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18화 (218/412)

타자 인생 3회차! 218화

27. 다시 만난 일본(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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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성 선수와의 대치 상황에서 니키타 쇼우 선수가 투구판에서 발을 뺍니다.

-박유성 선수. 잘 하고 있습니다. 저런 식으로 계속해서 니키타 쇼우 선수를 괴롭혀 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중계 화면으로 니키타 쇼우 선수의 얼굴이 나오고 있는데요.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입니다.

-니키타 쇼우 선수 입장에서는 박유성 선수의 빠른 발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선 첫 타석의 3루타와 이번 타석의 2루타 모두 박유성 선수의 빠른 발과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가 만들어낸 결과들인데요. 현역 시절 세 번의 도루왕을 차지한 이선철 해설 위원은 어떻게 보십니까?

-자꾸 도루왕 탄 걸 강조하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박유성 선수가 저보다 낫습니다. 저는 박유성 선수처럼 할 자신이 없어요.

모두까기 인형이라 불리던 이선철 해설위원의 입에서 박유성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지만.

TV 앞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박명철은 웃지 못했다.

오히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아내 이선영이 건내 준 청심환을 오물거려야 했다.

“괜찮아요?”

“어후.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러게 뭘 그렇게 힘들게 봐요?”

이선영이 핀잔을 주었다.

박유성이 경기를 뛰고 있으니 평소보다 더 몰입하게 되는 건 이해하지만 이러다가 진짜 병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었다.

그러자 박명철이 박유성의 탓을 했다.

“저 녀석이 문제지. 무슨 야구를 저렇게 해?”

“왜요? 잘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결과가 좋으니까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저러다 실수하면 대역죄인 되는 거야. 저 봐 저. 무슨 리드를 저렇게 하는 거야? 저러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때마침 중계 화면으로 박유성의 움직임이 잡혔다.

니키타 쇼우의 견제 능력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뒤로 빠진 유격수보다 더 크게 리드를 벌리면 TV 중계로 보는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유격수 우에바야시 마사유키가 2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왔고.

니키타 쇼우도 재빨리 투구판에서 발을 빼고 몸을 180도 돌려 견제에 들어갔다.

“어어어어!”

순간 박명철은 말이 씨가 되어버렸다는 걸 직감했다.

박유성이 우에바야시 마사유키의 움직임을 읽고 먼저 귀루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베어스 어린이 야구단 출신으로 40년 넘게 야구를 봐 온 입장에서 이건 영락없는 견제사 분위기였다.

설상가상, 박유성이 최악의 판단을 내렸다.

2루로 귀루를 해도 모자란 판에 느닷없이 3루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차라리 3루에 가서 죽어라.’

박명철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가끔 저런 식으로 견제에 걸린 주자들은 귀루 대신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진루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었다.

야구 팬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는 짓거리였지만.

박유성의 아버지로서 비참하게 죽느니 당당하게 죽는 게 덜 가슴 아플 것 같았다.

그런데…… TV에서 이상한 말이 들렸다.

-아아, 박유성 선수가 3루로 뜁니다! 3루에서…… 3루에서 세이프! 박유성 선수가 다시 한번 일본 대표팀을 농락합니다!

“뭐? 살았어?”

박명철은 뒤늦게 눈을 치떴다.

놀랍게도 TV 화면으로 3루 베이스를 밟은 채 타임을 외치는 박유성의 모습이 잡혔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안 봤어요?”

“저걸 어떻게 봐?”

“왜 못 봐요? 우리 아들이 잘 했는데.”

박명철만큼 야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선영은 박유성이 멋지게 3루를 훔쳐냈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박명철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박유성이 3루에서 사는 게 불가능했다.

그런 박명철을 위해 리플레이 화면이 나왔다.

-지금 느린 화면이 나오고 있는데요. 니키타 쇼우 선수가 투구판에서 발을 빼고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박유성 선수가 3루로 뛰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박유성 선수의 의도가 보입니다. 마지못해 뛴 게 아니라 작정하고 뛰었네요.

-그래서 잠시 말씀이 없으셨군요?

-솔직히 박유성 선수의 본헤드 플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른 선수가 저렇게 플레이를 했다면 곧바로 쓴소리를 하셨을 텐데 박유성 선수라 참으셨던 걸까요?

-흔히들 까방권이라고 하죠. 올림픽 금메달은 차치하더라도 1회 초 선취 득점도 박유성 선수가 만들어 냈으니까요. 물론 박유성 선수가 중계를 보고 있지는 않겠지만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그렇게 실패를 해야 더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처음부터 견제가 들어오면 3루로 뛸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박명철은 냉큼 리모콘을 쥐고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눈과 귀를 열고 중계석의 분석에 집중했다.

-지금 보니까 3루수 가이 호타카 선수의 베이스 커버가 늦은 것 같은데 박유성 선수가 이것까지 염두에 뒀을까요?

-아까 빈틈이 보이기가 무섭게 2루를 파고드는 거 보셨잖아요? 박유성 선수는 3루수의 수비 위치를 체크하고 곧바로 3루로 뛴 겁니다. 확실히 일반 선수들과는 시야부터가 다른 선수입니다.

-시야요?

-원래 야구를 잘 하려면 그라운드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포수를 가리켜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라 부르는 것도 포수석에 앉으면 그라운드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고요. 물론 시야가 넓다고 해서 모두가 박유성 선수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걸 정확하게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야구 지능이 필요하겠죠.

-그렇습니다. 지금 타석에 좌타자 민병규 선수가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잡아당기는 타구에 대비해 2루수 모리타니 게이토 선수가 1, 2루간을 커버하고 있고 2루 베이스는 유격수 우에바야시 마사유키 선수가 맡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3유간에 공간이 생깁니다. 그래서 3루수 가이 호타카 선수가 평소보다 2루 쪽으로 치우쳐서 수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 민병규 타석이었지?”

