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21화
28. 황소개구리(2)
-유성이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나서?
“유성이가 가만히 있으니까 저라도 나서야죠. 우리 팀 에이스가 무시당하는데 그걸 어떻게 참아요?”
-텍사스 구단에서 연락 왔다. 너 좀 조용히 시키래.
“거 참. 무슨 말을 못 하게 하네.”
송현민은 다시 박유성에게 투덜거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싸움은 형이 해놓고 왜 저한테 난리에요?”
“그럼 인마 동생이 줘터지고 왔는데 형이 되어서 가만있냐?”
“저 쥐어 터진 적 없는데요? 그리고 내일 배로 갚아 줄 건데요?”
송광철 대표는 잊어버리라고 말했지만 당사자인 박유성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번 대회 때 죽을 쑤고 있다면 또 모를까.
이스라엘과의 8강전까지 10할 타율을 유지 중인데 자신을 무시하는 건 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 그래야 내 동생이지.”
박유성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송현민이 씩 웃었다. 그러고는 배트 가방에서 빨간색 방망이 한 자루를 꺼냈다.
“너 내일 이걸로 쳐라.”
“이건 뭐예요? 형 방망이 색깔 바꿨어요?”
“바꾼 건 아니고 이거 내가 쓰던 것보다 조금 가벼운 거거든? 몸이 좀 무거울 때 이걸로 연습하는데 아마 지금 너한테는 딱 맞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배트 중량을 늘릴까 고민했던 박유성이 빨간색 방망이를 잡아 들었다.
“오오, 좋은데요?”
“괜찮지? 너 요즘 비거리 때문에 고민이라고 해서 이 형이 특별히 주는 거니까 이걸로 내일 홈런 3개만 쳐라.”
“왜 3개에요?”
“내 최고 기록은 깨면 안 되지 인마.”
지난 일본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송현민은 생애 최초로 한 경기에서 3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박유성을 제치고 경기 MVP를 차지했고.
이후 쏟아지는 국내외 언론들의 찬사와 팬들의 환호를 만끽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박유성도 그런 송현민의 기분을 굳이 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케이. 기분이다. 3개만 칠게요.”
“약속한 거다?”
“제가 원래 홈런 사이클을 칠까 했는데 형 때문에 하나 빼 줌.”
“어이구. 아주 고오맙습니다. 이 자식아.”
다른 선수가 홈런 사이클 타령을 했다면 하나라도 쳐보라고 한마디 했겠지만 박유성이라면 얘기는 달랐다.
도쿄 돔에서 펼쳐진 5경기에서 박유성이 때려낸 홈런은 총 4개.
추가로 3루타와 2루타를 9개나 쳤는데 그중 5개가 펜스 상단을 맞고 튕겨 나온 타구였다.
박유성이 조금만 더 체중을 늘렸거나 조금만 더 무거운 방망이를 썼다면 5개 모두 전부 홈런이 됐을 터.
그렇다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홈런 랭킹 1위는 송현민(8개)이 아니라 박유성이 됐을 것이다.
“방망이 주고 이런 말 하기도 웃기지만 암튼 나눠 먹자.”
“어차피 타점왕은 형이 먹을 텐데요 뭘.”
“기왕이면 하나 더 먹으면 좋지 인마.”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걸린 총상금은 무려 920만 달러.
지난 대회보다 200만 달러 이상 늘어났다.
우승팀 상금도 300만 달러까지 올랐고 준우승팀이 100만 달러, 3위 60만 달러, 4위 40만 달러를 받게 됐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이 확보한 상금은 총 30만 달러였다.
기본 참가 보상 10만 달러에 8강 진출 보상 20만 달러가 합산된 금액이었다.
여기에 최소 4위 상금 40만 달러를 확보했으니 누적 상금만 한화로 9억여 원 수준.
하지만 송현민은 그 정도로 성에 차지 않았다.
“아까 기사 봤는데 내일 경기 지면 두당 2,500만 원 정도 받겠더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상금 올랐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막상 계산해 보니까 기름값도 안 나올 것 같아.”
“형은 무슨 전세기 타고 다녀요?”
