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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70화 (270/412)

타자 인생 3회차! 270화

33. 감히 누굴 건드려?(3)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은 김석률 감독에게 몰려들었다.

“감독님! 3회에 박유성 선수를 빼신 이유가 뭔가요?”

“박유성 선수 몸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한 분씩 질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박유성 선수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경기장에 뒀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일단 경기에서 뺐습니다.”

경기에서 승리했고 큰일은 없었으니까 그냥 넘어갈 만했지만 김석률 감독은 작심하듯 기자들 앞에 섰다. 그러자 기자들이 질문의 수위를 높였다.

“그 말씀은 랜더스 벤치에서 고의로 박유성 선수에게 빈볼을 지시했다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저는 스타즈의 감독이고 선수를 관리하고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당시 박유성 선수는 연이은 위협구에 노출된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독 직권으로 경기에서 뺀 겁니다.”

“그래서 랜더스 벤치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구심의 퇴장 판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퇴장이 되긴 했지만 감독으로서 아쉬움이 큽니다.”

“퇴장 조치가 늦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스타즈의 감독으로서 첫 번째 빈볼 자체도 충분히 퇴장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몸에 맞지 않았고 고의성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만큼 구심의 결정은 존중합니다.”

“방금 아쉬움이 크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첫 빈볼에 퇴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구심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하지만 위협구가 두 차례 더 있었죠. 그리고 세 번째 빈볼은 또다시 머리쪽으로 날아갔습니다. 만약에 두 번째 위협구 때 경고가 아니라 퇴장이 이루어졌다면 세 번째 빈볼이 없었을 겁니다.”

“두 번째 위협구는 몸 쪽으로 들어갔는데요. 그걸로 퇴장을 주긴 어렵지 않았을까요?”

“어디까지나 스타즈 감독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김석률 감독이 울분을 토해내자 동인 스포츠 김재수 기자가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오늘 전체적으로 구심의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아니요. 아닙니다. 박유성 선수의 빈볼 관련 판정에 대한 아쉬움이지 다른 판정은 문제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김석률 감독의 반문에 김재수 기자는 한발 물러났다.

주변에 모여든 기자들이 대부분 환멸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X발. 안 걸려드네.’

김석률 감독이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하면 아마추어 감독의 자질론으로 끌고 가려 했는데 김석률 감독은 그 와중에 철저하게 선을 지켰다.

“랜더스 박전권 감독은 빈볼이 아니라고 항의를 했는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전권 감독은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저는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봤고요.”

“마지막 빈볼은 임기성 선수가 잡지 못했는데요? 임기성 선수의 리드와 별개로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빈볼을 던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것도 확답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퇴장이 됐으니까 프로 야구 협회에서 징계가 내려질 예정인데요. 중징계를 원하십니까?”

“선수 보호 차원에서 중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그 빈볼에 박유성 선수가 머리를 맞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여파는 상당할 겁니다.”

“오늘 경기 전까지 박유성 선수가 16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교체로 연속 경기 기록이 깨졌습니다.”

“사실 그것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경기장에 계속 내버려 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마음이 급했던 거 인정합니다. 나중에 유성이한테 사과해야겠네요.”

그때 틈을 보던 경인 스포츠 최덕수 기자가 칼같이 끼어들었다.

“박유성 선수 말고 다른 선수들의 교체는 없었는데요. 박유성 선수만 신경 쓰신 건가요?”

3회 대거 6점을 뽑아내며 15 대 4, 대승을 거뒀지만 선수 교체는 박유성뿐이었다.

선발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9회까지 뛰면서 한 점이라도 더 내려고 악착같이 싸웠다.

그런 와중에 감독은 박유성만 챙기고 있으니 특정 선수 감싸기로 몰고 갈 수도 있는 대목.

하지만 김석률 감독은 최덕수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6회 이후 주전 선수들을 교체하려고 했습니다만 선수들이 교체를 거부했습니다. 아마 다들 박유성 선수의 빈볼에 화가 났을 거라 생각합니다.”

