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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52화 (252/412)

타자 인생 3회차! 252화

31. 3번째 데뷔전(4)

1회 말 랜더스의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스프링 캠프 때부터 좋은 컨디션을 자랑했던 저스틴 스몰은 204㎝라는 큰 키를 적극 활용해 포심 패스트 볼을 찍어 던졌고.

“스트라이크 아웃!”

1번 타자 정의신과 2번 타자 박민재 모두 공은 건드려 보지도 못한 채 삼진으로 물러났다.

자신감에 찬 저스틴 스몰은 3번 타자 민병규를 상대로 초구에 몸쪽 하이 패스트 볼을 찔러 넣으며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민병규가 힘껏 방망이를 휘둘러 봤지만, 스윙보다 공이 먼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갔다.

하지만 민병규도 호락호락한 타자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 전날에 박유성에게 전해 들은 팁을 떠올린 민병규는 2구가 다시 한번 몸 쪽으로 날아들자 키킹 동작을 생략하고 빠르게 방망이를 휘둘렀고.

따악!

방망이 중심에 걸린 타구가 센터 쪽으로 높게 떠올랐다.

“젠장할!”

설마하니 이 공을 칠 줄 몰랐던 저스틴 스몰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박유성이 어느새 펜스 앞까지 달려가 타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썬은 언제 저기까지 간 거야?”

자신이 장타를 얻어맞을 거라 예상하고 수비 위치를 뒤로 물렸다고 생각한 저스틴 스몰이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펜스에 등을 기댄 채 서 있던 박유성이 있는 힘껏 뛰어올라 담장을 넘어가려던 타구를 건져내자 저스틴 스몰이 입을 쩍 벌렸다.

“미친! 지금 저걸 잡은 거야?”

한참 동안 멍하니 박유성을 바라보던 저스틴 스몰은 마운드의 뒤쪽으로 내려가 박유성을 기다렸다. 그러고는 박유성이 다가오기가 무섭게 주먹을 쥔 왼팔을 쭉 내밀었다.

“뭐야? 해보자는 거야?”

“고맙다고 인사하는 거잖아!”

“그럴 땐 손바닥을 내밀어. 넌 팔이 너무 길다고.”

“암튼 진짜 고마워 썬. 네 덕분에 살았어.”

메이저리그 외야수들조차 홈런이다 싶은 타구는 무리하지 않고 지켜보기 일쑤였다.

괜히 무리해서 펜스 플레이를 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자신만 손해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타구가 높이 솟구쳤을 때 마음을 비웠건만 박유성은 그 공을 끝까지 기다렸다가 처리했다.

만약 박유성도 그동안 숱하게 겪어온 다른 외야수들처럼 지레짐작으로 타구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박유성이 벌어준 한 점의 리드가 날아가는 건 물론이거니와 자신도 경기 초반처럼 자신감 있게 공을 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외야수가 뜬 공 처리하는 건 당연한 거야.”

박유성은 대단할 게 없다며 웃어넘겼지만, 저스틴 스몰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 슈퍼 루키가 외야에서 버티는 한 어지간한 타구는 다 잡아줄 것 같았다.

중계석에서도 박유성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나오고 있는데요. 여기서 박유성 선수가 높이 뛰어올라 담장 밖으로 넘어가려던 타구를 건져 올렸습니다.

-보면 볼수록 명장면이네요. 올해 스타즈 팬들은 박유성 선수의 호수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반대로 랜더스 팬들에게는 절망적인 장면일 겁니다. 저게 넘어갔으면 1 대 1 동점이 되면서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도 조금 편하게 피칭에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최소 2루타만 됐더라도 장타력을 갖춘 브라이언 코빈 선수까지 차례가 갔을 텐데 저걸 박유성 선수가 잡아냈습니다.

-만약에 저걸 그대로 놔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넘어갔습니다. 저건 박유성 선수가 진짜 잘 잡아낸 겁니다.

