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63화 (263/412)

타자 인생 3회차! 263화

32. 트레이드(하)(1)

박경호와 송광철 대표는 앉은 자리에서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전에 함께 일했던 에이전트에게는 박경호가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만나서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봐야 서로 감정만 상해. 그리고 요즘은 기업들도 해고 통지 문자로 한다더라.”

“그건 박 선수 말이 맞아. 가족 같은 에이전트보다 중요한 건 일 잘하는 에이전트야. 일은 못하면서 가족같이 굴면 가를 떼야지.”

송광철 대표의 입담에 박경호가 피식 웃었다.

박유성과 박준수의 계약 소식을 듣고 내심 부러웠는데.

그 계약을 이끌어낸 송광철 대표가 이제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더없이 든든해졌다.

“자, 그럼 이제 우리 박 선수 속내를 들어볼까요?”

“저도 그냥 편하게 이름 불러주세요.”

“그럴까? 일단 내가 오면서 생각한 건 두 가지야. 하나는 우리가 먼저 트레이드 요청을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언론이 불을 지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차이점이 뭔가요?”

“우리가 먼저 트레이드 요청을 하면 팬들은 충격을 받을 거야. 하지만 트레이드는 보다 수월해질 거야. 당사자가 원하고 구단에서도 원하는 거잖아? 서로 욕을 나눠 먹는 거지.”

“반대로 언론의 반응을 기다리면 구단만 욕을 먹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프런트로 일해봐서 아는데 욕먹는 걸 좋아하는 구단은 없어. 누가 뭐라고 하면 해주려다가도 해주기 싫은 게 사람 심리잖아? 게다가 등 떠밀려 하는 트레이드가 잘된 경우도 거의 없고.”

“받는 구단에서도 좋은 선수를 안 주려고 할 테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내 생각에는 일단 팬들에 대한 애정은 내려놓고 냉정하게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팬 좋지. 팬이 있으니까 프로야구가 존재한다는 말에 적극 공감해. 하지만 말이야. 팬들이 선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진 않아. 팬들 때문에 구단에 양보했던 선수들 중에 후회 안 한 사람 한 명도 없을걸?”

송광철 대표의 말에 박유성이 씁쓸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팬들 때문은 아니지만 구단에 양보했다가 두고두고 후회한 멍청이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계약을 할 때마다 구단에게 휘둘렸으니 에이전트에게 사기당한 송현민을 비웃을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박경호는 그런 박유성의 회한 어린 표정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친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파란 후배마저 자신을 동정하는데 바보처럼 당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트레이드를 요청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럼 일단 명분부터 쌓아야지.”

“명분이요?”

“그보다 지금 몸 상태는 어때?”

“좋습니다. 아무 문제 없어요.”

“확실해? 어디 봐봐.”

박경호는 그 자리에서 타구에 맞았던 오른 무릎을 내보였다.

당시에는 제법 큰 부상처럼 느껴졌지만.

멍 자국이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서 무릎 보호대가 잘 막아준 모양이었다.

“솔직히 큰 부상은 아니었어요. 날씨가 쌀쌀하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빠졌는데 환자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무릎 부상 때문에 기성이를 썼던 게 아닌 거네?”

“제 느낌은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성이하고 잘 지내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자리 뺏기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좀 아닌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거지. 이건 민병규가 수비로 유성이 까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

“병규는 수비뿐만 아니라 타격으로 해도 유성이 못 까죠.”

다소 비약이 심하긴 했지만 프로 야구 최고의 포수인 박경호와 불펜 포수인 임기성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임기성이 재능 있는 포수라면 박경호는 그 재능을 만개하다 못해 실력으로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는 포수였다.

그런 박경호를 임기성으로 대체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었다.

그런데 그 터무니없는 일이 현실이 됐다.

냉정하게 따졌을 때 박경호는 현재 임기성에게 밀렸다고 봐야 했다.

이제 와 제 자리를 되찾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랜더스 팬들의 반응.

