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10화
26. 박유성 선수를 뽑아야 합니다.(7)
간단한 상견례를 마치고 선수들은 짐을 풀기 위해 신성 호텔로 향했다.
이번에도 신성 그룹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숙소는 관례처럼 2인 1실이 배정됐는데 박유성은 송현민과 한방을 쓰게 됐다.
“현민이 형 언제 오냐?”
“일주일쯤 있다가 들어올 것 같은데요?”
“와, 유성이 좋겠네. 일주일간 혼자 쓰는 거야?”
“심심하면 형들 방으로 와. 카드 게임이나 하자.”
“형. 저 타짜예요.”
“어이구 무서워라. 우리 막내가 타짜였어?”
송현민을 비롯해 기정후와 감백호는 개인 훈련을 마치는 대로 대표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단체 훈련이 기본인 프로 야구와 달리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몸을 만들어야 해서 최대한 개인 일정을 존중해 주는 편이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가 늦어지는 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츠다 유이토는 합류하긴 하는 거야?”
“지난 올림픽 때 하도 욕을 얻어먹어서 불참한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일본이 엔트리에 집어넣은 거 보면 오긴 할 것 같습니다.”
“오타니 쇼헤는?”
“오타니는 재활 때문에 이번 대회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에서 열리는 4강전부터는 참가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일본에서 막판에 엔트리 교체를 신청할 것 같습니다.”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대회 사흘 전까지 1명에 한해 선수 교체가 가능하다.
훈련 중에 부상이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해 만든 제도인데 일본 대표팀은 무작정 집어넣었던 오타니 쇼헤를 뺄 가능성이 높았다.
“오타니 쇼헤는 불참이라 치고, 그럼 일본 선발은 누가 나올까?”
“일본도 조 1위로 올라가고 싶을 테니까요. 마츠다 유이토나 니키타 쇼우, 둘 중 하나를 내세울 겁니다.”
3월 4일부터 시작되는 B조 조별 예선의 하이라이트는 일본과의 맞대결이었다.
2023 대회 이후 다시 만나게 된 중국과 체코는 지는 게 힘든 상대고 호주 대표팀도 자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팀을 꾸려 다크호스라는 평가가 무색해졌다.
“일본하고는 마지막 날 붙는 거지?”
“네. 아마 일본도 고민이 많을 겁니다. 그날 나오는 투수는 8강전 등판이 불가능하니까요.”
“A조는 누가 올라와도 해볼 만하잖아?”
“그래도 원투 펀치를 양손에 쥐고 있는 것과 한 장은 포기해야 하는 건 다를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저쪽은 둘 다 메이저리거니까요.”
3월 8일로 잡힌 대한민국 대표팀과 일본 대표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나면 이틀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곧바로 8강전이 시작된다.
11일에 B조 2위가 A조 1위와 먼저 경기를 치르고.
다음 날 B조 1위가 A조 2위와 붙게 되는데 전문가들은 대만과 쿠바, 이스라엘 중에 두 팀이 8강전에 올라올 거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천신위가 불참해서 대만은 비상이겠네.”
“본래 슬로우 스타터 기질이 있어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부담스러워했으니까요. 대만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겁니다.”
“천신위도 작년에 커리어 하이 찍고 재계약했으니까 몸 사려야지. 괜히 부상당했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지난해 올림픽에 참가하면서도 15승 8패,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하며 에이스급 활약을 펼친 천신위는 필리스와 6년 1억 2천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천신위가 FA로 풀렸을 때 대다수 언론은 이적을 전망했다.
필리스는 2028년 연봉 총액이 1억 8천만 달러인 중소 구단이었다.
큰돈 자체를 안 쓰는 스몰 마켓과는 거리가 있지만 천신위를 노리는 인기 구단들과 경쟁하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필리스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6년 1억 2천만 달러라는 준수한 계약을 제안했고 천신위가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필리스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천신위는 꾸준하게 선발 기회를 보장해 준 필리스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밝혔고.
대형 계약 직후의 선수들은 몸을 사리는 관례에 따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불참하면서 대만의 8강 진출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저는 A조 쿠바에 이스라엘 봅니다.”
