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95화
35. 리얼 올스타(10)
한용준 비서 실장은 현아 자동차에서 선수를 치기 전에 먼저 보도 자료부터 냈다.
[신성 그룹 신상욱 회장.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된 박유성 선수 부모님께 자동차 증정!]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때마침 박유성 관련 기사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이선영은 곧장 지하 피트니스 룸으로 내려갔다.
“유성아!”
“벌써 밥 먹을 시간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것 좀 봐.”
박유성은 러닝 머신에서 내려 이선영이 내민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뭔가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기사 정말이야?”
“이 기자, 신성 그룹 담당 기사거든요? 아마 오보는 아닐 거예요.”
“그럼 신성 그룹에서 정말 나한테 자동차를 선물해 준다는 거야?”
“정확한 건 아저씨한테 전화를 해봐야 알 것 같은데 기사까지 났으니까 주지 않을까요?”
“그렇지?”
박유성의 대답을 들은 이선영이 활짝 웃었다.
어제저녁.
지인들과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박명철에게 사고가 났다.
음주 운전을 하지 않기 위해 대리 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겼는데 하필이면 신호 위반을 한 음주 운전 차량을 만나 버린 것이다.
가해 차량이 운전석 뒤쪽을 들이받아서 박명철과 대리 기사 모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6년째 타고 다니던 SUV 차량은 센터로 입고가 됐고.
급한 대로 이선영에게 선물하기로 했던 HV5를 박명철이 타고 다니기로 결론이 난 상태였다.
설상가상 현아 자동차에서 뜬금없이 HV7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주겠다는 연락이 와서 아담한 SUV를 원했던 이선영도 새 차의 꿈을 포기했는데 신성 그룹에서 다시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신성 그룹도 자동차를 만들어?”
“만들지는 않고 외제 차 유통은 할 거예요.”
“외제차? 그럼……?”
“네. 아마 외제차일 거예요.”
1회차 시절.
파이터즈에서 10년을 뛰다가 스타즈로 이적했을 때.
스타즈 구단으로부터 독일산 자동차를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박유성도 이선영과 똑같은 질문을 했고.
담당 직원으로부터 자세한 사정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스타즈 야구단 만들고 나서 회장님께서 프로 축구단도 만들려고 했다는 거 혹시 알고 계세요?”
“얘기는 들었던 거 같아요. 축구단 무산되어서 여자 배구단 창단하셨잖아요?”
“그때 현아 자동차부터 시작해서 축구단을 보유한 대기업들의 반대가 컸습니다.”
“왜요?”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야구 쪽으로 상당한 돈을 쓰시잖아요? 기업 마케팅 수준을 넘어서서 사재까지 털어서 지원을 하시는 게 못마땅했을 겁니다.”
“왜요?”
“아시다시피 지금 축구계는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 야구만큼 축구 쪽에도 돈을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과연 저들이 좋아할까요?”
“아하, 그러니까 자신들의 카르텔을 깰지도 몰라서 반대했다는 거네요?”
“네. 그래서 회장님도 신성 그룹 임원들이 타고 다니던 차량을 전부 바꾸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전까지는 현아 자동차를 애용하셨거든요.”
“솔직히 임원들 차야 대부분 외제 차 아니면 현아 차죠.”
“네. 거기서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급의 국산 차량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임원들이 달가워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따로 신성 모터스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신성 그룹 임원들이 타고 다닐 차량을 직접 수입하게 됐고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는 신상욱 회장이 좀 쪼잔하게 느껴졌다.
고작 자존심 때문에 너무 큰 지출을 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3회차를 살게 된 지금은 생각이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현아 자동차에서 꽁으로 마케팅을 하려는 게 못마땅했는데 차라리 잘됐어. 기왕이면 신성이 낫지.’
현재 박유성은 신성 그룹과는 두 건의 CF를 진행 중이었다.
계약금 보전 측면에서 계약한 건이라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5억이라는 파격적인 개런티를 받았다.
게다가 신상욱 회장은 돈 계산은 확실한 편이었다.
옵션 계약을 변경했을 때 손해를 보지 않도록 차액만큼의 미국 지원을 약속했고.
타 기업은 물론이고 신성 그룹 계열사들의 추가 CF 요청까지 거절할 때도 몸값이 올랐으니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현아 자동차는 차량 등급을 업그레이드해 주겠다는 핑계로 은연중에 인터뷰를 제안했다.
