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77화
34. 박유성은 특별해(2)
한 해 신성 그룹이 스타즈에 홍보비 목적으로 투자하는 금액은 300억 남짓.
그 중 200억이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지만 실제 200억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박준수 계약 총액이 얼마지?”
“6년에 195억입니다. 옵션을 포함하면 최대 225억이고 세금의 절반을 구단에서 보전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럼 260억쯤 되겠네.”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지난 시즌 박준수 WAR이 얼마야?”
신상욱 회장이 고개를 돌려 박원호 과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원호 과장이 김재식 단장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지난 시즌은 7.5였습니다.”
“그럼 계산이 어떻게 되는 거야?”
“WAR당 연봉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6억이 조금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은 거야?”
“100억 이상 계약한 선수들 중에서는 손에 꼽힙니다.”
잠깐 긴장했던 김재식 단장은 길게 숨을 골랐다.
박원호 과장이 이상한 소리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원하던 답이 나왔다.
하지만 신상욱 회장이 하려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민병규는 어때? 민병규도 박준수 정도 되나?”
“작년 WAR은 박준수 선수가 더 높긴 하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260억 주고 민병규 데려오면 지금 성적 낼 수 있겠어?”
“박유성 선수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말씀이십니까?”
“그럼? 지금 민병규까지 데려오면 반칙 아니야?”
신상욱 회장이 껄껄 웃었고.
한용준 비서 실장도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박원호 과장과 김재식 단장은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국내 타자들 중에서는 박준수와 최고를 다투는 민병규라 하더라도 박유성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민병규 선수의 WAR은 7 정도입니다. 풀타임 기준이라 지난 시즌 대비 7승 정도는 더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만큼은 안 된다는 거지?”
“이번 시즌 스타즈 성적은 솔직히 터무니없이 좋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야 당연히…… 박유성 선수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
송찬우와 박유성, 박경호가 없는 상황에서 스타즈는 14승 16패, 승률 0.467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27승 3패, 승률 0.900을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 대비 +13승
이 중 송찬우와 박경호, 그리고 새로 합류한 선수들의 기여 승수가 3승 정도이니 WAR대로 박유성 혼자서 10승을 추가한 셈이었다.
“김 단장. 이래도 200억이 아까워?”
신상욱 회장이 고개를 돌려 김재식 단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해명하듯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해당 옵션 내용이 외부로 흘러 나갈 경우 박유성 선수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이 높아서 계약 수정의 필요성을 말씀드린 겁니다.”
“야구를 잘하는 만큼 받아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거야?”
“지난해 우리 구단의 총매출은 600억 수준입니다. 반면 메이저리그 구단의 평균 매출은 5천억이 넘습니다. 박유성 선수와 계약할 수 있는 빅마켓 구단의 매출은 더 많고요.”
“그래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규모에 맞춰서 연봉을 받아야 대중들도 납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유성의 계약금을 두고도 언론은 몇 개월을 떠들어댔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시즌 초 활약으로 쑥 들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적잖은 기자들이 20억은 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유성이 옵션으로 200억의 보너스를 챙긴다면?
야구 실력과 별개로 돈밖에 모르는 선수라고 물어뜯길 게 뻔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옵션 계약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놓고 이제 와서 계약을 바꾸자는 거야?”
“대신에 기존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은 다른 방식으로 보전해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른 방식이라니?”
“그걸 논의드리기 위해서 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허, 나더러 대안까지 내놓으라고?”
신상욱 회장이 코웃음을 쳤다. 평소 일 못 한다고 타박하던 임원들도 아니고 일 하나는 똑소리 나게 잘해서 단장을 시킨 김재식 단장이 이렇게 나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있던 한용준 실장이 슬그머니 말을 받았다.
“회장님께서 지난번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박유성 선수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크흠, 자네 누구 편이야?”
“저야 늘 회장님 편이죠. 다만 옵션 계약을 해야 했던 상황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상황?”
“당시에 박유성 선수의 계약금이 초미의 관심사였지 않습니까? 박유성 선수 에이전트 쪽에서 메이저리그 오퍼 사실을 공개하면서 과도한 금액을 주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액을 낮추는 대신 옵션 계약을 한 거다?”
“물론 박유성 선수의 실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과도한 옵션을 추가한 건 김 단장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하지만 회장님. 시즌이 끝난 다음에 과도한 옵션 계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 전에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크흠…….”
신상욱 회장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구단주로서 김재식 단장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한용준 비서실장의 말을 듣고 나니까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 실장은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 같아?”
“박유성 선수도 과도하게 많은 보너스를 받는 게 부담스러울 겁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한 대가를 포기하기도 어렵겠죠.”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해? 내 사재라도 털어?”
“박유성 선수가 추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 거처를 마련해 주시면 어떨까요?”
“거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절세를 위해 고가의 주택을 임대한다고 하니까요. 그때 회장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박유성 선수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흠……. 집이라. 그거 나쁘지 않네.”
