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91화 (291/412)

타자 인생 3회차! 291화

35. 리얼 올스타(6)

박유성이 더그아웃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을 때.

박전권 감독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정확한 태그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피치 아웃에 송구까지 완벽했으니 제아무리 박유성이라 해도 살기 어려울 거라 여겼다.

그런데 타석에 나가 있던 민병규가 더 난리를 쳤다.

“감독님! 비디오 판독이요! 비디오 판독이요!”

“어휴. 저 녀석 진짜.”

다른 선수도 아니고 랜더스의 간판 타자인 민병규를 외면할 수 없었던 박전권 감독은 어쩔 수 없이 그라운드로 나섰다.

“비디오 판독 신청하실 겁니까?”

“네. 신청해 주세요.”

구심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동안.

마운드 주변으로 드림 리그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아웃 맞지?”

나경석이 3루수 이종률(다이노스)을 보며 물었다. 아까 2루에 송구할 때는 팝 타임이 조금 걸렸지만 이번 3루 송구는 모든 게 완벽했다.

공을 받고 정확하게 뽑아 들어 빠르고 강하게 던졌다.

이종률이 공을 받자마자 몸을 돌려 박유성을 태그했으니 이 정도면 무조건 아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정작 이종률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타이밍은 맞은 것 같은데…… 걸린 게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유성이가 마지막 순간에 피한 거 같기도 해요.”

“뭐? 그걸 어떻게 피해?”

“그야 저도 모르죠.”

이종률이 대답을 구하듯 유격수 이세찬(베어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세찬도 피치 아웃에 정신이 팔려 태그 순간을 정확하게 보지 못했다.

“유성이가 살짝 몸을 비틀며 들어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걸렸을 겁니다.”

“그렇지? 걸렸지?”

“아웃 맞을 거예요. 유성이 저 녀석 쇼맨십입니다.”

위즈의 2루수 한상철도 나경석의 바람에 힘을 실어주었다.

박유성이 팬들 앞이라고 일부러 비디오 판독 신청을 요청한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과 국가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어본 선수들은 박유성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성이가 괜히 저러진 않을 텐데. 좀 불안하네.”

“그러니까요. 하아. 팔을 좀 더 뻗었어야 했나?”

“이거 판독 안 나오면 원심 인정이지?”

“그렇긴 한데 판독이 안 나올 수가 있을까요?”

비디오 판독 초창기 때는 방송 중계 카메라보다 기술력이 떨어져서 판독 불가 판정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요즘은 달랐다.

방송 기술이 좋아지면서 프로 야구 협회에서도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했고.

그 결과 지금은 메이저리그 버금가는 완벽한 판독 시스템을 구축해 냈다.

예상대로 5분쯤 지나자 판독 결과가 나왔다.

-지금 구심이 판독 결과를 듣고 있는데요. 아, 세이프입니다! 구심이 판정을 정정합니다.

-제가 뭐랬습니까? 선수가 가장 잘 안다고 했죠?

-지금 느린 화면으로 다시 나오고 있는데요. 나경석 선수의 송구가 이종률 선수의 글러브에 정확하게 도착했는데요. 태그를 하려고 몸을 돌리는 과정에서…… 태그가 이루어지지 않았네요!

-사실 저건 태그를 못 했다기보다는 박유성 선수가 잘 피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은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욕심에 최단 거리를 파고들다가 태그에 걸리거든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마지막 순간에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태그 플레이를 예상하고 일부러 방향을 틀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이게 포스 아웃 상황이라면 최단 거리를 파고드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태그 아웃 상황이잖아요? 베이스에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야수의 태그를 피하면 되는 겁니다.

-3루심의 위치에서는 글러브 끝에 유니폼이 걸린 것처럼 보였던 것 같은데 위에서 보니까 아예 유니폼은 건드리지도 못했네요.

두 번의 피치 아웃을 연거푸 빠져나간 박유성은 민병규의 2루 땅볼 때 빠르게 스타트를 끊어 홈을 밟았다.

타구가 제법 빨라 3루 주자를 노려볼 만도 했지만 박유성의 기세에 눌린 한상철은 감히 홈으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그렇게 박유성의 선취 득점으로 분위기를 잡은 나눔 리그 올스타 팀은 박준수와 다니엘 브리토의 연속 안타와 브랜든 포토(트윈스)의 희생 플라이를 묶어 한 점을 더 달아났다.

