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42화
30. 주가 폭등(1)
1
9회 말.
2사 1, 2루 상황에서 자이언츠의 수호신, 김재신이 마운드로 올라왔다.
본래 강기태 감독의 구상은 정규진이 9회 초를 끝내는 거였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지 두 타자를 잘 잡아놓고 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기적을 바라던 관중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재신아. 맞아도 좋으니까 편하게 던져.”
“네. 감독님.”
“그렇다고 한복판으로 던지진 말고.”
“제대로 던지겠습니다.”
홈런 한 방이면 단숨에 경기가 동점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김재신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마크 스테리를 상대로 몸쪽 빠른 공을 찔러 넣으며 마크 스테리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김재신 선수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초구 승부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마크 스테리 선수의 노림수를 역으로 이용하는 피칭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마크 스테리 선수도 쫓기게 될 텐데요.
-김재신 선수도 애매한 공을 던져서는 안 됩니다. 뺄 거면 확실히 빼고 승부를 걸 거면 확실히 걸어야 합니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한 김재신은 2구와 3구, 연속해서 바깥쪽 유인구를 던졌다.
하지만 마크 스테리는 속지 않았고.
다시 4구째 몸쪽에 붙인 빠른 공에 파울이 나면서 볼 카운트가 투 볼 투 스트라이크로 바뀌었다.
“그래도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으니까.”
워닝 트랙 근처까지 물러나 있었던 박유성은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볼카운트에 맞춰 타격하는 마크 스테리의 성격상 무리해서 잡아당기지는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 예상대로 마크 스테리는 5구째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결대로 밀어 쳤다.
딱!
방망이 끝에 걸렸는지 다소 먹힌 파열음이 울려 퍼졌지만 힘으로 밀어낸 타구는 유격수 키를 넘겼고.
타구는 박찬희와 감백호, 박유성의 한가운데 떨어졌다.
“돌아! 돌아!”
비거리가 다소 짧았지만 3루 베이스 코치는 과감하게 팔을 돌렸다.
2루 주자가 발 빠른 대니 존슨인 만큼 2사 만루보다는 일단 한 점을 따라붙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니 존슨도 어금니를 꽉 깨물며 3루를 돌아 홈으로 내달렸다.
그러고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단숨에 홈플레이트를 훔쳐냈다.
“크아아아!”
한 점을 따라붙는 득점을 성공시켰다고 생각한 대니 존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포효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대니 존슨에 호응해 주는 팀 동료는 없었다.
대니 존슨이 홈으로 내달리는 동안 케빈 모랄도 무리해서 3루를 파고들었는데 박유성이 타구를 처리하기가 무섭게 곧장 3루로 던져 버린 것이다.
대수비로 들어갔던 이종률은 일찌감치 3루를 지키고 있었고.
박유성의 정확한 송구를 받자마자 케빈 모랄을 태그하며 대니 존슨의 득점보다 먼저 아웃을 시켜 버렸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했던 경기는 6 대 3으로 끝이 났다.
-게임 셋!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따냅니다!
-우리 선수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경기 직후 기자들은 만장일치로 박유성을 결승전 MVP로 뽑았다.
이미 대회 MVP가 확정된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MVP의 영예를 돌릴 수도 있었지만 기자들은 냉정했다.
“썬이 아니었다면 오늘 한국의 승리는 없었습니다.”
“크리스 반스는 선발로서 제 역할을 다 했어요.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썬을 막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결승전 MVP 인터뷰에 나선 박유성은 팀 동료들에게 우승의 영광을 돌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요. 오늘 경기에서 함께 고생한 선배님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선배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우승은 모두가 합심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LA 올림픽까지 하면 두 대회 연속 우승이잖아요? 이제 더 이상의 이간질과 편 가르기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유성은 주최 측에서 별도로 준비한 1만 달러의 상금을 선수 회식에 쓰겠다고 밝히며 인터뷰를 지켜보는 대표팀 선배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진짜 저놈은 난놈이야. 무슨 인터뷰도 잘하냐?”
