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85화
34. 박유성은 특별해(10)
“유성아. 너 메이저리그 언제 가냐?”
“갑자기요?”
“갑자기가 아니라 나 이번 시즌 페이스 좋거든? 그런데 너 때문에 무관에 그칠 거 같아서 그래.”
4월과 5월에 이어 6월 월간 MVP까지 독식한 박유성을 보며 박준수는 만감이 교차했다.
국가대표 팀 선후배이자 소속팀 동료로서 기특하고 대견했지만.
개인적으로 박유성에게만 쏠린 스포트라이트가 부럽기만 했다.
“미안해요. 형. 저도 이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어요.”
처음 3회차를 시작했을 때.
박유성의 목표는 동생 박유신을 넘는 것이었다.
2회차 시절 박유신은 5년간 0.345의 타율과 연평균 30개 이상의 홈런, 그리고 50개에 가까운 도루를 성공시키며 프로 야구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다.
반면 2회차 시절의 박유성은 20년간 꾸준히 야구를 한 것 이외에는 딱히 내세울 게 없었다.
그래서 가끔 박유신이 컸다고 까불면 투자한 돈에 이자까지 붙여서 갚으라며 으름장을 놓아야 했다.
‘3할 5푼은 아쉽고 3할 6푼 정도면 만족이었는데 그 두 배를 쳐버릴 줄은 몰랐어.’
3회차로 넘어오기 직전 어플을 통해 계산했을 때만 해도 사실 이 정도로 잘 칠 줄은 몰랐다.
내야 안타를 제외한 1회차 시절 타율은 0.253.
같은 조건으로 구한 2회차 시절의 타율은 0.274라 3회차 때는 내야 안타 빼고 3할 정도는 칠 수 있을 것 같았고.
거기에 내야 안타를 적당히 때려내면 3할 6푼까지도 어찌어찌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분석은 잘못된 것이었다.
1회차 시절에는 철저하게 공을 맞히는 데 집중했다.
장태수와 홈런으로 싸울 자신은 없어서 철저하게 안타 수로 승부를 봤고.
무려 408개의 내야 안타를 때려내며 통산 타율을 0.310까지 끌어올렸다.
만약 똑같은 스타일로 2회차를 살았다면 1회차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냈겠지만.
똑딱이란 소리가 지긋지긋했던 박유성은 2회차 시절 과감하게 홈런 타자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장태수만큼 먹는 대로 찌는 체질이 아니라 결국 중장거리 타자에 만족해야 했지만.
1회차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2회차 때는 맞히기보다 때리는 타격에 집중했고.
은퇴 직전에는 자신만의 타격 메커니즘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3회차로 넘어오고 나니까…… 타격이 너무 쉬웠다.
일평생을 야구만 하고 살다 보니 그 흔한 로또 번호 하나 외워둔 게 없었지만.
일평생을 야구만 하고 산 덕분에 투수들의 꿍꿍이가 훤히 보였다.
게다가 지금 프로 야구에서 상대하는 투수들은 대부분 1회차와 2회차 때 겪었던 선수들이었다.
보통 신인 선수들은 프로 레벨 투수들의 공에 익숙해지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리는데 박유성은 투수들을 상대하는 노하우까지 가지고 있으니 타격이 폭발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준수 형이 올해 이렇게 잘했던가?’
1회차 시절과 2회차 시절 모두 파이터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탓에 이 시기의 박준수가 얼마나 잘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장기 계약도 원래 지난해 말이 아니라 올해 말이었고.
언론에서 다소 시끄럽게 다뤘던 만큼 올 시즌 성적이 커리어 하이 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박준수는 자신의 존재가 원망스러울 만큼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6월까지 73경기에 전부 출전에 타율 0.355에 28홈런, 77타점.
박유성에 이어 나눔 리그 타율과 홈런, 타점, 출루율, 장타율 2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다시 말해 박유성이 없었다면 타격 5관왕이 가능한 상황.
1회차 시절과 2회차 시절은 물론이고 박준수 야구 인생에 다시 없을 호성적인데 단 한 사람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준수가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는 데는 박유성의 도움이 컸다.
“그래도 제가 앞에서 열심히 밥상 차리잖아요.”
“농담이지 인마.”
“표정은 농담이 아닌데요?”
“솔직히 내가 언제 이렇게 쳐보나 싶다가도 너 없을 때도 이렇게 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 없고 그래.”
“형은 리그 MVP 받고 스타즈의 레전드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요.”