-아까 박재흥 해설위원은 박유성 선수가 일찌감치 펜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게 호수비로 이어졌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임상훈 해설위원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레전드 외야수인 박재흥 해설위원 앞에서 박유성 선수의 수비 능력을 평가하긴 어렵지만 투수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울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수비수들은 타구가 크다 싶으면 쫓아가지 않고 멍하니 지켜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펜스 상단을 맞고 나오는 타구에 허겁지겁 달려가고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타구를 쫓은 겁니다. 그대로 넘어가면 어쩔 수 없지만 단 1퍼센트라도 잡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거죠. 아마 모르긴 몰라도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는 박유성 선수를 등 뒤에 둔 저스틴 스몰 선수가 엄청 부러울 겁니다.

임상훈 해설위원의 말처럼 다시 마운드에 오른 로메오 클레멘스는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

저스틴 스몰은 수비 지원을 톡톡히 받는 반면 자신은 믿을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병규가 뜬금없이 외야로 전향하면서 랜더스 외야진은 대대적인 개편 작업에 들어갔다.

3년간 중견수로 뛰었던 메튜 앤더슨과 결별한 뒤 그 자리를 좌익수였던 정의신으로 채우고.

발목 부상으로 수비가 어려운 박민재를 대신해 지난해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했던 브라이언 코빈을 우익수 자리에 세웠다.

거기에 민병규가 좌익수 자리에 들어가면서 외야 수비력이 반감됐다.

전문가들조차 박민재를 1루로 돌리고 메튜 앤더슨과 재계약해야 했다고 지적했지만 조금 더 강한 타선을 구축하라는 구단주의 명을 받은 랜더스는 메이저리그에서 5년간 80개의 홈런을 때려낸 페트릭 도저를 데려와 1루를 채워 버렸다.

그나마 시범 경기 때는 외야 수비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모양새였지만 로메오 클레멘스는 외야수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낮게 던지려 노력했는데 완전한 컨디션이 아니다 보니 덩달아 투구수가 늘어나는 악영향을 초래했다.

-5구도 볼. 장태수 선수가 풀 카운트까지 승부를 끌고 옵니다.

-장태수 선수. 침착하게 공을 잘 보네요.

-저 선수, 박유성 선수와 같은 신성 고등학교 출신이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박유성 선수만큼 참을성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젠장할.”

이제 2회 초인데 40구째를 바라보게 된 로메오 클레멘스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선두타자인 이동엽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울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는데 장태수가 집요하게 공을 고르는 바람에 다시 흐름이 꼬여 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임기성은 바깥쪽 낮은 코스의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무슨 바보 같은 사인을 내는 거야? 저 녀석도 루키잖아! 그런 까다로운 공은 건드리지도 못한다고!”

풀 카운트가 되면 대다수 신인들은 바짝 몸이 굳는다.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가라앉는 공을 던져줘 봐야 의도대로 덤벼들 가능성이 낮았다.

그렇다고 한복판으로 과감하게 공을 찔러 넣을 수도 없어서 로메오 클레멘스는 바깥쪽으로 하이 패스트 볼을 던졌다.

공 5개가 전부 낮게 들어갔으니 높은 공에 적응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장태수는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따악!

방망이 끝에 걸린 타구가 3루수 유강민의 키를 넘어가자 로메오 클레멘스는 곧장 민병규 쪽을 바라봤다.

살짝 먹힌 타구이긴 했지만 민병규의 빠른 발이라면 어떻게든 처리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타구 판단이 늦었던 민병규는 바로 코앞에서 타구를 놓쳤다.

-좌익수 앞에 안타! 장태수 선수가 박유성 선수에 이어 프로 데뷔전에서 안타를 신고해 냅니다.

-이건 인내심의 승리라고밖에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장태수 선수가 정말 잘 때렸습니다.

-구단 관계자들 뭐 하나요? 이 공 챙겨야 합니다. 장태수 선수의 프로 첫 안타라고요.

-그런데 아까 박유성 선수의 홈런볼은 어떻게 됐을까요?