“유성이 쟤는 밖에 나가서 물건을 팔아도 잘할걸요?”
“괜히 자격지심에 유성이 괴롭히는 녀석들은 알아서 해.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합류해서 두고두고 갈궈줄 테니까.”
“하선이 형. 유성이가 우리 대표팀 실세인데 누가 유성이를 건드려요?”
“유성이 건드리려면 최소 10할은 쳐야 할걸요?”
박유성의 인터뷰가 끝이 나고.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라커룸에 모여 이온 음료 파티를 즐겼다.
“박유성! 너 인마 언제 성인 되냐?”
“그러게. 첫 우승에 이온 음료라니. 너무 김빠지는데?”
“아쉽다. 아쉬워~ 이럴 땐 샴페인 샤워를 해야 하는데.”
“어려서 죄쏭함다!”
“까불지 말고, 유성이 네가 망쳤으니까 책임지고 다음 대회도 우승시켜라. 알았지?”
“저도 그럴 생각인데 형은 다음 대회 때도 뽑힐 수 있을까요?”
“야! 나 민병규야!”
프로 40년 차인 박유성도 생에 첫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을 만끽했다.
지난 LA 올림픽 우승 때는 대타로 참석한 터라 적당히 눈치를 봤지만 이번 월드 베이스 볼 클래식은 실력으로 대표팀에 뽑힌 터라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시각.
대한민국 대표팀 라커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미국 대표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5회에 크리스를 고집한 이유가 뭡니까?”
“크리스는 지금까지 잘 던져왔습니다. 앞으로도 미국 대표팀을 위해 헌신할 투수고요. 그래서 바꾸지 않았습니다.”
“게릿 벌렌더 대신 크리스 반스를 선발로 세운 이유가 있나요?”
“순서대로 등판시켰을 뿐입니다. 게릿 벌렌더가 선발로 나왔더라도 잘 던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경기의 패인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들 알고 있지 않나요? 우린 썬을 막지 못했습니다. 썬은 이번 대회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10할 타율은 깨졌지만 전 타석 출루에 성공했죠. 그런 선수가 있는 팀은 이기기 힘듭니다.”
“이번 결승전까지 썬과 세 번 맞붙었는데요. 썬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솔직히 세 경기만으로 정확한 실력을 평가하기란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죠. 만약에 썬이 미국 대표팀 선수라면 선발로 기용할 건가요?”
“당연하죠. 썬이 미국 대표팀 타자라면 대니 존슨에게 양해를 구하고 1번 타자로 쓰겠습니다.”
에릭 지터 감독의 인터뷰를 전해 들은 미국 야구팬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쏟아냈다.
└썬이 대니 존슨보다 낫다고? 에릭은 제정신인 거야? @frogman72
└이번 대회에서 대니 존슨이 썬보다 나았던 건 단 하나도 없었어. 타격은 물론이고 수비와 주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썬의 압승이었어. 그런데 뭐가 문제야? @SUNN78
└네가 양키즈인 게 문제야. @Captain Redsox
└닥쳐. 레드삭스 머저리야. @SUNN78
└이번 대회에서 썬은 정말 잘했어. 하지만 썬을 칭찬하기 위해 대니 존슨을 깎아내리는 건 아니라고 봐. @Patrick76
└만약 대니 존슨이 양키즈의 선수였더라도 그랬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Jimmy P.