-박유성 선수가 어렵다면 어머님도 상관없습니다. 시간은 저희 쪽에서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마치 이쪽의 사정을 최대한 고려하는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결국은 올스타전 상품을 미끼로 마케팅을 해보겠다는 꿍꿍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지이잉,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양반 되기는 글렀네요.”
“송 대표님?”
“네. 잠시만요.”
지하 한편에 만든 마사지 룸으로 자리를 옮긴 뒤 박유성은 전화를 받았다.
-유성아. 어디야?
“집에서 운동 중이요.”
-어제 고생했는데 좀 쉬지.
“고생은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혹시 기사 봤어?
“신성 그룹 기사요? 방금 얘기 들었어요.”
-누구한테?
“어머니가 제 기사를 검색하고 계셨나 보더라고요.”
-그럼 어머님하고도 얘기 끝났겠네? 어떻게 할까? 신성 그룹에서 먼저 사고 치긴 했지만 나쁜 제안은 아닌 거 같은데.
“그보다 현아 자동차에서 연락 안 왔어요?”
-오긴 했는데 쓸데없는 소릴 해서 끊었다.
“뭐라고 하던데요?”
-HV7 광고 모델로 널 쓰고 싶다고 해서 제안서 보내달라고 했더니 좋게 좋게 가자는 거야.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 얼마 줄 거냐고. 그랬더니 웃으면서 신성 스포츠 조건에 맞추면 되지 않겠냐고 하더라.
“웃으면서 그런 얘길 해요?”
-자기도 찔리니까 그러는 거야. 지금 네 몸값이 얼마인데 신성 스포츠 타령을 해?
앞서 신성 그룹으로부터 받은 5억이라는 금액은 신인이 받을 수 있는 광고 계약금 중에 최고 대우였다.
S급 연예인들이 받는 개런티는 10억 이상.
국제 무대 수상을 통해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은 스포츠 스타들의 경우 그 이상을 받기도 했다.
두 편의 광고 이후 추가로 계약한 게 없다 보니 현재 박유성의 시장 가격은 5억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최소 가격으로 최대 얼마까지 받을 수 있는지를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인지도와 이미지를 고려했을 때 10억 이상은 받아야 한다는 게 송광철 대표의 계산이었다.
“그럼 한번 질러보지 그러셨어요?”
-뭐 하러 그래? 그러다 저쪽에서 언플하면 귀찮아지는데. 일단 정식으로 제안서 보내달라고 말하고 끊었다. 너한테만 하는 소리지만, 5억짜리 제안서는 널리고 널렸어. 순서로 치면 200번 밖일 거다.
“그렇게나요?”
-대기업들뿐만 아니라 중견 기업들도 너 잡으려고 난리야. 신생 업체들은 아예 회사의 사활을 거는 중이고.
“신성에서는 뭐래요?”
-이번에 자동차? 그건 그냥 순수한 선물이래. 네가 지금 각종 기록들을 갈아 치우는 중인데 그동안 신경을 못 썼다면서 오히려 미안해하던데?
타이거즈와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안타를 때려내지 못하면서 72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마감하긴 했지만.
박유성은 전반기에만 프로 야구 역사를 절반 이상 새로 썼다.
타율과 장타율, 출루율, OPS는 아직 시즌이 남아 있으니 차치하더라도.
243개의 안타(종전 201개)와 90개의 2루타(종전 49개), 30개의 3루타(종전 14개), 265득점(종전 135개), 98도루(종전 84개)를 기록하며 15년 이상 해묵었던 기록들을 전부 갈아 치우는 중이었다.
올스타전 MVP에 뽑혀도 3천만 원 상당의 자동차를 부상으로 제공하는데 프로 야구 역사를 고쳤으니 스타즈에서 특별 선물을 보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른 조건들은 하나도 없고요?”
-신상욱 회장님 성격은 너도 잘 알잖아? 신성 스포츠에서 계약 연장하려다 된통 깨졌다는 얘기는 했지?
“지난번에 말씀하셨잖아요.”
-나는 솔직히 신성 스포츠에서 삐딱하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대표가 직접 사과 전화를 했어. 마음이 급해서 자신이 직접 지시한 내용이라면서 말이야. 계약 종료 후에 만족할 만한 계약으로 계속 같이 가자고 애원하는데 듣기가 미안하더라.
