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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53화 (253/412)

타자 인생 3회차! 253화

31. 3번째 데뷔전(5)

유격수 자리로 돌아간 최일준은 공격의 아쉬움을 수비로 풀었다.

4번 타자 브라이언 코빈이 힘껏 잡아당긴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낸 데 이어 6번 타자 유강민의 빗맞은 타구까지 러닝 스로우로 처리하며 저스틴 스몰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랜더스에 장타력을 더해줄 거라 기대를 모았던 5번 타자 페트릭 도저는 기습적으로 들어온 커브 볼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1회 박유성 선수에 이어 2회에는 최일준 선수가 랜더스 팬들을 탄식하게 만듭니다.

-유강민 선수가 은근히 발이 빠른 타자인데요. 최일준 선수가 뜸을 들였다면 내야 안타가 나올 뻔했습니다.

-백업이긴 해도 괜히 국가 대표가 아닙니다. 최일준 선수에게 공이 가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지금 채팅창으로 스타즈가 랜더스같다는 채팅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는데요.

-본래 수비하면 랜더스였는데 오늘 경기에서만큼은 스타즈의 수비가 랜더스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이제 3회 초 공격은 다시 박유성 선수부터 시작되는데요. 박재흥 해설위원.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지금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의 투구 수가 46개거든요? 박유성 선수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첫 타석 때처럼 끈질기게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를 괴롭힐 것 같습니다.

-박재흥 해설위원의 말처럼 박유성 선수가 다시 한번 커트 신공을 선보인다면 투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다른 선수 같았다면 그냥 맞는 걸 각오하고 정면 승부를 하라고 할 텐데 박유성 선수잖아요? 타석에 있을 때 가장 얌전한 선수를 루상에 내보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골치 아프네요.

임상훈 해설위원의 말처럼 임기성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박전권 감독은 적극적으로 승부하라고 말했지만 오늘 로메오 클레멘스의 공으로는 박유성을 이기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로메오 클레멘스의 최대 장점은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칼 같은 제구력과 수준급 무브먼트였다.

스타즈의 간판타자인 박준수와 다니엘 리오스도 무겁게 깔려 들어오는 로메오 클레멘스의 공에 혀를 내두르기 일쑤였다.

하지만 박유성을 상대로는 그 장점이 통하지 않았다.

애당초 100퍼센트 컨디션도 아니지만.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듯 들어오는 공은 전부 걷어낼 만큼 타격 센스가 상당하다 보니 어떤 공을 던져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경호 선배님이었다면 어땠을까.’

임기성이 고개를 돌려 다시 박경호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박경호는 임기성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1회에 사인을 줬다가 배터리 코치에게 들켜서 한 소리 들었기 때문이다.

주전 포수로서 백업 포수에게 조언을 해줄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랜더스는 임기성을 다른 스타일의 포수로 키우고 싶어 했다.

임기성이 박경호를 따라 해봐야 박경호 백업밖에 안 될 터.

그러기에는 고교 시절 최고의 포수로 군림했던 임기성의 재능이 아깝다고 판단한 것이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던 임기성은 바깥쪽 빠른 공 사인을 냈다.

박유성의 약점을 알 수 없으니 일단은 정석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로메오 클레멘스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몸쪽 공에 홈런을 쳤으니까 분명 몸쪽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본래 타자들은 단순해서 안타를 때려낸 공에 대한 미련이 컸다.

투수가 같은 공을 또 던져줄 리 만무한 데도 그 공이 다시 들어오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경험이 부족한 타자들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보나 마나 초구는 바깥쪽이겠지.’

타석에 들어선 박유성은 오른쪽 발끝을 살짝 닫았다. 그리고는 로메오 클레멘스의 공이 바깥쪽으로 날아들자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따악!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걸린 타구는 좌익수 민병규와 중견수 정의신 사이를 정확하게 반으로 갈랐다.

-박유성 선수가 뜁니다! 1루를 돌아 2루로! 아아, 곧장 3루로 내달립니다!

-박유성 선수의 주특기를 이렇게 보게 되네요.

-정의신 선수가 공을 잡아 송구했습니만 박유성 선수의 폭풍 질주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이번 시즌 1호 홈런에 이어 1호 3루타까지 신고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루를 파고든 박유성이 양팔을 벌려 타임을 요청했다. 그리고는 3루 쪽 더그아웃 주변에 모여 있던 스타즈 팬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흡사 스타즈 파크를 방불케 하는 함성이 쏟아졌다.

“유성아아아!”

“유성아! 여기! 여기!”

“박유성 선수! 팬이에요!”

“오늘 사이클링 히트 가즈아아아!”

팬들의 환호에 박유성은 오케이 사인으로 화답했다.

그러자 3루수 유강민이 박유성의 엉덩이를 툭 치며 말했다.

“야 인마. 여기 스타즈 파크 아니야.”

“죄송합니다. 우리 팬들이 많아서 스타즈 파크인 줄 알았어요.”

“여기 다 네 팬이야. 대한민국에 네 팬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도 시즌 중에는 다르죠.”

“암튼 적당히 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유강민도 한때 특급 유망주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3할이 가능한 정교한 타격과 준수한 발, 그리고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 능력까지 대성할 수 있는 재능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송현민이 프로에 데뷔하고.

그다음 해 민병규가 팀에 들어오면서 유강민을 특급 유망주라 부르는 팬들은 사라졌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했어. 너 같은 선수가 없을 거 같지? 천만에. 몇 년 안에 무조건 나온다.’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되삼키며 유강민은 제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프로 40년 차인 박유성에게 그런 뻔한 견제가 통할 리 없었다.

