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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29화 (229/412)

타자 인생 3회차! 229화

29. 태양을 피하는 방법(상)(1)

1

대한민국 대표팀과 푸에르토리코 대표팀 간의 4강전이 끝나고.

미국의 최대 도박 사이트인 메가히트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몇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먼저 박유성의 출전 유무에 따른 대한민국 대표팀의 기대 득점을 산출했는데 박유성이 결장할 경우 1.7점이던 점수가 박유성이 선발 출전할 경우 5.4점으로 3배 이상 뛰어올랐다.

“그러니까 썬이 출전하지 못하면 미국이 무조건 이긴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썬이 출전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기대 득점은 7.5점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썬을 호텔에 강금시키기라도 해야 하나?”

“그랬다간 전 세계 야구 팬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미국이 우승하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썬이 지난 LA 올림픽 때처럼 활약해 주길 기대할 테니까요.”

“그런데 썬이 출전했을 경우 미국의 기대 득점은 왜 이렇게 떨어지는 거야?”

“썬의 수비 능력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점이나 떨어지는 게 맞는 거야?”

“ESPM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LA 올림픽 때 썬의 호수비로 최소 5점을 손해 봤다고 합니다. 경기당 2.5점꼴이니까 2점이 낮아지는 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유성이 출전하지 않을 경우 임찬기와 대한민국 대표팀 불펜 투수들을 상대로 7.5점을 뽑아낼 수 있을 거라던 미국 대표팀의 공격력은 박유성의 출전과 함께 5.5점으로 떨어졌다.

이변이 없는 한 박유성의 선발 출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양 팀의 기대 득점은 5.4 대 5.5.

미국이 여전히 0.1점 앞서고 있지만 고작 그 정도로 승패를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썬의 예상 성적은 어떻게 돼?”

“최소 2번 이상의 출루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홈런도 치나?”

“홈런 기대치는 0.7개입니다.”

“하나 정도는 나올 수 있다는 건데…… 조건을 바꿔서 다시 돌려 봐.”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볼넷으로 내보내면 기대 득점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메가히트의 마크 앤더슨 대표는 박유성과의 승부를 피하는 게 더 낫다고 여겼다.

이번 대회에서 10할이라는, 가공할 만한 타격을 선보이고 있는 박유성과 굳이 정면으로 맞붙어봐야 좋을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작 시뮬레이션 결과는 마크 앤더슨 대표의 예상을 빗나갔다.

“썬을 볼넷으로 내보낼 경우 기대득점이 더 올라갔습니다.”

“뭐? 썬이 홈런을 치지 않는데 득점이 올라간다는 거야?”

“썬이 홈런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점수는 1.1점 정도입니다. 반면 볼넷으로 나가면 기대 득점이 1.3점이 됩니다.”

“이유가 뭐야?”

“메이저리그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썬은 타석에 서 있을 때 가장 온순한 선수라고요. 아마추어 대회를 포함해 작년과 올해 썬은 100퍼센트의 도루 성공률을 기록 중입니다. 썬이 베이스를 밟으면 투수들은 그때부터 썬과 타자, 모두를 상대해야 합니다.”

미국 대표팀 전략분석팀도 박유성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그래서? 썬의 약점이 뭐야?”

“포크 볼입니다.”

“포크 볼?”

“마츠다 유이토를 상대로 삼진을 당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바로 3루타를 때려냈잖아?”

“포크 볼 이외에는 헛스윙을 한 적이 없습니다.”

“……뭐?”

전략분석팀장인 제이크 고든이 서둘러 자료를 확인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맞히는 능력이 좋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의 콘텍트 확률은 90퍼센트 전후.

바꿔 말하자면 10번의 스윙 중에 1번은 헛스윙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당연히 박유성도 비슷한 수치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콘텍트 확률이 무려 99퍼센트였다.

헛스윙률은 1퍼센트 미만.

아마추어 리그의 성적이 합산된 결과라 해도 이건 너무 터무니없었다.

“그러니까 포크 볼에만 헛스윙을 한다는 거지?”

