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46화
30. 주가 폭등(5)
“흠…….”
“생각해 보세요. 레드삭스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만났는데 크리스 반스가 선발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선발 로테이션이 엇갈려서 토니 블레어를 내세웠고요.”
“아무리 비유라지만 우리가 너무 불리하잖아.”
토니 블레어는 올 시즌 레인저스 3선발로 예정된 좌완 투수였다.
25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불펜을 거쳐 27년과 28년, 2년 연속 10승을 거두며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꿰찼지만 제구가 불안하고 기복이 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투수라는 크리스 반스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
“하지만 만약에 썬이 1번 타자라면 어떨까요? 한국의 선발 투수였던 임과 토니가 비슷한 수준이라고 감안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존 다니엘 사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카를 메켄 보좌역의 말대로 상상을 해보았다.
모든 레인저스 팬들이 염원하는 월드 시리즈에 가기 위해서는 일단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우승해야 한다.
현재 레인저스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상대는 크리스 반스가 버티고 있는 레드삭스였다.
제임스 모이아, 마츠다 유이토를 앞세운 양키즈나 게릿 벌렌더가 활약 중인 애스트로스와는 그럭저럭해볼 만하지만, 레드삭스를 상대로는 승률 자체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레드삭스가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가장 큰 이유는 크리스 반스라는 강력한 에이스의 존재 때문이었다.
좌완투수라는 이점을 앞세워 상대 팀의 간판 좌타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데다가 포스트 시즌만 되면 더 미쳐 날뛰다 보니 크리스 반스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레드삭스는 타선도 강했다.
레인저스의 타선도 아메리칸 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만 그보다 강한 게 레드삭스 타선이었다.
크리스 반스를 비롯해 수준급 선발들을 보유한 레드삭스를 상대로 점수를 내지 못하고 반대로 레드삭스 타자들에게 선발들이 털리면 이기지 못하는 건 당연한 노릇.
카를 메켄 보좌역은 7전 4선승제로 치러지는 챔피언십 시리즈를 예로 들었지만.
5전 3선승제로 치러지는 디비전 시리즈나 3전 2선승제의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레드삭스와 붙게 되면 그야말로 답이 없었다.
3승을 먼저 거두면 끝나는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크리스 반스를 2번 만나야 하고.
첫 승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에이스 카드를 내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크리스 반스의 천적인 박유성을 영입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포스트 시즌 성적이 달라질 것이다.
“자이언츠가 우승으로 받은 상금이 얼마지?”
“1억 3천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 선수들에게 5,500만 달러를 지급했고요.”
지난 2027년 체결된 노사협약에 따라 포스트 시즌 수익 분배 방식이 변경됐다.
시리즈마다 차등을 뒀던 배당률을 시리즈 불문 60퍼센트로 고정했고.
와일드카드 시리즈 진출팀들의 배당률이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에 따라 배당률도 소폭 조정됐다.
월드시리즈 우승팀 배당률은 기존 36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준우승팀은 기존 24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월드 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두 팀은 기존 12퍼센트에서 11퍼센트로.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네 팀은 기존 3.25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인상됐으며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나머지 네 팀은 1.5퍼센트를 정산받게 됐다.
구단이 받는 수익 중에 선수단의 몫은 40퍼센트.
포스트 시즌 진출팀을 14개 팀으로 늘리는 논의는 포스트 시즌 선수단 수익 배분 비율 상향 요구와 맞물리며 다음 노사협약으로 넘어갔다.
지난해 레드삭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자이언츠는 천문학적인 가욋돈을 손에 쥐었다.
반면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레인저스는 TV를 통해 가을 잔치를 지켜봐야 했다.
“우리가 와일드카드 시리즈에 나갔다면 얼마를 받았을까?”
“600만 달러 정도입니다.”
포스트시즌 배당금의 35퍼센트를 받는 월드시리즈 우승팀과 1.5퍼센트를 받는 와일드카드 시리즈 진출팀의 수익 차이는 컸다.
