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87화 (287/412)

타자 인생 3회차! 287화

35. 리얼 올스타(2)

1회차 시절.

박유성은 홈런 레이스에 참가한 장태수가 부러웠다.

팀의 외국인 용병 타자가 참가를 포기하면서 어부지리로 장태수에게 기회가 돌아온 거지만.

쟁쟁한 거포들 사이에서 배팅볼을 때려내는 장태수를 보니까 한 번쯤 저 무대에 서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2회차 시절에 파이터즈를 대표해 홈런 레이스에 참가하게 됐는데 예선전 10번의 타격 기회 중에 담장 밖으로 넘긴 건 고작 2개뿐이었다.

“야 인마! 우리 집 고양이도 그것보단 잘 치겠다~”

장태수의 비아냥거림에 이를 갈며 2년 후에 다시 한번 홈런 레이스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개의 홈런을 때려낸 박유성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세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열이 확 올라서 노려봤다가 사진이 찍히는 바람에 인성에 문제 있는 선수라는 오명까지 사야 했다.

나름 체격을 키웠던 2회차 시절에도 홈런 레이스 꼴찌였는데 그때보다 체중이 20㎏이나 덜 나가는 지금은 참가해 봐야 망신만 살 터.

“후회 안 하겠어요?”

“네. 후회 안 합니다. 대신에 저 퍼펙트 히터 나갈게요.”

“퍼펙트 히터야 이미 확정입니다.”

프로 야구 올스타전 이벤트는 바다 건너 일본과 메이저리그에서도 참고할 만큼 다채로웠다.

워낙에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서 괜찮은 이벤트도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퍼펙트 히터의 경우도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실시됐다가 2026년에 다시 부활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 박유성 선수 대신 누굴 내보낼까요?”

“준수 형하고 다니엘 브리토가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박유성 선수가 지목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를 내보내도 상관없습니다.”

올스타전 이벤트 참가 선수는 보통 구단에서 추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홈런 레이스의 경우는 올스타전의 꽃인 데다가 거포들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서 참가 희망자들이 넘쳐났다.

김재식 단장은 내심 박유성이 국내 선수들 중 한 명을 추천해 주길 바랐다.

다니엘 브리토도 팀의 간판 타자이지만 데뷔 이후 꾸준히 홈런 레이스에 참가했던 만큼 신예 선수들이 대거 등장한 올해는 쉬어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단 한 명을 꼽기에 박유성은 팀 내 선수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장영호는 마무리 캠프 때부터 형 동생 하며 지냈고 이동엽과 장태수는 동기였다.

거기에 최일준과 블레이크 테일러, 다니엘 브리토, 박경호는 스타즈가 자랑하는 무적 센터 라인으로 묶여 있었다.

누구 한 명을 추천하기가 애매한 상황이라면 박준수에 이어 팀 내 홈런 3위를 달리고 있는 다니엘 브리토가 나가는 게 나아 보였다.

“다니엘로 가시죠. 이벤트전이라고 해도 1위 팀인데 결선 올라가야죠.”

“아, 거기까지 생각하신 겁니까?”

“스타즈 팬들에게는 이번 올스타전이 진짜 축제나 다름없을 텐데 기왕이면 준수 형이나 다니엘 브리토, 둘 중에 한 명이 결선 올라가서 홈런왕 차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제 생각이 짧았네요. 박유성 선수 말대로 하겠습니다.”

박유성의 의견을 받아들인 김재식 단장은 프로 야구 협회 측에 이벤트 참가 선수 명단을 전달했다.

그러자 프로 야구 협회가 난리가 났다.

“과장님! 박유성 홈런 레이스 불참인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메일 왔는데 박준수하고 다니엘 브리토가 나온답니다.”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해 봐!”

홈런 레이스 예선은 퓨처스 리그 올스타전이 열리는 날 치러진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퓨처스 리그 올스타전을 위해 여러 이벤트를 끼워 넣은 셈인데 예년과 달리 박유성을 보려는 팬들로 티켓 상당수가 팔려 나간 상태였다.

그런데 메인 이벤트에 박유성이 불참하다니.

이건 과거 호날두 노쇼 사건만큼이나 팬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컸다.

“뭐래? 확인해 봤어?”

“그게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권했는데 박유성 선수가 거절했다고 합니다.”

“대체 이유가 뭐야?”

“배팅 볼은 자신 없다고 했다던데요?”

“하아. 미치겠네.”

배연석 과장이 짜증을 내뱉었다. 박유성의 타격 스타일상 홈런 레이스에서 우승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불참을 선언할 줄은 미처 몰랐다.