“그런 건 아닙니다.”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

“마츠다 유이토의 포크 볼에만 헛스윙을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외 포크 볼은 잘 공략하는 편이고요.”

“마츠다 유이토는 메이저리그에서 포크 볼을 거의 던지지 않잖아?”

“데뷔 초반에는 제법 던졌습니다. 낮은 코스로 던지는 포크 볼을 포수가 자주 빠뜨리면서 스플리터로 갈아탔고요.”

“양키즈의 포수가 누군데 그래?”

“로버트 테일러입니다.”

“아, 그 녀석?”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던 제이크 고든이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수많은 포수들 중에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지 가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최악의 선수 한 명을 꼽는 건 쉬운 일이었다.

열에 아홉은 로버트 테일러를 언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로버트 테일러는 드래프트 1순위로 양키즈에 입단해 양키즈 팜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블로킹과 프레이밍 능력은 떨어지지만 팝타임은 메이저리그에서 첫손에 꼽히는…… 전형적인 어깨만 좋은 유형의 포수였다.

보통 이런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지만 로버트 테일러는 수비의 아쉬움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타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평균 0.280 수준의 정확도와 20개 이상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길 수 있는 힘은 메이저리그 전체 포수들 중 최고 레벨.

게다가 키도 크고 외모도 훤칠해서 어지간한 슈퍼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포수라는 포지션에 집착하는 게 유일한 흠이긴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수비 지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투수 리딩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 양키즈도 계속해서 로버트 테일러를 주전 포수로 기용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전략분석가의 눈으로 봤을 때 로버트 테일러는 좋은 타자일 뿐 결코 좋은 포수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 녀석, 포크 볼을 받을 생각이 없었을 거야.”

“뉴욕 언론들도 마츠다 유이토의 과도한 포크 볼 구사가 포심 패스트 볼의 구속과 구위를 떨어뜨린다고 떠들어댔으니까요.”

“그건 사실이잖아?”

“그래서 마츠다 유이토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하면서 따로 스플리터를 연습했습니다. 다만 데뷔 첫해부터 스플리터를 보여줄 생각은 없었겠죠.”

“한두 해쯤 포크 볼로 재미를 보다가 스플리터로 갈아타려는 속셈이었군.”

“그 계획을 로버트 테일러가 보기 좋게 걷어찼고요.”

“마츠다 유이토의 포크 볼은 어느 정도 레벨이야?”

쓴웃음을 짓던 제이크 고든이 화제를 바꿨다. 그러자 피터 샌더슨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 투수들을 통틀어 최고 레벨입니다.”

“그 정도야?”

“지금 일본 대표팀의 포수인 구와하라 세이지도 종종 공을 빠뜨렸을 정도라고 합니다.”

구와하라 세이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관심을 받았을 만큼 수비가 좋은 포수였다.

언어적인 한계와 소속팀 도쿄 자이언츠의 파격 대우로 자이언츠 맨을 선언했지만.

만약 메이저리그에 왔다면 리그 평균 이상의 수비 실력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런 구와하라 세이지조차 간간이 빠뜨릴 만큼 무브먼트가 요란한 포크 볼이라면 로버트 테일러가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공을 쫓아다닐 수는 있겠지만.

공의 궤적을 예상하고 자연스럽게 포구한 다음에 벌어질 상황들에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럼 대충 플러스 피치인가?”

“플러스 플러스 피치입니다.”

“그 정도야?”

“저는 지금도 썬이 마츠다 유이토의 포크 볼을 어떻게 공략해 냈는지 의문입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펼쳐지는 기간 중에는 미국 대표팀을 위해 일하지만.

피터 샌더슨은 태어날 때부터 양키즈의 팬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 마츠다 유이토의 피칭 능력에 대해 평소에도 울분을 토해왔다.

“그 말은 썬이 운 좋게 포크 볼을 때려냈다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올림픽 당시 마츠다 유이토의 포크 볼에 모든 한국 타자들이 허둥댔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썬만 포크 볼을 공략해 냈죠.”

“뭔가 억울한 듯한 표정은 또 뭐야? 정신 차려. 여긴 대표팀이라고.”

