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64화
32. 트레이드(하)(2)
당연하게도 야구팬들의 지지와 환호가 쏟아졌고.
신성 그룹 전 계열사의 주식은 다시 한번 상한가를 쳤다.
SNS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며 그룹의 이미지를 개선해 왔던 정영진 회장으로서는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정영진 회장 편드는 건 아니지만 프로야구 선수들 립 서비스가 부족한 건 사실이야. 연예인들이 시상식 때 괜히 사돈의 팔촌까지 언급하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프로야구 선수들은 그런 선수들이 드물지.
“아무래도 프로 스포츠는 팬이 먼저라는 인식이 강하니까요.”
-그래도 한 해에 200억에서 300억씩 쏟아붓는 오너 입장도 생각해야지. 랜더스는 모기업 투자 금액이 스타즈 다음으로 많잖아?
“그러니까 결론은 경호 형이 잘못했다는 거네요.”
-아니지. 유성이 네가 잘못했지.
“또 저예요?”
-야구 실력은 역대급인데 어린 주제에 사회생활도 잘하잖아.
“제가 또 한 사회생활 하죠.”
-너야 조만간 메이저리그 갈 거니까 괜찮은데 다른 선수들이 그래 버리면 주변에서 욕하긴 해. 윗선에 잘 보여서 야구한다고.
“아까는 립 서비스가 부족하다면서요?”
-정영진 회장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야. 대표팀 선수 중에 랜더스 간판은 박경호 선수였으니까.
“그럼 관계 개선은 어려운 거죠?”
-글쎄다. 정영진 회장도 아닌 건 아닌 사람이라 쉽지 않을 거 같긴 한데 또 모르지. 박경호 선수가 전적으로 굽히고 들어가면 달라질지도.
“그건 힘들 거 같은데요.”
-그럼 더 곪아 터지기 전에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낫지. 원래 남녀 간에도 말이야 별거 아닌 걸로 다투거든? 나중에 생각해 보면 진짜 별거 아닌데 그게 감정싸움이 되면 수습이 안 되더라.
“경험담 땡큐요.”
-야! 경험담 아니거든? 그보다 팀 분위기는 어때?
“나쁘지 않은데요?”
-진짜? 연승 끊겨서 좀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아니야?
“스타즈가 언제부터 연승했다고요?”
연승 행진이 끝났을 때.
적잖은 언론들이 연승 후 연패라는 야구 격언을 앞세워 위기감을 조성했다.
창단 후 최다 연승을 달리는 동안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 고갈이 심했을 테니 연패에 빠지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면서도 내심 스타즈가 주저앉기를 바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저스틴 스몰-제이슨 마이너를 앞세운 스타즈는 트윈스를 이틀 연속 잡아내며 다시 연승 행진에 제동을 걸었고.
자이언츠와의 원정 3연전까지 쓸어 담으며 나눔 리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반면 박경호 트레이드 파동에 휩쓸린 랜더스는 자이언츠에 연거푸 경기를 내주더니 타이거즈에게 홈 시리즈 스윕을 당하면서 4위로 추락했다.
[나눔 리그 순위]
1위 스타즈 14승 1패 0.933
2위 타이거즈 8승 7패 0.533 6.0
3위 트윈스 7승 8패 0.467 7.0
4위 랜더스 6승 9패 0.400 8.0
5위 자이언츠 5승 10패 0.333 9.0
5위 라이온즈 5승 10패 0.333 9.0
“이 정도면 우승도 가능하겠지?”
순위표를 보며 신상욱 회장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무려 6경기 차 1위였다.
스타즈를 창단하면서 죽기 전에 우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희망했는데 그 꿈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아직 전체 일정 중에 10퍼센트밖에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소리 왜 안 나오나 했어. 박 과장!”
“네. 회장님.”
“박 과장 생각은 어때?”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는 한 실장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야구계에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무슨 얘기?”
