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45화
30. 주가 폭등(4)
메이저리그 시즌 개막에 맞춰 ESPM의 스포츠 방송, <월드 베이스볼>에서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전력과 주요 선수들의 예상 성적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에 한 지구씩 6일간 분석을 끝내고.
마지막 날에는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상당수의 야구팬들이 박유성의 시즌 성적 예상을 요청했다.
“캐빈.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이거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데요?”
“어려운 얘기는 아닐 겁니다. 캐빈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야구 분석 전문가잖아요?”
“잠깐만요. 또 뭐죠? 대본에 없는 얘기를 하려는 거죠?”
“매번 대본대로 가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썬 말이에요.”
“아, 썬이요?”
“썬의 예상 성적, 나왔나요?”
<월드 베이스볼>만 10년 넘게 진행해 온 아나운서 애니 카브너가 능청을 떨자 캐빈 필립스가 씩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왠지 이 질문을 할 것 같아서 따로 분석을 해봤습니다.”
“이거 내부 회의 결과가 유출된 건가요?”
“그럴 리가요. 월드 베이스볼 회의실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잖아요?”
“내부에 스파이가 있는 게 확실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딱 맞춰 준비를 할 수가 있죠?”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궁금했습니다. 과연 썬이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면 얼마나 잘할까 하고요.”
“그래서 결과는요?”
“일단 제 예상은 0.330에 20홈런, 50타점과 70득점, 그리고 40도루 정도였습니다.”
“와우, 그 정도면 신인왕은 확정인데요?”
“네. 지난 며칠간 눈여겨볼 신인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그 선수들보다 썬의 성적이 월등히 좋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여러 가지 마이너스적인 요소들이 더해진 결괏값이라 실제 결과는 더 좋을지도 모르고요.”
“마이너스적인 요소들이요?”
“첫째는 체력입니다. 메이저리그는 162경기를 소화해야 하는데 썬은 체격이 크지 않습니다.”
“확실히 TV로 봤을 때는 좀 호리호리한 느낌이죠.”
“TV로 봤을 때 그런 느낌이 들면 실제로는 더 말랐다는 의미입니다. 마크 스테리 선수가 엄청난 거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짝 포근한 이미지인 것처럼요.”
“캐빈의 개인 취향은 잘 알겠고요. 다른 마이너스적인 요소는 뭐가 있죠?”
“나머지도 다 연관적인 겁니다. 체력적인 부분이 약하면 아무래도 꾸준하게 성적을 내기 어렵습니다. 경험이 부족할 테니 슬럼프에 빠져도 오래 갈 테고요. 또 부상을 당할 가능성도 크겠죠.”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에서 뛰어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썬의 재능은 그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뛰어넘습니다.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의 성적을 보세요. 아쉽게 10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지만 100퍼센트 출루를 성공시켰습니다. 짧은 토너먼트였다고 하더라도 단기전에서 이토록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선수는 오직 썬뿐입니다.”
“그럼 시뮬레이션 결과 썬은 162경기 중에 몇 경기나 출전하는 건가요?”
“대략 100경기에서 110경기 사이입니다. 그래서 타점과 득점, 도루 기대치가 작습니다. 만약에 162경기를 전부 뛴다면 그 비율만큼 기대치는 늘어나겠죠.”
“타율도 타율이지만 100경기에 20홈런이면 엄청난 거 아니에요?”
“썬은 임팩트 있는 스윙으로 타구를 넘길 줄 아는 타자입니다. 5경기 중에 한 개꼴로 홈런을 때려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캐빈 필립스의 예상을 접한 메이저리그 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6일 동안 언급했던 메이저리그 주요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박유성의 기대치가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캐빈의 분석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거지? @Crocop85
└메이저리그에 분석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많아. 캐빈은 그 사람들 중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야. @Whiteheart77
└내가 보기에는 엉터리 같은데? @Cleon299
└그건 네가 좋아하는 선수를 낮게 평가해서 그런 거겠지. 지난해 양대 리그 사이영상의 성적을 근사치로 맞힌 건 캐빈 필립스뿐이라고. @go Dodgers
└솔직히 캐빈은 투수 쪽 분석에 강해. 타자 쪽은 잘 맞히는지 모르겠어. @zzul0845
└그렇다고 캐빈의 타자 분석이 형편없다고 말하긴 어려워. 적중률이 전체 분석가들 중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히니까. @Bleacher7
└올 시즌 마크 스테리의 예상 타율이 0.320이야. 그런데 썬이 0.330을 친다는 게 말이 돼? @D_norato
└심지어 썬의 성적은 거의 최소치라고. 부상 없이 건강히 뛰면 0.330보다 더 높을 거라는 얘기야. @Raul R.
└나는 분석가로서 캐빈의 의견을 존중해. 하지만 고작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성적만 가지고 썬을 과대평가하는 건 잘못됐다고 봐. @Nickxx
└캐빈은 빅마켓 구단들의 사주를 받은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예상 성적이 나올 리 없다고! @peter_JM
논란이 커지자 캐빈 필립스는 SNS를 통해 분석에 활용된 데이터가 적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많은 야구 팬들의 요구대로 박유성의 예상 성적을 낮추지는 않았다.
“제가 하는 일은 분석입니다. 제가 만든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대입해 나온 수치를 가지고 선수들을 평가하죠. 썬의 예상 성적을 낮추라는 건 제가 만든 프로그램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제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믿습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말을 번복할 만큼 엉터리는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개막이 가까워지면서 캐빈 필립스에 대한 논란도 수그러들었지만 그가 남긴 기대치는 박유성에 대한 시장 가치로 이어졌다.