박유성이 2루에 나간 시점부터 박유성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던 박명철은 오늘 2번 타자로 김하선이 아니라 민병규가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좌타자가 쓸데없이 많은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김하선은 윤활류 같은 존재였다.

오른손 타자에 테이블 세터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발도 빠르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좌완 에이스라 불리는 니키타 쇼우를 상대로 다득점이 힘들다고 봤을 때 김하선을 박유성과 최대한 붙여 배치하는 게 최선이라 여겼다.

그래서 상당수 언론에서 김하선을 전진배치 시킬거라는 전망을 늘어 놓았고 박명철도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강기태 감독은 민병규의 날카로운 타격감을 믿고 다시 한번 2번으로 밀어붙였다.

-설명을 듣다 보니까 궁금증이 생겼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3루로 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요?

-머릿속으로는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겁니다. 박유성 선수가 3루 도루를 시도하면 베이스 커버에 들어가면서 포구를 하면 되니까요.

-박유성 선수가 3루로 뛰면 베이스 커버를 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씀이시네요.

-만약에 말입니다. 박유성 선수가 먼저 3루로 뛰었고 니키타 쇼우 선수가 2루가 아닌 3루로 송구를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니키타 쇼우 선수는 2루를 선택했죠.

-그래서 제가 감탄을 했던 겁니다. 발보다 공이 더 빠르긴 하지만 2루를 거쳤다가 다시 3루로 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거든요. 게다가 동선도 문제입니다. 투수가 곧바로 3루로 공을 던지면 3루수가 먼저 길목을 잡고 주자를 기다릴 수 있지만 2루를 거쳐 오면 주자와 겹칠 수밖에 없거든요.

-실제로 일본의 유격수 우에바야시 마사유키 선수는 3루 송구를 포기했는데요.

-경기를 지켜보는 일본 야구 팬들은 왜 던지지 않았냐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저 상황이 되면 공을 던질 수가 없을 겁니니다. 가이 호타카 선수가 3루 뒤쪽으로 빠져서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가이 호타카 선수도 3루 베이스에 들어가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가?”

박명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이 호타카의 3루 베이스 커버가 조금 늦었다 해도 송구를 하지 못한 건 우에바야시 마사유키의 판단 실수 같았다.

그런데 뒤이어 다른 리플레이가 나오면서 박명철의 의문을 해소시켰다.

-지금 다른 각도로 박유성 선수의 도루 장면이 나오는데 이선철 해설위원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동선이 완벽하게 겹쳤습니다. 우에바야시 마사유키 선수의 시야에는 아예 가이 호타카 선수의 글러브가 보이질 않네요.

-게다가 니키타 쇼우 선수의 송구가 정확했던 것도 아닙니다. 급하게 던지느라 공이 오른 쪽으로 치우쳤거든요. 만약에 박유성 선수가 진루가 아닌 귀루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박유성 선수가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3루로 뛰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죠. 그게 아닙니다. 박유성 선수가 야구의 신도 아니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전부 다 예측하겠습니까? 다만 박유성 선수가 운에 기대어 무모한 플레이를 한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리드를 넓게 가져간 것도 2루로 견제가 오면 3루로 뛰겠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라는 말씀이시로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투수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게 2루 견제입니다. 2루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까 쉽게 던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투구와 송구는 엄연히 다른 영역입니다. 견제는 또 다르고요.

-실제로 투수 앞으로 번트가 굴러가면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매번 하시는 말씀이 침착하게 처리해야 한다, 였는데요.

-그만큼 2루를 향해 정확하게 공을 던진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거기서 공이 빠져 버리면 한 베이스를 더 내주게 되는 거니까요.

이선철 해설위원의 설명을 듣던 박명철이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에는 박유성을 예뻐하는 이선철 해설위원이 열심히 포장을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중계 화면으로는 보지 못했던 정황을 하나 하나 끼워맞추다 보니까 박유성의 플레이에 근거가 생겼다.

“당신은 저게 무슨 얘기인 줄 알겠어?”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이런 거야. 프로 야구에서도 2루 견제는 거의 안 해. 3루 도루를 하는 선수도 거의 없고 괜히 잘못 던졌다가 공이 빠지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런데 유성이가 약 올리듯이 리드를 넓히니까 일본 투수가 안 하던 걸 한 거야.”

“평소에 연습하지 않아요?”

“연습 백날 해봐야 소용없어. 연습한 대로 잘 하면 베어스는 맨날 우승이지. 걔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암튼 유성이가 머리를 잘 쓴 거야. 일부러 2루로 견제를 하도록 유도한 다음에 3루로 냅따 뛴 거지. 일본 애들은 유성이가 2루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지들끼리 낄낄거리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3루로 뛰어 봐. 얼마나 벙찌겠어?”

박명철이 신이 나서 떠드는 이야기는 이선철 해설위원의 설명보다 더 복잡했지만 이선영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우리 아들 덕분에 오늘 경기 이기겠네.’

그 예상대로 박유성은 민병규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미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니키타 쇼우의 초구가 한복판으로 몰려서 들어오는 걸 민병규가 놓치지 않고 잡아당겨 1, 2루간을 꿰뚫은 것이다.

그러자 일본 대표팀에서 뒤늦게 투수를 바꿨다.

-니키타 쇼우 선수가 내려가고 미야기 하사토 선수가 마운드로 올라옵니다. 오사카 버팔로스에서 뛰고 있는 우완 투수로 지난 올림픽 때 베네수엘라와의 예선 경기에서 맹활약한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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