뒤이어 인터뷰한 박준수도 같은 말을 했다.

“수석 코치님이 교체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싫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유성이를 건드리면 저희 팀이 더 똘똘 뭉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얘기가 오히려 도발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하나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성이가 말렸지만 다음번에는 가만 안 있을 겁니다. 참고로 저는 지금까지 벤치클리어링 때 단 한 번도 뒤에 서지 않았습니다.”

경기 초반에 무너졌음에도 승리를 챙긴 제이슨 마이너는 보복구를 던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만약에 썬을 맞혔다면 저도 똑같이 복수해 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썬이 말리더라고요.”

“뭐라고 말리던가요?”

“복수보다 승리가 먼저라고요.”

“박유성 선수가 정말 그렇게 말했습니까?”

“썬은 가장 어리지만 가장 어른스럽습니다. 썬은 우리 팀 더그아웃 리더입니다. 모든 선수가 썬을 존중합니다.”

한편 랜더스 박전권 감독은 구심의 편파 판정으로 경기를 내줬다며 분개했다.

“오늘 경기 패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들 보셨잖아요? 구심이 스타즈 편만 드는 거. 솔직히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잖아요? 손에서 자주 공이 빠지는 투수입니다. 그걸 감안했어야죠.”

“그런 투수를 마운드에 세운 게 잘못 아닐까요?”

“그런 투수가 어디 레오 로드리게스 한 명뿐입니까? 레오 로드리게스는 2회까지 잘 던졌어요. 3회에 다시 박유성이 나오니까 일종의 PTSD가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오 로드리게스를 퇴장시킨 건 잘못된 판정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잘못됐죠. 맞지 않았잖아요? 게다가 볼카운트도 타자에게 유리했습니다. 그리고 경고를 한 번만 주고 퇴장시키는 게 어디 있습니까? 두 번은 줘야죠.”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스타즈 관중들을 향해 욕을 한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기 중에 흥분하다 보면 욕도 할 수 있습니다. 관중만 욕을 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이번 퇴장으로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의 중징계가 예상되는데요?”

“중징계요? 아니, 퇴장당한 것도 억울한데 무슨 중징계요? 진짜 중징계 내리면 가만 안 있을 겁니다. 이건 시즌 치르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어요!”

야구 중계 프로그램들은 이례적으로 양 감독의 인터뷰를 비중 있게 다뤘다.

“지금 양 팀 감독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요. 박재흥 해설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예전에도 말했는데요. 빈볼 여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아세요?”

“지난번에 타자라고 말씀하셨던 거 같은데 아닌가요?”

“네. 맞아요. 공을 던지는 투수는 일단 빼고 가면 빈볼인지 아닌지는 타자가 제일 잘 압니다. 단순히 몸쪽으로 붙이려던 공과 일부러 몸에 맞히려던 공은 투수의 눈빛부터 다르니까요.”

“그럼 박유성 선수가 빈볼이 아니라고 하면 빈볼이 아닌 건가요?”

“만약에 박유성 선수가 정말로 빈볼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타자가 빈볼이 아니라는데 제3자가 그걸 빈볼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니까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분명히 빈볼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제요?”

“첫 번째 빈볼 때 다급히 뒤로 물러섰죠. 이게 빈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뜸을 들였다면 저렇게 못 피했을 겁니다. 무조건 맞았어요.”

“그러니까 이상한 걸 눈치챈 박유성 선수가 몸을 피했으니까 빈볼이라는 말씀이시네요.”

“양 팀 감독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된다고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박유성 선수가 느끼기에 빈볼이었어요. 물론 터무니없는 공에도 움찔거리며 놀라는 타자들이 있는데 그것과는 다르죠. 160㎞/h에 달하는 빠른 공이 얼굴 쪽으로 날아왔으니까요.”

“만약에 말이에요.”

