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49화
31. 3번째 데뷔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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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를 사랑하시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김태룡입니다. 오늘은 2029 프로야구 개막전, 인천 랜더스와 서울 스타즈의 경기를 중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박재흥 해설위원과 임상훈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박재흥입니다.
-임상훈입니다아.
-저를 포함해 두 분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팬들이 정말 많았을 텐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미튜브 채널에 열심히 영상을 찍어 올렸습니다.
-구독자는 많이 늘었나요?
-시즌 중에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서요. 이제 조금씩 구독자가 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시즌이 시작됐는데 그럼 또다시 방치인가요?
-소소한 일상 영상이라도 올리라는 요구가 많아서요. 올해는 좀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박재흥 해설위원은 미튜브 키우기에 집중하셨다는데 임상훈 해설위원은 어떻습니까?
-저는 지난 겨울부터 올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박재흥 해설위원보다는 말투가 느리잖아요? 그래서 한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또 공부했습니다.
-임상훈 해설위원이 그렇게 말하면 제가 뭐가 됩니까.
-뭐가 되긴요. 빵형이 되는 거죠.
몇 년째 MBS에서 호흡을 맞춰와서일까.
박재흥과 임상훈은 주거니 받거니 오프닝을 채워 나갔다.
-이제 오늘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두 분이 생각하는 키 플레이어를 한 명씩 꼽아 주신다면요?
-아무래도 박유성 선수죠. 오늘이 공식 데뷔전이잖아요?
-박유성 선수 하면 대한민국 야구계를 이끌 슈퍼 루키라는 평가가 지배적인데요. 하는 것만 봐서는 벌써 몇 시즌 치르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려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이 프로 데뷔전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기대가 됩니다.
-임상훈 해설위원은 어떻습니까?
-저는 박유성 선수뿐만 아니라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도 기대가 됩니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는 지난 시즌 평균 자책점과 다승, 승률 1위를 차지하며 나눔 리그 MVP와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한 바 있는데요. 대회는 다르지만 MVP들 간의 맞대결이 성사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지난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로메오 클레멘스가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도발을 했거든요? 박유성 선수도 에이전시를 통해 맞대응을 했고요. 시간이 다소 지나긴 했습니다만 장외설전이 아니라 진짜로 맞붙게 됐으니까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박재홍 해설위원은 두 선수 간의 승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박유성 선수가 시원하게 안타를 때려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좋은 투수인 건 사실이지만 박유성 선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10할에 가까운 타격감을 선보였거든요. 그 상승세가 계속 유지될 거라고 봅니다.
-임상훈 해설위원은요?
-박재홍 해설위원이 박유성 선수를 응원하니까 저는 투수로서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잘한 건 사실이지만 대회가 끝나고 20일 가까이 경기를 뛰지 못했거든요. 까다로운 공을 던지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를 상대로 다소 고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두 해설위원의 의견이 갈리자 채팅창에서도 전쟁이 벌어졌다.
└진짜 임상훈은 야알못인가? 비빌 걸 비벼야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MVP한테 비빈다고?
└로메오 클레멘스가 누군가요? 크리스 반스보다 유명한가요?
└로메오 클레멘스 무시하다가 큰코다칩니다. 괜히 지난 시즌 MVP가 아니에요.
└로메오 클레멘스가 지난 시즌 MVP를 받은 이유? 박유성이 없었기 때문임.
└ㅋㅋㅋㅋ 인정 받고 인정이요!
└나도 박유성 좋아하지만 채팅창 분위기 뭐지? 무슨 광신도들인가?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첫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을 이끌었는데 빨아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적당히 빨아라. 응꼬 헐겠다.
└내버려 둬요. 저러다 땅볼 치면 채팅창 조용해질 겁니다. ㅋㅋ
채팅창이 불타오르는 동안 중계 화면으로 선발 라인업이 발표됐다.
-먼저 선공을 맡은 스타즈의 라인업입니다. 1번 타자 중견수 박유성. 2번 타자 2루수 블레이크 테일러. 3번 타자 1루수 박준수. 4번 타자 좌익수 다니엘 브리토. 5번 타자 3루수 장영호. 6번 타자 좌익수 이동엽. 7번 타자 지명 타자 장태수. 8번 타자 포수 배민철. 그리고 9번 타자로 유격수 최일준 선수가 나왔습니다.
-지난 해와 비교했을 때 라인업이 상당히 바뀌었는데요. 박유성 선수를 비롯해 이동엽 선수와 장태수 선수까지 신인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습니다.
-사실 이동엽 선수는 스타즈에서 장기적으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는데요. 장태수 선수는 의외입니다.
-캠프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습니다만 사실 개막전 선발로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요. 아무래도 시범 경기에서 3할을 친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맞서는 랜더스의 라인업입니다. 1루에 페트릭 도저. 2루에 김재균, 3루에 유강민, 유격수 자리에 김성범 선수가 나왔고 외야는 차례대로 민병규 선수와 정의신 선수, 브라이언 코빈 선수입니다. 포수는 임기성 선수. 그리고 투수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입니다.
중계 카메라가 마운드를 비추자 로메오 클레멘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연습구를 내던졌다.
퍼엉!
100퍼센트 전력을 다한 공은 아니었지만 포수 임성기의 미트 소리가 제법 요란하게 울렸다.
“와, 씨. 저걸 어떻게 치냐?”
더그아웃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태수가 혀를 내둘렀다.
지난 랜더스와의 마지막 시범 경기 때 2안타를 치긴 했지만 그 때 상대했던 투수는 로메오 클레멘스가 아니었다.
“그러게. 타석에서 보면 더 빠를 거 같은데?”
이동엽도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장태수가 시범 경기를 통해 반짝 주목을 받았다면 이동엽은 반대로 시범 경기에서 죽을 쒔다.
