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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13화 (213/412)

타자 인생 3회차! 213화

27. 다시 만난 일본(상)(2)

-박유성이 니키타 쇼우의 몸쪽 공을 잘 공략해냈습니다.

-포심 패스트 볼이었는데요. 살짝 몰려서 들어갔습니다.

-실투라고 봐야겠죠?

-아무래도 평소보다 일찍 실전 피칭에 들어간 상황이라서요. 100퍼센트 컨디션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유성의 타격은 어떻습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타격을 했다면 담장을 넘어갔을 것 같은데요. 팔로우 스윙이 부족했을까요?

-박유성은 아직 어린 선수니까요. 기술적인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봐야겠죠.

-박유성은 지난 LA 올림픽에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로 평가받고 있는 크리스 반스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낸 바 있는데요. 니키타 쇼우의 구위에 눌린 모습입니다.

-괜찮습니다. 줄 점수는 주고 한국 투수를 공략하면 됩니다.

방금 공을 실투라 주장하는 건 억지에 가까웠지만, 일본 중계석은 박유성의 3루타를 운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유성의 성장을 지켜보기 위해 도쿄 돔까지 날아온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반응은 달랐다.

“거의 무릎 높이로 들어가는 빠른 공이었는데 그걸 때려내다니. 역시 썬이야.”

“발사 각도가 조금만 높았더라도 담장을 넘어갔을 거라고.”

“니키타 쇼우가 너무 정직하게 승부를 했어. 상대는 썬이었다고.”

“지난 올림픽에서 니키타 쇼우는 썬을 상대해 보지 못했잖아. 저렇게 잘 치는 줄 몰랐겠지.”

지난 LA 올림픽에서 MVP를 타서일까.

박유성에 대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태도는 우호적이었다.

아시아 선수들을 깔보는 스카우트들조차 박유성만큼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방금 타격이 그렇게 대단했던 거예요?”

주변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지 다저스의 스카우트 미셸 라슨이 조나단 짐머맨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조나단 짐머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타격이 대단했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니키타 쇼우가 몸쪽으로 빠른 공을 붙였고 썬이 잘 때려냈죠. 타구는 펜스 상단을 맞고 떨어졌고 썬이 빠른 발로 3루까지 파고들었어요.”

“와우, 과연 같은 장면을 본 건지 의심스럽다.”

“내가 잘못 본 건가요?”

“아니. 제대로 봤어. 아주 정확해. 완벽한 설명이었어.”

“비꼬지 말고 내가 보지 못한 게 뭔지 알려줘요.”

미셸 라슨은 올해로 4년 차였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라는 직업이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여자 스카우트를 모집했고 고등학교 때까지 소프트볼을 했다는 미셸 라슨이 최종 합격했다.

조나단 짐머맨은 처음 미셸 라슨이 들어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짓궂은 선배들이 야구 룰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어서 다들 놀라워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야구를 보는 눈은 달달 외운다고 해서 좋아지는 게 아니었다.

“좋아. 하나씩 뜯어 보자. 볼 카운트는?”

“원 볼 원 스트라이크요. 몸쪽 하이 패스트볼은 빠졌고 바깥쪽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았죠.”

“그럼 볼카운트는 누구에게 유리한 거야?”

“1-1이면 비슷하지 않아요?”

“단순히 카운트만 놓고 보자면 그렇겠지.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잡고 유인구를 하나 던진 것과 초구가 볼이 되어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간 건 전혀 다른 상황이야.”

“그렇다면 투수가 조금 더 불리하겠네요. 몸쪽으로 바짝 붙인 초구가 통하지 않았잖아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방금 공을 때려냈으니까요?”

“그나마 낙제는 면했군. 그래. 맞아. 초구는 썬의 기를 죽이기 위한 공이었어. 크리스 반스의 공도 때려내는 썬에게 통할지 의문이지만 일본 베터리는 정면 승부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어. 그래서 2구째 서둘러 스트라이크를 잡은 거고.”

“그리고 3구째 다시 몸쪽 빠른 공을 붙였죠.”

“아니, 그렇게 바로 넘어가면 안 돼. 왜 몸쪽 빠른 공이었는지를 생각해야지.”

