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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54화 (254/412)

타자 인생 3회차! 254화

31. 3번째 데뷔전(6)

“기성아. 너는 어때?”

박전권 감독이 임기성을 보며 말했다.

이럴 때는 투수보다 포수의 의견을 듣는 편이 정확했다.

그러자 임기성이 로메오 클레멘스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해.”

“저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리고 개막전인데 에이스 투수를 조기 강판 시키는 건…….”

“그런 건 아직 네가 판단할 짬이 아니고.”

“넵. 죄송합니다.”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로메오 클레멘스는 박전권 감독이 어깨를 툭 치고 내려가자 표정을 풀었다.

그러고는 통역사를 보며 물었다.

“키성이 뭐라고 한 거야?”

“아직은 괜찮다고 했어.”

“그것뿐이야?”

“개막전인데 에이스 자존심을 신경 써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가 한 소리 들었어.”

“옳은 말을 했는데 왜?”

“키성은 아직 어리잖아. 주전 포수는…… 따로 있으니까.”

랜더스에서 오래 일한 통역사는 랜더스의 주전 포수는 박경호라는 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로메오 클레멘스의 생각은 달랐다.

“키성에게 전해. 에이스와 호흡을 맞추는 포수가 주전 포수라고.”

“로메오.”

“나중에 확인할 거야. 그러니까 똑바로 전해.”

통역사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로메오 클레멘스의 말을 전했고.

그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이해한 임기성도 단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로메오. 아직 경기 초반이니까 다시 한번 해보자.”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로메오 클레멘스와 주먹을 부딪친 뒤 임기성은 포수석으로 돌아왔다.

다음 타자가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친 3번 타자 박준수였지만 주눅 들지 않았다.

‘로메오는 지난 시즌 MVP 투수라고.’

조금 더 과감하게 승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임기성은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단번에 로메오 클레멘스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그리고 로메오 클레멘스가 힘껏 내던진 공은.

퍼엉!

박준수의 무릎 앞쪽으로 정확하게 떨어졌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148㎞/h의 빠른 공이 날아와 꽂혔습니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는 진즉에 저 공을 던졌어야 했습니다. 사실 타자 무릎 앞으로 떨어지는 빠른 공은 잘 쳐야 파울이거든요.

-박재흥 해설위원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박전권 감독이 로메오 클레멘스를 잘 달랜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전체적인 피칭이 좀 떠 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공이 뜬 게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작년에 한창 좋았을 때와는 다르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렇죠. 그런데 이번 공은 저희가 잘 아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의 공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사이 투포수 사인 교환을 마쳤습니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2구를 던집니다. 이번에도 몸 쪽! 높은 코스의 빠른 공에 박준수 선수가 반응합니다.

“하아, 젠장할.”

1루 쪽 관중석으로 크게 벗어나는 타구를 보며 박준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빠른 공인 줄 알고 방망이를 휘둘렀건만.

하필이면 커터가 들어왔다.

“후우…….”

길게 숨을 고른 박준수는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잡았다.

동갑내기 라이벌인 민병규였다면 투 스트라이크를 먹어도 과감하게 덤벼들겠지만 박준수는 스타일이 달랐다.

최대한 좋은 공을 자신만의 타이밍에서 힘 있게 때려내는 것.

그것이 박준수가 추구하는 타격 이론이었다.

그런 박준수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임기성은 3구째 유인구 대신 바깥쪽 빠른 공을 주문했다.

“뭐야, 키성. 감독에게 따로 팁이라도 받은 거야?”

임기성의 리드가 마음에 들었던 로메오 클레멘스가 씩 웃었다. 그러고는 임기성의 미트를 향해 정확하게 공을 꽂아 넣었다.

-스탠딩 삼진 아웃!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지난해 45개의 홈런을 때려낸 박준수 선수를 3구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박준수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은 로메오 클레멘스는 4번 타자 다니엘 브리토와 6번 타자 이동엽을 각각 중견수 플라이와 유격수 앞 땅볼로 유도하고 이닝을 마쳤다.

