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22화
28. 황소개구리(3)
2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장호영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대표팀과 푸에르토리코 대표팀 간의 202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전을 중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이선철입니다.
-조별 예선을 중계했던 게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벌써 4강전입니다.
-참가국이 20개국으로 확대가 되면서 8강 토너먼트 이후의 일정이 간소화됐는데요. 아마 그것 때문에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네요.
과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진행 방식이 복잡했다.
2006년에 열린 초대 대회 때는 조별 풀리그를 두 번 치렀고.
2009년과 2013년 대회에서는 더블 엘리미네이션이 적용됐다가 2017년 대회 때 다시 1, 2라운드 조별 풀리그가 시행됐다.
거의 매 대회마다 방식이 바뀌자 세계 최고의 야구 국제 대회로서 권위가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줄을 이었고.
이 같은 비판을 수용한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참가국 확대와 8강 토너먼트를 도입하면서 지금에까지 이르게 됐다.
-현재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8강전을 월드컵처럼 16강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를 희망하는 나라가 많은 만큼 대회 규모를 키우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시즌 직전에 치러지는 대회니까요. 지금보다 일정이 더 늘어나면 참가하는 선수들의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때 중계 화면으로 대한민국 대표팀과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의 경기 결과가 나왔다.
-일본, 중국, 체코, 호주와 함께 B조에 편성됐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조별리그 전승을 거두고 이스라엘을 잡고 4강에 진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푸에르토리코도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네덜란드, 파나마를 전부 꺾고 8강전에서 도미니카 공화국과 혈전을 치르고 올라왔는데요.
-경기 결과만 놓고 보자면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력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대표팀 같은 경우에는 일본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 때 10실점을 한 걸 제외하고 4경기를 실점 없이 잡아낸 반면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은 이번 대회 최약체 중 하나로 꼽히는 파나마에게도 2점을 내줬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4강전은 양 팀이 베스트 전력으로 맞붙지 않습니까? 대한민국과 푸에르토리코 모두 결승 진출이 목표인 만큼 지난 경기 결과들은 참고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번 대회를 준비한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의 각오가 남다른데요.
-지난 2013년 대회부터 시작해 지금 4번 연속으로 준우승에 머무르고 있으니까요. 우승에 대한 갈망이 클 수밖에 없겠죠.
-2013년 대회 때는 일본에게 발목을 잡혔고 이후에는 계속 미국에게 우승을 양보해야 했는데요. 그래서 이번 대회에도 초호화 엔트리를 구성했습니다.
때마침 화면이 바뀌고 선공을 맡은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의 선발 라인업이 나왔다.
-메이저리그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엔트리의 무게감이 느껴지시겠지만 메이저리그를 보지 않는 시청자분들도 많으실 테니까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한 명씩 선수들을 짚고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건 자막으로 처리해야 하지 않나요?
-아무래도 자막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일단 1번 타자 프란시스코 코레아 선수부터 시작해 볼까요?
-프란시스코 코레아 선수는 타이거즈에서 뛰고 있는 내야수입니다. 주 포지션은 2루고 지난 시즌에 0.274의 타율과 16개의 홈런을 때려낸 바 있습니다.
-내셔널스에서 뛰고 있는 2번 타자 호세 산티아고 선수도 한 방 능력이 있는 타자인데요.
-그렇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14개의 홈런에 그쳤지만 2026년에 25개의 홈런을 때려냈을 만큼 힘이 좋은 타자입니다.
-이어서 3번 타자 카를로스 마틴 선수입니다. 현 푸에르토리코 대표팀 야수들 중에서는 에이스로 불리고 있는데요.
-지난 시즌 0.284의 타율과 33개의 홈런을 때려냈으니까요. 물론 미국 대표팀의 클린업과 비교하면 홈런 숫자가 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는 MVP급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홈런 숫자로만 따지면 안 되는게 대한민국 대표팀의 해결사 송현민 선수는 지난 시즌 홈런이 19개였습니다. 반면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에는 송현민 선수보다 더 많은 홈런을 때려낸 타자가 4명이나 있습니다.
-4번을 치고 있는 하비에르 벨트란 선수와 5번 타자 레이몬드 로사리오 선수도 무시할 수 없는 타자입니다.
-두 선수 모두 지난 시즌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낸 바 있는데요. 특히나 하비에르 벨트란 선수는 송현민 선수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아까 하비에르 벨트란 선수가 1루 쪽 더그아웃으로 찾아와 송현민 선수와 악수를 나눴는데요.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대한민국 중계석에서 선수 소개에 한참을 할애할 만큼 푸에르토리코 선수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 가운데 마이너리그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전원 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고 3루수로 선발 출장한 케니 리베라와 포수 지오반니 페레즈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주전급으로 활약 중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주요 도박 사이트들은 대회 전 푸에르토리코의 배당률을 우승 후보 0순위인 미국 다음으로 낮게 책정했다.
선수 구성만 놓고 봤을 때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을 이길 수 있는 건 미국 대표팀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4강전을 앞두고 나온 배당률은 오히려 대한민국 대표팀이 조금 더 낮았다.
응집력과 짜임새 면에서 안정적인 대한민국 대표팀이 푸에르토리코 대표팀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한 것이다.
2대회 연속으로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을 맡고 있는 야디에르 모리나 감독은 이 같은 결과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이름이 알려진 선수라고 해봐야 송현민과 기정후, 감백호, 김하선 정도였다.
