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61화
32. 트레이드(상)(3)
평소 야구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15년 차 기자 안선우 기자의 질타성 기사가 올라오자 베이스볼 파크가 왁자지껄해졌다.
└역시 안선우. 할 말은 하는 남자.
└그래. 이게 기사지. 진짜 내가 속이 다 시원하다.
└주모! 여기 사이다 한 사발 추가요!
└근데 안선우 뭐 됨?
└왜? 박유성한테 뒷돈이라도 받았을까 봐?
└그게 아니라 저렇게 일침을 놓는 건 좀 되는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닌가?
└그 되는 인간들이 박유성 깎아내리느라 정신이 없으니까 일침을 가한 건데요?
└ㅋㅋㅋ 안선우를 내리까는 야알못이 있네.
└모르겠으면 안선우로 기사 검색해 보세요. 가슴을 울리는 기사들 많습니다.
└안선우 기자 말 잘했다. 나 아는 사람 중에도 기자 하나 있는데 박유성 싫어하는 기사들은 박유성 무안타 경기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단다. 대놓고 조리돌림하겠다고.
└그 기자님 일본 신문사에서 근무하나요? 아니면 중국?
└대한민국에서 근무 중입니다. 심지어 메이저 언론임.
└보수 언론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애들 싫어한다던데 그 말이 딱 맞나 보네요.
└모 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왜 나왔겠어요? 기득권은 자신들이 만든 질서가 흔들리는 거 원치 않습니다. 문제는 박유성이 타노오스급이라는 거죠.
└타노오스는 이상한 마법사 선에서 정리됩니다. ㅋㅋ
└그 이상한 마법사가 박유성 팬이라던데요?
└헐, 진짜요?
└SNS에 글 올라왔습니다. 야구 잘 안보는데 박유성은 최고라고요.
랜더스 원정을 마친 스타즈는 홈으로 자리를 옮겨 라이온즈-타이거즈로 이어지는 홈 6연전에 들어갔는데 이 6연전 동안 스타즈에는 각종 기록들이 쏟아졌다.
“스타즈 구단 최다 연승이 몇 연승이지?”
“4연승인가 그럴걸?”
“그럼 라이온즈만 두 번 잡으면 바로 기록 깨는 건가?”
“첫 두 경기 잡아내면 6연승도 충분하지. 라이온즈 올 시즌 외국인 용병 별로잖아.”
“그럼 일단 김혜성이 잘 해줘야겠네.”
박유성에게 가려지긴 했지만 투수 최대어로 스타즈 유니폼을 입은 김혜성은 158㎞/h에 달하는 빠른 공을 앞세워 7이닝 4피안타 1실점 호투를 펼쳤다.
탈삼진은 무려 13개.
스타즈에 입단한 국내 선수들 중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다.
“유성아. 나 떨린다.”
“괜찮아. 너 못 던져도 욕할 사람 아무도 없어.”
“야이 씨. 그게 친구한테 할 소리야?”
“부담 내려놓으라고. 잘 던질 생각 마. 그냥 손지원답게 던져.”
“나답게? 나다운 게 뭔데?”
“주자가 나가도 꾸역꾸역 틀어막아. 씩씩하게 던지라고.”
“좀 더 멋있게 던지면 안 되는 거냐?”
“그런 건 찬우 형하고 혜성이 형이 할 거니까 넌 처절하게 버텨라.”
“하아……. 야구를 잘해서 때릴 수도 없고.”
“지원아. 명심해. 이기는 놈이 강한 놈이야. 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고.”
다음 날 선발 등판한 손지원은 5이닝 5실점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피칭을 선보였다.
초반에 빠른 공을 얻어맞으면서 빠른 공에 대한 자신감이 꺾였고.
지나치게 변화구를 남발하다가 패턴을 읽히며 무려 10개의 안타를 얻어맞았다.
그럼에도 5실점으로 막을 수 있었던 건 박유성과 다니엘 브리토가 번갈아가며 호수비 쇼를 펼쳐주었기 때문이다.
-쓰리 아웃. 이제 스타즈의 5회 말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손지원 선수. 괜찮습니다. 올해 졸업한 고졸 투수치고는 잘 던졌습니다. 모두가 다 박유성이 될 수는 없어요.
-현재 스코어가 5 대 4, 한 점 차이인 만큼 손지원 선수가 승리 투수가 될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렇죠. 5회 말에 두 점만 더 뽑아내면 됩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박유성은 다니엘 브리토가 잡았던 공을 가져와 손지원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너 승리 투수 기념구.”
“농담하는 거 아니지?”