중간에 5번 타자 장영호에게 초구에 몸 쪽 체인지업을 던졌다가 3유간을 빠지는 안타를 허용한 걸 빼고는 흠잡을 게 없는 피칭이었다.

“좋아, 좋아! 로메오! 그렇게만 던져.”

박전권 감독도 지난 시즌의 로메오 클레멘스가 돌아왔다며 반겼다.

박유성에게 다시 한 점을 내준 건 좀 뼈아팠지만.

3회에 12개의 공만 던지며 투구수를 줄였으니 이대로 6회까지 맡겨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박경호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에는 볼배합을 바꾼 게 주효했지만 다음번에도 통할 거라는 보장이 없어.’

박경호가 지켜본 스타즈 타선의 짜임새는 작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박유성의 합류였다.

당초 스타즈는 마땅한 톱타자가 없어서 다니엘 브리토까지 1번으로 기용될 정도였다.

지난해 1번 타순에 이름을 올린 타자만 무려 7명.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최일준을 2번에 전진시킨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제2의 기종범, 제2의 기정후라는 평가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역사상 이런 선수가 있었나 싶을 만큼 독보적인 박유성이 1번 자리를 꿰차면서 장타력이 좋은 다니엘 브리토가 클린업에 고정 배치됐다.

다니엘 브리토가 뒤를 받치면서 박준수도 마음이 편해졌고.

클린업이 탄탄해지면서 조금 더 경험을 쌓아야 하는 장영호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었다.

수비 부담이 큰 최일준은 자신이 선호하는 9번 타순으로 내려갔고.

용병답게 한 방 능력을 갖춘 블레이크 테일러가 박유성과 박준수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게 됐다.

올 시즌 활약상은 지켜봐야겠지만 시범 경기에서 보여준 타격만 놓고 보자면 강한 2번 타자와 테이블 세터를 병행할 수 있는 최적의 선수였다.

거기에 박준수-장영호에 이어 스타즈가 장기 육성을 선언한 청소년 국가대표 3번 타자 출신 이동엽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딱히 쉬어갈 만한 타선이 보이지 않았다.

‘하위 타선에서 경험과 중량감을 실어줄 만한 타자만 합류하면 진짜 무서워질 거야.’

그래서 박경호는 타석을 마치고 돌아온 임기성을 더그아웃 뒤로 불렀다. 그리고 4회에 박유성을 상대하라고 주문했다.

“4회에요?”

“그래. 로메오 클레멘스 투구수가 몇 개인 줄 알지?”

“3회까지 58구입니다.”

“로메오 클레멘스, 아직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한 거 아냐. 80구 넘어가면 구위가 떨어진다고.”

“그래도 작년에는 100구 이상 던졌잖아요?”

“그건 본인 욕심 때문에 그런 거야. 랜더스하고 장기 계약할 줄 알았으면 그렇게 무리 안 했을걸? 어쨌거나 이대로 세 타자를 잡아내면 유성이를 5회 초 선두 타자로 만나게 돼. 그럼 5회까지 버티기 어려울 거야.”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유성이를 볼넷으로 거르겠습니다.”

“억지로 거르지 않더라도 주자가 나가고 유성이 타석까지 돌아오면 감독님이 고의4구 지시할 거야. 그때 잘 다독여서 이닝 마무리하고 6회까지 끌고 가 봐.”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박경호의 조언을 받은 임기성은 스타즈의 4회 초 타순을 살폈다.

7번 타자 장태수부터 시작해 8번 타자 배민철과 9번 타자 최일준까지.

누구에게 안타를 내줘야 하나 고민이 되는 타선이었다.

‘일단 장태수는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으니까 안 돼.’

로메오 클레멘스의 성격상 같은 타자에게 연속해서 안타를 맞으면 다시 흥분할지 몰랐다.

그렇다면 남은 선수는 배민철뿐.

‘민철이 형이 출루를 하면 희생 번트 사인이 나올지도 몰라. 그럼 유성이를 고의4구로 거를 수 있어.’

마운드에 선 투수가 말이 통하는 국내 선수였다면 함께 논의를 했겠지만.