“얼마라고?”
“4년 기준 1억 달러입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
“그것도 경쟁 전의 가치입니다. 4년 후 경쟁이 붙으면 그보다 훨씬 더 올라갈 겁니다.”
“허, 어이가 없군.”
레인저스 존 다니엘 사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통해 박유성의 몸값이 크게 올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4년에 1억 달러라니.
이건 올라도 너무 올랐다.
“도대체 누가 그런 터무니 없는 금액을 매긴 거야?”
“대다수 언론에서 비슷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근거로? 그저 캐빈 필립스의 말장난에 넘어간 거잖아!”
존 다니엘 사장은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떠들어대는 이들을 싫어했다.
야구는 과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알아듣지 못할 복잡한 수식을 가지고 와서는 정교한 분석이랍시고 지껄이는 사기꾼들 때문에 시장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여겼다.
메이저리그 분석가들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캐빈 필립스라고 해도 다를 건 없었다.
양대 리그 사이영상의 성적을 근사치로 맞혔다며 언론의 칭송을 받고 있다지만 실질적인 적중률은 채 10퍼센트도 미치지 못했으니 조금 잘난 사기꾼에 불과했다.
그러자 카를 메켄 보좌역이 달래듯 말했다.
“케빈 한 사람의 분석이 아닙니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메이저리그 분석가들 상당수가 엇비슷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카를, 자네도 프로에 데뷔조차 하지 못한 썬이 메이저리그에 온다면 타격왕 경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솔직히 한 시즌을 온전하게 뛸 수 있을지조차 장담하기 어렵겠죠. 하지만 썬의 재능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썬의 재능을 누가 몰라? 몸값이 터무니없으니까 하는 말이잖아!”
지난해 레인저스는 송현민과 총액 6천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4년.
연평균 1,500만 달러를 지출했을 때 메이저리그 주요 언론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김하선과 기정후, 감백호의 계약 규모와 비교했을 때 과잉지출을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송현민이 시즌 초반 부진했을 때는 레인저스의 역대 먹튀 리스트까지 들먹이며 존 다니엘 사장을 조롱했다.
다행히 시즌 중반부터 상승세를 탄 송현민이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수상하면서 언론의 평가가 뒤집혔지만
여전히 일부 언론은 1,500만 달러의 지출은 조금 과했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그런 송현민에 비춰봤을 때 박유성의 적정 몸값은 1천만 달러 정도.
프로에서 한 시즌도 치르지 못한 루키라는 점을 감안한 금액이었다.
솔직히 1천만 달러라는 시작점도 절대 적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박유성이 메이저리그로 넘어온다면 아마추어 신분이 되는데 드래프트와 해외 아마추어 계약을 통틀어도 1천만 달러를 넘는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예상하는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진출 시기는 4년 후.
4년간 송현민과 엇비슷한 성적을 쌓는다고 가정하면 예상 몸값은 1,500만 달러에서 1,800만 달러 사이.
추가로 경쟁이 붙을 경우까지 고려한 몸값 상한선이 2,500만 달러 정도였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2,500만 달러를 운운하고 있었다.
“썬이 한국에서 얼마나 잘할 것 같아?”
“한국 언론의 예상은 MVP급입니다.”
“MVP?”
“타격과 최다안타, 득점, 출루율, 장타율, 도루는 상대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장타율과 타점도 순위 경쟁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고요.”
“뭐가 그렇게 후한 거야?”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보여준 게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MVP를 탄 키와 쏭도 아마추어 시절에 썬만큼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며 존 다니엘 사장은 머릿속 계산기를 다시 두드렸다.
언론에서 떠드는 대로 2,500만 달러를 기준으로 잡고 4년 후를 계산했을 경우 최소 몸값은 3천만 달러 이상.
여기에 경쟁이 붙을 경우 4천만 달러까지 금액이 올라갈지 몰랐다.
“터무니없군. 터무니없어.”
존 다니엘 사장이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현재 레인저스 마운드를 이끌고 있는 에이스, 홀리오 바르테스의 계약 조건은 4년에 5,600만 달러.
팬들에게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을 받는 2선발 조 플레밍도 6년간 8,5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에 사인했다.
지난해 FA로 영입한 4번 타자 하비에르 벨트란(6년 1억 4천만 달러)을 제외하고 1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한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거품이 잔뜩 낀 박유성을 데려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썬을 데려온다고 우리가 우승할 수 있을까?”
존 다니엘 사장이 카를 메켄 보좌역을 보며 주절거렸다.
언론에 놀아나는 현실에 대한 푸념에 더해 박유성에게 그만한 돈을 지출할 가치는 없을 거라는 데 동의를 구하고 싶었는데 정작 카를 메켄 보좌역은 입을 다물었다.
“뭐야? 썬이 오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보는 거야?”
“그냥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무슨 생각?”
“썬이 1번 타자로 출루를 하고 그 뒤에 쏭과 하비에르 벨트란을 붙여서 경기 초반에 점수를 뽑아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건 한국의 득점 루트잖아?”
“만약에 쏭의 뒤에 하비에르 벨트란 같은 타자가 있었다면 한국 대표팀의 공격력은 더 강해졌을 겁니다. 결승전에서도 보다 쉽게 승리했겠죠.”
“그러니까…… 썬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저 1번 타순에서 뛰어줄 타자라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LA 올림픽 결승전과 월드 베이스볼 결승전 때처럼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톱타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