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08화 (208/412)

타자 인생 3회차! 208화

26. 박유성 선수를 뽑아야 합니다.(5)

박유성이 적당히 잘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7할이 넘는 타율로 LA 올림픽 야구 MVP까지 탄 선수를 대체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5할을 쳐도 욕을 먹을걸?”

“장난해? 박유성은 8할 가까이 쳤어. 결승전에서 사이클링 히트도 쳤고. 그걸 무슨 수로 이기냐?”

“타격도 타격이지만 수비에서 실수 하나만 해봐. 아마 커뮤니티가 활활 타오를 거야.”

“평생 비교 짤로 남겠지.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대체 선수의 부재로 박유성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발탁이 확정됐다.

앞선 1회차와 2회차 땐 TV로 구경만 했던 대회였지만 운 좋게 올림픽에 참가한 덕분에 조기 해외 진출의 가능성도 점점 커져만 갔다.

“협회에서 연락 왔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확정이니까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그럼. 제정신이라면 유성이는 데리고 가야지. 유성이 말고 누굴 뽑으려고?”

“그렇지 않아도 중견수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들에게 전부 연락이 갔다고 합니다.”

“김 팀장 웃는 걸 보니까 전부 다 거절했나 보네?”

“박준수 선수나 민병규 선수가 중견수여도 부담스러울 겁니다.”

“하긴. 유성이가 좀 잘했어야지.”

언론 발표 전에 사전 언질을 받은 송광철 대표가 씩 웃었다.

그러고는 이동식 화이트보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간략한 일정들이 손글씨로 적힌 화이트보드 뒷면에는 새로 개정된 국가대표 포인트 표가 붙어 있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확정됐으니까 오랜만에 계산 한번 해볼까?”

“얼마 전에도 하셨잖습니까?”

“그때는 가정이었고 이번에는 확정이잖아. 기분이 다르다고.”

송광철 대표는 2028이라는 연도 옆에 적힌 70이라는 숫자를 지웠다. 그리고 다시 바르게 70을 적어 넣었다.

“그래도 11년 만의 우승인데 80점 채워줘야 맞지 않아?”

“경기 수가 적긴 했으니까요. 10점 오른 걸로 만족하시죠.”

이번 LA 올림픽 우승에 걸린 국가 대표 포인트는 최대 60점.

고작 8개국이 치르는 대회라 60점도 과하다는 의견이 적잖았다.

하지만 난이도 자체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수준이었다.

미국 현지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이라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대거 참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동안 우승 못 할지도 몰라.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처럼 LA 올림픽 우승을 술안주 삼아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고.”

“당장 이번 대회부터 박유성 선수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겠죠.”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리 계획대로 3년 안에 조기 진출하면 호주 올림픽 점수가 쓸모가 없는데 참…….”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제도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겨울.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 노조와 조건부로 합의했던 해외 아마추어 선수 계약 연령을 21세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송광철 대표뿐만 아니라 다수의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이 예상한 결과였지만 프로 야구 협회는 국가대표 포인트 제도만 개선하고 1년 제한은 그대로 유지했다.

다른 구단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메이저리그의 방향성을 따르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송광철 대표는 결국 시간 문제라고 여겼다.

“이대로 가면 유성이의 국대 포인트는 쌓이다 못해 넘칠 거야. 그럼 팬들과 여론이 알아서 등을 떠 밀거고.”

“지금도 다른 구단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개정이 가능할까요?”

“각 구단마다 유성이 같은 선수가 두세 명씩 있다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입단도 하기 전에 국대 포인트 70점 먹고 들어가는 선수가 또 있겠어?”

“아시안 게임이라면 모를까 올림픽 금메달은 불가능할 겁니다.”

“내가 봤던 어떤 소설에는 주인공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시안 게임에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

“말도 안 되는 스토리네요.”

“그래. 나도 그때 읽으면서 작가가 야알못인가 싶었거든? 그런데 유성이 보니까 그 소설은 약과더라고.”