-나눔 리그 올스타 팀이 2 대 0으로 앞선 가운데 이제 드림 리그 올스타 팀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히어로즈의 안현우 선수입니다. 자막으로 전반기 성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0.313에 9홈런, 21개의 도루를 기록 중입니다.

-전반기에 다이노스와의 3연전을 쓸어 담으면서 히어로즈가 1위 자리 지키기에 성공했는데요. 안현우 선수의 활약이 상당했습니다.

-3경기 연속 멀티 히트를 때려내면서 히어로즈의 공격을 이끌었는데요. 벌써부터 차세대 국가 대표감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2007년생인 안현우는 2026 드래프트에서 8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타격은 준수하지만 수비와 주루 등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스카우트들의 평가 속에 지명 순위가 밀리고 밀리다가 외야 보강이 필요한 히어로즈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청소년 국가대표 팀에서 활약했던 다른 선수들이 일찌감치 지명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안현우는 송혁 감독을 직접 찾아가 마무리 캠프에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

“좋아. 대신에 마무리 캠프 때 제대로 못 하면 스프링 캠프는 없다. 그래도 괜찮아?”

“네. 감독님. 무조건 잘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스프링 캠프에서 빠지면 1군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안현우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무리 캠프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소화하며 송혁 감독의 눈도장을 제대로 받았다.

“1군에서 뛰려면 수비를 보완해야 해. 죽어도 중견수로 뛰고 싶으면 경기력으로 증명해 봐.”

송혁 감독의 주문대로 안현우는 2군에서 수비 연습에 매진하며 부족한 타구 판단 능력을 키웠다.

그리고 이듬해 1군과 2군을 오가다가 지난해부터 히어로즈의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큰 틀에서 보자면 박재흥 해설위원도 히어로즈의 전신에서 몸담지 않았습니까?

-뭐 그렇죠.

-그렇다면 선배로서 안현우 선수를 어떻게 보십니까?

-좋은 선수입니다. 타격도 준수하고 발도 빠르고요. 지난해 31개의 도루를 성공시켰고 올해는 전반기에만 21도루를 기록 중이잖아요? 테이블세터로서 이만한 선수가 없습니다.

-적잖은 히어로즈 팬들이 박유성과 안현우로 구성된 국가 대표 테이블 세터를 보고 싶어 하던데요. 가능할까요?

-글쎄요. 안현우 선수가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국가 대표팀에 승선할 수는 있겠지만 선발 출전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박유성 선수와 포지션이 겹치는데 안현우 선수가 다른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일각에서는 수비 능력이 좋은 박유성 선수가 코너 외야수로 자리를 옮기는 것도 방법이 될 거라고들 하는데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박유성 선수가 나중에 나이를 먹고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주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박유성 선수가 중견수 자리를 양보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채팅창에서는 박재흥 해설위원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발끈했지만.

실제로 히어로즈 팬들은 안현우가 내년 아시안 게임 때 대표팀에 발탁되어 병역 혜택을 받길 바랐다.

└아시안 게임 때 기정후하고 감백호, 송현민 불참하는 거 확실함?

└거피셜급이죠. 포스트 시즌 기간 중에 카타르 가는 건 에바임.

└기정후 지난번에 프리미어 12 끝으로 국대 은퇴할 생각이라고 밝히지 않았나요? 그럼 아시안 게임까지는 참가 아님?

└노놉. 아시안 게임은 불참하고 내후년 프리미어 12 우승으로 국대 마침표 찍을 계획임.

└기정후에 감백호 빠지면 외야 완전 구멍인데 안현우 뽑아야 하는 거 아님?

└외야가 왜 구멍이에요? 민병규도 있고 백영완도 있는데?

└민병규는 솔직히 지명 돌려야죠. 지금 랜더스 팬들도 민병규 수비 못 보겠다고 난리인데 그걸 국대에서 어떻게 봅니까?

└그럼 주전 좌익수는 유장한이겠네요.

└유장한보다는 안현우가 낫지 않음? 타격은 안현우가 더 좋은데?

└민병규는 수비 때문에 안 되고 유장한은 타격 때문에 안 돼? ㅋㅋㅋ 그냥 안현우 군 면제가 탐난다 그래라. 추잡하게 굴지 말고.

└안현우가 국대 뽑힐 수는 있겠지만 선발 출전은 힘듭니다. 박유성이 있는데 무슨 수로요?

