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57화 (257/412)

타자 인생 3회차! 257화

31. 3번째 데뷔전(9)

-랜더스의 원조 해결사, 유강민 선수가 추격의 솔로포를 작렬합니다!

-제가 앞선 타석 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유강민 선수 타격 컨디션이 좋아 보였거든요. 기어코 사고를 치네요.

-오늘 전반적으로 랜더스 타자들이 부진한 가운데 유강민 선수만 2개의 안타를 때려냈는데요. 8회 말이긴 하지만 이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오늘 경기도 충분히 뒤집을 수 있습니다!

임상훈 해설위원의 응원이 통했던지 후속 타자 임기성까지 안타를 때려냈다.

투 스트라이크를 잘 잡았지만 성급하게 몸 쪽으로 찔러 넣은 빠른 공이 한복판으로 몰려 버린 것이다.

“감독님. 오늘 승주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찍 바꾸시죠.”

“지금 불펜에 투수가 있어?”

“정석이가 준비 중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혁이를 한 이닝 더 끌고 가는 건데 그랬어.”

김석률 감독이 나직이 푸념했다.

오늘 조승주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지난해 팀을 위해 고생했으니 홀드라도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올려 보냈는데 여지없이 얻어맞는 걸 보니까 진짜 프로 감독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최민태 수석 코치가 위로하듯 말했다.

“우혁이라고 잘 막았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감독님.”

“후우……. 일단 영기 몸 풀라고 하고 한 타자 더 지켜보자고.”

“알겠습니다. 감독님.”

말이 씨가 된 듯 신영기가 불펜으로 뛰어나갔고.

화기애애하던 스타즈 더그아웃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행히 하위 타순으로 연결됐지만 여기서 한 점이라도 더 쫓아온다면 클린업이 등장하는 9회 말이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조승주가 풀카운트 끝에 김재균을 유격수 땅볼로 유도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유격수 최일준 선수가 타구를 잡아 2루로. 2루수 블레이크 테일러 선수가 다시 1루로. 6-4-3의 더블 플레이가 완성됩니다!

-김재균 선수. 방금 공은 욕심이었어요.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왜 잡아당깁니까.

-저는 조승주 선수가 대담하게 잘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차하면 경기 분위기가 넘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풀카운트에 유인구를 던지기가 쉽지 않거든요. 김재균 선수도 무조건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고 쳤을 겁니다.

-이제 루상에 주자가 사라진 가운데 9번 타자 김성범 선수가 타석에 들어옵니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야구라는 구기 종목은 흐름이 중요했다.

강팀이 되려면 빼앗긴 흐름을 최대한 빨리 되찾아와야 하고.

손에 쥔 흐름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지켜내야 했다.

이 이론에 가장 적합한 팀이 바로 랜더스였다.

랜더스를 상대하는 감독마다 한 경기가 열 경기 같다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유도 랜더스가 흐름 관리를 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랜더스라 해도 프로야구 150경기를 전부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었다.

유강민의 홈런에 이어 임기성의 안타가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김성범은 그 흐름이 왔다고 여겼다.

후배 김재균은 작전 수행 능력이 좋고 선구안이 좋은 타자.

희생번트로 임기성을 2루에 보내고 나면 동점까지는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벤치에서 욕심이 났던지 김재균에게 강공을 지시했다.

조승주의 공이 평소만 못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지만 평소 찬스를 연결해 왔지 해결한 적이 거의 없던 김재균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풀카운트 승부 끝에 유격수 땅볼이 나왔고.

큰 것 한 방이면 동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무조건 출루해야 해.’

마음을 다잡은 김성범은 방망이를 짧게 쥐었다.

비록 투 아웃이 됐지만 자신이 출루한다면 상위 타선으로 연결되는 만큼 한 점 정도는 더 쥐어짜 낼 수 있을지 몰랐다.

그렇게 숨을 돌린 조승주가 초구를 내던지자 김성범은 냅다 기습번트를 시도했다.