자존심이 강한 로메오 클레멘스에게 일부러 안타를 맞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 시나리오를 완성시킬 수 있는 건 자신뿐.

‘좋아. 한번 해보자.’

3회 말 랜더스의 공격이 무득점으로 끝나자 임기성은 크게 숨을 골랐다.

경기의 1/3이 끝난 현재 스코어는 2 대 0.

두 점 다 박유성이 이닝의 선두 타자로 나와서 만들어낸 점수였다.

스타즈의 선발 투수인 저스틴 스몰의 빠른 공에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박유성이 선두 타자로 나와 추가점의 발판을 마련한다면 오늘 경기는 그대로 끝날지 몰랐다.

‘일단 장태수부터 빠르게 끝내자.’

임기성은 공격적인 리드로 장태수를 3구 만에 3루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했다.

초구와 2구, 연달아 몸 쪽을 파고드는 공에 당황한 장태수는 3구째 바깥쪽을 파고드는 백도어성 슬라이더를 건드렸다가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이제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8번 타자 배민철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첫 타석은 희생타. 번트로 장태수 선수를 2루까지 진루시킨 바 있습니다.

-배민철 선수는 사실 수비보다는 공격 쪽이 조금 더 나은 선수이긴 한데요. 이럴 때 한번 보여줘야 합니다.

박재흥 해설위원의 말대로 배민철은 공격 쪽에 소질이 있는 타자였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할 때 포수와 지명타자를 번갈아 봤을 정도로 장타력을 뽐냈지만.

스타즈의 주전 포수가 된 이후로는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철이 형은 몸 쪽 공을 제법 잘 치니까.’

개인적으로 연구한 배민철의 장단점을 떠올린 임기성은 초구에 과감하게 몸 쪽 공 사인을 냈고.

로메오 클레멘스는 의심하지 않고 임기성이 원하는 코스대로 공을 찔러넣었다.

‘몸쪽 속구!’

앞선 장태수의 타석을 보며 내심 몸쪽 공이 들어오길 바랐던 배민철은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스위트 스폿 안쪽에 걸렸는지 배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지만 다행히도 타구는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갔고.

“젠장할!”

로메오 클레멘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지게 만들었다.

-박재흥 해설위원. 돗자리를 까셔야겠습니다.

-방금은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너무 성급하게 승부를 했어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투구수가 많다 보니까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건 이해하지만 초구 몸 쪽 빠른 공 패턴이 반복되고 있거든요. 하위 타선이라고 너무 만만하게 본 것 같습니다.

-이제 9번 타자 최일준 선수의 타석인데요. 스타즈 벤치에서 작전을 걸까요?

-제가 감독이라면 작전을 걸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 점만 더 따내면 랜더스를 잡아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중계진의 예상대로 김석률 감독은 최일준에게 직접 희생번트 사인을 냈고.

딱.

최일준은 바깥쪽으로 날아드는 빠른 공을 3루 쪽으로 돌려 배민철을 2루까지 보냈다.

-배민철 선수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나간 가운데 이제 슈퍼 루키, 박유성 선수의 타석입니다. 첫 타석은 홈런. 두 번째 타석은 3루타. 2029 시즌 가장 빠른 홈런과 3루타를 기록했습니다.

-오늘 박유성 선수는 보여줄 걸 다 보여주고 있는데요. 첫 타석 때는 커트 신공을 통해 공을 10개까지 지켜보다 홈런을 때려냈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초구를 과감하게 휘둘러 3루타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신인들은 어지간해서 초구를 치기가 쉽지 않은데요.

-칠 수는 있습니다. 대신 범타로 물러나면 선배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겠죠. 어쨌거나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도 박유성 선수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텐데요.

-아, 지금 박전권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옵니다.

-지금 불펜에 몸을 풀고 있는 투수가 없는 거 같은데 바로 투수 교체를 하는 걸까요?

-투수 교체가 아니라 고의4구 같은데요.

-박재흥 해설위원이 이번에도 맞혔습니다. 박전권 감독이 자동 고의4구를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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