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71화 (271/412)

타자 인생 3회차! 271화

33. 감히 누굴 건드려?(4)

“지난해 빈볼 징계는 어떻게 했습니까?”

“5경기 출전 정지에 벌금 300만원 부과했습니다.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유소년 야구 봉사도 추가됐고요.”

“그럼 그 기준에 맞춰서 징계하면 되는 겁니까?”

“지금 야구팬들은 중징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원칙에도 없는 징계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징계 위원회에 참석한 신세혁 사무총장이 푸념하듯 말했다.

야구 팬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동안의 전례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자 한 징계위원이 묘안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사안이 좀 심각합니다. 구심이 1차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빈볼을 던졌으니까요.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10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1천만 원을 부가하는 게 어떻습니까?”

“사실상 그 정도가 징계 상한선인데 그 정도로 야구 팬들이 만족할까요? 지금도 레오 로드리게스를 퇴출시키라고 난리인데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랜더스 구단도 자체 징계를 내릴 때 고민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공을 랜더스 구단에 넘기자는 겁니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중징계를 논의했으나 규정상 이 이상의 징계는 힘들다. 대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면 야구 팬들도 어느 정도 납득은 할 겁니다.”

신세혁 사무총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곧바로 징계에 착수했다.

“긴급 상벌위원회 결과 구심의 경고를 무시하고 고의 빈볼을 던진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에게 1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1천만 원을 부과합니다. 10경기 출장 정지는 곧바로 적용되며 사흘 내로 선수가 직접 이의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수 관리를 하지 못한 랜더스 구단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

본래는 프로 야구 협회에서 할 만큼 한 다음에 랜더스에 공을 넘기는 것이었지만.

프로 야구 12개 구단과 척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장인석 총재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세혁 사무총장은 랜더스에게 살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니까 우리더러 알아서 레오 로드리게스를 방출시키란 겁니까?”

“랜더스 팬들조차 레오 로드리게스에 대한 방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레오 로드리게스 때문에 랜더스의 이미지가 망가졌다면서요.”

“박 감독이 지시한 겁니까?”

“박 감독은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진형 수석 코치도 자신 있게 승부하라는 말만 했다고 하고요.”

“그럼요? 정말로 레오 로드리게스가 혼자서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겁니까? 그걸 팬들이 믿겠어요?”

“일단 레오 로드리게스의 거취에 대해 결단을 내려 주시면 그에 맞게 대처하겠습니다.”

“후우…….”

정영진 회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메오 클레멘스가 작년만큼 던져줬다면 레오 로드리게스를 과감하게 쳐냈겠지만.

로메오 클레멘스의 퍼포먼스가 작년에 못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160㎞/h에 달하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레오 로드리게스를 계속 끌고 가자니 애써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훼손될 것 같았다.

“박 감독은 뭐랍니까?”

“레오 로드리게스가 빠지면 이번 시즌 성적을 내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핑계 좋네요.”

레오 로드리게스가 아니더라도 올 시즌 랜더스는 포스트 시즌 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랜더스 팬들은 박경호의 저주라 떠들어대지만 그보다는 에이스인 로메오 클레멘스와 용병 타자 듀오가 시즌 초반 부진한 영향이 컸다.

“로메오 클레멘스는 어때요? 계속 끌고 갈 만합니까?”

“구속은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날이 좀 풀리면 작년 수준으로 던질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타자들은요?”

“두 선수 모두 기대에 못 미치고 있긴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브라이언 코빈은 그렇다 쳐도 페트릭 도저는 영 아닌 거 같던데요?”

“그렇긴 하지만 지금 시장에 마땅한 매물이 없습니다. 회장님.”

“그럼 이대로 다 안고 가자는 겁니까?”

정영진 회장은 가능하다면 일찍 용병 선수들을 교체하고 싶었다.

박경호의 이적 파동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려면 새로운 선수가 들어와 활약해 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장에 나왔던 대부분의 선수들이 계약을 마친 상황에서 대체 선수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는 방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매물이 없다면서요?”

“회장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안경호 선수를 키워볼까 합니다.”

“안경호? 올해 우선 지명으로 뽑힌 선수 말이죠?”