“투수야 한두 이닝 나와서 막을 수는 있지만 유성이는 MVP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른 구단도 반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야. 여론이 등 떠밀면 자기들끼리 대승적인 차원이네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하는 길이네 하면서 협회에 힘 실어주겠지. 물론 그전에 유성이가 290점을 채워야겠지만.”

“290점이라고 하니까 또 막막해지는데요?”

“70점 깠으니까 이제 220점이야. 아직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아시안 게임, 프리미어 12가 남아 있고 자잘한 대회도 많으니까 어떻게든 욱여넣으면 채우는 건 가능할 거야.”

흔히들 알고 있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프리미어 12, 올림픽, 아시안 게임 이외에도 국가 대표 포인트가 걸린 대회는 많았다.

일정을 맞춰봐야겠지만 U-23 야구 월드컵과 아시아 야구 선수권,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 참가만 해도 최소 30점 이상은 추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송광철 대표는 가능하면 굵직한 대회들로 박유성의 해외 진출을 완성시키고 싶었다.

“어쨌거나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중요해.”

송광철 대표가 보드 마카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옆에 100이라는 점수를 적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국이 20개국으로 늘어나면서 국가 대표 포인트 점수 상향 논의가 계속 나왔었는데 이번에 대폭 상향한 것이다.

“100점은 좀 심하긴 합니다.”

“결국 우승해야 받을 수 있는 점수잖아. 준우승이면 80점이고 4강은 60점이야. 시즌 초에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출전하는 걸 감안하면 이 정도는 줘도 된다고 봐.”

간헐적으로 열리는 올림픽 점수는 너무 짜게 책정된 반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프리미어 12 점수는 대폭 상향됐다.

“병역 혜택의 유무도 고려했을까요?”

“고려하지 않았다고 하긴 어렵겠지. 사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나 프리미어 12 때는 군필 선수들이 대다수잖아. 그 선수들에게 필요한 건 조기 FA나 해외 진출일 테고.”

“그렇게 따지면 점수가 맞아떨어지긴 하네요.”

“뭐가?”

“올림픽으로 70점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이면 80점이지 않습니까? 더하면 150점이니까 딱 한 시즌 단축이네요.”

“구단들도 마냥 손해는 아닐걸? 요새는 또 장기 계약이 대세잖아? 그것도 FA 직전 시즌에 하는 게 국룰이니까 국제 대회로 변수를 만들 수 있지.”

“중간에서 에이전시도 덕을 보고요.”

“선수도 좋고 전력 보강이 절실한 구단도 좋고 중간에 낀 에이전시도 좋고 다 좋은 거지 뭐.”

송광철 대표는 100이라는 숫자를 다시 지우고 옆에 80을 적어 넣었다.

조별 리그에서 일본을 잡아내고 B조 1위로 진출할 경우 C조 1위가 유력한 미국은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지난 올림픽 때처럼 대한민국 대표팀이 다시 한번 기적을 써주면 좋겠지만 객관적인 전력상 쉽지 않을 터.

그렇다면 준우승 정도를 최대치로 삼는 게 현실적이었다.

“올림픽 70점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 진출로 80점이면 140점 남네. 아시안 게임이 50점에 프리미어 12가 90점이니까 이 두 대회만 우승하면 딱 되겠어.”

“내년 아시안 게임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프리미어 12야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거의 불참하니까 충분히 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유성이 이겨 먹겠다고 갑자기 우르르 참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나도 그냥 해본 소리야.”

송광철 대표는 시간을 확인한 뒤에 박유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타즈가 전지훈련을 떠난 애리조나 캠프와 서울의 시차는 16시간.

지금이 점심 무렵이니 박유성도 훈련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은 송광철 대표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오늘 주어진 할당량 40벌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유성은 단순히 사인만 하지 않았다.

“박유성 선수. 이제 찍습니다.”

구단 직원이 삼각대에 캠코더를 걸며 말했다. 그러자 박유성이 자연스럽게 캠코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캠프 5일 차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하고 왔는데 저 얼굴 좀 탄 것 같지 않나요? 지난 영상에 밥 잘 먹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들이 많으시던데 너무 잘 먹고 있습니다. 제가 올림픽 이후로 진천 선수촌 밥이 최고라고 노래를 불렀더니 회장님께서 진천 선수촌 식당을 그대로 캠프에 옮겨놓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선수촌 요리사들이 온 건 아니고요. 메뉴도 거의 비슷하고 맛도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소화를 시킬 겸 이렇게 영상을 찍고 있습니다.”