조나단 짐머맨의 칭찬에 들떴던 미셸 라슨이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종종 드는 생각이지만 공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논쟁하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야구라는 스포츠가 투수의 손끝에서 빠져나온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걸 감안했을 때 모든 피칭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바깥쪽 슬라이더를 썬은 그냥 지켜봤어. 좌투수가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던진 공이었다고. 공의 궤적 상 썬이 얼마든지 때려낼 수 있었어. 하지만 쓱 보고 말았지. 이러면 투수는 무슨 생각이 들까?”

“썬이 다른 구종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래.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추고 나왔다면 비슷한 템포로 던지는 슬라이더에 어떻게든 반응을 해야 했어. 하지만 썬은 초구 빠른 공에 이어 2구째 슬라이더까지 넘겼지. 그럼 남은 게 뭐야?”

“포크 볼?”

“맞아. 포크 볼. 썬은 포크 볼을 노렸을 거야. 적어도 3구를 때리기 전까지는 말이야.”

“노렸을 거라고요?”

“솔직히 나도 확신할 수는 없어. 상황을 추측할 뿐이지.”

만약에 3구째 몸쪽 빠른 공에 박유성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느렸다면 조나단 짐머맨은 포크 볼을 노린 거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유성은 몸쪽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당겨 4미터가 넘는 도쿄 돔 펜스 상단을 직격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네요. 포크 볼을 노리다가 전략을 바꿨거나 처음부터 빠른 공을 노렸거나.”

“아니지. 하나가 더 있지.”

“더 있다고요?”

“포크 볼을 노리는 척 연기를 했거나.”

“에이, 설마요.”

미셸 라슨이 손사래를 쳤다. 박유성의 타격 능력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볼 카운트를 희생해가며 원하는 공을 유도하는 건 어지간한 베테랑들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물론 나도 썬이 몸쪽 빠른 공을 유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오히려 그랬다면 슬라이더에 반응을 해 줬겠지. 하지만 썬은 2구를 그냥 지켜봤어. 바깥쪽 공도 슬라이더도 아니었다는 거야.”

“그럼 남은 공은 포크 볼뿐이네요.”

“그래. 니키타 쇼우의 결정구는 체인지업처럼 활용하는 포크 볼이야. 포크 볼이 긁히는 날에는 타자들, 특히 좌타자들이 꼼짝을 못 하지.”

“그런데 왜 포크 볼을 노렸을까요?”

“썬은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잖아. 지난 LA 올림픽 결승전을 생각해 봐. 썬이 첫 타석에서 크리스 반스의 커터를 받아치면서 크리스 반스의 커터를 봉인했어.”

“그래요?”

“일본과의 4강전 때 마츠다 유이토의 포크 볼에 한국 타자들이 고전했잖아. 하지만 썬은 계속해서 포크 볼을 노렸어. 포크 볼을 공략해내야 편하게 던지지 못한다는 걸 아는 거라고.”

“그럼 니키타 쇼우는 왜 빠른 공을 던진 거예요?”

“썬이 포크 볼을 노린다는 걸 알았으니까. 2구에 반응하지 않는 걸 보고 썬의 노림수를 눈치챈 거지. 그래서 일부러 빠른 공을 던진 건데 썬이 노림수를 바꿨어. 빠른 공을 던지도록 연기한 건 아닐지 몰라도 니키타 쇼우와의 수 싸움에서 이긴 거야.”

“그러니까 이제 막 프로에 올라온 타자가 메이저리그 신인왕을 가지고 논 거네요?”

“표현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그래서 다들 놀라워하는 거고.”

지난 LA 올림픽에서 박유성이 크리스 반스를 상대로 때려낸 홈런을 두고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가들은 비슷한 평가를 내놓았다.

슈퍼 루키의 겁 없는 도전이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다른 대한민국 타자들이 크리스 반스라는 이름값에 눌려 있는 동안 아마추어 타자인 박유성만이 과감하게 방망이를 휘둘렀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니키타 쇼우를 상대로 만들어 낸 3루타는 LA 올림픽 때와 느낌이 달랐다.

상대의 노림수를 간파하고 정확하게 대처해서 선취점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아마추어라는 신분을 적극 활용해 맘껏 날뛰었던 지난 LA 올림픽 때보다 확실히 성장한 것이다.

