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47화
30. 주가 폭등(6)
송광철 대표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김찬혁 팀장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지금 거품이 낀 거 같아?”
“솔직히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송 에이전시에 합류하면서 김찬혁 팀장은 주로 해외 채널을 전담했다.
스타즈 구단 통역사를 했을 만큼 영어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다 보니 송광철 대표가 미처 살피지 못하는 소소한 여론들까지 전부 찾아보고 있는데 박유성의 시장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박유성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온 송광철 대표는 박유성을 깎아내리고 싶어 안달인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만약에 말이야.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합류한 선수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유성이만큼 했어봐. 그럼 어땠을까?”
“아마 미국이 난리가 났겠죠.”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라며 엄청 추켜세웠겠지. 준비된 톱스타라면서 말이야.”
“아시아 출신 선수라 차별받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사실이니까. 내가 현민이 계약했을 때 여실히 느꼈잖아. 말로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계약 담당자들 태도부터 달라. 현민이 성적 얘기를 하면서도 일단 깔보고 들어가더라고.”
“아무래도 리그적인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따지면 현민이를 왜 데려가려고 했겠어? 국내 리그가 트리플 A 취급을 받고 있지만 국제 대회 성적 봐. 메이저리그 선수들 많다고 무조건 우승하면 푸에르토리코가 결승 올라갔겠지.”
“하긴. 그건 그렇죠.”
“내 말은 최고 레벨의 선수는 존중을 해줘야 한다는 거야.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현민이가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거 같으니까 오퍼를 넣은 거잖아. 그래놓고 아시아 선수라고 깔보면 안 되지. 안 그래?”
재작년에 있었던 메이저리그 구단들과의 협상을 떠올리며 송광철 대표가 울분을 토했다.
시즌 초 송현민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고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출신인 최상규와 손을 잡았을 때 미국 주요 언론들은 한국의 슈퍼스타가 메이저리그에 온다며 제법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송현민이 도루를 제외한 타격 부분에서 선두를 내달렸을 때는 홈 원정 할 것 없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득실거렸을 정도.
덕분에 송현민의 몸값도 수직 상승했다.
“시즌 초까지만 해도 연평균 1천만 달러 이야기가 나왔어. 솔직히 성에 차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1천만 달러를 넘겼다는 사실에 만족했지.”
“그러다 2천만 달러까지 올랐잖아요?”
“현민이가 용병들 다 제치고 타이틀 독식할 뻔했잖아? 언론들은 또 그런 걸 좋아하니까 자주 언급하고. 언급이 늘어날수록 관심이 커지면서 몸값이 불어나는 게 반복이었지. 그런데 그걸 가지고 거품이 꼈다고 하진 않잖아.”
“정확한 시장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
“포스팅 신청하고 나서 트윈스 구단에서 연락이 왔어. 기왕 좋게 보내줬으니까 가능하면 계약 조건이 좋은 구단과 계약해 달라고. 나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어. 그런데…… 이놈들이 말을 참 재미있게 하더라고.”
“뭐라고 했는데요?”
“한국에서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다고. 어차피 따로 계산기 두드려서 메이저리그에서 이만큼 할 거라고 예상하고 테이블에 앉은 거잖아? 그런데 거기서 또 후려칠 생각만 했다니까?”
송현민의 포스팅 입찰에 참가한 구단은 총 14개.
그중 연평균 2천만 달러 수준의 계약을 제안한 구단도 두 곳이나 됐다.
“처음에 파드리스에서 6년에 1억 2천만 달러 맞춰주겠다고 했을 때 일이 쉽게 풀리겠다 싶었어. 말년에 좀 고생하긴 했지만 김하선 선수가 워낙에 잘했잖아?”
“김하선 선수야 지금도 잘하던데요?”
“파드리스에도 하선 킴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을 테니까. 같은 내야수인 현민이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길 바라는 줄 알았는데 계약 조건이 엉터리더라고.”