딱.

몸 쪽으로 붙는 공을 3루 쪽 라인 선상으로 굴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애석하게도 파울이 됐다.

하지만 설마하니 기습 번트를 댈 줄 몰랐던 조승주는 다시 마음이 급해졌고.

풀카운트 승부 끝에 김성범에게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2사 이후에 김성범 선수가 다시 볼넷을 얻어냅니다.

-역시 백전노장이네요. 조승주 선수가 흔들린다는 걸 간파하고 침착하게 공을 골라냈습니다.

-저는 첫 타석 때 시도했던 기습 번트를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바로 직전에 병살타가 나왔잖아요? 흐름이 스타즈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김성범 선수가 노련하게 플레이했던 게 볼넷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김석률 감독이 직접 마운드로 나옵니다.

감독 데뷔 후 처음으로 경기 중에 그라운드에 나온 김석률 감독은 무심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조승주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 뒤에 곧바로 공을 받아 들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조승주도 군말 없이 교체를 받아들였다.

컨디션도 컨디션이지만 두 타자 연속 풀카운트 승부를 가져가면서 투구수가 20개를 넘긴 상태였다.

-조승주 선수가 내려가고 세 번째 투수 신영기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신영기 선수는 앞서 등판했던 고우혁 선수와 입단 동기인데요. 2026년부터 붙박이 1군으로 활약해 지금은 스타즈 불펜의 핵심으로 활약 중입니다.

-지난해 46경기에 등판해 3승 2패, 15홀드에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했습니다.

-불펜에 마무리 투수 김정석 선수가 몸을 풀고 있습니다만 정의신 선수가 좌타자라 좌완인 신영기 선수를 먼저 올린 것 같습니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교체된 투수가 최소 3명의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규정을 신설했지만 프로 야구는 여전히 원포인트 릴리프가 가능했다.

“흐아압!”

오직 정의신을 잡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신영기는 요란한 기합성을 내지르며 공을 던졌고.

딱!

신영기의 기세에 눌린 정의신은 3구째 몸 쪽을 파고드는 빠른 공에 땅볼을 치고 말았다.

-2루수 블레이크 테일러 선수가 공을 잡아 1루로. 쓰리 아웃. 이제 정규 이닝 마지막 공수로 이어집니다. 두 분은 오늘 경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비록 한 점을 내주긴 했습니다만 분위기는 스타즈 쪽이 좋아 보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조승준(조승주)/ 선수가 김재균 선수를 병살타로 잡아냈고 구원 등판한 신영기 선수도 정의신 선수를 깔끔하게 막아냈어요. 게다가 9회에는 마무리 투수 김정석 선수가 올라옵니다. 비록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김정석 선수도 리그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 아니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김정석 선수를 높이 평가합니다. 랜더스가 타순이 좋긴 하지만 김정석 선수를 상대로 2점 이상을 뽑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두 분 말씀을 듣고 보니까 오늘 경기의 결말이 보이는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랜더스에게 기회가 없는 건 아닙니다. 임상훈 해설위원이 말했다시피 9회 말 공격이 2번 타자 박민재 선수부터 시작이거든요. 박민재 선수가 출루하면 랜더스가 자랑하는 클린업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큰 거 하나 나오면 또 모르는 거죠.

-박재흥 해설위원이 말한 그 기회를 잡으려면 일단 스타즈의 9회 초 공격을 잘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9회 초에 박유성 선수 타석까지 돌아옵니다. 오늘 데뷔전에서 벌써 3개의 안타와 2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데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를 상대로 고의4구까지 얻어냈죠. 랜더스 입장에서는 박유성 선수 타석이 엄청 부담스러울 겁니다. 정면승부를 하면 뻥뻥 때려내고 주자로 내보내면 귀찮아지니까요.

-랜더스 입장에서 최선은 일단 투 아웃을 잡아놓고 박유성 선수를 상대하는 겁니다. 그럼 실점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랜더스 박전권 감독도 중계진과 똑같은 구상을 했다.