“너 내 연봉이 얼마인 줄 알지? 이것저것 다 떼고 해도 100억이야. 100억을 1년으로 나누면 하루에 2700만 원꼴이고.”
“와, 형은 그걸 다 계산해요?”
“내가 그런 계산을 왜 하냐. 팬카페 가면 팬들이 다 계산해서 올려주는데. 너도 지금은 내가 속물처럼 느껴지겠지만 다다음 대회 때 봐라. 고작 이 돈 벌려고 루틴 다 깨가면서 대회 준비해야 하나 싶을 거다.”
재작년 겨울 송현민은 레인저스와 6천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연평균 1,500만 달러 수준에 옵션은 별도였는데 지난 시즌 0.303의 타율과 19홈런, 87타점의 기록으로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무려 400만 달러의 가욋돈을 챙겼다.
“형. 홈런 하나 빠진 거 아직도 아쉽죠?”
“리그에서? 당연하지! 하나만 더 쳤어도 50만 달러가 추가였어.”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한동안 홈런 소식이 없었던 송현민은 리그 막판 5경기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며 20홈런에 도전했다.
워낙에 몰아치기에 능해서 추신우가 가지고 있던 한국인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24개)을 갱신할 거라 기대를 모았지만 상대 팀 투수들의 집중 견제 속에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 홈런은 19개로 끝이 났다.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송현민은 20홈런을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자세한 계약 내용을 알지 못하는 국내 팬들은 데뷔 시즌의 호성적에 만족하지 않는 송현민을 보며 역시 프로 야구 MVP 출신답다고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러나 송현민과 매일같이 깨톡을 주고받았던 박유성은 송현민의 인터뷰를 보고 빵 터져 버렸다.
“형 팬들은 형 이러는 거 알아요?”
“어떤 거? 돈 좋아하는 거? 당연히 알지. 그리고 그게 왜 인마. 난 야구가 본업이고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데 문제 있어?”
“문제는 없는데 너무 밝히니까 그렇죠.”
“네 앞에서만 그러는 거야. 내가 다른 사람 있을 때도 이러는 줄 아냐?”
1회차 시절과 2회차 시절에 겪었던 송현민은 털털한 선배였다.
코인 사태 이후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가며 피해 회복에 나섰을 때는 부처가 따로 없다 싶었다.
하지만 3회차를 통해 알게 된 송현민은 생각 이상으로 돈에 집착했다.
물론 모든 야구 선수들이 보다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지만 송현민처럼 가식 없이 당당하게 돈을 밝히는 경우는 손에 꼽혔다.
“암튼 홈런왕은 형한테 양보해라. 넌 그거 말고도 가져갈 거 많잖아?”
“홈런하고 타점 빼면 4개밖에 없는데요?”
“거기에 MVP에 베스트 10도 있잖아.”
“베스트 10은 형도 들어갈 거 같고 MVP는 우승부터 하고 따져야죠.”
“너 인마 자꾸 형 앞에서 가식 떨래? 솔직히 너도 MVP 탐나잖아. 아니야?”
“뭐…… 또 받으면 좋죠?”
920만 달러의 총상금 중에 개인 상금 규모는 60만 달러였다.
대회 MVP 상금이 10만 달러고 베스트 10에 뽑히면 3만 달러, 그리고 투타 10개 부분 타이틀홀더에게 2만 달러가 주어졌다.
현재 홈런과 타점 부분 1위를 달리고 있는 송현민은 베스트 10까지 7만 달러(약 9,100만원)의 상금을 거머쥐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다 해도 MVP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박유성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박유성은 8강전까지 10할 타율을 기록 중이었다.
14타수 14안타에 볼넷 6개, 11타점에 16득점으로 이번 대회 타격과 최다안타, 득점 단독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거기에 일본전과 이스라엘전 때 2개씩 4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면서 도루 부분 공동 1위로 뛰어올랐다.
다수의 미국 언론들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할 경우 결승전 결과와 관계없이 박유성이 MVP를 받을 거라 전망했다.
미국과 일본, 푸에르토리코의 간판선수에 우승 프리미엄을 얹어도 박유성이 보여주고 있는 퍼포먼스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박유성은 MVP보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이 더 고팠다.
