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60화
32. 트레이드(상)(2)
└지난주 개막전 분석 때 스타즈 승리 점친 거 이선철뿐이었지?
└안경연하고 임정준은 투타 밸런스 타령하면서 랜더스 찍었음.
└안경연하고 임정준 욕할 거 없는 게 포털 사이트 예상 투표에서도 랜더스가 6 대 4로 앞섰음.
└그건 팬 투표잖아요. 스타즈 팬들이 많이 늘었다곤 해도 팬층 탄탄한 랜더스는 못 이기죠.
└랜더스 팬이 있긴 하냐고 조롱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감개무량이네요 ㅠ.ㅠ
└근데 객관적인 전력상 랜더스가 좀 더 위 아님?
└나도 솔직히 투타밸런스상 랜더스가 낫다고 생각함.
└야알못 인증 좀 하지 마라. 객관적인 전력? 박유성이 있는데 그딴 소리가 나옴?
└야구는 팀 스포츠고 한 명 잘해서는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투타밸런스 타령하던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LA 올림픽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그것도 전부 운이고 뽀록임?
└이미 박유성 자체가 사기 캐릭터입니다. 오늘 경기 봐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잖아요?
└랜더스 팬인데 1회 초에 박유성 홈런 때리는 거 보고 오늘 경기 포기했음.
└저도요. 로메오 클레멘스가 자신 있다고 해서 믿었는데 1회부터 털리는 거 보고 못 이기겠다 싶었음.
└저는 스타즈 팬인데 모처럼 경기 편하게 봤네요. ㅎㅎ
└부럽네요. 박유성 보유팀.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기자들은 박유성의 실력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로메오 클레멘스가 100퍼센트 컨디션이 아니었다며?”
“원래 로메오 클레멘스는 슬로우 스타터야. 작년에도 4월 성적이 제일 별로였어.”
“5월부터 전반기 끝날 때까지 연승이었지?”
“5월에 다시 붙으면 로메오 클레멘스도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걸?”
“뭘 5월까지 가? 당장 내일부터 걱정해야 할 텐데.”
“참, 내일 선발이 레오 로드리게스지?”
지난 시즌 랜더스에 합류한 레오 로드리게스는 최고 구속 160㎞/h의 빠른 공을 던지는 우완 투수.
낮은 코스의 공으로 타자들을 맞춰 잡는 로메오 클레멘스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투수였다.
“그런데 레오 로드리게스가 통할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상대했잖아?”
“어제 랜더스 타자들 못 봤어? 저스틴 스몰이 빠른 공으로 윽박지르니까 힘을 못 쓰잖아. 박유성도 다를 거 없을걸?”
“그리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는 투수들 구속이 거의 다 안 나왔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박유성 내일 100퍼 말려. 안타 하나나 치면 다행일걸?”
“게다가 레오 로드리게스는 경기 초반에 영점이 안 잡히잖아. 그 지저분한 공에 휘말리다 보면 밸런스 다 깨질 거야.”
기자들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박유성이 묵직한 공을 던지는 레오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고전할 거라 전망했다.
하지만 스프링 캠프에서 저스틴 스몰의 공도 뻥뻥 때려냈던 박유성에게 레오 로드리게스는 어렵지 않은 투수였다.
-쳤습니다! 좌익수 앞에 안타! 3루 주자 홈 인! 2루 주자 최일준 선수까지 홈을 밟습니다! 스코어 8 대 2. 스타즈가 다시 한번 점수를 벌립니다!
레오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2안타를 포함 다시 한번 3안타 경기를 완성시킨 박유성은 이틀 연속 경기 MVP에 뽑혔다.
하지만 박유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자들은 박유성의 10할 타율이 깨졌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췄다.
“내가 뭐랬어? 레오 로드리게스한테는 안 될 거라니까?”
“정의신이 전력질주해서 타구 잡아냈을 때 박유성이 표정 봤어? 거의 세상 다 산 표정이던데?”
“에이, 뻥을 치려거든 좀 성의 있게 쳐라. 그 짧은 시간에 박유성 표정을 봤다고?”
