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92화
35. 리얼 올스타(7)
보통 올스타전은 눈에 보이는 성적으로 MVP를 선정한다.
타자의 경우 안타가 많을수록 유리하고.
투수의 경우 허용된 이닝이 짧다 보니 최대한 많은 삼진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첫 번째 타석에 이어 두 번째 타석과 세 번째 타석에서도 박유성은 볼넷을 얻었다.
출루율은 100퍼센트지만 안타가 없어서 타율은 0.000이니 나란히 멀티 히트를 때려낸 스타즈의 클린업 콤비, 박준수와 다니엘 브리토 중에서 MVP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수비보다는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기 위해 집중하는 게 옳을 텐데 박유성은 마치 한국 시리즈라도 치르는 것처럼 타구를 향해 몸을 날렸고.
그럴 때마다 경기장은 박유성을 향한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이거 이러다가 유성이가 MVP 타는 거 아닙니까?”
옆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송혁 감독도 혀를 내둘렀다.
어쩌다 보니 3연속 볼넷이 나왔을 때 제아무리 박유성이라 해도 MVP는 힘들 거라 여겼는데 안타의 부재를 수비로 만회하고 있으니 그저 헛웃음만 났다.
경기를 지켜보던 기자들도 MVP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박유성 애쓴다. 애써.”
“딱 봐도 MVP에 욕심내는 거 같지?”
“척하면 척이지. 암튼 어린놈이 욕심도 많다니까?”
“그런데 박유성이 MVP 받을 수 있어요? 오늘 안타 하나도 못 쳤는데?”
“못 받아. 지금까지 그런 전례가 없어.”
1982년 프로 야구가 시작된 이후 지금껏 안타를 치지 못한 타자가 MVP를 받은 역사는 없었다.
3연속 볼넷으로 출루하긴 했지만 박유성과 민병규를 제외한 모든 타자들이 안타를 때려냈고 멀티 안타를 친 타자가 둘이나 되는 상황에서 박유성이 MVP를 받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유성 한 타석 더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어림없어.”
“1안타 치고 MVP 받은 타자들은 제법 될 텐데?”
“그 선수들은 결승타를 때렸고 박유성은 아니잖아?”
5회 말이 진행되는 현재 나눔 리그가 드림 리그를 4 대 0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분위기상 오늘 경기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았다.
연이은 박유성의 호수비로 드림 리그 공격이 뚝뚝 끊겨 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타석 때 박유성이 안타를 때려내더라도 결승타가 되지 않는 한 보수적인 기자들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을 터.
“그런데 박유성도 6회부터 교체되는 거 아니야?”
“100퍼지. 박민재 있잖아.”
박민재는 2007년 랜더스에 입단한 이래 계속해서 랜더스에서 뛰고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비록 인지도는 후배인 민병규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박경호의 이적 파동 시 랜더스 팬들이 박민재의 SNS를 찾아가 랜더스에서 은퇴해 달라고 읍소를 했을 만큼 랜더스에서는 간판급 타자였다.
“박민재가 나오면 강승혁이 빠지겠지. 올 시즌 지명으로만 뛰고 있잖아.”
“박민재 지명 아니고 외야수로 뽑혔어.”
“그거 잘못 나온 거 아니었어?”
“나도 그런 줄 알고 협회에 문의해 봤는데 외야수로 뽑힌 거 맞대. 전반기 막판에 외야수로 몇 경기 나왔다나 뭐라나.”
“박전권 감독도 대단하네. 아무리 박민재가 예뻐도 그렇게까지 뽑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올스타 투표에 민병규 하나 뽑혔잖아. 올 시즌은 던졌지만 그래도 작년 우승팀인데 제 새끼는 챙겨야지.”
“박민재도 성적이 나쁘지는 않으니까 감독 추천으로 뽑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박유성 대신 외야로 들어가는 건 아니지.”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다른 선수들도 투입하기 힘들어. 포지션에 딱 맞춰서 뽑은 게 아니니까.”
오늘도 저만치 모여서 떠들어대는 선배 기자들을 보며 공윤경 기자는 혀를 찼다.
“저 인간들은 심심해서 기자가 됐나? 경기는 안 보고 뭐 하는 거야?”
그러자 수습으로 따라온 한지선 기자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요? 저러면 안 되는 거예요?”
“경기를 보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건 좋은데 저건 아니지. 지금 다들 유성이 MVP 못 타길 바라고 떠들어대는 거잖아.”