-관중석 앞쪽 펜스로 넘어갔으니까요. 아마 구단 관계자가 잘 챙겨놨을 겁니다.

아쉽게 포구에 실패한 민병규는 마운드를 향해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보냈다.

하지만 로메오 클레멘스는 민병규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당장 외야로 뛰어가 쌍욕을 퍼부어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민병규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 로메오 클레멘스의 속내를 읽은 김석률 감독은 배민철에게 번트를 지시했고.

딱.

번트 장인이라 불리는 배민철이 바깥쪽 슬라이더를 3루 쪽으로 예쁘게 굴리면서 1루 주자 장태수를 2루로 진루시켰다.

-이제 2사 2루 상황에서 9번 타자 최일준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지난 시즌 타율은 0.257. 8개의 홈런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에 뽑힐 만큼 수비 하나는 기가 막힌 선수인데요. 공격력이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번 시범 경기 때는 나쁘지 않은 타격감을 보여줬으니까요. 이번 타석도 기대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타석에 거의 서보지 못해서일까.

최일준은 일주일간의 휴식 이후 출전한 시범 경기에서 멀티 안타를 때려내며 녹슬지 않은 방망이를 과시했다.

비록 상대한 투수들 상당수가 신인급 선수들이긴 했지만 타격감만큼은 스타즈 타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김석률 감독이 1사 이후에 희생 번트를 주문한 것도 최일준을 믿었기 때문.

하지만 최일준의 상승세도 인간 천적의 벽을 넘지 못했다.

-헛스윙 삼진 아웃!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스스로 위기를 탈출합니다!

5구 승부까지 잘 끌고 왔지만 결과는 삼진.

매번 당하던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또다시 방망이가 딸려 나갔다.

“미치겠네 진짜.”

최일준이 한탄하듯 주절거렸다. 2-2에서 바깥쪽 체인지업이 들어올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지만 포심 패스트 볼과 다름없는 궤적에 몸이 먼저 반응해 버렸다.

그러자 박유성이 글러브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형. 괜찮아요. 다음번에 치면 되죠.”

“유성아. 차이 많이 났지?”

“많이는 아니고 공 2개 정도?”

“야 인마. 공 2개 정도면 엄청 차이 난 거잖아?”

“터무니없는 공을 친 건 아니었어요. 충분히 속을 만한 공이었고요.”

“후우……. 너는 안 속잖아?”

“저야 한 템포 먼저 걷어내니까요.”

“나도 다음부터 그래야 하나?”

“형은 형 스타일대로 쳐요. 프리 배팅 때는 잘 치잖아요?”

경기 전 타격 연습 때 박유성 다음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어 내는 건 다니엘 브리토였다.

그다음이 박준수.

그리고 그다음이 최일준이었다.

비록 장타력은 떨어지지만 최일준은 공의 중심을 정확하게 가격하는 타법을 구사했다.

기본적으로 선구안이 좋고 타격 시 밸런스와 중심 이동이 안정적이라 다른 타자들에 비해 정타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타석에만 들어서면 이상하리만치 그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는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하고.

볼카운트가 몰리면 공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이런 악습관을 고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현민이 형이 메이저리그 처음 갔을 때 고전했던 거 알죠?”

“어이구. 날 현민이하고 비교해 주는 거야? 영광인데?”

“암튼 현민이 형도 공을 오래 지켜보려다가 말렸거든요. 그래서 제가 초구부터 마음에 드는 공이 들어오면 과감히 때리라고 한마디 했어요. 그랬더니…….”

“3할 타율에 신인왕을 탔다는 거지?”

“저는 형이 타격이 약하다고 생각 안 해요. 아마 노림수로는 형 따라갈 사람이 없을걸요?”

“비행기 그만 태우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다음 타석 땐 초구부터 과감하게 휘두르세요. 형이 적극적으로 휘둘러야 투수가 겁을 먹어요. 그래야 볼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고요.”

“후우……. 매번 듣는 얘기인데 또 우리 박 코치님이 말씀하시니까 새겨들어야지. 오케이. 다음 타석 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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