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94화
35. 리얼 올스타(9)
드림 리그 올스타가 한 점 차까지 추격했지만 박경호는 나눔 리그가 승리할 거라 예상했다.
나눔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인 김재신이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믿었던 김재신이 조윤중에게 동점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한 점의 리드를 날려 버렸고.
경기는 4대 4, 동점으로 끝이 났다.
“와, X발. 이걸 비기네.”
“그러게 말이야. 진짜 뭐 하는 거냐?”
나눔 리그 팬들은 그저 헛웃음만 났다.
박유성부터 시작해 박준수, 민병규, 박경호, 박찬희에 송찬우, 임찬기까지.
현 국가 대표 주축 선수들 상당수가 나눔 리그 소속이고 경기 초반부터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으니 당연히 나눔 리그가 승리할 줄 알았는데 무승부로 끝이 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반면 드림 리그 팬들은 무승부에 만족했다.
“오늘 올스타전 보러 오길 잘했다.”
“내가 뭐랬어? 박유성 빠졌으니까 어떻게든 따라붙을 거라고 했지?”
“그런데 나눔 리그는 뭐 하냐? 어떻게 박유성 하나 빠졌다고 저렇게 무너져?”
“올림픽하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안 봤어? 박유성이 미쳐 날뛰면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다니까?”
4 대 4 동점으로 경기가 끝나자 기자들도 MVP를 뽑기 난감해졌다.
“이러면 누구에게 MVP를 줘야 하는 거야?”
“그래도 드림 리그에서 받아야 하지 않을까? 동점까지 따라붙었잖아?”
“경기를 뒤집지 못했는데 무슨 드림 리그 타령이야?”
“뭘 어렵게 생각해? 제일 잘한 사람에게 주자고. 그럼 되는 거야.”
“말이 쉽지 제일 잘한 사람이 누구인데?”
“일단 멀티 히트 이상 기록한 선수가 박준수와 다니엘 브리토, 조윤중 셋이니까 이 중에서 뽑으면 되지 않겠어?”
5회까지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MVP에 가장 근접했던 박준수는 이후 두 타석에서 전부 범타로 물러났다.
그리고 박준수와 더불어 유이하게 교체되지 않았던 다니엘 브리토 역시 땅볼과 뜬공으로 아웃이 되면서 5타수 2안타 1타점에 그쳤다.
다른 선수들과 함께 교체된 상황에서 나눔 리그가 무난한 승리를 거두었다면 박준수 쪽으로 표가 몰렸겠지만.
후반에는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던 데다가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 버렸으니 경기 초반의 활약만으로 MVP를 주기가 애매했다.
그렇다고 조윤중에게 MVP를 주기에는 동점 홈런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윤중도 5타수 2안타인가?”
“5타수 2안타에 1타점. 그런데 4번째 타석 안타는 거의 실책성이라 활약상은 박준수나 다니엘 브리토만 못해.”
“안타면 안타지 실책성 안타는 또 뭐야?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유일하게 홈런을 쳤잖아?”
“그 홈런으로 이겼으면 100퍼 조윤중인데 참…….”
위즈 전담 기자 중 하나가 아쉽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러자 다른 드림 리그 쪽 기자들이 코웃음을 쳤다.
“100퍼 조윤중은 무슨. 막판에 반짝해 놓고.”
“맞아. 6회에도 한 점 더 낼 수 있는 거 조윤중이 말아먹었잖아.”
“그래서? 드림 리그에 조윤중보다 안타 많이 친 선수가 있어?”
“안타 수가 중요해? 임팩트가 중요하지.”
“그래서 누구? 누굴 줘야 한다는 거야?”
9회 초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드림 리그 쪽 기자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나눔 리그 기자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드림 리그에서 MVP가 나와야 한다는 거야?”
“내 말이 그 말이야. 동점이 된 거지 역전이 된 게 아니잖아?”
“막말로 박전권 감독이 주전 그대로 끌고 갔어봐. 드림 리그가 동점을 만들었겠어?”
“어림없지. 박민재 앞으로 떨어지는 안타가 몇 개야? 장영호도 병살 처리 할 수 있는 거 놓쳤잖아?”
기자들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자 협회 측에서 장내 아나운서에게 시간을 끌어달라 요청했다.
그러자 장내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자, 여러분. 지금 4 대 4 무승부 상황이라 MVP를 뽑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께서 누가 MVP로 적합한지 큰 목소리로 얘기해 주세요!”
가장 먼저 튀어나온 이름은 동점 홈런을 때려낸 조윤중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뒤이어 언급된 스타즈 선수들에게 묻혔다.
“조윤중 장난해? 그렇게 따지면 박준수나 다니엘 브리토를 줘야지!”
“다니엘 브리토하고 박준수하고 성적 똑같지?”
“둘 다 5타수 2안타에 1타점.”
“어우. 어떻게 타수에 타점까지 똑같냐.”
“그런데 누가 빠진 거 같지 않아?”
“누구? 2안타 친 선수가 또 있어?”
“박유성.”
“박유성 안타 못 쳤잖아.”
“안타가 중요해? 도루 4개에 3득점인데?”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드림 리그에서 볼넷으로 걸렀으니까 안타를 못 친 거잖아?”
“야, 박유성으로 가자.”
“오케이. 박유성 가즈아아!”
옥신각신하던 관중들은 누군가 박유성을 외치자 군말 없이 목소리를 맞췄다.
