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62화
32. 트레이드(상)(4)
안재희 운영팀장의 조언대로 김재식 단장은 박유성에게 직접 찾아가 부탁을 했다.
“그러니까 경호 형 의사를 알아봐 달라는 거죠?”
“만약에 랜더스와 결별할 생각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협상해 볼까 합니다.”
“경호 형이 와준다면 좋죠. 그런데 랜더스에서 그냥 주지는 않을 텐데요. 그냥 내년 시즌 FA 될 때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물론 그 방법까지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다만 박경호 선수는 FA 직전에 장기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번에 나오면 A등급 선수가 됩니다.”
“아, 또 그게 그렇게 되네요.”
“박경호 선수의 연봉을 고려했을 때 시즌 후에 잡으면 출혈이 더 커질지 모릅니다. 다른 구단에서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테고요.”
2019년에 도입된 FA 등급제는 다음과 같았다.
A등급은 구단 내 연봉 순위 3위 이내이면서 동시에 전체 연봉 순위 30위 이내인 선수.
B등급은 구단 내 연봉 순위 10위 이내의 선수이면서 동시에 전체 연봉 순위 60위 이내인 선수(A등급 제외).
마지막 C등급은 A등급과 B등급에 해당되지 않거나 만 35세 이상의 선수.
각 등급별로 보상 조건이 달라지는데 A등급은 전년도 연봉의 200퍼센트와 20인 이내 보상 선수 1명, 혹은 전년도 연봉의 300퍼센트를 지급해야 한다.
2025년 시즌이 끝나고 FA를 1년 앞둔 시점에서 박경호는 랜더스와 4년, 총액 100억에 장기 계약을 맺었다.
2년 연속 포수 부분 골든 글러브를 받은 박경호에게 랜더스 구단에서 최고 대우를 약속한 것에 비해서는 계약 기간이나 규모가 아쉬웠지만.
박경호는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FA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고.
랜더스도 큰돈을 들이지 않고 모든 구단에서 탐내는 주전급 포수를 지키게 됐다며 기뻐했다.
랜더스 팬들도 4년 후에 종신 계약을 맺으면 된다면서 장기 계약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임기성이라는 대체 포수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지금의 분위기는 장기 계약 당시와 많이 변해 있었다.
“FA로 경호 형을 영입하면 보상금이 얼마예요?”
“박경호 선수가 3년 전에 100억에 계약했습니다. 계약금 20억에 연봉 20억. 그 기준이라면 최소 40억에서 최대 60억입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60억이 낫죠?”
“보통은 20인 이외 선수를 보호하는 쪽이 나은데 박경호 선수 케이스는 고민이 됩니다. 20억은 적은 금액이 아니니까요.”
“하긴. 거기에 경호 형 연봉도 챙겨줘야겠네요.”
“만약에 박경호 선수가 스타즈에 합류한다면 6년 계약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박경호 선수도 만족할 테고요.”
“6년이면…… 금액이 어마어마하겠는데요?”
“박준수 선수 수준으로 생각 중입니다.”
지난해 스타즈는 박준수와 계약 기간 6년, 총액 195억에 장기 계약을 맺었다.
연간 5억 원 상당의 옵션은 별도.
만약 박경호에게 박준수와 비슷한 금액을 안겨준다고 한다면 보상금까지 250억원을 써야 한다.
하지만 올 시즌이 끝나기 전에 트레이드를 통해 박경호를 데려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타즈가 박경호의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겠지만 최소 40억이라는 이적료를 아낄 수 있고.
랜더스 입장에서도 박경호를 내주는 대가로 20인 이내 선수까지 보상 선수로 노려볼 수 있으니 트레이드 카드만 잘 맞춘다면 서로 윈윈이었다.
“그럼 제가 경호 형 한번 만나볼게요.”
“직접이요?”
“아무래도 이런 얘기는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렇지 않아도 경호 형한테 밥 얻어먹기로 했거든요.”
박유성은 내친김에 박경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통화 연결음이 울리고.
-어, 그래. 유성아.
살짝 잠긴 듯한 박경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술 마셔요?”
-너 귀신이다. 어떻게 알았냐?
“형 목소리 꼬였는데요?”
-그 정도까지는 안 마셨거든? 그런데 왜? 형 걱정돼서 전화했어?