‘실력으로 안 되니까 말발로 기를 죽이고 싶은가 본데 어림없지.’

로메오 클레멘스가 투구판을 밟자 박유성은 보란 듯이 리드를 넓혔다.

한 발.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3루수 유강민이 베이스를 비운 허점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젠장할.”

박유성이 눈앞에서 알짱거리자 로메오 클레멘스는 투구판에서 발을 풀었다.

그리고는 유강민에게 3루에 붙어 있으라고 소리쳤다.

“짜식이 사람 귀찮게 하네.”

유강민은 어쩔 수 없이 3루 베이스로 돌아왔다.

제아무리 주루 센스가 좋은 박유성이라 해도 투수가 뻔히 지켜보는데 홈스틸을 하진 않겠지만.

투수 입장에서는 주자를 한 걸음이라도 베이스에 묶어두는 게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유성의 도발이 끝난 건 아니었다.

한 발. 다시 한 발. 그리고 반 발.

아까보다 반 발자국 정도 덜 나가긴 했지만 여차하면 홈으로 뛸 것 같은 움직임에 로메오 클레멘스는 다시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 불만이 가득한 얼굴인데요.

-투수 입장에서는 저러면 짜증 납니다. 저도 현역 시절에 제가 보는 앞에서 리드를 벌리는 주자를 보면 얄미웠거든요.

-하물며 박유성 선수는 지금 3루에 나가 있습니다.

-지금 박유성 선수가 아주 영리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3루에 나가면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안타가 나오면 편하지만 땅볼이나 플라이가 나면 판단을 빨리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박유성 선수는 주자로서 본분까지 다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베이스에 가만히 붙어 있을 거면 출루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말했던가요? 어쨌거나 주자는 베이스에 나가면 끊임없이 투수를 괴롭혀야 합니다. 발이 빠르고 느리고는 상관없어요. 저런 플레이를 해줘야 후속 타자들이 편해집니다.

박유성의 계속된 리드에 화가 난 로메오 클레멘스는 연거푸 견제구를 던지며 화풀이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박유성은 날다람쥐처럼 몸을 돌려 베이스로 돌아왔다.

프로 무대가 낯선 신인급 선수였다면 로메오 클레멘스의 견제에 당황했겠지만.

프로 40년 차인 박유성의 눈에는 로메오 클레멘스의 서툰 견제 동작이 훤히 보였다.

‘1루 견제라면 몰라도 3루 견제는 거의 해본 적이 없겠지. 연습도 대충 했을 테고.’

스프링 캠프 때 온갖 상황에 맞는 훈련을 하긴 하지만.

프로 선수들은 대게 효율성을 추구한다.

3루 주자 견제 연습보다는 빈도가 많은 2루 주자 견제 연습에 집중하고.

2루 주자 견제 연습보다는 1루 주자 견제 연습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스윽. 스윽.

박유성이 보란 듯이 리드를 벌리자 로메오 클레멘스는 속이 부글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총알 같은 견제구를 내던져 박유성을 잡아내고 싶었지만.

두 번째 견제구가 하마터면 빠질 뻔한 터라 다시 견제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일단 저 녀석부터 잡자.’

크게 숨을 고른 로메오 클레멘스는 박유성을 잊고 타자인 블레이크 테일러를 노려봤다.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선수인 만큼 땅볼로 유도해 아웃 카운트를 챙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석률 감독이 블레이크 테일러를 2번으로 전진 배치 시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이너리그 시절에 테이블 세터로 뛴 경험이 있던 블레이크 테일러는 생각 이상으로 번트를 잘 댔다.

게다가 번트에 대한 부담감이 적었다.

장타력이 좋은 타자가 아니다 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그래서 김석률 감독은 과감하게 스퀴즈 번트 사인을 냈고.

딱.

블레이크 테일러는 용병 타자라는 선입견을 깨고 과감하게 몸을 굽혔다.

“젠장할!”

설마하니 블레이크 테일러가 번트를 댈 줄 몰랐던 로메오 클레멘스는 앞으로 쏟아진 몸을 일으켜 다급히 타구를 쫓아갔다.

유강민은 박유성 때문에 3루 베이스에 붙어 있었으니 번트 타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회전을 먹은 타구는 로메오 클레멘스의 손안에서 빙글 돌더니 그대로 뒤로 빠졌고.

3루 주자는 물론이고 타자 주자까지 살려주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주자 올 세이프! 스타즈가 다시 한 점 달아납니다!

-대단하네요. 설마하니 외국인 타자에게 스퀴즈 사인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임상훈 해설위원은 방금 상황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제가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였다면 공 던지기 싫을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지금 박전권 감독이 의료진과 함께 마운드에 올라오는데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부상을 당한 걸까요?

-맨손으로 캐칭을 시도했으니까 체크 차원에서 나온 거 같은데 지금 중요한 건 손이 아니라 멘탈입니다. 박전권 감독이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의 멘탈을 잡아주지 못하면 오늘 경기를 뒤집기란 힘들 것 같습니다.

먼저 달려가 로메오 클레멘스의 손을 확인한 의료진은 투구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타구가 빠르거나 강했던 것도 아니고 회전이 많았던 것뿐이라 겉보기에는 이렇다 할 상처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로메오 클레멘스는 강습 타구에 공을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로메오. 괜찮아?”

박전권 감독이 통역을 통해 물었다. 그러자 로메오 클레멘스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무 문제 없어요. 더 던질 수 있습니다.”

지난해 31경기를 등판하면서 로메오 클레멘스는 단 한 번도 5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가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어떻게든 5이닝을 채웠고.

어지간하면 7회까지는 책임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박전권 감독의 눈에는 로메오 클레멘스가 불안하다 못해 위태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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