└박유성이 좌익으로 가면 되잖아요?

└네?

└7할 타자인데 포지션을 양보하라고요?

└미친. 안현우 뭐 4할은 치냐? 왜 이렇게 나대?

└그딴 개소리는 최소 리그 MVP는 타고 말해요.

└리그 MVP를 무슨 수로 탑니까. ㅋㅋㅋ 올스타전 MVP도 힘들 텐데.

└올스타로 뽑힐 수 있을지도 모름. ㅋㅋ

일부 극성 팬들 때문에 사서 욕을 먹게 된 상황이지만.

안현우는 팬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병규 선배가 지명 돌고 유성이가 좌익 가면 다 해결되는 거잖아? 뭐가 문제라는 거야?”

송혁 감독으로부터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합격점을 받아서일까.

안현우는 자신의 수비 능력이 국가 대표급이라고 착각을 했다.

게다가 풀타임 2년 차 만에 3할이 넘는 타격을 선보이고 있으니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다.

만약 경쟁자가 국가 대표 은퇴를 앞둔 기정후뿐이었다면 그 건방짐이 패기로 비쳤겠지만.

애석하게도 국가 대표 중견수 자리는 앞으로 10년간 주인이 정해져 있었다.

-볼카운트 원 볼 원 스트라이크에서 송찬우 선수가 3구를 던집니다. 아, 이 공을 안현우 선수가 가볍게 밀어 칩니다!

앞선 배팅볼의 영향 때문일까.

송찬우가 3구째 던진 체인지업이 밋밋하게 들어오자 안현우는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타구는 유격수 박찬희의 키를 넘겨 빈 공간을 향해 날아갔다.

“됐어!”

애당초 안타가 목표였던 안현우는 홈런을 친 것마냥 방망이를 내던지고 여유롭게 1루로 뛰었다.

그런데…….

“뭐야?”

타구가 떨어져야 할 위치에 어느새 박유성이 나타나 있었다.

-박유성! 박유성이 이 타구를 건져냅니다!

-역시 박유성 선수네요. 아까 수비 위치를 앞쪽으로 잡을 때부터 어지간한 타구는 다 잡히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방금 타구는 드롭성으로 떨어졌거든요? 그걸 저렇게 우아한 슬라이딩으로 잡아내는 걸 보니까 괜히 박유성 선수가 아닙니다.

-임상훈 해설위원도 지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요.

-아까 박재흥 해설위원이 포지션 변경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을 때 그렇게까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나 했었거든요? 그런데 저 수비를 보니까 제가 한참을 잘못 생각했네요.

“젠장할!”

안타를 도둑맞은 안현우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고.

“나이스, 박유성!”

선두 타자 출루를 면하게 된 송찬우는 글러브를 두드리며 환호를 보냈다.

기록지로 보자면 고작 아웃 카운트 하나였지만.

2029년 올스타전의 승패는 여기서 갈렸다.

박유성의 출루와 연속 도루로 손쉽게 선취점을 얻어낸 나눔 리그 올스타는 거의 매 이닝 점수를 뽑아내며 리드를 벌렸다.

반면 드림 리그 올스타 타자들은 좀처럼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다.

올스타 투표로 선발된 다니엘 브리토와 민병규의 포지션이 겹치자 박전권 감독은 다니엘 브리토를 우익수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민병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우익수로 가겠습니다.”

“너 우익수 안 해봤잖아?”

“다니엘 브리토도 우익수가 불편하긴 마찬가지잖아요. 제가 수비를 가장 못하니까 제가 옮길게요. 어차피 우중간 타구는 유성이가 전부 처리해 줄 거라 별 부담 없어요.”

앞서 국가 대표 팀에서 박유성과 호흡을 맞춘 민병규는 박유성의 수비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비 폭이 좁은 자신은 정면과 라인 선상에 떨어지는 타구만 처리해도 충분했다.

나머지 우중간 타구는 박유성이 빠른 발로 커버를 할 테니 굳이 수비 잘하는 다니엘 브리토를 우익수로 끌어내릴 이유가 없었다.

그 예상대로 박유성은 드림 리그 타자들이 노려 친 우중간 타구를 전부 잡아내며 손진우 감독을 절규하게 만들었다.

“하아. 진짜 박유성 저 녀석, 왜 저렇게 얄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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