커뮤니티에 박경호 재계약 문제가 폭로됐을 때 대다수 야구팬들이 랜더스가 미친 짓을 한다고 분개했다.

“일단 대다수 팬들은 경호 네가 포수 마스크를 쓰길 바라고 있어. 하지만 구단에서는 원치 않겠지. 그래서 나는 포수 복귀를 요청할 거야.”

“구단에서 들어줄까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안 된다고 하겠지. 하지만 다른 에이전트는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 있어도 내 입은 못 막아. 걱정하지 마. 내가 경호 너 대신 열심히 싸우고 욕먹을 테니까. 너는 언제든 이적할 수 있도록 컨디션 관리만 해.”

“기왕 옮긴다면 스타즈로 가고 싶습니다.”

“아마 그렇게 될 거야. 지금 11개 구단 중에서 랜더스 눈치 안 보고 너 데려올 수 있는 구단은 스타즈뿐이니까.”

대략적인 작전 회의를 마치고.

송광철은 박경호의 아버지 박인환과 함께 밤새 술을 마셨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아들이 랜더스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아버지. 취하셨어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시는 거예요?”

“안 취했어 이놈아. 안 취했다고!”

“그래. 경호야. 아버님이 오죽 속상하시면 이러시겠어? 아버님. 그 심정 저도 충분히 잘 압니다. 제가 꼭 경호 좋은 구단으로 트레이드 시킬게요. 그리고 내년 시즌 대박 계약도 따내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만 믿으세요.”

“아이고. 송 대표. 난 진짜 송 대표만 믿어요. 그 영근인지 뭔지 하는 놈은 입만 살았지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아버님.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전 에이전트 욕하시면 안 됩니다. 그럼 박경호 선수만 불리해져요.”

“어이구. 그럼요. 당연하죠. 내 송 대표 말대로 언론에서 찾아와도 절대 상대 안 할 겁니다.”

다음 날.

스타즈는 트윈스에게 발목이 잡히면서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스타즈의 연승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트윈스는 휴식일을 앞당겨 에이스 마이크 스마일리를 내세웠고.

박유성을 제외한 타자들이 마이크 스마일리에게 속수무책 당하는 동안 선발 손지원이 3이닝 5실점으로 일찍 무너지면서 10연승 달성에 실패했다.

같은 날.

랜더스는 자이언츠를 잡아내고 6승 4패의 성적으로 트윈스와 공동 2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랜더스 팬들은 그 사실을 기뻐할 여력이 없었다.

경기 직후 송광철 대표가 랜더스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와, 아저씨 엄청 빠르시네.”

그래도 2주 정도는 시간을 끌 거라 여겼던 박유성은 혀를 내둘렀다.

랜더스 구단에 포수 선발 출전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니까 곧바로 트레이드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당연하게도 베이스볼 파크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박경호 종신 랜더스맨이라던 사람들 어디갔나요? ㅋㅋㅋ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합니까? 그러면 재밌어요?

└ㅅㅂ 내가 이런 새끼들 때문에 베팍을 안 온다니까.

└님. 분위기 파악 좀 하세요. 기둥뿌리 뽑혀 나가게 생겼는데 지금 장난합니까?

└기둥뿌리는 무슨. 요즘 기둥은 먼저 뽑혀 나간다고 말한답니까?

└누가 정리 좀 해줄 사람 있나요?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일단 기사 나온 건 하나예요. 송광철 대표가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박경호 에이전트 다른 사람 아니었어요? 언제 송광철 대표하고 계약한 거죠?

└어제 쉬는 날 계약했답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 사고 쳤고요.

└하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진짜 박경호가 이럴 줄은 몰랐네.

└여기서 박경호 욕하는 사람들은 랜더스 팬 아니죠? 지금까지 우승을 몇 번 시켰는데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우승했으면 트레이드 요청해도 되는 겁니까? 박경호 보러 야구장 가는 팬들은 생각 안 해요?