“느낌이 온다. 뒤집을 수 있을 거 같아.”
“제발요. 유성이 형. 오늘 안타 하나밖에 못 쳤잖아요.”
“대신에 오늘 승리투수 되면 알지?”
“인터뷰 때 이 모든 영광을 유성이 형에게 돌리겠다고 할게.”
“그런 거 말고. 내일 거하게 한 턱 쏴라.”
“벼룩의 간을 내 먹어라. 내 연봉 얼마인 줄 모르냐?”
“나도 너하고 똑같은 신인 연봉 받거든?”
“넌 계약금 단위가 다르잖아!”
“암튼 쏠 거야, 안 쏠 거야?”
“쏜다. 쏴! 대신에 무조건 이겨. 무조건 이겨야 해.”
5회 말 스타즈의 공격은 9번 타자 최일준부터 시작이었다.
라이온즈의 선발 투수는 지난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좌완 임승민.
최고 구속 155㎞/h에 달하는 빠른 공과 각이 큰 슬라이더가 위협적인 반면 제구가 좋지 않았다.
특히나 80구가 넘어간 이후부터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공이 뜨는 경우가 잦았다.
만약 작년이었다면 어떻게든 안타를 때려내려고 노력했겠지만.
‘뒤에 유성이가 있으니까.’
타석에 선 최일준은 침착하게 공을 골랐다.
그러고는 지친 임승민에게 기어코 볼넷을 뜯어냈다.
-아, 동점 주자가 1루로 나갑니다.
-최일준 선수가 역시 노련하네요. 임승민 선수의 제구가 흔들린다는 걸 알고 일부러 공을 지켜봤습니다.
-이제 다음 타자가 박유성 선수인데요. 백영수 감독이 투수를 바꿀까요?
-투구수가 88구인 만큼 교체를 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중계석에서는 투수가 바뀔 거라 내다 봤지만 백영수 감독은 임승민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토종 에이스인 신우현도 내후년이면 서른 줄에 접어든다.
데뷔한지 벌써 11년 차.
선발로 활약한 5년 동안 57승을 거뒀을 만큼 라이온즈 선발진에서 없어서는 안 될 투수였지만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아서 언제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우현의 공백을 최소화하려면 임승민이 어떻게든 올라와 줘야 했다.
“얻어맞아도 좋으니까 과감하게 승부 해. 맞는 것도 공부다. 알았지?”
“네. 감독님.”
임승민을 다독이고 내려온 백영수 감독은 전광판을 한번 바라봤다.
어제 경기는 일방적으로 내줬지만 오늘은 경기 초반부터 리드를 잡아갔던 만큼 동점을 허용한다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임승민이 백영수 감독의 주문을 너무 적극적으로 실천해 버렸다.
후앗!
원 볼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임승민이 던진 빠른 공이 한복판 높게 날아갔고.
따악!
프로 40년 차 박유성은 그 공을 놓치지 않았다.
-박유성 선수가 힘껏 잡아당긴 공이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갑니다!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이 타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경기를 뒤집은 박유성을 보며 백영수 감독은 혀를 내둘렀다.
오늘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 임승민의 빠른 공에 타이밍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해볼 만하다 여겼건만.
실투를 놓치지 않는 걸 보니 그저 감탄만 났다.
박유성이 역전 홈런을 때려내자 클린업도 부담감을 털어냈다.
2번 타자 블레이크 테일러는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따악!
3번 타자 박준수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때려낸 데 이어.
따악!
4번 타자 다니엘 브리토가 이번 시즌 마수걸이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스타즈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아, 임승민 선수가 결국 마운드에서 내려갑니다.
-임승민 선수. 잘 던졌습니다만 박유성 선수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박유성 선수 이번 시즌 5번째 홈런인데요. 5경기에서 무려 5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습니다.
-이 분위기라면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타격 8관왕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홈런 타자들이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라이온즈를 상대로 팀 최다연승 기록을 갈아치운 스타즈는 4경기를 더 잡아내며 9연승을 질주했다.
스타즈가 나눔 리그 순위표 꼭대기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스타즈 팬들은 구장으로 몰려들었고.
스타즈 창단 이래 첫 6연속 홈경기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선발 9연승과 홈 6연승 기록도 최초.
거기에 박유성이 한 경기 최다 도루 기록과 스타즈 최초이자 프로야구 역대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 기록을 써내며 시즌 개막을 기다려 온 스타즈 팬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이거 꿈 아니죠? 아니라고 말해줘요 제발 ㅠ.ㅠ
└자, 이제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꿈에서 깰 시간입니다. 박유 썬!
