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89화 (289/412)

타자 인생 3회차! 289화

35. 리얼 올스타(4)

배팅볼을 던져주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송찬우도 어이가 없었다.

“혜성이 대신 나한테 던져달라고 한 이유가 이거였어?”

퍼펙트 히터도 홈런 레이스와 마찬가지로 배팅 볼 투수를 섭외해야 했다.

보통은 올스타전에 초대받지 못한 투수들 중에서 파트너를 정하곤 하는데 박유성은 배팅볼을 자처하는 동기 손지원과 좌완 김혜성을 내버려 두고 송찬우에게 찾아왔다.

“그러니까 나더러 네 배팅볼을 던져달라고?”

“네.”

“짜식이 너 형을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냐?”

“지난번에 경기 질 뻔했을 때 뒤집으면 제대로 한 끼 산다면서요? 밥 대신 배팅볼로 퉁 쳐요.”

“짜식아. 그건 밥이 아니라 술이었고 내년에나 사줄 생각이었거든?”

“이미 형이 던진다고 구단에 말했어요.”

“뭐 인마?”

강요에 가까운 부탁을 받은 송찬우는 어이가 없었다.

친분을 떠나 나눔 리그 선발 투수로 나가야 하는데 배팅볼이라니.

던져주겠다는 사람들을 놔두고 왜 자신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따악!

좌익선상으로 뻗어나가는 타구를 보니까 이제 알 것 같았다.

-아, 이 타구가…… 다시 한번 5점짜리 과녁에 적중합니다! 단 두 번의 타격으로 박유성 선수가 퍼펙트 히터 3위까지 올라갑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요란스러운 중계를 뒤로하고 송찬우는 타임을 외쳤다.

그리고 타석에서 빙글거리는 박유성에게 다가갔다.

“뭐야? 연습했어?”

“연습은 무슨 연습이에요?”

“그럼 내 공이 만만하냐? 그래?”

“형은 배팅볼도 묵직하잖아요. 그래서 타구가 뻗는 거예요.”

“짜식이 암튼 입만 살아가지고는.”

후배를 위한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르긴 했지만.

연달아 과녁에 적중하는 타구를 보니까 속이 쓰렸다.

그런 송찬우를 위해 박유성이 달콤한 제안을 했다.

“대신 우승하면 상금 줄게요.”

“그럼 인마. 당연히 반땅해야지.”

“반 말고요. 다 가져요.”

“뭐? 정말? 상금 500만 원인데?”

“아버님 이번에 인플란트 해야 한다면서요? 거기 보태요.”

송찬우는 말없이 박유성을 바라봤다.

지난주에 밥을 먹으면서 흘리듯 한 이야기를 박유성이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됐어 인마. 우리 아버지 인플란트 비용을 네가 왜 보태?”

“형 아버지면 제 아버지인데요 뭘. 대신에 나중에 우리 아버지 인플란트 할 때는 형이 보태요.”

“하아. 진짜 이놈을 어떻게 하면 좋지?”

“그렇다고 빈볼 맞히면 방망이 들고 올라갑니다?”

실제 경기 중이었다면 투수와 타자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게 불가능했지만.

올스타전 이벤트이다 보니 관중들도 웃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한 발 떨어져서 대화를 몰래 엿듣던 장내 아나운서는 박유성이 타석에 서자 크게 소리쳤다.

-자, 이제 우승까지 남은 점수는 단 4점! 박유성 선수가 다시 한번 외야 과녁을 맞힌다면 자이언츠 백영완 선수를 제치고 우승이 확정입니다!

퍼펙트 히터는 과녁의 위치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데 내야에 설치된 과녁은 1점. 외야와 내야 중간에 위치한 과녁은 3점. 외야에 세워놓은 과녁은 5점이었다.

4번째로 타석에 들어선 백영완은 내야 과녁을 전부 맞힌 뒤 중간 과녁 2개와 우익선상의 과녁을 맞히며 총 14점으로 1위에 올라 있었다.

“유성아, 제발!”

아직 8번의 타격 기회가 남아 있으니 박유성의 우승이 유력했지만 백영완은 만에 하나를 바라며 깍지까지 끼고 기도했다.

