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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59화 (259/412)

타자 인생 3회차! 259화

32. 트레이드(상)(1)

1

전국 6개 구장에서 동시에 열린 경기 중에 스타즈와 랜더스의 경기가 가장 먼저 끝이 났다.

그리고 한 시간 후.

히어로즈가 연장 접전 끝에 다이노스를 잡아내고 나서야 야구 전문 프로그램들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야구 여신 유다희입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다른 야구 전문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SBX도 현장 중계가 없는 해설자가 베이스볼 X를 채웠다.

당연하게도 방송국의 간판 해설가인 이선철 해설위원의 개막전 중계가 유력했지만 정작 이선철 해설위원은 현장 대신 베이스볼 X를 선택했다.

“이선철 해설위원. 오늘은 어디부터 가 볼까요?”

“그전에 질문하나 할게요. 유다희 아나운서는 맛있는 걸 먼저 먹나요, 나중에 먹나요?”

“맛있는 건 일단 먹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이 좀 잘못된 거 같은데 케이크에 딸기가 올라가 있습니다. 케이크를 다 먹고 딸기를 먹나요, 아니면 딸기부터 먹고 케이크를 먹나요?”

“저는 함께 먹는 편인데요?”

“…….”

“농담이고요. 답정너인 이선철 해설위원의 질문에 맞춰서 대답할게요. 맛있는 건 당연히 나중에 먹어야죠.”

“그렇다면 스타즈 경기는 가장 마지막으로 빼겠습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주문대로 다섯 구장의 경기를 다 살피고 나서야 랜더스 파크에서 열린 스타즈와 랜더스 간의 개막전 경기가 나왔다.

“이선철 해설위원이 기다리던 경기가 드디어 나왔네요.”

“일단 하이라이트 영상부터 보고 얘기하시죠.”

“그럴까요?”

6개 경기 중에 가장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돌아가는 동안 이선철 해설위원은 물로 입을 헹궜다.

그러고는 제작진에서 따로 놔둔 칼로리바를 하나 씹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웃던 유다희 아나운서는 하이라이트 영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운을 뗐다.

“이선철 해설위원. 이제 좀 든든하세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방금 영상 보시면서 칼로리 바 드셨잖아요. 저 이선철 해설위원이 녹화 중에 간식 드시는 거 처음 봐요.”

“별 얘기를 다 합니다.”

“그만큼 준비를 단단히 하신 것 같은데요. 스타즈가 랜더스를 4 대 0으로 이겼어요.”

“네. 6개 경기장에서 치러진 경기 중에 가장 먼저 끝이 났기 때문에 아마 대다수 시청자들이 경기 결과를 알고 있을 텐데요. 스타즈가 랜더스를 그것도 원정에서 잡아냈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양대 리그 체제 이후 랜더스가 홈 개막전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거든요?”

“24년부터 5년 연속 승리였는데요. 반대로 스타즈는 원정 개막전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습니다. 5연패였죠.”

“5연승과 5연패의 맞대결인데 5연패의 스타즈가 이겼습니다. 그것도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말이죠.”

“많은 전문가들이 경기 전에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사실 저는 그 의견에 공감하지 않았거든요.”

“지난 방송 끝나고 이선철 해설위원이 안경연 해설위원과 임정준 해설위원에게 한마디 하신 게 기억나는데요.”

“사석에서 했던 이야기 자꾸 하면 저도 유다희 아나운서가 했던 얘기 다 합니다?”

“저요? 저는 아무 얘기 안 했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4살만 나이가 많았더라도…….”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의 피칭은 어땠나요?”

능청스러운 유다희 아나운서의 진행에 이선철 해설위원도 피식 웃었다.

얼굴마담에 가까운 타 방송사 아나운서들과 달리 유다희 아나운서는 야구에 진심이었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장호영 캐스터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현장 중계를 맡겨도 될 정도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덕분에 단둘이 앉은 스튜디오에 오디오가 쉴 새 없이 채워졌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 하면 생각나는 게 뭔가요?”

“일단 지난 시즌 MVP죠. 평균 자책점과 다승, 승률 1위를 기록했고요. 탈삼진보다는 땅볼을 유도하는 스타일이라 땅볼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볼넷은 거의 내주지 않는 정교한 제구파 유형의 투수라는 정도요?”

“아주 좋은 대답입니다. 그리고 유다희 아나운서의 대답 속에 제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대부분 담겨 있습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이선철 해설위원께 칭찬받으니까 엄청 기분 좋은데요. 박유성 선수도 이런 기분일까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넵. 그럼 먼저 첫 타석 얘기부터 해볼까요?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10구 승부를 끌고 갔다가 홈런을 맞았습니다.”

5분여간의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박유성의 지분은 90퍼센트.

다른 선수들의 활약이 미미했던 데다가 득점 장면은 물론이고 호수비에 주루 플레이까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활약을 선보인 덕분에 박유성의 분량을 덜어낼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스타즈와 랜더스의 경기 리뷰는 박유성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마지막 실점은 랜더스의 오판이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일단 박영욱 선수의 투구수가 너무 많았어요. 박영욱 선수가 지난 시즌에도 긴 이닝을 자주 소화하긴 했습니다만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맞은 타자를 상대로 전력으로 싸우는 건 무리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 정도면 고의4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고의4구는 아니었을 겁니다. 랜더스 입장에서도 홈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2사 이후에 박유성 선수를 고의4구로 내보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다만 박영욱 선수의 초구가 볼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볼넷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무리해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했다가 장타를 맞으면 곤란하니까요.”

“결국 투수 교체 타이밍이 아쉬웠다는 말씀이신데요. 다음 투수가 언더핸드인 황인준 선수였습니다.”