“3경기 차이를 좁히는 데 한 달이 필요하다고요. 스타즈가 대진 운이 따라서 반짝 성적을 내는 것도 아니고 랜더스와 트윈스를 상대로 전부 위닝 시리즈 이상을 거뒀으니까 조금 이르긴 하지만 좋아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이구, 박 과장. 정치해도 되겠어?”
신상욱 회장의 너스레에 박원호 과장이 씩 웃었다.
비서실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가 가장 먼저 배운 게 바로 눈치였다.
“그럼 언제쯤 제대로 웃을 수 있는 거야?”
“보통 프로야구 순위는 여름에 결정된다고들 합니다.”
“여름이면 8월?”
“보통은 그런데 5월까지 15경기 차이 이상으로 벌릴 수만 있다면 리그 우승은 확정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유는?”
“리그 성적도 중요하지만 최종 목표는 한국 시리즈 우승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시리즈에 올라가려면 포스트 시즌에 먼저 진출해야 하니까 멀찍이 달아난 1위는 내버려 두고 2, 3위 자리싸움이 치열해질 거라는 얘기로군요.”
“한 실장님 말씀이 정확하십니다. 그래서 초반에 1위를 하는 구단들은 무리해서 승차를 벌리려고 합니다. 애매한 1위는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니까요.”
“시즌이 보통 10월 초까지 이어지니까 5월에 15경기 차이면 한 달에 3경기씩 좁힌다 해도 쉽지가 않겠네요.”
“네. 참고로 이건 어디까지나 제 계산이니까 참고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산은 그렇다 치고, 객관적인 전력은 어때?”
신상욱 회장이 화제를 바꿨다.
입바른 말은 충분히 들었으니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스타즈가 무려 9할대 승률을 기록 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언론들은 랜더스의 전력을 최고라 평가하고 있었다.
용병 선수 셋을 비롯해 주전급 선수 상당수가 첫 시즌을 치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박원호 과장은 언론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눈곱만큼도 동의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전력은 당연히 스타즈가 가장 좋습니다. 일단 박유성 선수 하나로 게임 끝입니다. 회장님.”
“하긴. 유성이 그 녀석이 좀 잘해야지.”
“외람되지만 회장님. 좀 잘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연일 도핑 의혹을 언급하는 게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총 15경기를 치른 현재 박유성은 타율과 최다안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부분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박유성이라 해도 쉽지 않을 거라던 홈런은 9개로 2위 그룹과 3개 차이를 유지하고 있고.
클린업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타점 부분도 30개로 2위인 박준수보다 8개가 많았다.
나갔다 하면 홈을 밟는 탓에 득점은 벌써 52점.
이 추세라면 200득점은 기본이고 300득점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바로 박유성의 가공할 만한 타격감.
“유성이 타율이 얼마지?”
“0.726입니다.”
“그렇게까지 떨어졌어? 자이언츠 원정 때 너무 까먹었어?”
“그래도 욕심낼 만했습니다. 회장님. 승패가 갈린 상황이었고 홈런만 치면 사이클링 히트였으니까요.”
트윈스와의 마지막 시리즈에서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박유성은 자이언츠 원정 내내 홈런 빠진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세 경기 연속 5타수 3안타.
다른 타자가 이런 맹타를 휘둘렀다면 타율이 껑충 뛰어올랐겠지만 박유성은 오히려 타율이 대폭 깎였다.
“자이언츠 파크 담장이 그렇게 높나?”
“거긴 엄청납니다. 회장님. 자이언츠는 전통적으로 퍼 올리는 타자들이 많아서 신축 구장을 지을 때 일부러 담장을 높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유성 선수처럼 라이너성 타구를 때려내는 타자들이 홈런을 만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야구 팬들 사이에서 박유성을 이길 수 있는 건 담장 높이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언론은 왜 저러는 거야?”