“에헤이. 진짜라니까 그러네. 걔 자기가 엄청 잘하는 줄 알잖아. 두고 봐. 타율이 떨어질수록 멘탈이 갈리면서 본색이 드러날 테니까.”
랜더스 원정 마지막 날 경기에서 박유성이 두 번이나 아웃이 되자 기자들은 박유성이 추락하고 있다며 좋아했다.
미튜브 채팅으로 박유성을 비난했다가 들통나 배구판으로 밀려났던 홍민호 기자는 박유성의 상승세가 끝났다는 허무맹랑한 기사까지 써냈다.
└대한민국 기자들 대단하네. 지금 7할 타자를 까는 거야?
└왜요? 또 누가 박유성 깜?
└오선 홍 머시기 기사 보세요. 제목도 가관인데 기사 내용은 구역질이 날 정도임.
└박유성의 타율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라는 첫 줄에서 거르면 되는 거죠?
└근데 박유성 타율 빠지는 거 사실 아님? 하락세는 맞는 거 같은데? ㅋㅋㅋ
└나눔 리그 최다 안타, 홈런, 타율, 타점, 득점, 출루율, 장타율, 도루 단독 1위에 OPS, WAR, 결승타점 등등 모든 지표를 쓸어담고 있지만 하락세 이지랄. ㅋㅋㅋ
└그런데 어제 박유성 안타 하나 도둑맞은 거 아님? 내가 아는 유강민은 그 타구 절대 못 잡았을 텐데?
└직선타는 어지간해서는 거의 다 안타 주는데 유독 박유성한테만 빡빡하게 판정한 거 같음.
└코스가 야수 정면이었잖아요. 유강민 글러브 들어갔다가 빠져나왔고요.
└솔직히 다른 타자한테는 그 안타가 엄청 클 거 같은데 박유성은 별 타격 없을 거 같음.
└하락세 중에도 어제 2홈런 때려냈잖아요. ㅋㅋ
박유성의 맹활약 속에 스타즈는 창단 후 처음으로 랜더스 원정 시리즈를 스윕하는 쾌거를 이뤄냈지만 일부 고압적인 기자들의 태도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선배. 저 쪽팔려서 스포츠 기자 못 하겠어요.”
“그래. 잘 생각했다. 넌 스포츠 쪽하고 안 맞았어.”
“대답이 그게 아니잖아요오! 왜 쪽팔리는지를 물어봐야죠.”
“보나 마나 유성이 가지고 소설 쓰는 인간들 때문에 쪽팔리다는 거잖아.”
“선배는 화도 안 나요?”
“내가 유성이도 아닌데 화까지 내야 해?”
“와,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냉혈한이네요.”
“내가 냉혈한인 게 아니라 네가 오지랖이라는 생각 안 하냐? 그리고 그런 얼빠진 놈들이 있어야 우리 같은 기자들이 돋보이는 거야. 생각해 봐라. 모두가 한목소리로 유성이 빨아대 봐. 그럼 누가 우리 기사를 보겠어? 다 메이저 언론 기사들만 보지.”
“결국 선배에게 유성이는 조회 수 장사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네요.”
“말하는 거하고는. 암튼 유성이도 신경 안 쓴다니까 괜히 경거망동하지 마.”
“헐, 저 몰래 유성이하고 연락하셨어요? 언제요?”
“유성이 시합 뛰느라 바쁜데 무슨 연락을 해? 에이전시 통해서 문의했다. 에이전시에서도 짜증은 나는데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겠다고 하니까 우리도 일단 지켜보자고.”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아요?”
“유성이가 들으면 서운해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세상을 놀라게 하는 천재가 나타나면 범인들의 시기 질투가 따르게 마련이야. 아인슈타인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천재라고 바로 인정해 줬을 거 같아? 유성이도 똑같은 거야.”
“근데 다른 스포츠 스타들 놔두고 무슨 아인슈타인까지 가요?”
“내 맘이야. 솔직히 처음 유성이 봤을 때는 제2의 기종범만 되어도 좋겠다 싶었는데 요즘 하는 거 보면 뭐 전성기 기종범이 와도 안 되겠더라.”
“기종범 선수 미튜브 영상에 기정후 선수하고 통화하는 거 올라왔잖아요. 둘 다 박유성이 훨씬 더 잘한다고 인정했어요.”
