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81화
34. 박유성은 특별해(6)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춤했던 프로 야구의 인기는 12구단 체제로 접어들면서 다시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LA 올림픽 금메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을 연이어 거두면서 조만간 관중 ,2000만 시대를 여는 게 아니냐는 핑크빛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현시점까지 구기 종목 최고의 스포츠 스타는 송흔민이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인 프리미어 리그에서 동양인 사상 최초로 득점왕을 차지한 커리어는 단순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정도로 따라잡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박유성이라는, 천재라는 표현으로도 형용이 되지 않는 슈퍼스타가 등장했으니 박유성의 주가가 치솟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직 송흔민하고 비교하기에는 이른 거 아냐?”
신상욱 회장이 손주사위의 칭찬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었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을 대신해 박원호 과장이 입을 열었다.
“아직 해외 진출 전이지만 박유성 선수의 커리어도 만만치 않습니다. 회장님. 일단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이면 월드컵 4강쯤 되려나?”
“대회의 위상은 솔직히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종목별 최고의 국제 대회로 놓고 비교했을 때 우승 난이도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메이저리그 타자들로 도배를 한 푸에르토리코 대표팀과 미국 대표팀을 연달아 잡아내고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로 치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뚫고 올라간 셈이었다.
게다가 박유성은 단순히 경기만 출전한 게 아니었다.
올림픽 야구에 이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만장일치로 MVP를 차지했으니 국제 대회 커리어는 구기 종목 스포츠 스타들 중에 최고였다.
“그런데 유성이는 다른 회사 CF는 안 찍고 있지?”
“네. 회장님. 따로 진행되는 광고 계약 건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회사 광고 받지 말라고 눈치 줬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박유성 선수는 물론이고 박유성 선수 에이전시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성이야 경기에 집중해야 하니까 그렇다 치고, 에이전시는 왜?”
“현재 박유성 선수의 몸값이 들쑥날쑥이라서요. 눈앞의 돈보다는 선수 가치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신성 스포츠와 신성 제약에서 박유성에게 지불한 전속 모델료는 5억 원.
둘 다 1년짜리 계약으로 상호 합의에 따라 연장이 가능했다.
처음 박유성의 CF 몸값이 알려졌을 때 업계에서는 스타즈가 계약금을 보전해 준 것이라 여겼다.
메이저리그에서 300만 달러 이상의 오퍼를 받았던 박유성이 20억에 계약을 했으니 신성 그룹에서 그 손해를 CF로 보전해 줬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40여 일이 지난 현재.
5억이라는 몸값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업계 관계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박유성이 광고했다는 이유만으로 신성 제약의 에너지 드링크 120%와 신성 스포츠의 신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신성 스포츠는 엎치락뒤치락하던 태산 스포츠와의 점유율을 15퍼센트 차이로 벌리고 업계 1위로 올라섰고.
신성 제약도 에너지 드링크 분야의 전통의 강자들을 매섭게 추격하며 연일 주가를 끌어 올렸다.
이 추세라면 시즌 종료 후 박유성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터.
“이거 빨리 유성이 짝을 정해줘야겠어.”
“아예 그룹 전속 모델로 삼으시게요?”
“유성이 내후년에 메이저리그 갈 수도 있다며? 그전에 어떻게든 묶어둬야지. 죽 쒀서 개 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송광철 대표의 예상대로 프로 야구 협회는 메이저리그의 해외 자유계약 조건 완화에 맞춰 해외 진출 자격 여건 수정을 논의 중이었다.
“메이저리그 쪽 요구가 뭐라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메이저리그 기준에 맞춰 7년이던 FA 자격 연한을 6년으로 줄이는 것과 일본처럼 한 시즌만 뛰어도 포스팅 신청이 가능하도록 규정이 개정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도둑놈들이 따로 없어. 그렇게 우리 선수들이 탐나면 메이저리그에서 직접 투자를 하든가. 뭐 하자는 거야?”
신상욱 회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상호 교류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입장을 강요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FA 기간 단축은 그렇다 쳐도 포스팅 제도를 바꾸라는 건 우리나라를 선수 수급 시장으로 여기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박원호 과장도 냉큼 말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직장인들이 편하게 이직을 하는 것처럼 야구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자유롭게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다들 미국으로 넘어갔다가 실패한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그 방식이 만연화되면 프로 야구 구단에서 아마추어 야구를 지원할 이유가 없어진다.
지역 연고 시스템으로 유망주들을 육성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돌아온 선수들 중에서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골라 계약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프로 야구 구단의 지원이 끊기면 일본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가 많은 국내 아마추어 야구부는 자생력 있는 수도권 학교와 극소수의 인기 지방 학교를 제외하고 전부 문을 닫게 될 터.
“괜히 우리 시장을 지키는 게 아니야. 우리 시장이 무너지면 외국에 끌려다녀야 한다고.”
신상욱 회장의 일침에 한용준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박원호 과장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프로 야구가 북중미 시장처럼 선수 수급 창구로 전락하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래서, 단장 회의 결과는 나온 거야?”
“일단 FA 자격 연한을 낮추는 것과 포스팅 제도를 손질하는 건 만장일치로 부결됐습니다. 다만 메이저리그의 해외 아마추어 계약 기준이 변경됐기 때문에 포스팅에 한해 국가 대표 포인트를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도록 개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혜택을 받을 선수가 있어?”
“당장 국가 대표 포인트 제도로 2년을 채울 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포인트가 대폭 상향됐고 박유성 선수가 지금처럼 주요 대회에 참가한다면 이후에는 혜택을 받을 선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프로 야구 FA 자격 연한은 7년.