“올림픽이 끝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어. 심지어 한국의 고교 야구는 9월에 끝났다고. 그런데 저게 가능한 거야?”

일본 대표팀의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도 헛웃음을 흘렸다.

포크 볼 타이밍에 던진 빠른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당긴 타자가 얼마 전까지 고등학교 선수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엎질러진 물을 두고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감독님. 내야를 당길까요?”

“한 점도 주지 말자고? 그게 가능하겠어?”

“썬은 오늘 경기 전까지 10할을 쳤지만 다른 선수들은 다릅니다. 니키타 쇼우가 집중한다면 실점 없이 이닝을 끝낼 수 있습니다.”

하마노 나오키 수석 코치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의 득점 공식은 박유성에서부터 출발했다.

박유성이 홈런을 때리거나 혹은 안타나 볼넷으로 출루한 뒤 후속타 때 홈을 밟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박유성이 3루에 나가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 2027년 10승 8패 3.52의 성적으로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을 받은 일본의 좌완 에이스, 니키타 쇼우가 이 위기를 극복해내기만 한다면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하아. 좋아. 한번 해보자고.”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위 타선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사에 클린업으로 연결되는 만큼 실점을 막는 게 쉽진 않겠지만.

5만여 명의 일본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지금 일본 벤치에서 작전이 나온 것 같은데요. 2루수와 유격수가 잔디 안쪽까지 들어왔습니다.

-땅볼이 나오면 홈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것 같은데요. 글쎄요. 아직 경기 초반인 만큼 줄 점수는 주고 가는 게 나아 보이는데 일본 벤치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다음 타자가 민병규 선수인데요. 앞선 3경기에서 0.455의 타율을 기록 중입니다.

-민병규 선수의 타격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만 상대가 좌완인 니키타 쇼우 선수니까요.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 같습니다.

타석에 들어선 민병규도 3루 베이스 코치의 사인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내심 희생 번트 사인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강기태 감독은 민병규를 믿고 타격을 주문했다.

“이래서 2번은 싫었는데…….”

민병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야수들 중에서는 그나마 발이 빠른 편이라 2번 타자로 낙점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의 선취점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까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나마 쉬운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면 특유의 배트 컨트롤로 빈 공간에 타구를 밀어 넣었겠지만.

상대는 메이저리그에서 2년 연속 10승을 달성한 니키타 쇼우였다.

안타를 치기도 쉽지 않고.

정타를 때려내는 건 더더욱 어려운 좌완 투수를 상대로 과연 진루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던 찰라.

“병규 형! 쫄지 말고 자신 있게 쳐요!”

3루 베이스 쪽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는 거야.”

순간 민병규는 헛웃음이 났다.

박유성이 야구를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저런 말을 경기 중에 하늘 같은 선배에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게 기가 찼다.

그런데 막상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부담감이 사라졌다.

‘그래. 홈 대시는 유성이가 알아서 하겠지. 지레 겁먹지 말자.’

민병규가 단단히 방망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바깥쪽 빠른 공이 날아오자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니키타 쇼우가 쥔 그립은 포심 패스트 볼이 아니라 커터였다.

딱!

방망이 끝에 걸린 공이 방망이를 부수고 유격수 정면으로 구르자 민병규는 아차 싶었다.

포크 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공격적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하필이면 최악의 상황이 나와버린 것이다.

그러나 니키타 쇼우의 등 뒤에서 크게 리드를 가져갔던 박유성은 망설이지 않고 홈으로 내달렸다.

‘베이스러닝은 기세야!’

타구를 보고 귀루할 줄 알았던 박유성이 계속해서 돌진하자 유격수 우에바야시 마사유키는 마음이 급해졌다.

제 자리에서 포구를 한 다음에 정확하게 송구만 해도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는 타이밍이었지만.

박유성의 빠른 발을 의식한 나머지 포구를 서두르다 무게 중심이 무너졌고.

한 차례 펌블한 공을 서둘러 홈으로 던졌을 때는 이미 박유성의 슬라이딩이 시작된 뒤였다.

-유격수 우에바야시 마사유키 선수가 홈으로 송구합니다! 홈에서…… 홈에서 세이프! 박유성 선수가 대한민국의 선취점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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