“정말요?”
“넌 신입이라 아직 잘 모르겠지만 기자들만큼 꼰대 많은 집단도 없어.”
“선배도요?”
“뭐 인마?”
“농담이에요. 농담. 호호호호.”
한지선 기자가 냉큼 눈웃음을 쳤다. 하지만 같은 여자인 공윤경 기자에게 그런 애교가 통할 리 없었다.
“난 너한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잖아.”
“알죠. 설마 제가 그걸 모르겠어요?”
“모르는 거 같은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항상 귓등으로 듣던데?”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데 못 보셨어요?”
“그럼 좋아. 유성이가 MVP를 타기 어려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야 볼넷만 3개니까요?”
“그게 다야?”
“아까 선배님이 그러셨잖아요. 올스타전 MVP는 타자가 유리하고 안타를 많이 칠수록 유리하다고요. 그런데 박유성 선수는 지금 안타가 없으니까 불리한 거 아닐까요?”
공윤경 기자의 눈에는 한심한 신입 기자처럼 보이겠지만.
한지선 기자도 나름 빡빡하기로 유명한 베이스볼 패치 입사를 뚫고 기자가 됐다.
그저 여기자 놀이를 하고 싶은 지원자였다면 6 대 1의 경쟁률을 뚫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 좋아. 만약에 유성이가 다음 타석 때 교체가 되고 MVP 수상에 실패한다면 넌 어떻게 기사를 쓸 거야?”
공윤경 기자가 또다시 날 선 질문을 던졌지만 한지선 기자는 이번에도 대답을 내놓았다.
“일단 제목은 박유성 아쉬운 MVP 수상 실패로 잡고요. 드림 리그의 지나친 견제로 인해 박유성 선수가 안타를 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쓰면 어떨까요?”
“그게 최선이야?”
“……네?”
“그게 최선이냐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지만 공윤경 기자는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영문을 몰라 하는 한지선 기자의 어깨를 감싸며 꼰대처럼 훈계를 늘어놓았다.
“내가 너 경기는 어떻게 봐야 한다고 했어?”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을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기억하네. 첫 번째 타석 때는 사실 고의4구나 다름없었어. 그렇지?”
“네. 스트라이크 존에 하나도 공이 안 들어갔으니까요.”
“두 번째 타석과 세 번째 타석 때도 스트라이크를 안 준 건 똑같았어. 하지만 첫 번째 타석과 다른 점이 있지. 그게 뭘까?”
“다른 점이요? 아아, 그땐 주자가 있었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선두 타자로 나온 유성이한테 볼만 던진 건 고의4구로 치더라도 두 번째 타석과 세 번째 타석은 상황이 달라. 지고 있는 와중에 주자가 나갔고 타석에 7할 타자가 들어왔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피해야죠. 무려 7할 타자인데요.”
“일부 팬들이 치사하게 야구를 했다고 비난을 하더라도 우리는 제대로 된 기사를 써야 해. 드림 리그 쪽에서 차라리 잘됐다고 유성이를 걸렀다 하더라도 명분은 있는 거잖아? 유성이가 타격 기회를 얻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으니까 경기 상황에 맞게 기자를 써야 해. 개인감정만 앞세우면 저 인간들하고 다를 게 없어.”
“아, 넵.”
후배인 한지선 기자에게 기자로서 중립성을 강조하던 공윤경은 6회 말이 되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 지금 나눔 리그 외야수들이 교체됐는데요. 중견수 자리에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들어가고 좌익수 자리에 박민재 선수, 그리고 우익수 자리에 백영완 선수가 투입됐습니다.
-지금 박유성 선수가 빠졌는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감독 추천 선수로 뽑힌 선수들도 경기에 출전해야 하니까 선수 교체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글쎄요. 박유성 선수는 올스타 투표 1위잖아요? 팬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중계석의 우려대로 박유성이 빠지자 경기장이 난리가 났다.
“뭐야? 박유성 어디 갔어?”
“교체됐어.”
“뭐? 이제 6회인데 벌써? 그럼 중견수는 누가 보는데?”
“다니엘 브리토 중견으로 돌렸더라.”
“미쳤네. 그러니까 국대 중견수 박유성을 빼고 박유성한테 밀려서 좌익수로 간 다니엘 브리토를 다시 중견수로 돌렸다고? 미쳤어? 제정신이야?”