포스팅을 통한 해외 진출은 그보다 2년이 짧은 5년이었다.
여기에 국가 대표 포인트를 활용해 최대 1년을 앞당길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해외 아마추어 계약 기준을 현행 만 23세에서 만 21세로 낮추면서 프로 야구도 구색을 맞출 필요가 생겼다.
“원래 국대 포인트가 얼마였지?”
“주요 대회 우승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아시안 게임 30점, 올림픽과 프리미어 12는 50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60점이었습니다.”
“다 더하면 190점이야?”
“네. 4년간 열리는 대회를 전부 우승해도 190점이라 최대 1년 이상은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점수가 상향 조정되면서 최대 2년까지 쓰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LA 올림픽 야구에 8개국이 출전하면서 프로 야구 협회는 올림픽에 걸린 국가 대표 포인트를 10점 상향했다.
메달 확보를 위한 당근책이었던 셈인데 슈퍼 루키 박유성을 앞세운 대한민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추가 보상안 이야기가 나왔고 상당수 선수들이 국가 대표 포인트 상향을 요구하면서 대대적인 개선이 나서게 된 것이다.
“지금은 얼마나 늘어난 거야?”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은 20점, 프리미어 12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40점이 올랐습니다. 전부 우승 기준으로 합산하면 310점입니다. 거기에 참가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U-23야구 월드컵과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 시리즈, 아시아 야구 선수권까지 포함하면 획득 가능한 점수는 365점입니다.”
FA 자격 연한 1년을 앞당기기 위해 필요한 점수는 145점.
2년이면 290점이었다.
야구팬들도 잘 모르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위한 국제 대회까지 전부 찾아 뛰다 보면 290점 이상을 획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포스팅 신청 자격을 2년 앞당겨 풀타임 3년 만에 해외로 나가는 경우는 박유성뿐일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유성이는 지금 몇 점이야?”
“올림픽 우승 70점에 월드 베이스볼 우승 100점으로 170점을 얻었습니다. 올림픽은 포인트 상향이 소급 적용됐고요.”
“남은 점수가 120점이야?”
“네.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고 프리미어 12 때 준우승만 해도 채울 수 있습니다. 거기에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과 U-23 야구 월드컵 참가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아시아 야구 선수권은?”
“거긴 아마추어 선수들이 주로 나가는 대회라 박유성 선수가 참가하긴 애매합니다. 경력상으로는 문제없지만 실력은 프로에서도 최고라서요. 타국에서 반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U-23 야구 월드컵은 언제 열리는 거야?”
“내년에 열립니다. 다만 대회 일정과 포스트 시즌 일정이 일부 겹칩니다.”
“그러면 안 되지. 유성이 점수 챙겨주겠다고 포스트 시즌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박유성이 내후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주변에서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신상욱 회장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비록 시즌 초반이라고 해도 프로 야구를 씹어먹다 못해 갈아 마시는 중인데 그 재능을 썩힐 수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유성 한 명을 위해 포스트 시즌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은?”
“그 대회는 올해 말에 시즌이 끝나고 열립니다. 24세 이하가 주축이라 박유성 선수는 무조건 선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긴 프로가 주축이야?”
“네. 회장님. 24세 이상 선수는 와일드 카드로 3명까지 뽑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3개국만 참가하는 대회라 박유성 선수만 참가한다면 우승이 유력합니다.”
“그 대회는 몇 점인데?”
“참가 점수가 10점에 우승 점수가 10점, 도합 20점입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네. 회장님. 내년에 있을 카타르 아시안 게임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불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우리가 우승이겠네.”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과 아시안 게임을 우승하면 남은 점수는 50점입니다. 프리미어 리그 12 때 4강만 진출해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됐어. 어차피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불참할 테니까 4강에서 일본을 만나더라도 문제없겠지.”
신상욱 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박원호 과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박유성 선수가 내후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솔직히 구단주 입장에서야 유성이가 메이저리그 안 가고 스타즈에서 계속 뛰었으면 좋겠지.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이잖아? 내 평생소원이 스타즈 통합 우승 하는 거 보고 죽는 거였는데 원을 풀고 있으니까 나도 양보할 건 양보해야지. 안 그래?”
“포스팅은 구단 허락이 필수입니다. 회장님. 게다가 박유성 선수는 역대 최고 계약금을 받았고요.”
“그래서? 그깟 계약금 때문에 유성이 발목을 잡자는 거야? 박 과장 이 친구 이거…… 비서실이 아니라 스타즈로 보내야겠는데?”
신상욱 회장이 껄껄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적당히 때가 되면 스타즈 단장 자리를 맡겨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말하는 걸 보니까 기본적인 준비는 된 느낌이었다.
박유성이나 박유성의 팬들이 들으면 멱살잡이를 할 소리겠지만.
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을, 그것도 세금을 전부 부담하는 조건으로 지급한 스타즈 입장에서는 내후년에 박유성을 메이저리그로 보내는 게 여러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다른 구단의 구단주였다면 최소 4시즌은 채우라며 몽니를 부렸겠지만 신상욱 회장은 구단주이기 이전에 야구를 정말 사랑하는 야구팬이었다.
“내가 스타즈를 만든 건 말이야. 총재가 프로 야구의 부흥을 위해 양대 리그 체제가 필요하다고 해서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어. 코로나 이후로 프로 야구 열기가 많이 꺾였던 시절이잖아? 우승 욕심은 나중에 생긴 거고 그때는 순수하게 야구계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