실제로 박준수는 2034년에 타격 3관왕(홈런, 타점, 장타율)을 달성하며 나눔 리그 MVP를 손에 쥔다.
1회차와 2회차 모두 MVP를 받았으니 이변이 없는 한 이번 3회차 때도 받게 될 터.
‘2034년이면 준수 형 6년 계약 마지막 해니까 타이밍도 좋네.’
2034년에 야구 인생을 갈아 넣은 박준수는 2035년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결장하게 된다.
1회차와 2회차 시절에는 2035년이 계약 마지막 해라 계약 연장 조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번에는 2034년에 MVP를 타고 나서 바로 협상 테이블이 펼쳐지는 만큼 다시 한번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형은 정말 해외 진출 생각 없어요?”
“나? 없어. 솔직히 고민은 했는데 현민이 형 보고 완전히 포기했다.”
“현민이 형이요?”
“프로 야구 씹어 먹던 현민이 형도 3할 겨우 치잖아. 냉정하게 현민이 형이 내 윗줄인데 3할도 못 칠 거면 안 가는 게 맞는 거 같아.”
루키 시즌 3할이 넘는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을 차지한 송현민은 올 시즌 목표를 0.333과 30홈런으로 잡았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적응이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였다.
타율은 2할 후반에서 3할 극초반을 오가는 중이고.
집중 견제로 인해 홈런도 10개에 그치고 있었다.
그래도 현지 언론에서는 송현민의 꾸준한 타격과 견고한 수비를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송현민은 경기가 끝날 때마다 푸념만 늘어놓았다.
“현민이 형이 레인저스에서 제일 잘 치잖아요. 투수들이 좋은 공을 안 주니까 어쩔 수가 없죠. 형도 그렇지 않아요?”
“너도 그래?”
“저라고 다르겠어요? 저 요즘 기자들한테 엄청 까이잖아요. 밥값 못 한다고.”
“그건 정신 나간 기자들이 하는 소리고. 7할 타자가 밥값 못 하면 나는 죽을까?”
“죽진 말고 4할 정도까지만 쳐봐요.”
“와, 이 얄미운 놈. 4할이 쉽냐?”
“쉽던데요?”
“너한테는 쉽겠지. 그리고 4할을 칠 수 있다고 해도 너 메이저리그 가기 전까진 절대 4할 안 칠 거야. 치면 뭐 하냐? 타격 타이틀도 못 딸 텐데.”
5월 20승 6패의 성적을 거뒀던 스타즈는 6월 19승 7패로 성적이 소폭 하락했다.
여전히 월간 승률 1위였지만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은 스타즈가 추락하고 있다며 떠들어댔고.
일부 야구 전문가들도 이대로 가다가 포스트 시즌에서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진짜 위기인가?”
“형은 위기 같아요?”
“솔직히 잘 모르겠다. 4월에 너무 이겨놔서 그런지 몰라도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좀 줄어든 느낌? 감독님도 백업 선수들을 자주 기용하시는 거 같고.”
“작년에도 7월까지 무리했다가 8월 이후에 무너졌잖아요. 여유 있을 때 쉬엄쉬엄 가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나도 감독님 선수 운용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야. 나야 어지간하면 교체가 안 되니까. 다만 뭐랄까. 긴장감이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
월간 승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스타즈는 여전히 나눔 리그 1위를 질주 중이었다.
시즌 성적 59승 14패로 승률 0.808.
2위 트윈스와의 승차는 무려 25경기였다.
하지만 성적과는 별개로 시즌 초반의 압도적인 느낌은 상당히 퇴색되어 있었다.
“뭐가 문제일까요?”
“유성이 너에 대한 의존도가 큰 게 문제 아닐까?”
“또 저예요?”
“팀의 중심 타자로서 유성이 네가 있으면 든든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 유성이가 해주겠지. 유성이가 해줄 거야.”
“저는 지고 있을 때 준수 형이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팀 내 결승타점 1위는 너잖아. 그만큼 네가 잘하니까 다들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덜 하는 것 같아.”
만약 나이만 많은 선배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이맛살을 찌푸렸겠지만.
박준수의 허심탄회한 말에 박유성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일부 기자들이 스타즈가 흔들리고 있다고 노래를 불러대니까 정말로 문제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홈런 치지 말고 밥상만 차릴까요?”
“그럴래? 그래주면 정말 고맙고.”
“와, 형. 방금 표정 뭐예요?”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현민이 형이 홈런하고 타점 양보하라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솔직히 저 형이 왜 그러나 싶었거든? 그런데 막상 내가 똑같은 처지가 되니까 욕심난다 유성아.”