└그러니까 박경호가 오죽하면 트레이드를 요청했을지 생각 안 합니까? 오늘 경기에도 임기성이 주전으로 나왔던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박경호가 부상이니까 임기성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박경호 부상 아닙니다. 멀쩡해요. 애당초 결장할 정도로 다치도 않았습니다. 찐팬들은 다 알아요.

└그럼 뭐 구단에서 일부러 박경호 대신 임기성 쓴다는 겁니까? 국대 포수인데?

└제발 구단에 그 이유 좀 물어봐요. 도대체 왜 이러는지.

베이스볼 파크의 여론은 셋으로 갈렸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이들과 박경호를 비난하는 이들.

그리고 절대 다수의 랜더스를 탓하는 이들.

랜더스를 탓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박경호가 오길 바라는 타 구단 팬들이었다.

└우리 엔트리에 박경호 들어오면 어떻게 됨?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요. 최강이지. 바로 우승 전력임.

└그렇죠? 박경호는 데려올 수 있으면 데려오는 게 맞죠?

└진짜 포수 있다고 박경호 관심 없다는 사람들은 우리 팬 아닙니다. 박경호 자체가 랜더스 전력의 50퍼센트인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네요.

└지난해 로메오 클레멘스가 잘한 것도 박경호 덕분임. 임경호하고 호흡 맞춘 2경기 성적 봐요. 아직까지 1승도 못 했고 평자 4점대입니다. 컨디션이 안 좋은건 줄 알았는데 진짜 맛이 가버렸어요.

└그런데 랜더스는 왜 박경호 내치려는 거임? 박경호가 무슨 잘못했음? 회장님 욕이라도 했나?

└들리는 소문으로는 회장님이 임기성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데 확실한 건 아직 안 나왔어요.

박유성도 랜더스가 갑자기 임기성을 키우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업계 소식통인 공윤경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한테 전화한 거 맞지? 여친 이름하고 헷갈려서 잘못 전화한 거 아니지?

“여친은 소개나 시켜주고 그런 말을 해요.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공씨 성을 가진 여자는 누나뿐입니다.”

-그런데 왜 전화했어? 연승 끝나서 우울해할 줄 알았는데?

“연승은 언제고 끝나라고 있는 건데요 뭘. 내일 이기면 됩니다.”

-역시 박유성. 진짜 넌 멘탈 갑이다.

“그보다 누나. 경호 형한테 왜 저러는지 알아요?”

-누가? 팬들이? 아니면 구단이?

“랜더스가요.”

-일단 몇 가지 들은 건 있어. 지난 LA 올림픽 때 박경호 선수가 구단주에 대한 인사를 하지 않아서 회장님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얘기도 있고 회장님이 같이 식사하자고 여러 번 청했는데 박경호 선수가 피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

“올림픽 때 구단주에게 인사한 건 저밖에 없을 건데요?”

-그러니까 더 서운하지 않았을까? 네 인터뷰 덕분에 신상욱 회장 재조명되면서 지금 야구계 은인 됐잖아. 그룹 전체 주가도 엄청 올랐고.

“저야 아마추어 선수였으니까 모교 재단 이사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거고요.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는 별말 안 했는데요?”

-했어 너.

“했어요?”

-언제나 야구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시는 신상욱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했잖아.

“에이. 그건 그냥 미용실 원장님 감사합니다 수준의 멘트잖아요.”

-그 멘트를 대회 MVP인 네가 했으니까 다른 거지. 그래서 신성에서 포상금 규모 확 늘렸잖아. 그거 전부 신상욱 회장 사재에서 나온 거 모르진 않지?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끝나고.

신상욱 회장은 대표팀에 40억의 포상금을 쾌척했다.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이 1억씩 받을 수 있도록 크게 쏜 것이다.

자신들이 준비했던 포상 규모를 뛰어 넘는 금액에 프로 야구 협회에서 다급히 전화가 걸려왔을 정도.

하지만 주변의 우려는 신상욱 회장의 한마디로 정리됐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준 기쁨과 자긍심에 비하면 40억이라는 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구에 미친 노인네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죽기 전에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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