그중에 송현민은 작년에 메이저리그로 넘어왔고 김하선은 반대로 작년에 고국으로 돌아갔으니 기정후와 감백호 빼고는 내세울 선수가 없어 보였다.
반면 푸에르토리코는 오늘 선발 출전하는 에이스 호세 로페즈를 시작해 호세 히메네스(브루어스 4선발)와 올랜도 디아즈(레이즈 4선발), 프란시스코 코레아, 호세 산티아고, 카를로스 마틴, 하비에르 벨트란, 레이몬드 로사리오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는 선수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이 들쑥날쑥한 경기력으로 여러 차례 졸전을 펼친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대표팀이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든 것도 아닌데 4강전을 앞두고 평가가 바뀌었다는 것 자체가 푸에르토리코 대표팀과 감독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야디에르 모리나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해. 이겨서 미국 도박꾼들의 판단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자. 알았지?”
야디에르 모리나 감독은 타자들에게 적극적인 스윙을 주문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투수들이 없는 만큼 자신감 있게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라 여겼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발 투수 송찬우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투수가 아니었다.
-원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송찬우 선수가 4구를 던집니다. 이번에는 바깥쪽! 백도어 슬라이더에 프란시스코 코레아 선수가 꼼짝을 못 했습니다.
-저게 바로 송찬우 선수의 최대 장점이죠. 다양한 구종을 상황에 맞춰 효과적으로 던질 줄 아는 투수입니다.
송찬우는 프란시스코 코레아에 이어 호세 산티아고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며 대한민국 우완 에이스다운 피칭을 뽐냈다.
푸에르토리코의 간판 타자인 3번 타자 카를로스 마틴을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초구에 과감하게 몸쪽 빠른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뒤에 3구째 스플리터를 떨어뜨려 카를로스 마틴의 방망이를 끌어냈다.
따악!
카를로스 마틴이 마지막까지 팔로우 스윙을 하면서 타구에 힘을 실어봤지만 높게 치솟은 타구는 박유성의 글러브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쓰리 아웃. 송찬우 선수가 1회 초를 삼자범퇴로 틀어막았습니다.
-지난 5경기를 치르면서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은 1회마다 점수를 뽑아냈었는데요. 그 흐름을 송찬우 선수가 끊어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대표팀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될 텐데요. 선두 타자는 박유성 선수입니다.
-왜 그렇게 봅니까?
-박유성 선수 얘기만 나오면 이선철 해설위원이 표정부터 달라진다는 얘기가 많아서요. 정말 그런가 확인해 봤습니다.
-이러니까 제가 무슨 말을 못 하는 겁니다.
장호영 캐스터가 장난을 치자 이선철 해설위원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특별히 박유성을 편애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선수에게 잘한다고 칭찬을 했을 뿐인데 평소와 다르다고 색안경을 껴대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칭찬에 인색한 이선철 해설위원의 해설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이런 상황조차 신선하고 재밌기만 했다.
-지금 자막으로 박유성 선수의 이번 대회 성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타율이 무려 10할입니다. 스무 번 타석에 들어서 14개의 안타와 6개의 볼넷을 골라내고 있는데요. 이게 국제 대회에서 가능한 성적인가요?
-흔히들 낯선 투수와 낯선 타자가 맞붙으면 투수가 유리하다고 합니다. 상대에 대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타자는 투수의 공에 대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투수는 자신의 공에 집중하면 되거든요.
-지금 채팅창으로 투수는 포수와 편먹고 1 대 2로 싸워서 유리한 거라는 얘기가 올라왔는데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요즘에는 많은 투수들이 리드는 포수에게 맡기고 피칭에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수 싸움과 타격을 함께 해야 하는 타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야구에서는 3할만 치면 잘한다고 평가하는데 3할이면 열 타석 중에 세 번 안타를 치는 겁니다. 7번은 아웃이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리그에서 잘하던 타자들도 국제 대회 때 저조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박유성 선수는 다릅니다.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저 나이 때의 어린 선수들은 대부분 공을 쫓아다니기 바쁩니다. 지금껏 상대해 왔던 투수들보다 훨씬 경험 많은 투수들의 공을 쳐야 하니까요. 심리적으로 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침착합니다. 제가 종종 10년 차 베테랑 선수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요. 그 정도로 타석에서 여유가 넘쳐 보입니다.
-아무래도 타석에서 여유를 가지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자신감은 결국 실력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박유성 선수는 자신만의 타격에 대한 확신이 있거든요? 아마 어떤 투수를 만나더라도 충분히 칠 수 있다는 마음일 겁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말처럼 타석에 들어선 박유성은 호세 로페즈의 공을 때려낼 자신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투수도 아니고 1회차와 2회차 때 상대해 본 투수이다 보니 호세 로페즈가 눈을 부라려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저 녀석을 확 맞혀 버려?’
호세 로페즈는 이죽거리는 듯한 박유성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엉덩이에 제대로 포심 패스트 볼 주사를 놔주고 싶었지만.
박유성을 절대 출루시키지 말라는 특명을 받은 터라 아랫입술을 꾹 깨물어야 했다.
-호세 로페즈 선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바깥쪽 볼. 152㎞/h의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났습니다.
-박유성 선수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공을 하나 뺀 것 같은데요. 박유성 선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