계약을 한 CF 모델의 인기가 높아지거나 해당 상품의 시장 반응이 좋아질 경우 기존 계약이 종료되기 이전에 추가 계약을 진행하는 게 업계의 관행이었다.
신성 스포츠도 마케팅 측면에서 박유성을 꼭 잡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3년 30억짜리 장기 계약을 제안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신상욱 회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어디 그런 얼빠진 계약서를 들이밀어? 유성이 덕분에 매출 오른 게 얼마야? 그런데 고작 30억? 내 얼굴에 똥칠을 하려고 작정했어?”
덕분에 곤란한 상황을 피하게 됐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신성 스포츠 대표가 직접 사과 전화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고가의 차량을 선물받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신성 모터스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야. 오직 신성 그룹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 신성 그룹 직원들에게도 차를 팔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그런가 보네요.”
-지금은?
“아니에요.”
박유성은 냉큼 말을 얼버무렸다.
1회차 시절에는 스타즈 선수들도 신성 모터스를 통해 차량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현시점에서는 그렇게까지 판로가 넓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딱히 해줄 건 없는 모양이더라. 대신에 의리는 좀 지켜야겠지?
“그럼요. 아버지하고 어머니 차를 선물해 주는데 다른 자동차 회사 홍보를 해줄 수는 없죠.”
-그럼 바로 진행한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런데 차량은 원하는 걸로 주시는 건가요?”
-최대한 우리가 원하는 차량을 맞춰주겠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수억을 호가하는 슈퍼카를 타긴 그렇잖아?
“그건 피차 욕먹는 짓이죠.”
송광철 대표와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원호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유성 선수. 혹시 송 대표님과 통화하셨을까요?
“네. 방금 통화했습니다.”
-그럼 회장님의 선물을 받기로 결정하신 거죠?
“네. 주신다니 감사히 받으려고요.”
-그 말씀, 회장님께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먼저 기사부터 낸 터라 박원호 과장과 신성 모터스 직원이 곧장 집으로 찾아왔고.
“어이구, 외제차?”
“네. 아버지도 한 대 고르세요.”
“그럼 나 마세라띠 타도 되냐?”
“아버지. 좀 어울리는 걸 고르세요.”
“크흠.”
한숨 자고 났더니 몸이 쑤신다며 병원에 가려 했던 박명철은 직원이 건넨 카탈로그를 한참 살피다가 벤스의 SUV 차량을 선택했다.
“난 이게 좋을 거 같은데…… 너무 비싼가?”
“아닙니다. 아버님. 회장님께서 가격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걸로 해줘요. 기왕이면 풀옵션으로요.”
“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타고 다닐 차량을 렌트해 드릴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그럼 나야 좋죠.”
“렌트카는 박유성 선수 눈치 보지 말고 고르시죠.”
“하하. 그럼 그럴까요?”
박명철에 이어 이선영도 같은 브랜드의 중형 SUV를 선택했다.
“조금 더 고급 라인을 선택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머님.”
“아니에요. 큰 차는 제가 불편해서요.”
“그럼 이 차로 최대한 빨리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예상보다 수월하게 계약이 진행되어서일까.
박원호 과장이 박유성을 보며 물었다.
“이 기회에 박 선수도 한 대 장만하시죠?”
“저는 아직 면허가 없어서요.”
“어차피 차량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면허야 금방 따지 않나요?”
“그런데 저는 당분간 운전할 생각이 없어서요.”
“그럼 송 에이전트 쪽 차량을 바꿔 드려야겠네요.”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고맙죠.”
“그보다 현아 자동차에서 제공받기로 한 차량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올스타전 MVP 상품이라 받으셔도 상관은 없겠지만 저희 쪽 기사가 나가서 교통정리가 필요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부상으로 받은 차량을 세컨드 카나 패밀리 카로 써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건 박유성 마케팅을 기획하고 있을 현아 자동차가 원치 않을 터.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기부를 하는 건 어떨까요? 선행에 활용된다면 현아 자동차도 싫어하지 않을 겁니다.”
박원호 과장의 제안대로 현아 자동차에서 받은 부상은 기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현아 자동차도 기부처에 직접 방문해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한다는 조건으로 박유성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신상욱 회장도 가만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