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79화 (279/412)

타자 인생 3회차! 279화

34. 박유성은 특별해(4)

“허.”

송찬우는 그저 헛웃음만 났다.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 전용 경기장은 총 12개.

거기에 일부 경기가 치러지는 보조 경기장까지 합치면 20개에 달한다.

신축 구장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20개 구장도 제각각이었다.

설계가 다르고 연식이 다르며 건설 방법과 관리 방법이 다르다 보니 똑같은 컨디션에서 플레이를 할 수가 없었다.

1년 중에 절반 이상을 뛰는 홈 경기는 꾸준히 출전하다 보면 금방 적응하지만.

9번 방문하는 동리그 원정 구장에 익숙해지려면 주전으로 몇 시즌은 뛰어야 했다.

홈원정을 합쳐 10경기에 불과한 인터 리그 원정 구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라운드의 상태를 살피고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베테랑 타자도 아닌 박유성이 벌써부터 그런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송찬우보다 일찍 박유성을 접했던 김혜성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형도 유성이가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야구 하는 거? 저 정도면 타고난 거지. 노력으로 7할을 칠 수 있다면 투수들이 무슨 수로 버티냐?”

랜더스와의 개막 3연전을 스윕으로 마치던 날.

신성 그룹 신상욱 회장이 금일봉을 보내왔다.

선수 1명당 500만 원씩.

게다가 신성 호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회식까지 열어줬는데 그때 이런 얘기가 나왔다.

“송찬우 9명인 팀과 박준수 9명인 팀. 누가 이길까? 물론 다른 조건은 리그 평균으로 치고.”

분위기 메이커인 최일준의 질문에 다들 송찬우 팀을 꼽았다.

송찬우가 좌타자를 상대로 강하기도 했지만 박준수가 9명인 팀은 타격 빼고는 쓸모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 박준수조차 너무 뻔한 질문이라고 투덜거리자 최일준이 진짜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그럼 박유성 9명인 팀과 송찬우 9명인 팀은?”

“와, 이건 어렵다.”

“어렵지?”

“유성이가 미성년자인 게 아쉽네요. 있으면 물어보는 건데.”

“제가 깨톡으로 물어볼까요?”

당시 박유성의 성적은 11타수 9안타에 홈런 4개, 9득점에 11타점, 4도루.

타율을 제외하고 주간 성적이라고 해도 경이로울 스탯을 고작 3경기에 찍어버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박유성의 퍼포먼스가 계속 이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유성이가 4할 근저리만 쳐도 박유성 팀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오늘 하는 거 못 봤어? 무조건 유성이 팀이지.”

“찬우 넌 어때?”

“상상하기도 싫은데요? 유인구에 잘 속지도 않고 출루시키면 골치 아프고. 정면 승부 하면 얻어맞고. 그냥 운 좋게 아웃되기만을 바라야 하는데 답이 있을까요?”

리그 평균 수준의 박유성 팀 투수들과 리그 평균 수준의 송찬우 팀 타자들이 맞붙는다면 리그 평균 수준의 득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반면 박유성 9명을 상대해야 하는 투수 송찬우는 달랐다.

지난해 리그 MVP였던 로메오 클레멘스를 탈탈 털어버린 박유성을 계속 상대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아마 유성이는 내야 수비도 잘할걸요?”

“몰랐어? 유성이 중학교 때까진 내야도 봤대.”

“그럼 포수도 대충 보겠네요.”

“포수가 중요할까? 외야 전체가 박유성인데?”

“이건 뭐 답정너 수준인데요?”

선배들의 편한 음주를 위해 박유성은 일찌감치 방으로 올라간 상황이었지만 선수들은 전부 박유성 팀을 꼽았다.

송찬우도 그런 분위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즌이 치르면서 타율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박유성이 가지고 있는 천재성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김혜성은 박유성이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고 말했다.

“형. 유성이는 노력하는 천재예요. 유성이 집에 홈짐 있는 거 알아요?”

“얘기는 들었어. 가족들하고 같이 쓴다며?”

“가족들하고 같이 쓴다고 해서 가정용 홈짐 생각하는 거 아니죠? 유성이가 운동 기구 값으로 쓴 돈만 몇억 될걸요?”

“뭐? 그 정도야?”

“저는 유성이 볼 때마다 가슴부터 만져봐요.”