피터 샌더슨에게 한마디 한 제이크 고든이 다른 자료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결승전 선발인 크리스 반스의 피칭 데이터가 전부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 피터 샌더슨은 좌타자 상대 기록들만 살폈다.

“피안타율이 0.150에 피장타율이 0.311이라. 이 정도면 좌타자 킬러잖아?”

“크리스 반스에게 강한 몇몇 타자들의 지표를 빼면 언터처블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수준입니다.”

“썬은 어느 쪽이야?”

“썬은 좌투수와 우투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특히나 좌투수의 몸 쪽 공을 잘 공략하고요.”

좌투수 킬러와 좌타자 킬러가 맞붙으면 과연 누가 이길까.

정확한 건 붙여봐야 알겠지만 보통은 좌투수 킬러가 유리하다.

0.280의 타율을 가진 타자가 우투수를 상대로 0.270, 좌투수를 상대로 0.285를 쳤다면 좌완 투수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투수들이 좌타자 킬러 소리를 들으려면 모든 좌타자들을 상대로 최소 2할 미만의 피안타율을 기록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LA 올림픽 때의 결과는 달랐다.

박유성은 세계 최고의 좌완 투수라는 평가를 받던 크리스 반스를 상대로 단타 빠진 히트 포 더 사이클을 기록했고.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추가하며 기어코 올림픽 결승전 히트 포 더 사이클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심지어 이번 대회에서 박유성은 10할 타율을 기록 중이었다.

“썬과의 승부를 피해야 하나?”

“볼넷으로 거르는 건 반대입니다. 썬이 편하게 1루를 밟게 해서는 안 됩니다.”

“썬의 발이 빠른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크리스 반스의 견제 능력도 수준급이잖아.”

“썬은 좌투수들을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지난 일본전을 생각해 보세요. 마츠다 유이토를 상대로 홈스틸을 할 것처럼 굴어서 폭투를 유도했습니다.”

“그럼 나더러 뭘 어쩌라고? 별다른 약점이 없는데 크리스 반스에게 강한 타자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최대한 어렵게 승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자네가 생각한 답이야?”

“썬이 선발 출전했을 때 대한민국 대표팀의 기대 득점이 3배 이상 높아지는 건 썬이 그만큼 투수의 집중력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썬이 베이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투수는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멘탈이 좋은 투수라고 해도 1루 주자가 2루 도루와 3루 도루를 연거푸 성공시키고 홈스틸을 할 것처럼 움직인다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 겁니다.”

미국 대표팀의 에릭 지터 감독도 박유성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마이크. 썬을 어떻게 하면 좋겠어?”

“글쎄요. 크리스 반스에게 맡기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요?”

“제이슨의 생각은 어때?”

“크리스에게 맡기면 분명 지난 올림픽 때 진 빚을 갚으려고 할 겁니다.”

“그게 뭐가 어때서? 크리스 반스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야. 썬을 피할 이유가 없어.”

“그러다 올림픽 때처럼 경기 초반에 얻어맞으면요? 지난 올림픽은 1회에 승부가 끝났습니다. 우리가 우승하려면 썬을 날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요.”

지난 LA 올림픽 직후.

에릭 지터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우승을 내줬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잡음 없이 대회를 치른 에릭 지터 감독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했다.

“올림픽 대표팀 감독 대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감독은 어떻습니까?”

“저는 대표팀을 이끌 능력이 부족합니다.”

“코치는 원하는 대로 꾸려도 좋습니다. 우승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의 팀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들을 이끌려면 선수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레전드 출신 감독이 필요해요.”

한 달 가까이 고민하던 에릭 지터 감독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함께 뛰었던 동료들을 코칭스태프로 불러 모았다.

메이저리그 타격왕 출신인 마이크 영을 벤치 코치로 선임하고.

2007년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출신인 제이슨 피비를 투수 코치로.

같은 해 내셔널리그 타격 3관왕을 차지한 마크 할리데이를 타격 코치로 데려왔다.

이들 세 사람이 합류하면서 에릭 지터 감독도 코치들과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말이 통한다고 해서 항상 의견 일치를 보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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