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44화 (244/412)

타자 인생 3회차! 244화

30. 주가 폭등(3)

2

TV 오선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야구 관련 토크를 진행하는 <심야 대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세 명의 야구선수 출신 기자들이 고정으로 출연하는데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야구 관련 채널들과 차별화를 위해 독한 멘트를 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직전, 프로 야구 12개 구단 전력 점검이라는 주제로 4주간 토크가 진행됐는데 LA 올림픽의 영웅이라 불리는 박유성에 대해서도 예외 없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박유성 선수는 얼마나 잘할까요?”

“저는 일단 3할은 무조건 칠 거로 생각합니다.”

“3할은 기본으로 치겠죠. 박유성인데.”

“저는 그런 접근법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한 시즌에 150경기예요. 체력 관리를 해줘야 하니까 전 경기 출전은 어렵겠지만 단기전을 치르는 것과 다릅니다.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매일 경기를 치러야 하고 조금 아프더라도 참고 경기를 뛰어야 해요. 박유성 선수는 아직 그런 경험이 부족합니다.”

강일준 기자가 특유의 냉소적인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황용기 기자가 냉큼 맞장구를 쳤다.

“박유성 선수가 지난 올림픽에서 보여준 실력은 최고였습니다. 그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올림픽 때는 별다른 견제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들 박유성 선수를 아마추어 선수로만 생각하고 접근했을 겁니다. 그래서 정타를 많이 허용했던 거고요.”

“사실 승부를 어렵게 끌고 가면 쉽지 않은 거잖아요?”

“그렇죠. 투수가 안 맞겠다고 작심하고 버티면 타자도 타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올림픽 때처럼 투수들이 정면 승부를 걸어주면 좋겠지만 글쎄요. 박유성 선수의 재능을 알고 있는데 그럴 투수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그래도 3할은 충분히 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세 분께서 각자 예상 성적을 말씀해 주시죠. 타율과 홈런, 도루까지 해서요.”

“일단 저는 3할 초반에 10홈런, 30도루 정도 예상합니다.”

콘셉트에 따라 강일준 기자는 가장 낮은 성적을 예상했고.

“저는 3할 3푼 정도에 15홈런, 50도루 하겠습니다.”

유일하게 박유성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던 성일호 기자가 가장 높은 성적을.

“저는 딱 중간이네요. 3할 2푼에 12홈런, 40도루 정도 생각했습니다.”

박쥐라는 별명이 붙은 황용기 기자가 절묘하게 중간 성적을 찍었다.

당연하게도 방송 직후 베이스볼 파크를 비롯해 대다수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들의 주장은 콩이 되게 까였다.

└강일준 뭐 되냐? 뭐 있어?

└있긴 뭐가 있음? 1군에서 3시즌도 못 버티고 방출되고 나서 야구 기자 됐는데.

└진짜 야구 기자들도 자격 검증이 필요하다니까? 박유성 시즌 성적이 3할? 진짜 젓가락을 쥐여줘도 3할은 치겠다.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젓가락이라뇨. 이쑤시개로도 3할은 칩니다.

└이쑤시개는 잘 부러지니까 바늘로 하죠. 그래도 3할은 칠 듯.

└시청률 때문에 어그로 끌어야 한다지만 건드려도 되는 선수가 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수가 있지 박유성을 건드려? 미친 거 아님?

└아니 박유성은 뭐 성역인가요? 못하면 깔 수도 있죠.

└그러니까 못했을 때 까라고요. 잘하고 있는 선수 기를 왜 죽입니까?

└원래 박유성 까들 특징이 못할 거라고 단정 짓고 일단 까기 시작함. 그러다 진짜 삐끗하면 그것 보라며 더 지랄할 거임.

└인디언 기우제도 아니고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신인한테 3할 타율이면 후하게 쳐준 거 아닌가요?

└야알못들은 헛소리 그만하고 자라. 올림픽 MVP는 고스톱 쳐서 딴 줄 아나.

박유성의 팬들이 <심야 대토론> 홈페이지에 찾아가 강력히 항의했지만 강일준 기자와 황용기 기자, 성일호 기자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박유성이 팬 많네.”