“네. 회장님. 비록 지난 경기는 부진했지만 현장에서의 평가가 좋습니다. 지난해 고교 투수 톱 3안에 들었던 선수입니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발탁됐고요.”

“알죠. 안경호 선수 잘하는 거. 그런데 팬들이 좋아하겠습니까?”

“저도 팬들 반응을 살펴봤는데 이렇게 된 거 리빌딩을 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일단 박경호 선수 대신 임기성 선수가 포수 마스크를 썼으니까요.”

“그에 맞춰서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보자는 겁니까?”

“원래 우승을 하면 리빌딩을 준비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올 시즌은 우승이 어려워진 만큼 내년 시즌 도약을 위한 밑거름으로 쓰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랜더스 구단 내부에서는 낙하산 단장 소리를 듣긴 하지만 최윤철 단장도 단장으로서 기본적인 역량은 가지고 있었다.

정영진 회장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해 구단을 운영하다 보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많을 뿐이지 그렇다고 능력도 없이 자리만 꿰차고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얘기로군요.”

정영진 회장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명분 없이 박경호를 내쳤다고 욕을 먹고 있으니 차라리 리빌딩으로 접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박 감독 임기가 몇 년 남았죠?”

“재작년 겨울에 3년 재계약했으니까 내년 시즌까지입니다.”

“로메오 클레멘스도 내년까지죠?”

“네. 4년 계약이지만 2년 후에 상호 계약 해지 조항이 있습니다.”

“박 감독에게 전하세요. 올 시즌 재정비 잘해서 내년 시즌 우승을 노리라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올 시즌은 용병 투수 한 명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포스트 시즌 진출이 정말로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아까 말했잖아요. 올 시즌은 재정비 잘하라고. 포스트 시즌 못 가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못 가는 편이 그림이 좋겠네요. 클린 베이스볼을 위해 포스트 시즌을 포기했다. 괜찮지 않아요?”

정영진 회장이 씩 웃었다.

연이은 패배로 스타즈와 11경기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턱걸이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건 의미 없었다.

최종 순위에서 스타즈에게 밀리더라도 시즌 막판까지 순위 경쟁을 하지 못한다면 포스트 시즌은 나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경기 대충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지더라도 내용 있게. 빈볼 시비 같은 건 일으키지 말고요.”

“넵.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그건 그렇고…… 박유성 선수하고 식사 자리는 어떻게 됐습니까?”

정영진 회장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최윤철 단장이 냉큼 고개를 숙였다.

“에이전시 통해서 요청을 했는데 시즌이 끝나고 나서 다시 문의해달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라. 밥 한 끼 먹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이번 빈볼 사태에 대한 사과 건으로 다시 한번 요청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그거 좋네요.”

정영진 회장과 독대를 마친 최윤철 단장은 곧바로 레오 로드리게스 퇴출을 발표했다.

아울러 기자회견을 열고 레오 로드리게스의 빈볼 사태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반성의 의미로 이번 시즌에는 용병 투수를 한 명만 데려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랜더스 구단이 강경책으로 나오자 비난 일색이던 커뮤니티 반응이 바뀌었다.

└역시 영진이 형. 야구에 진심인 남자.

└발표는 단장이 했지만 영진이 형이 결단 내린 거겠죠?

└당연하죠. 구단주 허락 없이 용병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잘 가라 레오 로드리게스. 다시는 한국 쪽은 얼씬도 하지 마라.

└자이언츠 팬으로서 속이 다 시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남은 연봉 다 줘야 하나요?

└아마 계약 조건에 해단행위 하면 짤리는 조항 같은 거 있을 겁니다. 이번 빈볼 사태는 해단행위나 다름없으니까 아마 그냥 쫓겨날걸요?

└그게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 아마 적정 연봉선에서 합의할 겁니다. 아니면 아예 방출 시 위약금 조항이 걸려 있을 수도 있고요.

└용병 투수 한 명 포기하면 올 시즌 포기한다는 거임?

└들리는 소문으로는 부분 리빌딩 한다고 합니다.

└부분 리빌딩이요? 랜더스 평균 연령이 리빌딩 할 정도입니까?

