런 생산 능력을 깎아내렸다.

“4월 페이스로는 100개도 가능해 보였는데.”

“어쩔 수 없지. 투수들이 승부를 안 해주니까.”

“우리한테는 엄청 승부 걸잖아.”

“그야…… 우린 박유성이 아니니까.”

이동엽이 씁쓸하게 웃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동엽은 박유성을 경쟁자로 여겼다.

8할대 맹타를 휘두르며 신성 고등학교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여겼다.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MVP를 받았을 때는 솔직히 부러움이 더 컸다.

하지만 같은 팀에서 4개월 간 부대낀 지금은 더 이상 박유성이 경쟁자로 보이지 않았다.

“유성이는 넘사벽이지.”

“넘사벽 수준이 아니야. 쟤는 뭐랄까, 반칙 같은 존재잖아.”

“진짜 고의4구로 나가는 기분은 어떤 걸까.”

“뭐야, 너 고의4구 한 번도 없었어?”

“너는 마치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나 지난번에 한 번 있었잖아?”

“그건 내가 만만하니까 너 거른 거고. 너 그거 진짜 고의4구 아니야. 정신 차려, 이동엽.”

“너는 가짜 고의4구도 없었잖아.”

“크흠. 어쨌거나 오늘은 크게 이기고 있으니까 위즈에서도 승부 걸어주지 않을까?”

장태수가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

방금 전 홈런으로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으니 친구인 박유성도 하나 때려내길 바랐다.

“그랬음 좋겠다. 유성이도 오늘 안타 쳐야 7할 타율 유지야.”

“유성이 타율이 그렇게 떨어졌어?”

“시즌 타율 말고. 월간 타율.”

“유성이 거의 매일같이 안타 치잖아? 밥 먹듯 멀티 히트 하고. 그런데 어떻게 타율이 떨어지냐?”

“너나 나는 안타 하나만 쳐도 타율이 쑥쑥 오르지? 유성이는 반대야. 7할이 넘어서 아웃 한 번만 당해도 타율이 쭉쭉 내려온다고.”

김석률 감독도 박유성의 월간 타율이 신경 쓰였다.

할 수만 있다면 이강천 감독을 찾아가서 승부를 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박유성이 워낙에 야구를 잘하다 보니 정면 승부 자체가 쉽지 않았다.

“최 코치.”

“네. 감독님.”

“오늘은 필승조 쉬게 하고, 추격조로 최대한 돌리자고.”

“벌써 투수를 교체하시려고요? 아직 1회 말입니다. 감독님.”

“알아. 아는데 제이슨 마이너도 많이 던졌잖아? 오늘 같은 경기는 좀 일찍 쉬게 하자고.”

김석률 감독의 말에 최민태 수석 코치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3연전의 첫 경기이고 상대가 위즈라 마지막까지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1회부터 5점을 앞서고 있는 만큼 그동안 고생한 불펜 투수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김석률 감독의 바람대로 위즈가 박유성과 승부를 해줄지는 미지수였다.

“차라리 점수를 더 뽑는 게 어떨까요?”

“점수를 더?”

“위즈도 요즘 불펜 피로도가 상당합니다. 승패가 갈린 경기에 무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흠…….”

김석률 감독이 길게 신음했다.

최민태 수석 코치의 말처럼 위즈에서도 추격조를 낸다면 무리해서 승부를 피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추가 점수를 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예상대로 스타즈 타자들은 6회까지 추가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박유성은 2회와 4회, 그리고 6회 타석에 들어섰지만 매 타석 고의4구에 가까운 볼넷으로 걸러졌다.

반면 위즈 타자들은 2회와 5회, 6회 한 점씩을 따라붙으며 5점의 점수 차이를 두 점까지 좁혔다.

그리고 7회 초.

따악!

바뀐 투수 이재윤을 상대로 위즈의 3번 타자 데이비드 와치가 솔로 홈런을 때려내자 3루 쪽 위즈 관중석이 난리가 났다.

-데이비드 와치 선수가 홈을 밟습니다. 이제 스코어는 5 대 4. 한 점 차이로 좁혀집니다.

-이제 오늘 경기는 승패를 단언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여전히 스타즈가 한 점 앞서가고 있긴 하지만 분위기는 위즈 쪽으로 넘어 갔어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스타즈는 지금 1회 이후로 안타 자체가 없는 상황입니다.

-존 소렌토 선수를 바로 교체하지 않고 5회까지 끌고 간 이강천 감독의 판단이 주효했습니다.

-스타즈 팬들 입장에서는 박유성 선수의 마지막 타석에 희망을 걸어야 할 것 같은데요.

-8회 말이 6번 타자부터 시작이죠? 그럼 빠르면 8회, 아니면 9회에 타석에 서게 될 텐데 글쎄요. 지금 위즈에서 4타석 연속 승부를 피했잖아요? 마지막 타석이라고 박유성 선수와 승부를 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 채팅창으로 만루 상황에 박유성 선수가 나오면 승부를 할 수밖에 없다는 글이 올라왔는데요.

-그렇다면 아마 박유성 선수를 더 거르려고 할 겁니다. 만루 밥상 앞에서 박유성 선수와 직접 승부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니까요.

이선철 해설위원은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승부는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박유성 앞에 만루 밥상이 차려질 일은 없을 거라고 내다봤다.

6번 타자 이동엽과 7번 타자 장태수는 첫 타석 이후 안타가 없고.

8번 타자 박경호와 9번 타자 최일준은 후반기 들어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 투수로 등장한 최현준의 제구가 흔들리면서 그 말도 안 되는 가정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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