“변태냐?”

“그런 게 아니라 유성이는 딱 봐도 근육이 잘 안붙는 체형이잖아요? 그런데 몸이 점점 단단해지고 있어요. 야구를 위해 몸을 갈아 넣는 느낌이랄까요?”

“그래?”

“유성이 평소에 엄청 많이 먹잖아요. 그게 다 어디로 가겠어요?”

“어쩐지. 먹는 것에 비해서 살이 찌지 않는 것 같다 했다.”

박유성의 먹성은 스타즈 선수들 중 최고였다.

스타즈에서 가장 체격이 좋은 박준수와 다니엘 브리토도 박유성과 함께 밥을 먹으면 먼저 수저를 내려놓았다.

심지어 대표팀에서도 비시즌에 먹방 미튜브를 개설하면 대박 날 거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다만 식사량에 비해 체중이 늘지 않는 느낌이라 아쉬웠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벌크업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유성이는 막 티 내서 뭘 하지 않아요.”

“막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보이는 데서 하면 그만큼 참견을 하게 되잖아요.”

“하긴. 나도 지원이 볼 때마다 잔소리하고 있더라.”

“근데 왜 나한테는 안 해줘요?”

“뭐? 잔소리?”

“저도 해줘요. 저도 이제 막 입단한 신인이라고요오.”

김혜성과 손지원은 입단 동기지만 구단 내 입지는 전혀 달랐다.

김혜성은 송찬우와 임찬기, 박준수, 민병규로 구성된 고교 4대천왕 자리를 위협하던 최고의 유망주였다.

비록 메이저리그 쇼케이스 때 타자의 머리를 맞히는 사고가 나면서 잠시 방황하긴 했지만 지난해 투수들 중에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고 프로 데뷔 시즌인 지금도 4선발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반면 손지원은 박유성 덕분에 이름을 알린 케이스.

체격 조건과 공은 나쁘지 않지만 엇비슷한 유망주들이 널리고 널린 프로 야구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송찬우도 애정을 가지고 손지원을 챙겼고.

손지원도 평소 롤모델이던 송찬우의 잔소리에 단 한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징그러운 소리 그만하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해라.”

“그냥 그렇다고요. 유성이는 천재성만큼이나 노력하는 노력파인데 다들 그걸 못 보는 거 같아 아쉽다는 얘기였어요.”

“무슨 박유성 대변인이냐?”

“형. 저는 말이죠. 유성이 아니었으면 야구 접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유성이 한 번 이겨보려고 이 악물고 야구 했거든요? 그런데 유성이 실력이 더 빨리 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느꼈죠. 이건 천재도 괴물도 아니다.”

“그럼 뭔데?”

“야구의 신?”

“신은 무슨. 신이 노력하겠냐?”

“그건 그렇지만요. 암튼 우리라도 알아주자고요.”

“유성이가 노력파라는 거?”

“저도 4년간 개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고교 시절에 잘 던졌으니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볼 때마다 화나더라고요.”

“나만 하겠냐? 난 요즘 유성이 버프 받고 있단 소리 듣고 있는데.”

김혜성의 푸념에 송찬우가 코웃음을 쳤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완벽하게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승리를 챙기다 보니까 거품론까지 나오는 중이었다.

“그래서요? 형 다시 파이터즈 가고 싶어요?”

“미쳤냐? 난 평생 스타즈에 뼈를 묻을 거야. 막말로 가족들이 살 고급 타운하우스를 제공해 주는 구단이 있을 거 같아?”

송찬우를 잡기 위해 스타즈 구단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살 만한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조건은 스타즈 유니폼을 입는 한 평생 무상.

관리비까지 구단에서 대납해 주고 있다 보니 타 구단 이적은 물론이거니와 해외 진출 욕심도 깨끗이 사라졌다.

“넌 인마. 나한테 평생 감사하고 살아.”

“유성이도 아니고 형한테요?”

“너 내가 트레이드 싫다고 어깃장 놨으면 파이터즈 가야 했어. 그러다 나 해외 가면 노예처럼 던졌을 테고.”

“헐.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잘해 인마.”

“네에. 네에. 받들어 모시겠습니다요.”

박유성을 막지 못한 파이터즈는 스타즈에 15 대 0, 대패를 당했다.