“저 현역 때 저렇게 던졌으면 어땠을 것 같냐고요? 아마 못 피했을 겁니다. 피해도 엄청 아슬아슬하게 피했겠죠. 얻어맞았다면 병원에 실려갔을 거고 피했다면 방망이 들고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을 겁니다.”

“방망이를 들고요?”

“먼저 160㎞/h짜리 공을 얼굴에 던졌잖아요? 그럼 저도 똑같이 되갚아줘야죠.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저보다 덩치가 큰데 방망이 정도는 들어야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알 것 아닙니까?”

어지간하면 중립을 지킬 해설위원들은 한목소리로 레오 로드리게스를 비난했다.

일부 해설위원들은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저런 선수는 야구를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홈충돌 방지법이 왜 생겼습니까? 베이스러닝 규정이 왜 계속 바뀌겠어요? 선수들이 있어야 경기를 치르는 겁니다. 실력 있는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져 버리면 팬들이 경기장에 찾아오겠습니까?”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손에서 빠졌다고 주장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요즘 카메라 분석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요? 협회에서 정밀 분석 들어가면 100퍼센트 빼박입니다.”

“랜더스 구단에서 시킨 건지도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면 구단에도 중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타자 머리로 공을 던지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해설위원들에 이어 레전드 선수들까지 한목소리를 내자 박유성을 과보호했다는 취지의 기사들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베이스볼 파크를 비롯한 야구 관련 커뮤니티도 레오 로드리게스에 대한 비난글로 도배가 됐다.

└레오 로드리게스 퇴출 운동 1일 차!

└동참이요!

└무조건 퇴출시켜야 함.

└메이저리그에서 뭣도 아닌 게 한국 와서 대우받으니까 자기가 게릿 벌렌더인 줄 착각한 듯.

└게릿 벌렌더도 타자 머리 쪽으로는 공 안 던집니다. 요즘 메이저리그에서 그러면 난리나요.

└랜더스 팬이지만 동참합니다. 원래부터 다혈질이라 별로였는데 오늘로서 정이 완전히 떨어졌음.

└이래서 외국인 선수들은 실력만큼이나 인성을 체크해야 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백영완 맞혔을 때하고 분위기 비교되네요. 그때는 백영완이 맞을 만했다는 의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ㄷㄷ

└헛소리 마요. 그때도 레오 로드리게스 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백영완은 실제로 레오 로드리게스가 공 던질 때마다 소리내서 맞았던 거고요. 박유성은 그냥 실력이 넘사라서 맞히려 했던 거고요.

└그 와중에 다 피하는 박유성 보면서 대단하다 했음. ㅋㅋ

└ㅋㅋ 저도요. 덩치 큰 선수였다면 백퍼 맞았을걸요?

└그런데 박전권 감독은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는 건가? 현역 때 엄청 좋아했던 선수인데 진심이라면 실망임.

└퇴장 조치되면 징계받으니까요. 징계 길어지면 순위 싸움에 지장 생기니까 먼저 약 치는 것 같습니다.

└감독도 극한직업이에요. 어쩔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진짜 벤치에서 지시 안 했을까?

└마지막에 임기성이 공 안 잡은 거 보면 모름? 레오 로드리게스 독단 행동임.

└대박. 송찬우 중징계 안 내리면 똑같이 복수하겠다 선언!

└헐, 이왜진?

└진짜요? 진짜 송찬우가 그랬음?

└SNS에 직접 올렸어요. 스타즈에 강속구 투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겠다고요. ㄷㄷㄷ

└중징계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죠?

└보통 5경기 출장 정지쯤 나오는데 중징계면 최소한 10경기 이상 나와야죠. 벌금도 천만 원 이상 때리고.

└놀고 먹던 협회 갑자기 머리 깨지겠네요. ㅋㅋㅋ

여론이 점점 악화되자 프로 야구 협회도 곧바로 긴급 징계 위원회를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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