하지만 야구의 신은 백영완의 편이 아니었다.

후앗!

송찬우가 제법 힘 있게 던진 공이 살짝 몸쪽으로 몰려 들어오자 박유성은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고.

따악!

방망이에 제대로 걸린 공은 그대로 우익선상의 과녁 한가운데에 꽂혔다.

-이번에도 5점! 박유성 선수가 단 세 타석 만에 퍼펙트 히터 우승을 차지합니다!

마치 서커스에 가까운 타격에 관중들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운이 아니었어?”

“내가 말했지? 박유성 일부러 외야 과녁 노리는 거라고.”

“한두 번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세 번부터는 실력이지.”

“와, 진짜 클래스가 다르다. 클래스가 달라.”

“박유성이 괜히 7할 타자겠냐?”

장내 아나운서가 계속 도전하겠냐고 물었지만 박유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찬우 형이 오늘 선발 투수라서요. 컨디션 관리해야 해요.”

송찬우를 핑계 삼아 타석을 마친 박유성은 다른 11개 구단 대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에 곧바로 단상에 올랐다.

“다음 이벤트가 있으니까 바로 시상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2029년 퍼펙트 히터는 바로 스타즈의 박유성 선수입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프로야구 협회 신세혁 사무총장이 나와 꽃다발과 트로피, 그리고 500만 원이 적힌 부상을 건넸다.

“박유성 선수.”

“네?”

“고마워요.”

박유성이 홈런 레이스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신세혁 사무총장은 박유성이 원망스러웠다.

박유성은 10년에 한 번을 넘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라고 평가받으며 축구 팬들도 박유성은 인정한다는 말까지 만들어낸 슈퍼 루키.

그것도 무려 97퍼센트의 득표율로 올스타전 역대 최다 득표 수를 갈아 치운 프로 야구 최고의 스타가 올스타전의 꽃이라 불리는 홈런 레이스에 이유도 없이 불참한다는 건 프로 야구 협회와 프로 야구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단 세 번의 타격으로 5점짜리 과녁 3개를 맞힌 박유성을 보며 신세혁 사무총장은 자신이 큰 오해를 했음을 인정했다.

‘박유성 선수는 무식하게 힘으로 장타를 퍼 올리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야. 빠르고 정확한 스윙으로 라이너성 타구를 만들어내는 스타일이지. 그런 박유성 선수에게 이벤트랍시고 홈런 레이스 참가를 요구했으니 거절하는 게 당연해.’

올스타전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이벤트 중에 홈런 레이스는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경기였다.

애당초 팀 내에서 힘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최다 홈런자를 가리다 보니 박유성처럼 호리호리한 체격은 참가부터가 쉽지 않았다.

만약 박유성이 나눔 리그 홈런 1위가 아니었다면 다른 선수의 출전을 요청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전의 흥행을 위해 박유성을 홈런 레이스 추천 명단에 집어넣고 홍보를 했으니 사무총장으로서 할 말이 없었다.

“박유성 선수. 오늘 올스타전 MVP 기대해도 될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총재님께서 박유성 선수 팬이라서요. 가능하면 꼭 MVP 타주세요.”

신세혁 사무총장의 부담 가득한 덕담에 박유성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1회차와 2회차 시절에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올스타전 MVP는 솔직히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부상도 상당했다.

프로 야구 메인 협찬사인 현아 자동차에서 3천만 원 상당의 중형 SUV, HV5를 내걸었는데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리면 딱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드림 리그 투수들은 박유성에게 호락호락 MVP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드림 리그에서 3년 연속 올스타 투표 1위를 했던 송찬우가 나눔 리그로 넘어오면서 드림 리그 국내 선발 투수 자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실제 득표 차이도 거의 나지 않았는데 그 박빙의 승부에서 승자가 된 건 베어스의 토종 에이스, 박정우였다.

모든 이벤트가 끝이 나자 지난해 한국 시리즈 준우승팀인 이글스의 손진우 감독이 박정우를 불렀다.

“정우야. 너 스타즈전 때 던져봤니?”

“네. 감독님. 지난 인터 리그 때 홈경기 마지막에 나갔습니다.”

“이겼어?”