“그러게. 이러다 제2의 송현민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이미 인지도는 송현민 뛰어넘었지.”

“그래도 생긴 건 송현민이 더 낫지 않아?”

“송현민은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이 좋았잖아.”

“송현민 신인 때 기억 안 나? 박유성도 관리 꾸준히 하면 모르는 거야.”

하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끝난 직후 세 사람의 의견은 완전히 달라졌다.

“앞서 박유성 선수에 대해 했던 말들은 전부 잊어주세요.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진짜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을 정도인데요. 솔직히 박유성 선수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조별 라운드 때는 별말씀 없으셨잖아요?”

“일본전 빼고는 다 쉬운 상대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결승전 하는 걸 보니까 박유성 선수는 다르더라고요.”

“정확하게 뭐가 다른 걸까요?”

“경기 안 보셨어요? 크리스 반스 선수가 대놓고 견제했잖아요.”

“올림픽 때 홈런 맞은 것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덤벼들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투구를 했어요. 박유성 선수에게 안타를 맞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게 투수가 편하게 승부를 걸어줄 때와는 전혀 다르거든요.”

“사실 칠 만한 공을 던져주면 타자 입장에서는 땡큐입니다. 아웃이 되어도 칠 만한 공을 쳤으니까 다들 아쉽다고 해주거든요. 하지만 칠 만한 공을 거의 안 주면 타자는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공을 쫓아다니게 되는데 꼭 그럴 때 허를 찌르듯이 노리던 공이 들어와서 사람 환장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지난 LA 올림픽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그런데 박유성 선수가 그 심리적인 압박감을 이겨냈습니다.”

“LA 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크리스 반스 상대로 3안타를 때려냈어요. 그것도 독이 바짝 오른 투수를 상대로 말입니다.”

“3안타가 아니라 2안타에 1실책 아닌가요?”

“마지막 타구도 안타죠. 그걸 실책으로 주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솔직히 그걸 누가 잡습니까? 마크 스테리 선수는 키가 크니까 글러브라도 가져다 댄 겁니다.”

“마크 스테리 선수도 SNS를 통해서 언급했잖아요. 잡을 수 없는 타구였는데 박유성 선수의 안타를 도둑질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요. 선수들은 다 압니다. 그건 안타 맞아요.”

“그런데 세 분의 생각이 달라진 계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솔직히 푸에르토리코전을 보면서도 서로 웃으면서 얘기했어요. 유성이 잘한다. 우리 예상보다 더 잘하겠다. 사실 전문가들이 되어서 신인 선수를 놓고 4할을 칠 거라는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메이저리그도 시즌 예측은 보수적이니까 우리도 보수적으로 잡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사실 다들 마음속으로는 박유성이니까 그보다는 잘하겠지 하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크리스 반스 상대로 첫 타석 때 3루타 치는 거 보니까 술이 확 깨는 거 있죠?”

“결승전 전날에 술을 드셨습니까?”

“아뇨. 결승전 하기 전에 한 잔씩 걸쳤죠. 우리나라가 20년 만에 결승전에 올라간 거잖아요? 지더라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자고 맥주 한 캔씩 까고 시작했는데 와……. 크리스 반스가 그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시즌 초반이라 100퍼센트 컨디션이 아니었다고 말하던데요?”

“그건 사실 핑계고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 반스도 더 조심해서 던진 겁니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100퍼센트 컨디션이었던 올림픽 때도 박유성 선수한테 호되게 당했잖아요?”

“크리스 반스 선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중요한 건 세계 최고의 투수가 안 맞겠다고 용을 쓰는데 박유성 선수가 그걸 때려냈다는 겁니다. 이건 뭐랄까……. 아, 복싱으로 치면 절대 안 맞겠다고 양손 가드를 올린 겁니다. 이렇게. 몸도 웅크리면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펀치가 가드를 뚫고 들어와서 미간에 꽂힌 거죠.”

“미간에 한 방. 광대에 한 방. 그리고 턱 끝에 한 방.”

“마지막 실책은 턱 끝입니까?”