“형 어디서 술 마셔요?”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그럼 제가 거기로 갈게요.”
-와서 대작해 주게? 안 돼 인마. 너 민짜잖아.
“그냥 옆에서 안주만 주워 먹죠 뭐.”
-나 지금 참치캔 하나 까서 먹는데?
“어우, 궁상. 그러지 말고 강남 신성 호텔로 와요. 방 잡고 편하게 놀아요.”
-그런 얘기는 예쁜 누님이 해야 설레지.
“그래서 싫어요?”
-하아. 그래. 보자. 어디 얼마나 잘 놀아주나 기대한다?
“걱정하지 마요, 형.”
통화를 마친 박유성은 다시 깨톡을 열었다.
그리고 박준수, 송현민과 따로 만든 대화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박유성 – 형들. 뭐 해요.]
[박준수 – 난 집에서 쉬는 중.]
[송찬우 – 나도 집에서 TV 보는데 왜?]
[박유성 – 경호 형하고 방 잡고 놀기로 했어요. 형들도 와요.]
[박준수 – 경호 형? 갑자기?]
[송찬우 – 너 혹시 경호 형 꼬시려는 거야?]
[박준수 – 뭔 말이야. 경호 형을 왜 꼬셔?]
[박유성 – 한번 얘기 좀 들어보려고요. 그러니까 형들도 시간 되면 넘어와요.]
[송찬우 – 나는 무조건 콜이다. 내 개인 성적이 달려있는데 무조건 가야지.]
[박준수 – 뭔데? 뭐냐고? 또 나만 모르는 거야?]
[송찬우 – 준수 넌 그냥 닥치고 오기나 해.]
[박준수 – ㅅㅂ.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
“오케이. 형들은 됐고.”
박유성은 다시 송광철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구, 박 선수님. 푹 쉬고 계십니까?
“아저씨. 일 하나 같이해요.”
-뭐야? 영화 찍니? 무슨 일?
“경호 형 꼬실 거예요. 호텔에서 방 잡고 얘기하기로 했거든요?”
-오케이. 어디로 가면 되는데?
“제가 메시지 보내 드릴게요.”
박유성이 판을 짜자 김재식 단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실장님. 저 김재식 단장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강남 호텔에 방 하나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뇨. 제가 아니라 박경호 선수가 트레이드 시장에 나올 수도 있어서요. 박유성 선수가 한 번 만나보겠다고 합니다. 네. 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한용준 비서실장은 곧바로 강남 호텔에서 가장 야경이 좋은 방을 마련해 주었고.
그 방으로 박유성과 박준수, 송찬우, 송광철 대표가 모였다.
“대표님은 왜 오셨어요?”
“왜? 내가 끼면 술 편하게 못 마실까봐 그래? 걱정하지 마. 얘기 끝나면 유성이 데리고 빠질 테니까.”
“에이, 유성이가 빠지면 재미없죠.”
“박준수. 생각 좀 하고 말해라. 유성이 아직 미성년자야.”
“뭐? 정말? 어째서? 민짜인 놈이 나보다 홈런을 더 친다고? 그게 말이 돼?”
“어휴, 시끄러. 넌 병규한테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지 마라. 가만 보면 네가 더 시끄러워.”
“야, 송찬우. 말이 좀 심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디 병규를 가져다 대?”
“둘 다 시끄럽고. 박경호 선수 오면 두 사람은 적당히 장단만 맞춰. 얘기는 나하고 유성이가 할 거니까.”
박준수의 장기 계약 대박을 두 눈으로 지켜본 송찬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송광철 대표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그 외에 이동엽과 장태수, 오진욱 등 에이전트가 없던 신인급 선수들까지 모여들면서 송 에이전시의 입지도 탄탄해졌다.
“그런데 경호 형 에이전트 없어?”
“있을걸?”
“그럼 대표님이 끼면 안 되는 거 아냐?”
“에이전트가 일을 잘했어 봐. 커뮤니티에 그런 글이 올라왔겠냐? 그리고 대표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
“역시. 날 알아주는 건 찬우뿐이구나.”
“송 씨는 송 씨가 챙겨야죠.”
“같은 송 씨도 아니면서 무슨 송 씨 타령이야? 야, 박유성. 우리도 뭉치자.”
“싫어요.”
“야 인마. 대한민국 3대 성씨가 뭐야? 김이박이잖아!”