“계약 후반에 연봉이 몰렸나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이건 뭐…… 거의 농락 수준이었어. 그래서 그냥 현민이 데리고 나와버렸지.”
파드리스에서 제안한 6년 계약은 6년 보장이 아니라 정확하게 3+3년 계약이었다.
첫 3년간은 연봉 1천만 달러에 마이너스 옵션이 최대 5백만 달러까지 걸려 있고.
이후 3년 계약은 500만 달러씩 연봉이 오르는 식인데 옵트 아웃 없이 구단에서 4년과 5년째 바이아웃 조항을 걸어놓았다.
“첫 3년에 3천만 달러에 후반 3년 6천만 달러면 3천만 달러가 비는데요?”
“두 번째 3년 계약 진행할 때 보너스가 1천만 달러고 6년 계약을 온전히 마치면 추가 보너스가 2천만 달러였어.”
“6년 차 계약은 진행할 생각이 없었던 거네요.”
“그렇지. 6년 차 계약 진행하면 현민이한테 5,500만 달러를 줘야 하니까. 우리로서도 3년 차 이후에 후반 계약을 포기하고 파드리스와 재계약을 하는 게 최선인데 결과적으로는 연평균 1천만 달러인 셈이잖아?”
“송현민 선수가 3년 내내 꾸준하게 잘해준다면 좋겠지만 3년 차 시즌에 부진하면 좋은 조건을 받기도 힘들 테고요.”
“나중에 너무 화가 나서 담당자한테 전화를 했어. 무슨 근거로 이딴 계약서를 내밀었냐고. 그러니까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잘한 한국 타자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지.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잘하는 미국 출신 타자는 몇이나 되냐고.”
“그러니까 뭐랍니까?”
“아예 답장도 없던데?”
한 시즌이 162경기를 소화하는 메이저리그에서 부침 없이 꾸준한 성적을 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양키즈의 마크 스테리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로 꼽히는 이유도 그 어렵다던 꾸준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MVP를 받은 선수가 다음 해 부진에 빠지고 사이영상을 받은 투수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는 게 메이저리그였다.
만약에 모든 선수들이 부침 없이 제 기량대로 활약했다면 해외 리그의 에이스급 선수들에게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파드리스 다음은 어디였습니까?”
“오리올스.”
“느낌이 싸한데요?”
“오리올스 조건도 비슷했어. 말은 5년에 1억 달러인데 옵트아웃은 없고 구단은 2년 차부터 바이아웃이 가능해. 첫 시즌 연봉은 심지어 5백만 달러고.”
“그럼 5년 계약 완수 시 2,500만 달러 보너스인가요?”
“3년 계약 후 500만 달러에 5년 계약 후 2천만 달러인가 그랬는데 말장난이지 뭐.”
야구에서 바이아웃 조항은 팀 옵션이었다.
구단에서 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으로 따로 정해진 바이아웃 금액만 지급하면 계약과 상관없이 선수를 팀에서 내보낼 수 있었다.
파드리스가 계약에 장난을 심하게 쳤다면 오리올스는 철저하게 손해 보지 않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럴 거면 포스팅은 왜 신청한 거랍니까?”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니까 구색만 맞춘 거지. 현민이가 그래도 재작년 FA 랭킹 10위권이었잖아.”
매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메이저리그 언론들은 송현민을 2027년 FA 선수 톱 10으로 분류했다.
우투좌타 내야수라는 이점에 정교한 타격과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장타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게다가 운 좋게 2루수 매물이 씨가 말라서 송현민을 원하는 구단들이 제법 많았다.
“파드리스에 오리올스까지 상대하고 나니까 진짜 진이 다 빠지더라. 그런데 현민이 녀석은 1억 달러에만 꽂혀 있으니 원…….”
“국내 언론에서도 총액 1억 달러는 충분하다고 떠들어댔으니까요. 송현민 선수 입장에서도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싶었겠죠.”