6월까지 28개의 홈런을 때려낸 박준수와 박유성의 격차는 6개.
달이 지날수록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투수들의 집중 견제로 박유성의 홈런 페이스가 꺾이자 전문가들은 홈런 1위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홈런 2위였던 박준수와 홈런 3위 다니엘 브리토가 반등에 실패하면서 나눔 리그 홈런 1위 옆에는 여전히 박유성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형 몰아치는 거 잘하지 않아요?”
“투수들이 승부해 줄 때 이야기지. 요즘 나한테도 좋은 공은 거의 안 들어오잖아.”
시즌 초반.
박유성의 터무니없는 활약에 박유성 경계령이 내려졌을 때 박준수와 다니엘 브리토는 반사 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루상에 나간 박유성 때문에 투수들이 정신을 못 차리면서 실투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스타즈를 상대하는 팀들은 박유성보다 박준수와 다니엘 브리토를 잡는 데 집중했다.
박유성에게도 여전히 좋은 공을 주지 않고 있지만.
설사 박유성이 나가더라도 시즌 초반처럼 휘둘리지 않고 철저하게 무시하는 편이었다.
오죽하면 박유성이 2루로 뛰어도 야수들이 반응하지 않아서 무관심 도루 처리가 될 정도.
박유성이 뛰거나 말거나 와인드업까지 해가며 후속 타자들과의 승부에 집중하다 보니 시즌 초반만큼의 득점력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제가 좀 더 뛰어볼까요?”
“아냐. 그러지 마. 그냥 약간 느슨해진 것 같다는 얘기였어. 항상 좋을 수는 없잖아.”
“그렇죠.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는 거고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지금 상황이 꿈만 같아. 난 앞으로 5년간은 우승 못 할 줄 알았거든.”
“찬우 형이 들으면 엄청 서운해하겠는데요?”
“서운해하기는 무슨. 찬우하고 혜성이가 10승쯤 더 해줘도 1위 확정 수준은 아니잖아? 아니다. 감독님이 안 바뀌었을 테니까 혜성이가 못 오려나?”
고작 1년 만에 스타즈가 확 변한 건 누가 뭐래도 박유성 덕분이었다.
박유성이라는 슈퍼 루키의 등장으로 대형 트레이드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해단 행위를 일삼던 감독과 스카우트 팀장이 잘려 나가면서 대대적인 재정비가 이루어졌다.
만약 박유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올해도 답답한 야구를 반복하며 저만치 멀어지는 랜더스를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미안하다. 유성아.”
“뭐예요? 형 조울증 있어요?”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한 거 같다.”
“알면 됐어요. 병규 형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한마디 했을걸요?”
“어디 한마디만 했겠냐? 그렇게 불만이면 너 내놓으라고 난리 쳤겠지.”
“인정. 병규 형이었다면 100퍼 그랬을 거 같아요.”
“암튼 형 신경 쓰지 말고 시즌 막판까지 7할 유지해라. 6할로 떨어져서 기자들에게 먹잇감 주지 말고. 알았지?”
“쉽진 않겠지만 노력해 보려고요. 그보다 형. 홈런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뭐 인마? 아예 밥그릇을 뺏지 그러냐?”
장난스럽게 박유성에게 헤드록을 걸었던 박준수는 이내 박유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인 타이틀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잠시 푸념하긴 했지만.
박유성과 같은 팀에서 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 진짜 신성 그룹 사위 되는 거야?”
“그냥 밥 먹을 때 인사만 한 게 전부라니까요.”
“한 명만 만난 게 아니잖아? 회장님 손녀들 전부 봤다며?”
“왜요? 형도 관심 있어요?”
“어휴, 됐다. 내 주제에 무슨 재벌가 사위야? 난 그냥 나한테 잘해줄 여자가 좋아.”
“그러면서 병규 형한테 여소 해달라고 그래요?”
“그냥 하는 말이지. 병규 녀석이 나한테 여소를 해주겠냐?”
“하긴. 소개시켜 줄 여자 있어도 형한테는 안 해주죠. 라이벌이니까.”
“라이벌은 무슨. 나 무서워서 외야로 도망간 놈하고 엮지 마라.”
자이언츠와의 원정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며 7월을 패로 시작한 스타즈는 랜더스, 트윈스와의 홈 6연전을 전부 쓸어 담으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리고 박유성도 총 유효 투표 520만 표 중에 506만 표를 쓸어 담으며 2029년 올스타전 최다 득표의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