“제대로 안 맞았다곤 해도 대미지는 확실히 들어가는 그런 펀치였죠. 실책으로 처리되긴 했지만 결국 박유성 선수는 홈을 밟았으니까요.”

마치 박유성의 팬클럽 회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시간 가까이를 떠들어대던 세 사람은 다시 한번 시즌 성적을 예상해 달라는 구영민 아나운서의 요청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는 3할 5푼에 20홈런, 50도루 예상합니다.”

“지난번보다 성적이 확 올랐는데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신인 선수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 낮게 잡았던 겁니다.”

“지금은 부담을 줘도 괜찮다는 건가요?”

“크리스 반스 선수를 상대로 저렇게 잘하는 선수한테 이 정도 기대치는 부담도 아니죠.”

강일준 기자가 먼저 운을 떼자 성일호 기자와 황용기 기자도 적당히 맞춰 기대 성적을 읊었다.

“저는 3할 7푼에 30홈런, 70도루로 가겠습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저는 중간으로 가야겠네요. 3할 6푼에 25홈런, 60도루입니다.”

“역시 여론이 무섭네요. 야구팬들에게 혼이 나니까 세 분이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습니다.”

구영민 아나운서의 말에 세 기자가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정확하게는 야구 팬들이 아니라 박유성의 실력을 보고 놀란 거지만.

구영민 아나운서가 저렇게 얄밉게 말하니까 꼭 여론에 굴복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 구 아나운서도 박유성 선수 성적 한번 예상해 봅시다.”

“제가 어떻게 감히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저희 프로그램 시작한 지 아직 2년도 안 됐는데요?”

“그냥 한번 해봐요.”

“우리가 한 시간 넘게 입 털었잖아요. 구 아나운서도 뭐라도 해야죠.”

세 사람의 독촉에 구영민 아나운서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저는 박유성 선수가 고 장호조 선수의 신인 최고 타율을 넘어 백연천 감독님의 타율을 넘어설 것 같습니다.”

“백연천 감독님이요?”

“헐, 구 아나운서 야구 모른다고 너무 지르는 거 아니에요?”

“당분간 SNS 닫아놓으세요.”

구영민 아나운서의 말에 세 기자가 전부 코웃음을 쳤다.

제아무리 박유성이라 하더라도 백연천이 프로 야구 원년에 기록한 0.412의 기록은 절대 깨지 못할 거라 여겼다.

방송을 전해 들은 야구 팬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박유성 데뷔 시즌 4할 가능할까요?

└솔직히 쉽지 않을 듯. 하지만 왠지 메이저리그 가기 전에는 깨지 않을까 싶음.

└나도 딱 이렇게 생각함. 올해는 무리지만 박유성이 깰 거 같음.

└나는 올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게 크리스 반스 공을 대놓고 치는데 국내 투수들 공은 우습지 않을까?

└대신에 150경기 치러야 하잖아. 체력적인 부담과 집중 견제는 무시 못 하지.

└박유성이 기종범처럼 육회 먹고 배탈 나지 않는 한 4할 무조건 가능하다고 봄. 그런데 백연천 기록은 좀 빡세.

└이제 곧 데뷔하는 신인 두고 4할 달성 여부를 논하는 거 보면 박유성이 진짜 스타이긴 하나 보네. ㅋㅋ

└근데 빨아도 적당히들 빱시다. 유성이 응꼬 없어지겠어요.

└저도 좀 걱정스러운 게 우리끼리 너무 호들갑 떨다가 유성이 성적이 기대만큼 안 나오면 다른 나라들이 엄청 비웃을 것 같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요? 그렇게 따지면 니키타 쇼우는 메이저리그 진출했을 때 사이영상 확정이었음.

└그때 일본 언론 기사 기억나네요. 크리스 반스의 시대는 끝났다였던가? ㅋㅋㅋ

└호들갑으로는 일본이 세계 최강이니까 걱정 노노요.

박유성도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예상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물론 프로 40년 차 경험이 있으니 1회차는 물론이고 2회차 때보다도 잘할 자신은 있지만 1회차 시절 0.363이 최고 타율이었던 만큼 4할은 조금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ESPM에서 박유성의 예상 성적을 언급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