송광철 대표가 짜 놓은 계획대로 3년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면 가장 많은 국가대표 포인트가 걸려 있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야 했다.
그러려면 다른 누구보다 송현민이 도와줘야 했다.
“오케이. 홈런왕은 제가 포기할게요. 대신에 우리 우승합시다.”
“얼씨구? 우승? 미국 잡을 자신은 있냐?”
“내가 밥상 차릴 테니까 형이 일본전 때처럼만 해줘요.”
“일본전은 내 생애 최고의 경기였어. 아마 다시는 그렇게 못 칠걸?”
“자꾸 약한 소리 하면 밥상 안 차리고 홈런 칠 겁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박유성의 으름장에 송현민이 정색을 했다.
지난 올림픽 때도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해서 창피했는데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까지 박유성에게 업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암튼 저는 이 녀석하고 친해지고 올 테니까 형은 호세 로페즈 분석 좀 해요.”
“너는 안 해?”
“저는 다 끝냈습니다.”
“뭐? 정말?”
자신이 준 방망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박유성을 보며 송현민이 쓰게 웃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붙어 있었는데 호세 로페즈를 벌써 분석했다니.
괜히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송현민도 호세 로페즈에 대해 딱히 분석할 게 없었다.
같은 아메리칸 리그 소속인 블루제이스 소속 선발 투수라 이미 두 번이나 상대해 봤다.
“유성이 녀석이 뭘 어떻게 분석했는지는 몰라도 직접 붙어 본 나만은 못하겠지.”
송현민은 침대 해드에 등을 기대어 누웠다. 그러고는 미튜브로 송현민과 호세 로페즈를 검색했다.
올 시즌 레인저스는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6경기를 치렀고 그중 호세 로페즈만 두 번을 만났다.
호세 로페즈와 시즌 초반에 붙었을 때 송현민은 호세 로페즈의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4타수 무안타에 삼진 2개.
심지어 득점권 찬스를 3번이나 날려 먹었다.
메이저리그 적응기가 필요하다고 두둔하던 언론에서 처음으로 쓴소리가 나왔을 정도.
하지만 시즌 후반에 다시 만났을 때는 결과가 바뀌었다.
3타수 2안타 1홈런에 4타점.
첫 타석 때 투런 홈런을 때려냈고 세 번째 타석 때 싹쓸이 2루타를 날리며 호세 로페즈를 강판시켰다.
“크으, 내가 봐도 잘 쳤네.”
동영상으로 두 번째 경기를 돌려보며 송현민은 자신의 경기력에 흠뻑 취했다.
그 사이 휴게실로 자리를 옮긴 박유성은 호세 로페즈를 상상하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송현민은 박유성이 호세 로페즈를 상대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1회차와 2회차 시절 호세 로페즈는 한국으로 넘어와 용병 생활을 했다.
블루제이스와의 6년 계약이 끝나고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재활을 겸해 선수 생활을 할 리그를 찾았는데 때마침 위즈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2년간 국내에서 뛰게 된 것이다.
물론 은퇴의 기로에 서 있던 당시와 한창때인 지금은 다르겠지만 박유성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게릿 벌렌더의 공도 쳤는데 뭘.”
지난해 게릿 벌렌더는 크리스 반스를 제치고 생애 첫 사이영 상을 수상했다.
21승 4패 평균 자책점 2.19에 243개의 탈삼진을 솎아내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소속팀인 애스트로스를 지구 우승으로 이끈 게릿 벌렌더에게 무려 21장의 1위 표가 몰렸다.
덕분에 박유성의 수식어도 바뀌었다.
올림픽이 끝났을 땐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 상 투수인 크리스 반스에게 홈런을 때려낸 타자였는데 게릿 벌렌더까지 사이영 상을 수상하면서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 투수‘들’에게 홈런을 뽑아낸 타자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런 박유성에게 국내 리그에서 상대했던 호세 로페스는 말 그대로 귀여웠다.
“날 상대로 세 타석 연속 삼진을 잡아내겠다고 했지? 기대할게. 로페즈.”
후웅!
박유성이 빠르게 휘두른 방망이가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결전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