“이거 언론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언론에 알려? 뭘 어떻게?”

“솔직히 불참은 아니죠. 자신 없더라도 팬 투표 1위인데 무조건 참가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 헛소리야? 팬 투표 1위는 홈런 레이스에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는 법 있어?”

“스타로서 책임감을 보여줘야죠.”

“서 대리. 경고하는데 쓸데없이 떠들기만 해. 박유성 선수 관련 기사 하나라도 나갔다간 진짜 너 징계 먹인다.”

“왜 저한테 그러세요?”

박유성이 스타즈에 입단한 이후로 흑화한 서기철 대리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정작 잘못한 건 박유성인데 협회가 눈치만 보고 있으니 박유성이 더 기고만장해지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배연석 과장은 박유성의 불참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그리고 언론도 문제야. 그냥 마음 편하게 참석하게 내버려 두지 뭐 하러 우승을 하네 마네 떠들어대는 거야?”

“그야 박유성 선수가 리그 홈런 1위니까 그렇죠.”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말도 안 해. 박유성 선수 홈런 레이스 우승 못 하면 까려고 밑밥 까는 거잖아?”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그렇게까지 하고 있잖아? 박유성 선수 월간 타율 6할로 내려왔다고 기사 난 거 못 봤어?”

“그야 뭐…….”

“서 대리 너도 적당히 해라. 너 그러는 거 다른 사람들이 모를 거 같아?”

“제가 뭘요?”

“박유성 선수 조만간 메이저리그 진출할 건데 그때도 애새끼처럼 삐쳐 있을래?”

“과장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심해? 너나 선 넘지 마. 박유성 선수 덕분에 관중도 엄청 늘었는데 대접은 못 해줄망정 기자들하고 짝짜꿍하기 바쁘니 원. 암튼 경고했어. 기사 나면 너 각오해.”

배연석 과장이 한껏 으름장을 놓았지만.

서기철 대리는 으레 하는 잔소리라 여기고 잘 아는 기자들에게 소스를 뿌렸다.

[박유성 홈런 레이스 불참 확정.]

소스를 접한 기자들은 앞다투어 기사를 올렸고.

홈런 레이스 우승자를 두고 열띤 토론을 펼치던 베이스볼 파크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정전이 됐다.

└박유성 불참이라니? 이게 뭔 소리야?

└스타즈 홈레 선수 박준수, 다니엘 브리토 확정이요.

└갓유성은요?

└유성이는 홈레 안 나간대요.

└헐, 이유가 뭐래요?

└박유성은 힘으로 홈런 치는 유형이 아니잖아요. 임팩트 있는 타격으로 라이너성 타구를 만들어내는 스타일인데 배팅볼로는 홈런 치기 힘들죠.

└차라리 잘됐다고 봅니다. 베팍에도 박유성 홈레에서 망신당할 거라는 예상 글들 많은데 리그 홈런왕이 고작 이벤트전 때문에 자존심 구길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팬으로서 아쉽지만 박유성 결정도 존중함.

└그래도 팬들이 원하는데 나와주면 안 되나?

└스타즈에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괜히 나왔다가 안티들 먹잇감 던져줄 필요 없죠. 일본에서도 홈레 우승 힘들 거라고 떠들어댔다던데요?

└일본 애들은 왜 이렇게 박유성에게 관심이 많은 거야?

└박유성이 한국 선수라는 게 억울하고 분해서 그래요. ㅋㅋ

└진짜 불참이네. 박유성 홈레 보려고 티켓 끊었는데 취소해야겠다.

└헐, 저도요.

└ㄱㅅㄱㅅ, 깜빡할 뻔했음.

매진에 가까웠던 퓨처스 리그 올스타전에 예매 취소가 쏟아지자 배연석 과장은 곧바로 서기철 대리를 호출했다.

“너야?”

“네? 무슨 말씀이세요?”

“너 아니지?”

“저 아닙니다.”

“뭔 줄 알고 아니래?”

“기자들한테 흘린 거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됐다. 가서 일 봐.”

“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예매 취소 때문에 사무총장님 완전 열받으셨거든? 아마 이번에 사고 친 놈은 시말서로 안 끝날 거다.”

“그, 그럼요?”

“이 정도면 업무 방해로 고소해야지. 그런 놈은 다시는 야구판에 발 못 붙이게 해야 해.”

배연석 과장이 서기철 대리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서기철 대리가 냉큼 변명을 늘어놓았다.