└원래 강팀들은 우승할 때 다음을 준비하잖아요. 올 시즌은 자력 우승이 힘들어졌으니까 내년 시즌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4월인데 벌써 시즌을 포기한다는 게 말이 됨?

└네. 말이 됩니다. 나눔 리그 순위표 보고 오세요.

└드림 리그 구단 팬인가 본데 드림 리그인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나눔 리그는 당분간 박유성 일인 독재입니다.

└그런데 박유성은 진짜 괴물이네요.

└괴물이죠. 빈볼 사태 다음 날 3홈런 때려내는 거 보고 스타즈 전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아뇨. 실력 말고요. 박유성이 레오 로드리게스도 날리고 랜더스도 강제 리빌딩 시킨 거잖아요.

└박유성한테 지나가다 뺨이라도 맞으셨어요? 망상은 일기장에 쓰세요. 보기 추해요.

일부 언론에서 빈볼 사태로 박유성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늘어놓았지만.

바로 다음 날 1번 톱타자로 출전한 박유성은 전날 무안타(?) 경기의 설움을 풀 듯 3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그리고 트윈스와의 홈 3연전에서 9안타를 때려내며 타격 8관왕 독주 체제에 접어들었다.

“얘기 들었어? 4월 MVP 박유성이라던데?”

“그럼 박유성을 주지 누굴 줘?”

“그런데 박유성 말이야. 정말 순수 100퍼 제 실력일까?”

“그러면 뭐? 도핑이라도 했을까 봐?”

“도핑 검사에 안 걸리는 약물을 사용했을지도 모르잖아.”

“하긴.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도핑 약물 나돈다는 얘기가 있긴 하더라.”

“만약에 말이야. 박유성이 작년부터 몰래 그 약물을 받아 쓴 거라면 어때?”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제야 적발한 그 약물을 박유성이 몰래 받아 썼다고? 그건 너무 억지 아니야?”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사실일지.”

“하긴. 메이저리그 레전드들이 단체로 약쟁이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

박유성이 잘하면 잘할수록 보수적인 기자들의 반감은 커져만 갔다.

자신들의 메이킹을 받지 않고 스타가 된 것부터 못마땅한데 터무니없는 성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생채기를 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때 기자들 중 하나가 미국 언론의 기사 하나를 가지고 왔다.

“대박! 이것 좀 봐!”

“뭔데?”

“이번에 발각된 알파 메일이 아시아 시장에도 들어왔대!”

“그게 정말이야?”

“여기 기사 봐. 조사 결과 알파 메일의 일부가 아시아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해 추가 수사 중에 있다고 하잖아!”

뭔가 건수를 잡은 기자들은 앞다투어 메이저리그를 뒤흔드는 금지 약물 스캔들에 대해 보도했다. 그러면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알파 메일이 한국에도 들어왔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알파 메일이 뭐임?

└호르몬 계열 금지 약물인데 건강 보조 식품 형식으로 유통된 금지약물이래요.

└정확하게는 미국의 한 제약사에서 알파 메일이 될 수 있다는 광고로 3년 전쯤에 출시한 건강 보조 식품인데 일부 업자들이 케이스 갈이 해서 금지 약물 넣어 팔다가 적발된 겁니다.

└헐, 나도 이거 3년 전쯤에 직구로 사서 먹었는데 ㄷㄷㄷ 나도 금지 약물을 먹은 건가?

└금지약물 먹으면 근육 커지는 대신 거기 작아진다는데 사실인가요?

└님이 먹은 건 일반 건강 보조제고요. 금지 약물은 따로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 상륙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뭔가요?

└미국에서 금지약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쪽으로도 판매된 정황을 파악했다는데 기레기들이 박유성하고 엮어보려고 열일 중입니다.

└박유성은 이번 시즌만 도핑 검사 3번 받지 않았나요?

└박유성이 도핑 검사받는 곳이 강남 신성 병원이거든요.

└억지 음모론 그만. 신성 강남 병원 도핑 센터는 아시아 최고 레벨의 도핑 검사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요 국제 대회 도핑 테스트는 전부 강남 신성 병원에서 해요.

└의혹이 있으면 다른 병원에서 검사받아 보면 되는 거죠. 검사받고 결백 증명하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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