└박유썬 ㅋㅋㅋ
└박유썬에 빠지면 절대 못 빠져나온다던데 큰일 나셨네요. ㅋㅋ
└자, 우리 이번 주 경기 중에 최고의 명장면을 한번 꼽아봅시다.
└당연히 사이클링 히트죠! 진짜 그날 박유성은 제대로 미쳤음. ㅋㅋ
└지금까지 제가 본 사이클링 히트는 뭔가 처절했는데 박유성은 워낙에 발이 빨라서 마음만 먹으면 시즌마다 사이클링 히트 열 개씩은 할 듯.
└저는 유성이 종범신 기록 하나 깬 경기요. 제 친구가 라이온즈 팬인데 도루 4개 할 때까진 욕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체념해 버림. ㅋㅋㅋ
└원래 한 경기 최다 도루 기록이 몇 개예요?
└한 경기 최다 도루 기록은 1993년 종범신이 기록한 6개입니다. 그다음이 대도라 불렸던 강일권의 5개였고요.
└무려 36년 만에 깨진 겁니까? ㄷㄷ
└요즘은 도루를 잘 안 하는 추세니까요. 거의 불멸의 대기록이 될 뻔했는데 유성이가 바로 갈아 치워 버림.
└백연천의 4할 타율과 기종범의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 중에 어느 쪽이 깨기 힘들까요?
└유성이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최다 도루 기록은 절대 안 깨질 거란 얘기가 많았는데 잘하면 전반기 안에 갈아 치울 기세인데요? ㅋㅋㅋ
└4할 타율을 어디에 비빕니까. 지금 유성이 타율 8할 다 되어갑니다. 지금부터 대충 쳐도 백연천 기록은 깰걸요?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도 금방이겠죠?
└저도 이승협 선수 팬인데 포기하면 편합니다. 9경기에서 홈런이 8개입니다. 홈런 페이스가 떨어지더라도 워낙에 안타를 많이 때리니까 감당이 안 됩니다. ㅠ.ㅠ
베이스볼 파크 국내 야구 게시판은 온통 박유성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박유성의 미친 활약상 덕분에 스타즈 팬들은 물론이고 다른 구단의 팬들까지 박유성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때 한 랜더스 팬이 자극적인 게시글을 올렸다.
[랜더스 미쳤나? 박경호 버린다고?]
제목에 혹한 유저들이 빠르게 게시글을 타고 들어가면서 해당 글은 실시간 핫 게시글에 올랐다.
하지만 단순히 어그로성 글일 거라 여겼던 게시글의 내용은 실로 충격이었다.
[지인이 랜더스 프런트에서 일하는데 박경호 재계약 물 건너갔답니다. 올 시즌에 4년 계약 끝이라 미리미리 협상해야 하는데 윗선에서 별로 탐탁지 않아 한다고요.
지인 말로는 회장님이 박경호보다 임기성을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팀장님! 이것 좀 보세요!”
“또 뭔데?”
“빨리요. 빨리!”
때마침 베이스볼 파크 게시판을 확인하던 임세영 운영팀 대리는 호들갑스럽게 안재희 운영팀장을 끌고 왔고.
“박경호가 풀린다고? 이게 말이 돼?”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우리한테 시리즈 스윕 당하고 나서 랜더스 분위기 장난 아니라고.”
“아무리 그래도 박경호잖아!”
“랜더스는 임기성 선수도 있잖아요.”
“하아……. 이거 왠지 낚시 글 같은데?”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 빨리 움직여요. 네?”
임세영 대리의 닦달에 안재희 운영팀장은 마지못한 얼굴로 단장실로 향했다.
“그러니까 랜더스 내부에서 불화가 있다는 건가요?”
“다소 와전됐을 수도 있지만 커뮤니티를 통해 저런 식으로 폭로가 나온 만큼 사실무근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잘 봉합되거나 아니면…….”
“정말로 박경호 선수가 매물로 나올 수도 있다?”
“네.”
“그렇다면 내가 한번 움직여 봐야겠네요.”
김재식 단장이 곧장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안재희 운영팀장이 다급히 김재식 단장을 만류했다.
“아직 언론 보도가 나기 전인데 바로 연락하시게요?”
“늦으면 놓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조금 진정하시고…… 박유성 선수 통해서 한 번 알아보시죠.”
“박유성 선수요?”
“박유성 선수하고 박경호 선수하고 친하니까요. 물론 다른 선수들도 있지만 박유성 선수가 슬쩍 떠보면 박경호 선수가 속내를 말해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