경기 후반에 펼쳐진 드림 리그의 추격전도 재미있었지만 경기 초반 박유성의 원맨쇼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원하던 대답이 나오자 장내 아나운서가 불을 지폈다.
“지금 박유성 선수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여러분, 기자분들이 들을 수 있게 한 명만 외쳐주세요. 오늘 MVP가 누구라고요?”
장내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기장 가득 박유성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뭐야? 왜들 저래?”
“그러게. 왜 갑자기 박유성 타령이야?”
“장내 아나운서가 선동한 거잖아. 저 인간 어디 소속이야?”
“느낌에 스타즈 아나운서 같은데?”
“공문 안 봤어? 오늘 장내 아나운서 협회에서 따로 섭외한 거잖아.”
“그런데 왜 저래?”
“몰라. X발. 박유성 팬인가 보지.”
박유성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일부 기자들은 절대 흔들리지 말자고 담합했지만 다른 기자들은 달랐다.
“이러면 박유성 뽑아야겠지?”
“그래야지. 설사 박유성 말고 다른 선수가 뽑혀도 면피는 해야 하니까.”
기자들은 협회에서 제공한 어플에 들어가 투표를 마친 뒤에 투표 결과를 따로 스크린샷으로 저장했다.
공윤경 기자도 당당히 박유성에게 투표를 마친 뒤에 다른 기자들보다 먼저 기사를 올렸다.
[4 대 4 동점으로 끝이 난 올스타전. 팬들이 선택한 미스터 올스타는 박유성!]
“선배. 그러다가 다른 선수가 뽑히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래서 팬들이 선택한 올스타라고 했잖아.”
“이러다 저까지 시말서 쓰는 거 아니에요?”
“그럴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요즘 팬심 신경 쓰는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면 무조건 유성이가 될 거야.”
그 예상대로 20분 후 장내 아나운서는 한껏 들뜬 얼굴로 MVP를 발표했다.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 현장에 온 200여 명의 기자분이 와 계시는데요. 그분들 중에 126명이 바로 이 선수를 선택했습니다. 이번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는…… 스타즈의 박! 유! 성!”
쏟아지는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박유성이 천천히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러자 먼저 나와 있던 프로 야구 협회 장인석 총재가 활짝 웃으며 박유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유성 선수.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활약하는 모습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꼭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하하하.”
오늘 MVP 시상자로 나서기로 했을 때.
장인석 총재는 박유성이 MVP가 되길 바랐다.
올스타전은 단판으로 진행되는 터라 변수가 많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프로 야구 최고의 스타인 박유성과 좋은 그림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오늘 시상에는 프로 야구 협회 장인석 총재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를 받고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장인석 총재는 현아 자동차 HV5가 적힌 상패를 건넸다.
그러자 장내 아나운서가 곧바로 박유성에게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박유성 선수. 오늘 MVP로 뽑히면서 자동차를 받게 됐는데요.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저희 어머니가 차를 바꾸실 때가 되어서요. 어머니께 선물해 드릴 예정입니다.”
가족에게 선물하겠다는 다소 뻔한 대답이었지만 장내 아나운서는 냉큼 장단을 맞췄다.
“여러분. 리그에서 7할을 치는 최고의 타자가 이렇게 효자입니다. 우리 박유성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 한 번 보내주세요!”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9년 올스타전도 박유성 엔딩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날.
현아 자동차를 비롯해 AM 모터스와 청룡 자동차, 레노 자동차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그러니까 현아에서 차량을 HV7으로 바꿔주기로 했다는 거지?”
“네. 회장님. 아무래도 박유성 선수를 홍보에 이용하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해?”
“형평성에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협찬 상품은 협찬사 마음이라서요. 다운 그레이드가 아니라 업그레이드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선수의 요청으로 차량을 다른 모델로 바꿔서 받은 전례도 있습니다. 회장님.”
“흠…….”
관련 소식을 전해 들은 신상욱 회장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박유성이 스타즈에 입단한 이후로 그 수혜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자동차 업계에서 숟가락을 들고 달려드니까 괜히 짜증이 났다.
“다른 업체들은 무슨 회의를 한 거야?”
“아무래도 현아 자동차가 박유성 마케팅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일까 봐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현아 자동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80퍼센트.
코로나 팬데믹 이후 90퍼센트까지 올랐다가 경쟁 업체들의 노력으로 다시 80퍼센트 선까지 끌어내린 상태였다.
“만약에 현아에서 유성이를 광고 모델로 쓰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회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박유성 선수는 최고의 스포츠 선수입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지만 전반기에 7할 타율을 지켜냈고 5할 이상의 타율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아직 메이저리그 진출 전이잖아?”
“전략분석팀의 보고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의 광고 효과가 가장 클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국내에서만큼은 활약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리그를 떠나서 7할이라는 상징성이 크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회장님. 단순히 최고의 야구 스타가 아니라 프로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니까요.”
“그렇다면 현아 자동차와 계약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네. 현아는 야구가 아니라 축구잖아?”
신성 그룹이 야구계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면 현아 자동차는 축구계의 큰손이었다.
게다가 신성 그룹이 프로 야구단에 이어 프로 축구단 창단을 시도했을 때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내가 좀 치사한가?”
신상욱 회장이 한용준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유성 선수는 저희 신성 고등학교 출신 선수입니다. 신성 고등학교 야구부 시설을 프로 구단에 준하게끔 만드신 것도 회장님이시고 고교야구 전용 야구장을 만들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이끌어내신 것도 회장님이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자격,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유성이 부모님께 원하시는 차 한 대씩 선물해 드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