1할대 타율에 홈런은커녕 2루타 하나 때려내지 못해서 스타즈 팬들의 우려를 사는 중이었다.
그러자 옆쪽에 앉아 있던 최일준이 장태수와 이동엽에게 꿀밤을 한 방씩 먹였다.
“이 자식들아. 죽기살기로 각오하고 타석에 들어가도 칠까 말까인데 벌써 기가 죽어서 어떻게 하냐?”
“선배님. 로메오 클레멘스 약점이 뭐예요?”
“가르쳐 주세요.”
장태수와 이동엽이 이때다 싶어 최일준에게 매달렸지만 최일준이라고 해서 해줄 조언은 없었다.
자신도 작년에 로메오 클레멘스를 상대로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팀 내 최고참급으로서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서 박유성이 즐겨 쓰던 조언을 늘어놓았다.
“타석에 들어서면 말이야. 방망이 단단히 잡고 똥꼬에 힘 빡 주고 좋은 공 들어올 때까지 버텨!”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인데요?”
“참. 너도 신성고였지? 크흠. 암튼 로메오 클레멘스는 좌타자 상대로 몸쪽 승부를 잘 안 해. 주로 바깥쪽으로 카운트 잡고 몸쪽으로 유인구를 던지지. 전략 분석 자료 봤지?”
“그럼 몸쪽을 버려야 하나요?”
“짜식아. 그런 건 준수나 저기 유성이 같은 애들이나 하는 거고. 우린 몸쪽 바깥쪽 전부 다 대응해야지. 바깥쪽 노리고 있다 보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몸쪽으로 찌른다. 그나마 경호가 안 나와서 다행이긴 한데 기성이도 만만치 않아.”
국가 대표 포수인 박경호는 선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시범 경기 때 파울 타구에 무릎을 맞으면서 한동안 포수 출전이 어려운 상태였다.
박전권 감독은 경기 후반에 대타로 박경호를 투입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지만 수비까지 나설 가능성은 없었다.
백업 포수 임기성이 박경호 못지않게 잘하기 때문이었다.
2006년생인 임기성은 2025년 드래프트 때 2라운드에 랜더스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박경호가 랜더스의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찬 상태였고.
FA를 2년 앞둔 시점이라 박경호의 이적에 대비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지만 랜더스 구단은 박경호의 백업 포수 자원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실제로 임기성은 입대 직후 상무에 선발되어 군복무에 들어갔고.
랜더스 구단은 4년에 100억이라는 장기 계약으로 박경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하지만 임기성이 상무에서 돌아오면서 평화롭던 공존이 깨졌다.
임기성이 선배들을 전부 제치고 곧바로 박경호의 백업 포수 자리를 꿰차버렸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구단의 결정에 반대하는 팬들은 없었지만 문제는 출전 시간 분배였다.
랜더스 구단에서 박경호의 수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핑계로 임기성을 키우는 걸 타 구단 팬들조차 언급할 정도였다.
“시범 경기 때 겪어봐서 알겠지만 기성이는 과감하게 승부하는 스타일이야. 물론 로메오 클레멘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하겠지만 조금만 허점이 보이면 바로 찌르고 들어올 거라고. 그러니까 눈 크게 뜨고 공을 잘 봐야 해.”
어찌 보면 야구 정론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자신보다 한 수 위의 투수를 상대로 이기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장태수가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그냥 유성이가 초반부터 흔들었으면 좋겠어요.”
“야 인마. 아무리 동창이어도 그렇지 벌써부터 유성이한테 의존하면 어떻게 해?”
“유성이가 에이스 킬러거든요. 유성이한테 멘탈 털리고 나면 다 해볼 만했어요.”
장태수의 말에 이동엽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잠깐 호흡을 맞춘 게 전부이긴 하지만 박유성이 경기 초반 흐름을 가져오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미간을 찌푸리던 최일준도 슬그머니 타석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유성이가 하나 해주면 편하긴 할 텐데.’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최일준은 주로 경기 후반 대수비로 그라운드에 올랐다.
수비 능력만 놓고 봤을 때는 주전 유격수인 박찬희가 자신보다 조금 더 나았지만.
박유성이 초반부터 승기를 잡아 준 덕분에 백업 선수인 자신에게까지 기회가 찾아왔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와는 달리 팀의 주전 유격수이자 최선참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최일준은 가능하면 앞으로도 계속 편하게 야구를 하고 싶었다.
‘유성아. 하나 쳐 줘.’
타석에 들어선 박유성을 보며 최일준이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로메오 클레멘스의 손끝을 빠져나온 초구는 박유성이 치기에 너무 먼 곳으로 날아갔다.
-초구는 볼.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납니다.
-박유성 선수를 의식하고 공 하나를 뺀 것 같은데요. 너무 빠졌습니다.
-임상훈 해설위원은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일부러 더 뺐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요?
-박유성 선수도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에 대한 분석을 하고 나왔을 테니까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는 초구에 바깥쪽 빠른 공을 주로 던지잖아요? 박유성 선수가 그 공을 노리고 덤벼들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면 박유성 선수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 같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타격만 잘하는 게 아니라 공도 잘 봅니다. 공을 잘 보기 때문에 거의 매 타석에서 정타가 나오는 거죠.
두 해설위원이 입씨름을 하는 사이 로메오 클레멘스는 곧바로 2구를 준비했다. 그리고는 박유성에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공을 내던졌다.
후앗!
로메오 클레멘스의 손끝을 빠져나간 공이 한복판을 지나 바깥쪽으로 향했고.
퍼억!
그 공을 포수 임기성이 팔을 쭉 뻗어 잡아내면서 구심의 스트라이크 콜을 끌어냈다.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