“저도 쿠바에 이스라엘이요. 천신위 없이는 쿠바 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추신우 수석 코치에 이어 이병구 타격 코치도 대만의 탈락을 예상했다.
지난 올림픽 때 활약했던 왕쥔린과 천지아런, 천홍위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출전을 확정 지었지만 그들만으로는 메이저리그 타자들로 도배를 한 쿠바 대표팀을 막기 쉽지 않아 보였다.
“쿠바는 그렇다 치고 이스라엘이 올라올 것 같다고?”
“제이크 마틴과 조시 블레이시가 합류했지 않습니까. 둘 중 누가 나와도 대만과 해볼 만할 겁니다.”
“만약에 우리가 조 1위로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유력하다는 거네?”
“그래서 이번 평가전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야 우리와 일본이 비슷한 느낌이겠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낯서니까요.”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도깨비 팀 이스라엘 대표팀은 3전 전승을 거두고 조 1위로 본선 2라운드에 진출했다.
당시 이스라엘과 한 조에 묶였던 게 대한민국과 네덜란드, 대만.
조 편성상 2라운드 진출은커녕 1승도 힘들어 보였지만 이스라엘 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2 대 1로 잡아내더니 대만 대표팀을 15 대 7로 대파한 데 이어 네덜란드 대표팀까지 4 대 2로 잡아내고 완벽한 드라마를 써냈다.
하지만 이후 이스라엘 대표팀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이번 대회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심으로 팀을 꾸린 상태지만.
지난 올림픽에서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었던 대한민국 대표팀 입장에서는 호들갑을 떨기도 애매했다.
“이스라엘과 미리 붙어보는 건 좋은데 평가전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죠. 다른 나라에서 형평성을 제시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영국과 파나마는 거절했잖아?”
“영국과 파나마는 일본 내 독립리그 구단과 연습 경기가 잡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립리그 구단하고 연습이 되겠어?”
“우리하고 해서 멘탈 갈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이병구 타격 코치의 너스레에 강기태 감독과 추신우 수석 코치가 웃음을 터트렸다.
본래 대회 전 치르는 평가전은 컨디션 점검과 자신감 고양이 목적이었다.
프로 야구 협회에서 영국 대표팀과 파나마 대표팀의 친선전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한 것도 평가전의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번 대회도 둘이 좀 고생을 해줘. 추 코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하고 계속 소통 중이지?”
“그럼요. 쾌변하는지도 체크하고 있습니다.”
처음 강기태 감독이 추신우를 수석 코치로 추천했을 때 내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커리어를 떠나 대표팀의 수석 코치를 맡기에는 어리고 지도자로서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강기태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한 추신우가 꼭 필요하다며 프로 야구 협회를 설득했다.
그리고 수석 코치로 합류한 추신우는 강기태 감독의 바람대로 자신의 뒤를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중이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이 코치는 국내 선수들 체크 잘하고.”
“하선이가 알아서 잘 챙기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독님.”
“그렇다고 하선이한테 다 맡겨놓진 마. 하선이도 경기에 집중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선수들 볼 때마다 별일 없는지 물어보는 게 일상입니다.”
“어차피 경기는 선수들이 치르는 거야. 선수들이 경기를 잘 치를 수 있게 열심히 돕는 게 우리 역할이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치른 첫 대회였던 LA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변에서 명장이라고 추켜세웠지만.
강기태 감독은 자신이 한 건 아무것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실제로 고참 선수들을 챙기다 대형 사고가 날 뻔한 걸 박유성의 슈퍼 플레이로 넘겼으니 문책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선수단을 서포트 할 마음을 먹었다.
“참, 유성이는 두 사람 다 챙겨야 하는 거 알지?”
“그럼요.”
“당연하죠. 감독님. 우리 대표팀 에이스인데요.”
박유성 이야기가 나오자 추신우 수석 코치와 이병구 타격 코치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않은 신인 선수이긴 하지만 지난 올림픽에서 보여준 활약상만 놓고 보자면 주장 완장을 채워도 될 정도였다.
“해외파 선수들이야 평가전에 맞춰 입국할 예정이고. 투수 파트 얘기는 봉 코치하고 했고. 흠……. 뭐가 하나 빠진 거 같은데.”