“그건 나중에 경호 형하고 술 마실 때 해요.”
때마침 벨 소리가 울렸고.
박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뭐야? 서프라이즈 파티야?”
“일단 들어와요, 형. 미행 붙은 건 없었죠?”
“혹시 몰라서 아버지 차 타고 왔다.”
“아버님은요?”
“내려다주고 가셨지.”
“그럼 조금 이따가 올라오시라고 해요. 여기 오늘 룸서비스 공짜임.”
“헐, 진짜? 역시 신성 스케일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박경호는 방 안의 멤버만으로 무슨 의도로 자신을 불렀는지 눈치챘다.
덕분에 박유성도 편하게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형. FA 때 나올 거예요?”
“일단 그럴 생각이야. 구단에서 나더러 1루수로 전향하라더라. 그게 말이 되냐?”
“형 나이도 있고 발목하고 무릎 좋지 않은 것도 있으니까 구단에서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 아닐까요?”
“너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
“구단 입장은 그럴 거라는 거죠. 그리고 형도 출전 시간은 조절해야 하잖아요.”
2001년생인 박경호는 올해로 만 스물일곱이다.
야구 선수로서 한창때이긴 하지만 데뷔 2년 차 때부터 8년 내내 주전 포수로 뛰어온 탓에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 나도 전 경기 다 뛰는 건 욕심인 거 알아. 그래도 1루 전향은 아니지. 내가 서른을 넘긴 것도 아니잖아.”
“랜더스는 뭐래요? 1루 전향 안 받으면 FA 때 계약 안 하겠다고 해요?”
“시장에 나갔다 와도 상관없다는데 의도야 뻔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계약금을 많이 받고 연봉을 줄일 걸 그랬어.”
일반적으로 FA 계약을 포함한 장기 계약은 계약금 규모가 연봉 총액과 엇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계약금은 일시불로 수령이 가능한 데다가 추후에 팀을 옮기려면 연봉이 낮을수록 좋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경호는 랜더스의 제안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하아……. 진짜 내가 랜더스한테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형. 힘내요. 형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예요.”
“유성이 말이 맞아요. 형. 국대 포수 하면 박경호고 박경호 하면 국대 포수죠.”
“형. 랜더스에서 고생하지 말고 스타즈로 넘어와요. 우리하고 같이 야구 해요.”
“말은 고마운데…… 그게 가능하겠어?”
후배들의 공세에 반쯤 넘어간 박경호가 다시 박유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유성을 대신해 송광철 대표가 나섰다.
“박경호 선수. 내가 누군 줄 알죠?”
“그럼요. 현민이 삼촌이시잖아요. 유성이 에이전트시고요.”
“박경호 선수 지금 에이전트가 누구예요?”
“아는 후배가 도와주고 있는데 그만하려고요.”
“그 친구가 먼저 랜더스의 제안을 듣고도 자리를 만들었나 보네요.”
“연봉 올려주겠다는 말에 눈이 돌았어요.”
“이해합니다. 원래 이 바닥 에이전트들 중에 열에 아홉은 다 그래요. 선수 통해서 목돈 벌 생각뿐이지 선수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죠.”
“대표님은 다르세요?”
“준수 계약 얘기 들었죠? 그거 받아내느라 김재식 단장하고 열흘을 싸웠습니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말고요. 추가 옵션과 기타 등등의 이야기였습니다. 거기에 여기, 박유성 선수 계약은 박경호 선수도 얼추 알고 있죠?”
“네. 옵션이 어마어마하다면서요?”
“솔직히 실력 없는 선수들한테 대박 계약 안기는 건 자신 없어요. 나도 현역 선수잖아. 뻔히 다 아는 걸 어떻게 그래요?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가 대접받도록 만드는 건 자신 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이거 오늘 대표님하고 계약해야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하하. 당연하죠. 참고로 여기 준수하고 찬우 둘 다 우리 에이전시 소속입니다. 거기에 박경호라는 이름을 함께 올릴 영광을 허락해 주세요.”
“제가 영광이죠. 현민이 형과 유성이가 몸담고 있는 에이전시니까요.”
“형. 제 이름은 왜 빼요?”
“맞아요. 준수는 빼더라도 저는 넣으셔야죠.”
“자, 자. 그럼 일단 에이전트 문제부터 해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