“아뇨. 졌습니다.”

“유성이한테 안타 몇 개 줬는데?”

“그날 유성이 사이클링 히트 쳤습니다. 기종범 선배님의 신인 최다 도루 기록도 깼고요.”

“그래서? 오늘 복수라도 하려고?”

손진우 감독의 말에 박정우가 냉큼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가 박준수였다면 올스타전을 통해 설욕을 노려보겠지만.

0.734의 타율을 기록하며 프로 야구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박유성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철저하게 승부를 피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냥 볼넷 내줘. 도루하면 뛰라고 내버려 두고.”

“네. 감독님.”

“유성이한테 휘둘리면 지는 거야. 알지?”

“네. 유성이는 자연재해쯤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좋아. 그런 마인드로 딱 한 타순만 막자.”

지난해 간발의 차이로 위즈를 제치고 포스트 시즌 막차를 탄 이글스는 다이노스와 히어로즈를 연달아 격파하고 2006년 이후 22년 만에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랜더스의 벽에 부딪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올 시즌 이글스는 드림 리그 5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글스 팬들은 이번 올스타전을 내심 기대했다.

전년도 한국 시리즈 진출 팀 감독이 올스타전 감독을 맡는다는 규정에 따라 손진우 감독이 드림 리그 지휘봉을 잡게 됐기 때문이다.

총 25명의 엔트리 중에 팬 투표로 뽑는 건 12명뿐.

나머지 13명은 감독 추천 선수로 채우는데 감독을 맡는 팀에서 우선적으로 차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손진우 감독은 투수 장성찬만 추천 명단에 적어 넣었다.

소속팀 챙기다가 박유성을 막지 못해 욕을 바가지로 먹느니 나름 최강의 전력을 구성해 박유성이 속한 나눔 리그를 꺾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리그 최하위인 파이터즈는 아예 배제가 됐지만.

손진우 감독은 드림 리그 올스타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나눔 리그 공격의 중심은 박유성이야. 박유성만 잘 넘기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

마운드에 오른 박정우도 히어로즈의 주전 포수인 나경석과 박유성에 대해 논의했다.

“거르자고?”

“유성이가 올스타전이라고 덤벼주면 고맙고. 아니더라도 무리해서 승부할 생각은 없어.”

“그냥 자동 고의4구로 거르는 건 어때?”

“그러면 팬들 야유 소리에 경기 중단될걸?”

박정우의 속내를 확인한 나경석은 초구부터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요구했고.

박정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림 리그의 선발 투수 박정우 선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바깥쪽 볼. 스트라이크 존을 상당히 벗어났습니다.

-빠른 공인데요. 148㎞/h가 나왔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공을 지켜봤는데요.

-워낙에 선구안이 좋은 선수니까요. 저렇게 빠지는 공으로는 속일 수가 없을 겁니다.

-올 시즌 두 선수 맞대결 기록이 자막으로 나오고 있는데요. 3타수 3안타에 홈런과 2루타, 안타를 허용했습니다.

-표본은 작지만 이 정도면 박정우 선수의 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말씀드리는 순간 박정우 선수가 2구를 던집니다. 이번에는 몸 쪽!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꿈쩍을 하지 않습니다.

“안 칠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박정우에게 공을 돌려주며 나경석이 말을 붙였다.

그러자 박유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거를 거예요?”

“내가 먼저 물어봤다.”

“좋은 공을 줘야 치죠.”

“7할 타자면 좋은 공을 안 줘도 안타 쳐야지.”

“오늘 정우형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서 안타 치기 힘들 거 같은데요?”

송찬우와 임찬기에게 가려지긴 했지만 박정우는 컨트롤 변태라 불릴 만큼 제구력이 좋은 투수였다.

보더 라인에 공 하나 넣었다 뺐다 하는 피칭을 선호해서 타자들이 까다로워하는 투수를 언급할 때 첫손가락에 꼽혔다.

드림 리그에서 박정우를 자주 상대했던 나경석이 보기에 초구는 몰라도 2구는 충분히 건드릴 만한 코스로 들어왔다.

하지만 박유성은 그런 뻔한 유인구에 당해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좋은 공을 안 주겠다는데 첫 타석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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