“일단 배민철과 최일준을 무조건 잡아야 해. 그리고 여차하면 박유성은 거르는 쪽으로 가자고.”

“그럼 박유성이 뛸 텐데요?”

“뛰더라도 홈스틸은 안 하겠지. 블레이크 테일러는 충분히 잡을 수 있잖아?”

“배민철을 거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최일준이 번트를 댈 테고 박유성으로 1루를 채울 수 있는데요.”

“그러다 박준수 타석까지 이어지면 어쩌려고? 박유성이 뛰는 건 일단 두고 투 아웃부터 잡아. 박준수 타석까지 이어지게 해서는 안 돼.”

박전권 감독과 이진형 수석 코치의 대화를 듣던 박재산 타격 코치는 헛웃음이 났다.

박유성 하나 때문에 시야가 너무 좁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유성의 빠른 발을 묶기 위해 걸음이 느린 배민철을 1루로 내보내자는 이진형 수석 코치의 의견은 들을 가치도 없었다.

배민철이나 최일준에게 안타를 맞고 난 다음에 박유성을 거르는 거라면 몰라도 먼저 주자를 내보냈다간 스타즈에서 작전을 걸 게 뻔했다.

‘아니, 애당초 9회에 주자를 내보내자는 거 자체가 미친 소리야.’

그렇다고 그런 억지 계획을 꺼내게 만든 박전권 감독의 생각에 동조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배민철과 최일준을 잡아내면 박유성과 최선을 다해 승부하면 그만이다.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가 나간 것도 아니고 친다고 다 안타가 되는 것도 아닌데 투 아웃을 잘 잡아놓고 박유성을 거른다?

이건 팬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을 짓이었다.

하지만 박전권 감독과 이진형 수석 코치는 이번 9회 초만 막아내면 경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에 빠져 있었다.

“그럼 포수를 바꾸는 게 어떨까요?”

“경호로? 수비가 가능해?”

“긴 이닝은 어렵겠지만 한두 이닝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아무래도 경호가 경험은 많으니까요.”

“흠……. 그럼 기성이하고 바꾸지 말고 강민이하고 바꿔. 연장으로 가면 다시 기성이로 돌리고.”

“아, 네. 그게 좋겠네요.”

이진형 타격 코치는 곧바로 박경호에게 다가가 대수비를 알렸다.

다행히 7회부터 대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박경호는 가볍게 몸만 푼 뒤에 포수 마스크를 썼다.

-아, 지금 임기성 선수 대신 박경호 선수가 나옵니다!

-아직 몸 상태가 완전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랜더스에서 승부수를 띄웠네요.

박경호가 나오자 랜더스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 연호에 화답하듯 박경호는 신들린 리드로 배민철과 최일준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제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1번 타자 박유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성적은 홈런과 3루타, 볼넷, 그리고 홈런. 프로 야구 역사상 이보다 더 환상적인 데뷔전을 치른 선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박유성 선수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건 박경호 선수예요.

-박경호 선수라면 아마 박유성 선수의 장단점도 전부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박재흥 해설위원과 임상훈 해설위원이 박경호는 다를 거라며 입을 맞췄지만 박경호라고 해서 박유성을 막을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유성아. 치고 나갈래, 걸어 나갈래?”

“선택지가 그 두 개예요?”

“아니면? 형 생각해서 죽어줄래?”

“그럼 쳐야겠네요. 친다고 다 안타는 아니잖아요?”

“그 얘기를 네가 하니까 엄청 얄밉다.”

“그보다 형. 몸은 좀 괜찮아요?”

“거의 다 나았어. 아마 5월부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럼 부지런히 이겨놔야겠네요.”

“암튼 초구는 몸 쪽 공이다.”

박경호의 너스레에 박유성이 피식 웃었다.

그런 뻔한 트래시 토크에 당해주기에는 프로 생활을 너무 오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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