“병규요?”
“어, 그래! 병규. 걔를 어떻게 해야 해?”
강기태 감독이 추신우 수석 코치를 보며 물었다.
국내 야수들은 이병구 타격 코치가 관리하고 있지만 민병규만큼은 추신우 수석 코치가 더 잘 알 것 같았다.
그러자 추신우 수석 코치가 이병구 타격 코치를 힐끔 보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지난 올림픽 때보다 좋아지긴 했습니다. 다만 병규가 나가면 유성이가 많이 도와줘야 할 겁니다.”
“흠……. 그럼 병규를 지명으로 돌려?”
“그럼 백호하고 장한이가 번갈아가며 좌익수를 봐야 합니다. 정후도 좌익수 수비는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라서요.”
“만약에 유성이에 정후, 영완이로 가실 거면 유성이가 좌익수를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유성이를 옮기자고? 그러다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 어쩌려고?”
“대표팀 경기니까 어느 정도 이해해 줄 겁니다. 그리고 올림픽 때 하고는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사정이 다르다니?”
“올림픽 때야 유성이가 공격은 못해도 수비적으로 뭔가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엔 다르죠. 지난 올림픽 타격왕 출신인데 누가 유성이의 타격을 부정하겠습니까?”
“오호라. 어차피 붙박이 주전이니까 팀 컨디션에 맞게 포지션을 옮기는 정도로는 별말 안 나올 거라는 거지?”
“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후한테 양보하는 거니까요. 또 유성이 롤모델이 정후 아니겠습니까?”
“그 얘기 들으니까 이제 좀 마음이 편해지네.”
강기태 감독이 껄껄 웃었다. 백업 외야수로 유장한을 뽑긴 했지만 8강전부터는 공격력이 좋은 민병규를 무조건 타선에 박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황에 맞는 다양한 외야 구성이 필요했는데 박유성을 중견수로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듣고 나니까 답답함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유성이를 코너 외야수로 내보내도 괜찮은 거지?”
“지난 올림픽 때 보셨잖습니까. 국내에서 훈련할 때 좌익수와 우익수 다 소화했습니다.”
“중견수만큼 못 본다고 해도 백호보다 나을 겁니다. 유성이는 센스 자체가 남달라서요.”
“그리고 유성이는 그냥 중견수 같은 좌익수로 쓰면 됩니다.”
“중견수 같은 좌익수?”
“거의 좌중간에 세워 놓는 거죠. 그럼 센터에서 뛰는 것과 큰 차이 없을 겁니다.”
다음 날.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대표팀 선수들은 수비 훈련에 들어갔다.
“유성아. 좌익수 자리 한번 들어가 볼래?”
“네. 알겠습니다.”
이병구 타격 코치의 주문에 박유성은 군말 없이 좌중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중견수를 보다 보면 좌중간이나 우중간으로 빠지는 타구를 처리해야 하는 법.
오히려 좌익수를 보면 좌중간으로 빠지는 타구에 적응하기가 쉬웠다.
“뭐야? 유성이가 왜 좌익수로 들어간 거야?”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시키는 거 같은데?”
“대표팀에 좌익수만 셋인데?”
“셋이면 뭘 해. 백호 형은 발목이 안 좋고 장한이는 타격이 아쉽고 병규는 타격만 좋잖아.”
“그런데 유성이가 코너 수비도 가능해?”
대표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파이터즈 박원우가 동갑내기인 나영민에게 물었다. 그러자 나영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유성이가 코너 수비도 가능하냐고? 쟤는 그냥 만능이야.”
“만능?”
“유성이는 내야로 돌려도 금방 적응할걸?”
그때 따악, 하는 타격음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고.
총알처럼 뻗어 나간 공이 왼쪽 파울 라인 밖으로 휘어져 나갔다.
보통의 좌익수라면 조금 쫓아가다가 파울이라며 멍하니 타구를 지켜봤겠지만.
타다다다닥!
타격과 동시에 스타트를 끊은 박유성은 한발 먼저 달려가 그물망에 걸리려는 타구를 잡아냈다.
“와우, X발 저거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