홍형태가 일찍 무너지면서 무려 6명의 불펜 투수를 투입했지만 한껏 달아오른 스타즈의 방망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큽니다! 쭉쭉 뻗어나갑니다!

-이건 넘어갔습니다.

-중견수 뒤로! 중견수 뒤로! 이 타구가 그대로 펜스를 넘어갑니다! 쓰리런 홈런! 박준수 선수가 이번 시즌 12호째 홈런을 날립니다!

지난해 스타즈에서 이적한 선발 투수 조우진은 2이닝 동안 6점을 내주고 무너졌고.

뒤이어 마운드에 오른 불펜 투수들도 볼질을 남발하며 박흥선 감독을 미치게 만들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단체로 뭘 잘못 먹었어?”

“아무래도 연이틀 등판이다 보니까…….”

“고작 이틀 가지고 무슨 앓는 소리야? 그럴 거면 다 때려치우라고 그래! 저게 프로야? 저게 프로냐고!”

2차전까지 17 대 2로 패배한 박흥선 감독은 5선발 박원우 대신 장염으로 로테이션을 걸렀던 외국인 투수 앤서니 브리프를 마운드에 세웠다.

아홉수도 아홉수지만 전 파이터즈 에이스였던 송찬우를 상대로 꼭 이기고 싶었다.

하지만 파이터즈 파크가 편한 건 박유성만이 아니었다.

-헛스윙 삼진 아웃! 송찬우 선수가 오늘 경기 7개째 탈삼진을 잡아냅니다!

-송찬우 선수 대단하네요. 친정팀을 상대로 지금까지 퍼펙트 피칭입니다.

-이거 잘하면 오늘 대기록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요?

6회까지 단 한 명도 출루시키지 않은 송찬우를 보며 중계석에서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정작 대기록은 박유성이 작성했다.

-이 타구가 완전히 빠집니다!

-이건 3루까지 들어가겠는데요?

-박유성 1루를 돌아 2루로! 2루에서 곧바로 3루로! 공 3루로 연결됩니다만 박유성 선수의 폭풍 질주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진짜 이 선수 뭐죠? 무슨 히트 포 더 사이클을 밥 먹듯이 하네요.

-뭐긴 뭡니까. 대한민국 야구의 희망이죠.

7회에 안타를 내주며 퍼펙트 행진이 끝난 송찬우는 미련 없이 마운드를 내려왔고.

고우혁과 신영기가 8회와 9회를 나눠 막으며 스타즈의 11 대 0 승리를 완성시켰다.

2

종이 신문 발행 부수가 해마다 급락하고 있지만 신상욱 회장은 여전히 웹 기사보다 종이 신문을 선호했다.

인터넷 기사는 전부다 비슷비슷했지만.

종이 신문은 신문사의 방향성과 기자의 성향에 따라 읽는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출근한 신상욱 회장의 앞으로 주요 일간지들이 배달됐다.

“어디 한번 볼까?”

두툼이 쌓인 읽을거리를 보며 신상욱 회장이 씩 웃었다.

그러고는 가장 위에 올라온 오선 일보를 펼치고는 빠르게 종이를 넘겼다.

본래 경제면부터 읽는 편이었지만 스타즈가 승승장구를 하는 올해는 무조건 스포츠 면이 1번이었다.

[스타즈 9연승! 파이터즈 스윕하고 단독 선수 질주!]

“이놈들은 참 한결같아.”

기사 제목에서 박유성의 이름이 보이지 않자 신상욱 회장이 피식 웃었다.

지난 약물 논란 이후로 신성 그룹 법무팀의 고소를 당한 상황에서도 오선 일보 스포츠부는 철저하게 박유성을 배척해 왔다.

스타즈의 승리 사실은 전하되 박유성의 활약상은 축소하거나 생략하는 치사한 방법으로 기사를 써왔다.

하지만 그런 오선 일보 스포츠부도 히트 포 더 사이클 사실만큼은 감출 수가 없었다.

[한편 스타즈의 선두 타자로 출전한 박유성은 시즌 5호째 히트 포 더 사이클을 기록했다.]

막판에 박유성에 대해 짧게 언급한 걸 보며 신상욱 회장은 크게 웃었다.

이 한 줄을 넣으면서 부들거렸을 기자를 생각하니까 괜히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고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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