하지만 카를 메켄 보좌역은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박유성이 있다면 와일드카드 시리즈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지난 시즌 기준으로 디비전시리즈만 나가도 1,400만 달러입니다.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라가면 4,400만 달러고요.”
“4,400만 달러의 추가 수익이라면…….”
“썬을 잡는 게 이득입니다. 단기전에서 썬만큼 미친 활약을 선보인 선수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흠…….”
존 다니엘 사장이 길게 신음했다.
솔직히 박유성이 메이저리그에 와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만큼 잘해준다는 보장이 없지만.
0.300의 시즌 타율에 포스트 시즌에서 활약해 준다면 투자할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챔피언십 시리즈만 올라가도 티켓 판매가 달라지겠지.”
“티켓 가격을 올려도 팬들은 군말 없이 구매해 줄 겁니다. 부대 수익도 그만큼 늘어날 테고요.”
“그런데 우리가 썬을 잡을 수 있을까?”
존 다니엘 사장이 카를 메켄 보좌역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박유성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막상 박유성의 진가를 깨닫고 나니까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를 메켄 보좌역은 걱정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엇비슷한 금액이면 레인저스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일단 레인저스에는 쏭이 있습니다. 썬은 지난 LA 올림픽과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쏭과 같은 방을 썼습니다. 쏭이 어려서부터 썬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후원하기도 했고요.”
“두 사람 사이가 각별한 거야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다른 한국인 선수들도 있잖아?”
“썬이 메이저리그로 넘어올 때 쯤이면 키와 캄은 한국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잔류하더라도 주전급으로 뛰긴 어렵겠죠. 게다가 같은 외야 자원인 만큼 선배들과 경쟁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오리올스나 인디언스를 택하진 않을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아시아의 문화는 우리와 다릅니다. 만약에 썬 때문에 키와 캄의 입지가 흔들린다면 한국의 야구팬들은 썬을 못마땅하게 여길 겁니다. 그리고 설사 썬이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오리올스나 인디언스에게 돈 싸움에서 질 수는 없지.”
레인저스는 아직까지 월드 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6개 팀들 중 하나다.
하지만 선수 연봉 규모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에 상위권이었다.
최근 들어 연봉 대비 실력이 떨어지는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면서 연봉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은 메이저리그 톱5에 꼽혔다.
반면 인디언스는 메이저리그 중간 정도.
빅마켓 구단을 중심으로 박유성 쟁탈전이 치열해질 경우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빅마켓들과의 경쟁도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일단 텍사스는 세금 부담이 적으니까요.”
천연자원이 풍부한 텍사스 주는 주세가 없는 9개의 주 중 하나이다.
메이저리그 고액 연봉자의 경우 40퍼센트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하는데 여기에 추가로 주에서 세금을 물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실수령액이 달라진다.
1천만 달러를 기준으로 했을 때 레인저스 소속 선수가 내는 세금은 4백만 달러 정도.
반면 뉴욕 양키즈 선수는 그보다 10퍼센트가 많은 5백만 달러 정도를 세금으로 떼야 한다.
월드 시리즈 우승이 가능한 전력과 자본, 시장을 갖춘 구단 중에 레인저스의 세금이 가장 낮았다.
돈과 명예를 원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특성상 박유성도 세금의 압박 앞에서 자유롭진 못할 것 같았다.
“좋아. 한번 썬을 데려와 보자고.”
판단이 선 존 다니엘 사장은 카를 메켄 보좌역에게 박유성의 동향 보고를 지시했다.
다른 구단들과의 경쟁에서 한발 앞선 만큼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 같았다.
하지만 경쟁 구단들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썬을 데려오기 위한 전담팀을 꾸려.”
“전담팀이나요?”
“썬이 레드삭스에 간다고 생각해 봐.”
“무조건 꾸려야겠네요.”