“업무 방해까지는 아니지 않나요? 솔직히 다들 박유성 선수 보려고 예매한 건데 박유성 선수 안 나오는 거면 알리는 게 맞잖아요?”

“박유성 선수가 홈런 레이스만 안 나오는 거지 토요일에 안 나온다고 누가 그래?”

“……네?”

“박유성 선수가 참가한다는 퍼펙트 히터 이벤트를 토요일로 당길 계획이었어. 협회 공지로 발표하고 예매한 팬들에게 양해를 구할 생각이었다고.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새끼가 먼저 흘리는 바람에 다 틀어졌어.”

“그게…… 퍼펙트 히터로 될까요?”

“그래. 그걸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박유성 선수에게 예매 상황 알리고 배팅볼 투수로 참가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새끼 때문에 다 망했네?”

“…….”

“아무튼 지금 감사팀에서 조사 들어갔으니까 자리로 돌아가.”

“과, 과장님.”

“내 말은 들어 처먹지도 않으면서 무슨 과장이래?”

서기철 대리 때문에 박유성을 설득할 카드를 전부 잃어버린 프로 야구 협회는 뒤늦게 박유성의 불참 공지를 올렸고.

성난 팬들은 프로 야구 협회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며 안일한 운영을 맹비난했다.

└진짜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협회들은 다들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네. 기사 다 나고 나서 공지 올리는 클래스 봐라. 진짜 역겨워서 못 봐주겠다.

└애당초 홈런 레이스에 박유성 참가할 것처럼 광고한 것부터가 문제였음.

└박유성 선수를 비롯해 프로 야구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들의 불꽃 튀는 대결이 펼쳐집니다, 라고만 했지 박유성 선수가 참가한다는 말은 없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호날두 노쇼도 무죄임. 다들 호날두가 나올 줄 알고 경기장 간 거였으니까.

└날두 형은 이제 봐줍시다. 카타르 월드컵 때 죗값 치렀잖아요.

└솔직히 그땐 K-날두였죠.

└그런데 박유성 에이전트 쪽 기사 보니까 협회에서 공식 발표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던데 어디서 말이 샌 거임?

└협회 직원이 퍼뜨렸겠죠.

└ㅇㅂㅇ 100퍼임.

└진짜 그런 거라면 정말 콩가루 협회가 따로 없네요.

└그래도 박유성 보려고 예매한 팬들 입장에서는 열사 아님?

└열사는 무슨. 보나 마나 박유성 홈레 참가 안 했으니까 욕해달라고 소스 흘린 걸 텐데 개나 소나 열사임?

└헐,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박유성이 7할 못 쳤으면 아마 신인 주제에 건방지다는 기사로 포털 사이트 도배됐을걸요?

└그럼 박유성은 이번에 이벤트 하나도 안 나오나요?

└팬사인회 잠깐 하고 일요일에 퍼펙트 히터 나온답니다.

└여자 친구와 같이 가려고 했는데 방금 헤어져서요. 티켓 적당한 가격에 양도합니다. 쪽지 주세요.

└적당한 가격이 예매가의 2배인 건 아니죠? ㅋㅋㅋ

└신고했습니다. 수고하세요.

└진짜 암표팔이들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구나. ㅋㅋ

토요일 열린 홈런 레이스에서 박준수와 다니엘 브리토는 똑같이 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나눔 리그 최종 2인에 선발됐다.

5개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리고 여유를 부리던 민병규는 다니엘 브리토의 마지막 타구가 쭉쭉 뻗어 나가자 얼굴을 싸매고 절망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11시부터 사인회가 시작됐다.

티케팅을 한 2만여 명의 관중들 중에 사인회 참여권을 받은 관중은 1천여 명.

5퍼센트의 당첨 확률을 두고 너무 적다는 불만들이 쏟아졌지만 프로 야구 협회는 사인회 참여 인원을 늘리지 않았다.

보나 마나 박유성에게 사인이 몰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예상대로 사인회장에 들어온 팬들은 박유성에게 몰려들었다.

“박유성 선수는 오래 기다리셔야 하니까 다른 선수들 사인부터 받으세요~”

아르바이트생들이 사전에 교육받은 대로 팬들을 분산시키려 노력했지만 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우리 조 사인 시간 20분이지? 그 안에 무조건 박유성 사인 받아야 해.”

“일단 박준수 사인부터 받고 올까?”

“닥치고 줄 서. 박준수 사인은 언제든 받을 수 있지만 박유성 사인은 오늘 아니면 영영 못 받을지도 몰라. 조만간 메이저리그 가 봐라. 그땐 답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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