“암튼 그때 처음으로 대판 싸웠어. 현민이 놈은 자기가 잘하면 된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나? 지난 시즌 봐. 레인저스에서 주전 자리 보장해 줬는데도 시즌 초반에 삽질했잖아. 난 그때 자청해서 마이너리그 내려가야 하나 고민했다니까?”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니엘도 스타즈하고 장기 계약하기 전에 그랬어요. 메이저리그하고 일본에서 터무니없는 계약 조건을 제안하는데 자기가 잘하면 되지 않겠냐고요. 자신 있다면서요. 사실 그건 구단에서 선수를 믿지 못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렇지. 우리나라도 애매한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계약하잖아. 언제든 방출할 수 있도록 말이야. 하지만 선수들은 그걸 이해 못 하더라고.”
송현민을 어렵게 설득한 송광철 대표는 눈높이를 낮춰 계약 총액보다 송현민의 가치를 인정하고 송현민을 존중해 줄 구단과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총액 1억 달러와 연평균 2천만 달러를 포기하고 나니까 선택지가 늘어나더라고. 다저스에 메츠, 레인저스, 애인젤스. 그중에서 주전 자리를 보장해 준 게 레인저스였어.”
“금액은요?”
“금액은 애인젤스가 제일 높았지. 연평균 1,800만 달러. 그런데 마이너스 옵션이 좀 많았어. 2년 차까지는 마이너리그 거부권도 못 주겠다고 하고.”
“다저스는 어땠나요?”
“다저스는 보장 금액이 가장 적었어. 대신 옵션이 많아서 열심히 하면 더 받아가는 구조였지만 현민이가 싫어했어. 헐값에 가는 기분이라고.”
“그래서 레인저스였군요.”
“레인저스는 앞서 추신우 선수도 뛰었으니까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하고 유명하지만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잖아?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덜할 거라고 생각했어. 다행히 2루 자리도 비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결정이 주효했네요.”
“솔직히 유성이 조언이 컸지. 현민이 녀석은 유성이 아니었더라도 후반기에 반등했을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한창 삽질할 땐 내 조언조차 안 먹혔어.”
결국 송현민은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보냈다.
덕분에 올해 메이저리그 주요 언론들은 레인저스에서 주목해야 할 선수로 송현민의 이름을 빼먹지 않았다.
“사실 현민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김 팀장 말이 맞을지도 몰라. 막상 협상을 진행하면 구단들은 깎으려고 안달이거든. 그런데 말이야. 난 유성이는 급이 다르다고 생각해.”
“급이 다르다고요?”
“솔직히 현민이 같은 스타일의 타자는 많아. 3할 정도의 타격과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좌타자라면 구단마다 두 명씩은 있을걸?”
“두 명씩은 좀 많지 않나요?”
“그럼 한 명 이상이라고 하자고. 하지만 유성이 같은 타자는 누가 있어?”
“박유성 선수 같은 타자는…… 솔직히 말해서 없죠.”
“그래. 없어. 수비는 메이저리그 톱클래스 선수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데 발도 빠르고 주루 플레이는 예술적으로 해.”
“거기에 메이저리그 간판급 투수들을 상대로 안타를 몰아칠 만큼 타격 센스도 좋고요.”
“지금이야 경험이 어쩌고 체력이 어쩌고 체격이 어쩌고 하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문제고 유성이가 극복해야 하는 건 단 하나뿐이야.”
“장타력이요?”
“아무래도 똑딱이 이미지로 가면 몸값이 확 떨어지니까. 지금 몸값에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홈런을 때려낸 데이터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해. 물론 그걸 거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피지컬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박유성 선수의 장점이 퇴색되지 않을까요?”
“물론 몸이 커지면 주력이 떨어지긴 하겠지. 하지만 난 장타력은 정확도 높은 타격으로도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홈런 타자들이 안타 세 개 중에 한 개를 담장 밖으로 넘길 때 유성이는 네 개 중에 하나만 넘기면 되는 거야. 대신 안타는 더 치고. 물양 앞에 장사 없다고 지금처럼 때려내다 보면 홈런은 자연스럽게 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