“그 점도 아쉽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발이 빠르고 주루 플레이를 잘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제 생각에는 북한까지 소문이 났을 것 같은데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빠른 발을 가진 박유성 선수가 루상에 나갔는데 언더핸드 투수를 투입하는 건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바꿀 거면 한 타이밍 일찍 바꿨어야죠.”

“황인준 선수 대신 좌완 투수로요?”

“차라리 힘이 있는 투수가 나와서 박유성 선수와 맞붙었다면 아웃이 됐을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제가 늘 하는 얘기지만…….”

“친다고 다 안타는 아니니까요.”

“그렇죠. 그런데 박유성 선수를 볼넷으로 내보낸 것으로도 모자라 언더핸드 투수를 올렸어요. 이건 박유성 선수더러 뛰라는 소리나 다름없거든요.”

“결국 2루 도루를 성공시켰고요.”

“박경호 선수의 어깨를 믿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인준 선수의 딜리버리 타임은 일반 투수들에 비해 긴 편입니다. 슬라이드 스탭으로 공을 던져도 투구폼상 오버 핸드 유형의 투수들에 비해 늦을 수밖에 없어요. 0.1초 차이로 죽고 사는 주루의 세계에서 그 차이는 큽니다. 특히나 박유성 선수처럼 주루 센스가 탁월한 선수라면 아마 죽을 자신이 없을 겁니다.”

“그건 그렇게 쓰는 게 아닌데요. 자신이 없어요. 죽을 자신이. 이렇게 써야 해요.”

“그게 그거죠. 박유성 선수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주고 너무나 쉽게 도루까지 허용하니까 내야수들이 바빠진 겁니다.”

“그 초조함이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데요.”

“일단 황인준 선수도 박유성 선수를 묶기 위해 노력해야 했어요. 하지만 견제구 하나 던지지 않았죠.”

“2사 이후니까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야구를 다시 배워야 합니다. 야구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죠.”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요?”

“그렇습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에요. 타석에 신인인 오진욱 선수가 나와서 만만하게 느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오진욱 선수도 프로 지명을 받은 훌륭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박유성 선수와 함께 전국 대회 우승을 함께한 주축 멤버 중 한명이고요.”

“결국 박유성 선수를 묶지 못한 부담이 다른 수비수들에게 전가된 거 같은데요.”

“유다희 아나운서가 정확하게 봤습니다. 박유성 선수의 리드 폭이 크니까 3루수 유강민 선수가 3루 베이스 쪽으로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구 위치를 선점하지 못하면 박유성 선수에게 태그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오진욱 선수가 그 틈을 노려 기습 번트를 시도했죠.”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야구는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투수의 손 끝에서 공이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이에요. 3유간이 넓어졌는데 타자 입장에서 욕심이 나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잡아당기기에는 부담스럽겠죠.”

“아무래도 프로 데뷔 첫 타석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선철 해설위원이 자주 말씀하시는 것처럼 오진욱 선수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플레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네. 오진욱 선수는 그 플레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박유성 선수를 홈으로 불러들였죠.”

“그 장면을 다시 한번 보고 가시죠.”

유다희 아나운서가 적절하게 흐름을 끊자 이선철 해설위원도 잠시 호흡을 골랐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박유성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끝나고 유다희 아나운서가 다시 운을 뗐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경기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오진욱 선수는 무리해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박유성 선수도 타구를 확인하고 홈으로 내달렸습니다.”

“중계팀 말로는 김성범 선수가 타구를 잡을 때 박경호 선수가 던지지 말라고 소리쳤다고 하던데요?”

“그건 박경호 선수 판단이 정확합니다. 이럴 땐 무리해서 주자를 잡으려고 하지 말고 재정비를 해야 합니다. 아직 주자가 홈에 들어간 게 아니니까요. 보시면 알겠지만 박유성 선수도 3루를 돌면서 시선은 타구를 쫓았거든요? 만약에 김성범 선수가 타구만 잡고 멈췄다면 박유성 선수도 3루로 돌아왔을 겁니다.”

“만약에 김성범 선수가 3루 쪽으로 몸을 돌려서 송구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메이저리그에서는 가끔 나오는 플레이입니다. 타자 주자를 잡는 게 늦었다고 판단되면 타자 주자는 포기하고 선행 주자의 움직임을 묶는 거죠. 그러다 운이 좋으면 아웃을 시킬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3루에 공을 던질 수가 없었을 겁니다. 러닝 스로우 동작이잖아요? 저기서 몸을 180도 돌려서 3루로 정확하게 송구하는 건 서커스나 다름없습니다.”

김성범은 오진욱을 잡기 위해 타구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맨손으로 공을 잡아 무리하게 송구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송구가 3루 쪽으로 향했다 하더라도 3루를 지키고 있던 유강민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거라 장담하기 어려웠다.

“결국 박유성 선수로 시작해서 박유성 선수로 끝이 난 경기였는데요.”

“박유성 선수 이외에도 칭찬해 줄 선수들은 많습니다. 스타즈 타자들도 초반에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의 공을 오래 지켜보며 투구수를 늘렸고 저스틴 스몰 선수는 박유성 선수가 없었다면 MVP를 받았을 만큼 환상적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후 불펜 운영도 좋았고요.”

“그렇다면 랜더스 선수들 중에서는 누굴 칭찬해 주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굳이 한 명 꼽자면 박경호 선수요?”

“팀이 지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순간까지 냉철한 판단을 유지해서요?”

“이거 유다희 아나운서 돗자리 깔아야겠는데요?”

경기 중계는 MBS 스포츠 플러스에서 했지만.

상당수 야구팬들은 에피타이저로 SBX 베이스볼 X를 선택했다.

방송이 끝나고 베이스볼 파크에는 이선철 해설위원의 평가에 공감한다는 글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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