“박유성 선수를 쥐고 흔들려다가 뜻대로 안 되니까 땡깡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
박유성이 경기 막판에 홈런을 노리는 큰 스윙을 한 걸 두고 일부 기자들은 탐욕 스윙이라며 비판했지만 그 헛소리에 동조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두 점 차 박빙이거나 뒤지고 있는 가운데 과욕을 부렸다면 욕을 먹었겠지만 자이언츠와의 3연전 모두 10점차 이상 점수 차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짜 탐욕 스윙을 하는 타자들은 따로 있었다.
체구가 작은 박유성에게 홈런 1위 자리를 내줬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나눔 리그 용병 타자마다 스윙을 크게 가져가면서 스타즈를 제외한 모든 구단에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반면 스타즈의 클린업 타자들은 마음이 편했다.
박유성이 톱 타자로서 제 역할을 200퍼센트 수행하는 데다가 여차하면 해결까지 해버리니 클린업의 부담감이 확 줄어들었다.
“그럼 우리 팀은 완벽한 거야?”
“현시점에서는 별다른 전력 보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만?”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는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유성이 프로 야구 역사를 새롭게 써가는 만큼 추후 박유성의 빈자리도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트윈스도 송현민 선수의 빈자리를 아직 다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유성이가 메이저리그에 가면 우린 더 힘들겠지?”
“전력 보강을 한다고 해도 박유성 선수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
신상욱 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벌써부터 박유성이 없는 스타즈를 걱정하는 건 지나칠지 모르지만.
신상욱 회장은 박유성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스타즈를 우승시키고 싶었다.
“결국 박경호를 데려와야 한다는 소리지?”
“박경호 선수가 합류한다면 젊은 투수들도 금방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랜더스 선발진을 만든 건 랜더스 투수 코치가 아니라 박경호라는 말이 정설로 인정될 만큼 박경호의 리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나 잡생각을 하면 릴리스 포인트부터 흔들리는 어린 투수들에게 박경호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국가대표 우완 에이스라 불리는 송찬우조차 박경호가 포수 마스크를 쓰면 군말 없이 공을 던질 정도였다.
그런 박경호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팀 전력이 강해질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건은 트레이드 카드.
랜더스에서 욕심내는 선수들이 전부 주전급이라 무작정 박경호를 받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파이터즈라면 이야기하기가 쉬울 텐데 말이야.”
신상욱 회장이 나직이 푸념했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냉큼 말을 받았다.
“파이터즈와 또다시 현금 트레이드를 하면 다른 구단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회장님.”
“말이 그렇다는 거야. 랜더스는 딱히 아쉬울 게 없는 구단이잖아?”
“그래도 일단 협상은 계속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구단에서도 박경호 선수를 노리고 있을 테니까요.”
한용준 비서실장이 원론적인 대답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박경호라는 국가 대표 포수를 받아오려면 스타즈도 그만한 출혈을 각오해야 했다.
“김 단장한테 말해. 주축 선수만 남기고 전부 트레이드 대상에 올리라고.”
“회장님!”
“그 정도 성의를 보여야 랜더스도 반응을 하지. 이대로 가다간 헛물만 켜게 생겼어. 안 그래, 박 과장?”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회장님.”
신상욱 회장의 결단을 전해 들은 김재식 단장은 팀장급 회의를 소집해 절대 트레이드가 불가능한 10명의 선수 명단을 추렸다.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건 당연히 박유성.
그다음으로 간판 타자인 박준수와 오른손 거포 장영호, 그리고 우익수로 적응 중인 신예 이동엽이 포함됐다.
“최일준 선수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수비는 국대급이고 올 시즌 타격감도 나쁘지 않습니다.”
“장태수 선수도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장태수 선수는 대안이 있지만 최일준 선수 빠지면 우리도 뾰족한 대안이 없습니다. 후배들을 잘 챙기기도 하고요.”
“타자 5명은 이렇게 가시죠. 이게 최선인 거 같습니다.”
“그럼 투수 쪽으로 넘어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