“그러니까 괜히 저 인간들 자극하지 마. 자극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똘똘 뭉칠 테니까.”
베이스볼 패치 나영진 기자는 공윤경 기자를 단단히 단속했다.
박유성을 여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메이저 언론 기자들의 태도가 개탄스럽긴 했지만 이미 야구 팬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끼리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모든 기자가 나영진 기자 같은 건 아니었다.
[모순(矛盾).
모든 걸 꿰뚫는 창과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에서 나온 표현이다.
랜더스와 스타즈의 개막전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 말했다.
대한민국 야구계를 발칵 뒤집은 박유성의 활약을 기대하면서도 지난해 랜더스를 통합 우승으로 이끈 로메오 클레멘스를 상대로 안타를 때리기란 쉽지 않을 거라 전망했다.
하지만 이는 야구 공은 둥글다는 속설에 기댄 모순에 가까웠다.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을 가볍게 경신한 박유성은 내로라하는 투수들을 꺾고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연달아 MVP를 따낸 야구 천재.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와 주루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만능형 선수였다.
이미 국제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박유성을 단순히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깎아내리는 건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골든 글러브 시상식 때 로메오 클레멘스가 박유성을 도발한 것으로 라이벌 관계로 묶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LA 올림픽에서 성인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박유성은 이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맹활약하며 LA 올림픽에서 보여주었던 실력이 일회성이 아님을 입증해 냈다.
반면 로메오 클레멘스는 미국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의 합류를 바랐으나 후보 선수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지난해 나눔 리그 MVP를 수상하긴 했지만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했던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MVP보다 더 큰 상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웠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며 개막전을 포장했다.
그리고 결과는 창의 일방적인 승리.
게릿 벌렌더와 마츠다 유이토, 니키타 쇼우, 크리스 반스 등 메이저리그와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들을 상대로 맹타를 때려낸 박유성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박유성을 상대로 단 하나의 안타도 내주지 않겠다던 로메오 클레멘스는 결승 홈런과 3루타, 그리고 고의 4구까지 내주며 박유성을 단 한 차례도 압도하지 못했다.
반면 박유성은 로메오 클레멘스가 마운드를 내려간 이후에도 홈런과 볼넷, 도루를 추가하며 스타즈가 올린 4점을 자신의 발로 만들어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박유성의 활약상은 계속됐다.
2차전 때는 좀처럼 터지지 않는 클린업을 대신해 5개의 타점을 쓸어 올리며 팀의 공격을 주도했고.
3차전 때도 안타가 실책으로 바뀌는 상황 속에서 2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4실점으로 부진했던 송찬우의 첫 승을 지켜주었다.
개막전 시리즈가 끝난 현재 박유성은 나눔 리그는 물론이고 프로야구 모든 공격 지표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은 박유성의 활약상을 제대로 지켜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이 기사를 보고 나서도 아직은 시즌 초반이니까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이어질지 모른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백연천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4할에 도전했던 기종범이 시즌 막판 장염으로 타율을 까먹었던 것처럼 긴 시즌 중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건 모든 선수들에게 통용되는 말이다.
본 기자가 제언한다.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자.
박유성이 온전히 시즌을 마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는 뻔한 소리는 그만하자.
반대로 박유성이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야구사를 새로 쓸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언제고 박유성도 안타를 치지 못하는 경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를 기다렸다가 이럴 줄 알았다며 물어뜯으려는 치사한 짓은 그만 멈추자.
적어도 야구계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한국 야구를 국제 무대 정상에 올려놓은 MVP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재능에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빛을 발한다고 한다.
그런데 박유성은 이제 만 18세다.
본 기자는 박유성의 5년 후, 10년 후가 기대된다.
지금도 이렇게 잘하는데 경험이 쌓이면 얼마나 더 잘할까?
상상만으로도 자판을 두드리는 두 손이 땀으로 흥건히 젖는 기분이다.
다소 이른 표현일지 몰라도 머잖아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박유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그때 가서 가면을 쓰고 박유성을 헐뜯었던 걸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란다.]
[K 베이스볼 안선우 선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