“그걸 왜 나한테 따져?”
“너희 팀 감독이 올스타 감독이니까 하는 소리잖아!”
“하아. 나도 심란하니까 1절만 해라. X발 진짜 왜 저러나 모르겠네.”
경기장의 술렁임이 좀처럼 멈추지 않자 박전권 감독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경기 전.
박전권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분명하게 언급을 했다.
“우리가 초공이니까 7회부터는 추천 선수들을 기용할 거야. 그러니까 교체됐다고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알겠지?”
비록 올스타 투표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감독 추천으로 뽑힌 선수들도 올스타 선수였다.
올스타전을 예전처럼 3경기씩 치르는 것도 아니고 1년에 1경기 치르는데 추천 선수들을 벤치에만 앉혀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유성을 교체한 근거도 있었다.
6회에 박유성의 타석이 돌아온다면 한 타석 더 내보낼 생각이었지만 9번 타자 박찬희 때 끊겼고.
다음번 박유성 타석을 챙겨주자니 7회부터 추천 선수를 투입하겠다는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과감하게 교체를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코치로 자리를 지킨 김석률 감독의 의견도 구했다.
“7회에 선수 교체를 해야 하는데 중견수는 누가 나을까요?”
“중견수요?”
“지금 중견수를 볼 수 있는 게 유성이하고 다니엘 브리토인데 두 선수 다 스타즈 선수라서요. 감독님이 정해주시죠.”
“흠……. 그렇다면 다니엘 브리토가 나을 것 같습니다.”
만약 김석률 감독이 박유성을 선택한다면 군말 없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아마 그렇게 되면 박유성이 끝까지 경기를 뛰게 될 터.
박유성만 왜 교체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오롯이 김석률 감독이 짊어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김석률 감독은 박유성이 아니라 다니엘 브리토를 선택했고.
박전권 감독도 그 의견을 존중해 선수 교체를 진행했다.
7회 초가 아니라 6회 말에 선수를 바꾼 건 경기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공윤경 기자의 눈에는 모든 게 박민재 챙기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 원래 박민재 선수 좋아했거든? 그런데 오늘부터 안티 될 거 같다.”
“에이, 선배님. 그러시면 안 되죠. 감정으로 기사 쓰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넌 저게 이해가 돼?”
“솔직히 이해는 안 되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요?”
“사정? 무슨 사정?”
“백영완 선수는 국대 우익수고 박민재 선수도 작년까지는 외야수였잖아요? 그래서 두 선수를 투입한 거 아닐까요?”
“그럼 유성이를 두고 다니엘 브리토 선수를 교체했어야지!”
“하지만 박민재 선수와 백영완 선수 둘 다 팀에서 테이블 세터잖아요. 그래서 테이블 세터인 박유성 선수와 민병규 선수를 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
“하아. 지금 프로 야구 홈런 1위가 누구야?”
“그야…… 박유성 선수죠.”
“타점 1위는? 안타 1위는?”
“박유성 선수요.”
“지금 이 많은 관중들이 누굴 보려고 경기장에 온 것 같아?”
“……박유성?”
“이유가 어떻건 이건 최악의 판단이야. 유성이가 안타 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제대로 엿 먹인 거라고.”
선발 출전한 9명 중에 살아남은 건 공교롭게도 스타즈 선수들이었다.
우익수에서 중견수로 자리를 옮긴 다니엘 브리토와 1루수 박준수.
본래 박전권 감독은 오늘 충분한 활약을 펼친 박준수를 빼고 민병규의 포지션을 1루로 옮기려고 했지만 민병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오늘 컨디션이 별로라서요. 그냥 빼주세요.”
3타수 2안타에 1타점을 올린 박준수와 달리 오늘 민병규는 세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박전권 감독의 배려로 1루로 자리를 옮기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 2루에 스타즈 장영호 선수가 들어갔는데요. 소속팀에서는 3루수를 맡고 있는데 2루 수비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박전권 감독은 올스타전의 취지에 맞춰서 선수들을 교체한 것 같은데 글쎄요. 상대는 드림 리그 올스타 선수들이고 아직 승리가 확정된 게 아니거든요?
-드림 리그 올스타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지금 상대가 차포를 떼준 거나 다름없거든요? 최소한 영봉패는 면해야 합니다.
드림 리그 올스타 선수들도 갑작스러운 박유성의 교체에 불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