└에릭의 발언을 가지고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썬은 이번 대회 최고의 톱타자야. 그럼 썬을 데려오는데 2번에 기용할까? @Dodgers SN
└썬과 대니 중에 한 명을 중견수로 써야 한다면 무조건 썬이야. 대니 존슨은 후보로 밀리거나 지명타자로 출전해야 한다고. @CappDrop34
└이번 대회 썬의 타율은 0.947이야. 출루율은 100퍼센트라고. 이번 대회에서 썬보다 좋은 활약을 펼친 타자는 없어. 대니 존슨은 물론이고 마크 스테리도, 코리 베츠도 다 썬보다 못했다고. @barbie_C77
└난 레드삭스 팬은 아니지만 고작 단기전 성적을 가지고 메이저리그 최고 레벨의 선수를 깎아내리는 게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해. @Cleon299
└멍청한 소리 하지 마. 고작 단기전에 저렇게 잘할 수 있는 건 야구의 신밖에 없다고. @Captain Rays
연이은 우승 실패로 적잖은 충격을 받은 미국 야구팬들 상당수가 에릭 지터 감독의 인터뷰에 불쾌감을 보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레전드들의 반응은 달랐다.
“썬은 이번 대회 최고의 타자입니다. 썬의 활약상을 부정하는 건 세계 최고의 대회를 지향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썬은 지난 올림픽 때보다 더 성장했어요. 개인 기록을 떠나 한국의 리더 역할까지 했습니다. 썬이 치고 나갔던 경기에서 한국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야구는 신사의 스포츠입니다. 패자는 승자를 인정하고 승자는 패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에릭 지터 감독의 발언은 승자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앞뒤를 다 자르고 이간질의 도구로 쓰는 건 참을 수가 없네요.”
논란이 커지자 대니 존슨이 직접 입을 열었다.
“에릭의 발언이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애당초 질문은 썬이 미국 대표팀 선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거잖아요? 썬은 결승전 전까지 10할 타율에 MVP 트로피에 이름까지 새겨놓은 상태였어요. 제가 무슨 수로 썬을 이기겠습니까? 안 그래요? 저는 오히려 제게 양해를 구하겠다는 에릭의 배려가 고맙습니다.”
결승전이 끝난 다음 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공식 홈페이지에 대회 MVP와 타이틀 홀더, 그리고 베스트 10이 발표됐다.
[202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MVP – 박유성(한국)]
[202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타이틀 홀더]
└안타 – 박유성(한국)
└홈런 – 송현민(한국)
└타율 – 박유성(한국)
└타점 – 송현민(한국)
└득점 – 박유성(한국)
└도루 – 박유성(한국) 외 1
└다승 – 송찬우(한국) 외 5
└탈삼진 – 게릿 벌렌더(미국)
└평균자책점 – 송찬우(한국)
└세이브&홀드 – 정규진(한국) 외 6
대회 MVP는 모두의 예상대로 박유성이 선정됐다.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6개 타격 부분 중에 무려 4개를 쓸어 담았으니 MVP로 뽑히지 않는 게 이상했다.
경기 일정과 투구수 제한 등으로 인해 3승 이상을 챙기기 어려웠던 다승왕 타이틀은 동률 시 최종 순위가 높은 국가의 선수에게 준다는 대회 규정에 따라 송찬우에게 돌아갔다.
송찬우는 두 경기에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짠물 피칭으로 평균 자책점 타이틀까지 따내며 2관왕에 올랐다.
이외에 송현민이 당초 욕심냈던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가져가고, 결승전에서 홀드를 챙긴 정규진이 세이브&홀드 타이틀을 따내면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탈삼진을 제외한 모든 타이틀을 독식하는 위엄을 선보였다.
하지만 정작 베스트 10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02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베스트10]
투수 – 게릿 벌렌더(미국)
1루수 – 마크 스테리(미국)
2루수 – 송현민(한국)
3루수 – 김하선(한국)
유격수 – 카를로스 마틴(푸에르토리코)
좌익수 – 조시 스트로우(미국)
중견수 – 박유성(한국)
우익수 – 곤도 타쿠야(일본)
포수 – 조이 패런트(미국)
지명타자 – 코리 베츠(미국)
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 대표팀보다 준우승을 한 미국 대표팀 선수들이 더 많이 포함된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로 도배가 될 그림을 상상하며 발표만을 기다려 온 국내 야구팬들은 말 그대로 충격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