한용준 비서실장의 제안에 신상욱 회장은 물론이고 김재식 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송현민도 아직까지 살 거처를 구하지 못해서 호텔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눈높이를 낮춘다면 살 만한 집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겠지만 구장과의 거리나 개인 훈련 여건 등을 전부 만족하는 집을 얻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호텔 체인을 운영중인 신성 그룹에서 나선다면 박유성이 만족할 만한 집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을 터.
“그 정도면 옵션 변경에 대한 보상이 되겠지?”
“박유성 선수가 신성 그룹과의 관계를 단절할 생각이 아니라면 서로 만족스러운 거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김 단장. 들었지?”
“네. 회장님.”
“가서 잘 이야기해 봐. 에이전트 쪽에서 추가로 요구하는 게 있으면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신상욱 회장의 재가를 받은 김재식 단장은 다시 송광철 대표와 약속을 잡았다.
“여기 오랜만이네요.”
“기억하십니까?”
“그럼요. 여기서 유성이, 아니 박유성 선수 계약에 합의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여기로 모셨습니다.”
“……?”
“추가했던 옵션을 수정했으면 합니다.”
주문도 하기 전에 날아든 폭탄에 송광철 대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재식 단장이 조심스럽게 내민 수정 계약서를 확인하고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언론을 의식하시는 거죠?”
“도핑 논란이 잠잠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팬서비스를 두고 말들이 많더라고요.”
“그 점은 사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오히려 편하게 팬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데 그럼 진행 요원들이 고생이니까요.”
“박유성 선수가 투수였다면 선발 등판 하는 날만 특별히 진행 요원을 충원해서 배치하겠지만 타자니까요.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단장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스타즈 파크를 찾는 팬들 중에 절반은 스타즈 팬이 아니라 박유성 선수 팬이라는 말까지 나돌더라고요.”
“저도 그 얘기 들었습니다. 그런데 딱히 반박을 못 하겠습니다.”
“하하. 단장님은 여전하십니다.”
김재식 단장의 의도를 파악한 송광철 대표는 다시 천천히 수정된 계약서를 확인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과도하게 느껴졌던 옵션 조건이 다소 현실적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메이저리그 진출과 미국에서의 생활을 전폭 지원한다는 추가 옵션은 줄어든 보너스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았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합니다.”
“정말이십니까?”
“현민이 따라다니면서 느낀 게 미국은 한국과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지금이야 레인저스 구단에서 현민이를 잘 챙겨주지만 처음 갔을 때는 제가 다 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신성 그룹에서 박유성 선수를 은퇴 때까지 서포트해 준다면야 무조건 사인해야죠.”
“보셔서 아시겠지만 삭감된 보너스 금액은 주택 자금을 통해 지원될 예정입니다. 회장님께서 박유성 선수가 1원 하나 손해 보는 일 없게 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트윈스는 현민이 미국 가고 나서 연락도 잘 안 하던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 회장님깨서 박유성 선수의 열렬한 팬이지 않습니까?”
“하하. 트윈스 회장님도 현민이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선수를 좋아하시는 것 같지만요.”
언론이 잘 포장하긴 했지만 송현민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송현민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트윈스 구단은 송현민을 주저앉히기 위해 계속해서 장기 계약을 시도했고.
그 제안들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감정의 골이 생기게 됐다.
트윈스가 통합 우승을 거두지 못했다면 아마 송현민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FA가 되고 나서야 가능해졌을 터.
그래서인지 몰라도 박유성을 아껴주는 스타즈 구단과 신성 그룹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만 했다.
“여튼 유성이에게 회장님의 배려를 잘 전달하겠습니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계약서 수정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마친 두 사람은 편하게 식사를 즐겼다.
“참, 랜더스 정영진 회장이 식사를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저도 얘기는 들었습니다.”
“지난번 사구 일도 있고 해서 밥 한 끼 먹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구단 눈치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영진 회장이 실력 있는 야구 선수들과 교류하는 걸 좋아하는 건 유명하니까요. 다만 그전에 저희 회장님과 먼저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어휴, 그럼요. 식사를 해야 한다면 신상욱 회장님이 먼저죠.”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이번 계약 수정 건으로 회장님께 꾸지람을 들어서요. 뭐라도 하나 가져가야 합니다.”
“유성이도 신상욱 회장님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자주 말했으니까요. 날짜 정해 주시면 최대한 맞춰 보겠습니다.”
“네. 비서실에 바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송광철 대표는 전주로 차를 몰았다.
지난 타이거즈 전을 끝으로 인터 리그가 시작됐는데 첫 상대가 하필 박유성의 친정팀(?)인 파이터즈였다.
“어이구. 경기 시작했겠네.”
주차장에 차를 대기가 무섭게 송광철 대표는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1층 관중석에 올라선 순간.
따악!
날카로운 타격음이 송광철 대표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