레인저스만큼이나 크리스 반스 때문에 골치가 아픈 양키즈를 시작으로 레드삭스와 다저스, 자이언츠, 메츠 등 빅마켓 구단들도 일찌감치 박유성의 영입을 준비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송광철 대표는 치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김 팀장.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잘한 선택이 뭔 줄 알아?”
“박유성 선수와 계약한 거요?”
“아니야. 틀렸어.”
“그럼요?”
“현민이 녀석이 에이전트 해달라고 했을 때 거절 안 한 거. 만약에 그때 귀찮아서 싫다고 했어 봐.”
“그랬다면 저하고 같이 일할 일도 없었겠죠. 그런데 그때 귀찮으셨어요?”
“솔직히 말해서 엄청 귀찮았지. 좀 얄밉기도 했고.”
“얄미워요?”
“현민이 녀석 트윈스 입단시키고 나서 베어스 그만뒀잖아. 그랬으면 미안해서라도 이틀에 한 번씩은 안부 전화를 해야 하는데 현민이 이놈은 제가 잘나서 계약한 줄 알더라고.”
“그 나이 때는 다 그렇죠 뭐.”
“암튼 이제 머리가 굵어져서 내 잔소리는 듣기 싫은가 보다 했어. 최상규인지 뭔지 하는 사기꾼하고 계약할 때도 내가 좀 더 알아보라고 말했거든? 그런데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갑자기 얘기가 이상해지는데요?”
“조금 더 들어. 암튼 그래서 현민이 녀석이 찾아왔을 때 조금 귀찮은 마음이었는데 그 녀석, 내가 방망이 쥐여줬거든. 날 보고 야구 선수 꿈을 키웠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큰맘 먹고 허락했어. 그리고 미국 가서 엄청 고생했지.”
“송현민 선수한테는 영어 잘하신다고 하셨다면서요?”
“그래도 용병들하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으니까 그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지.”
“가끔 대표님 볼 때마다 자신감이 넘치시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불만이야?”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을 본받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찬혁 팀장이 씩 웃었다. 자신 또한 통역사로 일하다가 다니엘 브리토의 에이전트가 된 처지라 송광철 대표를 탓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미국 가서 고생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현민이 녀석이 유성이를 물어다 줄 줄은 몰랐어.”
“박유성 선수가 이렇게까지 잘할 줄도 모르셨을 테고요.”
“아니. 잘할 줄 알았어.”
“정말요?”
“내가 말했잖아. 제 잘난 맛에 사는 현민이 녀석이 자기보다 낫다고 한 유일한 선수였다고.”
“그런데 송현민 선수가 정말 다른 선수 칭찬 한 번도 안 했나요?”
“가끔 선배들한테 입에 발린 소리 하는 것 빼곤 없었지. 그만큼 야구를 잘했잖아?”
“그렇죠. 박유성 선수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야구계의 희망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현민이 녀석이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했어. 뒤를 받쳐줄 후배들이 없다고 말이야.”
“박준수 선수하고 민병규 선수가 들으면 엄청 서운해하겠는데요?”
“솔직히 둘 다 송현민 마이너 버전이잖아. 준수는 힘은 좋은데 맞히는 재능이 떨어지고. 반대로 병규는 잘 맞히지만 힘이 아쉽고. 김하선과 기정후, 감백호가 은퇴하고 나면 결국 현민이 혼자 다 짊어져야 했는데 때마침 유성이가 등장한 거지.”
송광철 대표는 박유성을 처음 봤던 그 날을 똑똑히 기억했다.
호리호리하다 못해 왜소한 느낌이라 처음에는 헛고생했다 싶었지만.
타격과 수비, 주루 모든 면에서 수준이 다른 플레이를 선보이는 걸 보면서 송현민 이상의 재목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고작 1년여 만에 박유성은 송광철 대표의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2,500만 달러라는데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쯤이면 얼마나 올라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