지난 올림픽 때 송현민은 자신이 클럽 하우스에서 존중받는 비결을 하나 알려주었다.

“유니폼 많이 팔면 돼.”

“유니폼이요?”

“유니폼 판매량은 인기의 척도야. 그리고 내 유니폼은 상당수 한국 팬들이 주문하고 있고.”

“현지 팬들은 잘 안 사요?”

“야. 걔들도 다 미국인이야. 내가 레인저스에서 5년 이상 뛴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입단한 아시아 선수 유니폼을 산다? 그건 나한테 사심 있는 여성 팬일 가능성이 높지.”

“왜 또 얘기가 그쪽으로 가요?”

“팩트니까. 나 SNS로 메시지 엄청나게 온다. 나 인기 장난 아니야.”

트윈스를 통합 우승으로 이끌고 MVP까지 거머쥐며 당당히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송현민도 현지 팬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박유성도 만약을 위해 미리미리 팬들을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서울에 사시는 김서윤 님 차례네요. 친오빠가 랜더스 팬인데 스타즈가 우승하는 것보다 지구가 멸망하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악담을 하셨다고요. 하하. 제가 랜더스전에서 이 악물고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요. 올해 이 유니폼 들고 한국 시리즈 직관 오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빠분하고 같이 오세요. 아, 우리가 한국 시리즈 가면 랜더스는 떨어지는 건가?”

박유성의 너스레에 캠코더 뒤에 서 있던 구단 직원이 큭큭 웃어댔고.

업로드된 영상을 본 신상욱 회장도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저 녀석. 재미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사부열전 때부터 입담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대본의 힘일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구단에서 따로 뭐 적어주고 한 게 아니라면서?”

“네. 영상을 찍겠다는 제안도 박유성 선수가 먼저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지금 스타즈 채널 구독자가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구독자 수 1등이 어디야?”

“트윈스입니다. 송현민 선수 있을 때 엄청 늘어서 200만 가까이 됩니다.”

“어이구, 그 정도나?”

“송현민 선수 개인 채널 생기기 전까지는 송현민 선수 관련 영상을 독점하다시피 해서요.”

“그다음은?”

“파이터즈 빼고는 다들 100만 전후였습니다. 저희는 이번에 100만 넘었고요.”

“유성이 덕분에 50만이 늘었다고?”

“박유성 선수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창구는 현재로서 스타즈 TV가 유일합니다. 회장님.”

보통 구독 수가 조회 수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스타즈 구단 채널의 박유성 관련 조회 수는 구독자 수를 훌쩍 뛰어넘었다.

게다가 댓글도 어마어마하게 달렸다.

-박윤철: ㅋㅋㅋ 랜더스 오늘도 1스택 쌓였네.

-스타즈팬73: 그러게요. 아무것도 안 했지만 박유성에게 또 찍힘. ㅋㅋㅋ

-조인성: 그런데 오빠분이 말넘심이네. 지구 멸망이 더 빠르겠다는 건 좀 아니지 않음?

-황인국: 그만큼 랜더스에 자부심이 있단 얘기겠죠. 그 자부심은 올해 깨질 예정이고요. ㅋㅋ

-소녀감성: 팬 사인회 당첨된 분들 진짜 부럽네요. 박유성 선수가 영상까지 찍어주는 줄 알았다면 저도 신청하는 건데 ㅠ.ㅠ

-고연아: 저도요. ㅠ.ㅠ 안 될 것 같아서 포기했는데 영상 올라올 때마다 후회 중입니다.

-홍인호: 그런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엔트리 아직인가요?

-강철야구: 그러게요. 저도 엔트리 뜨길 기다리고 있는데 설마 박유성 선수 빼는 거 아니죠? 2차 연기하고 바로 최종 발표 한다고 하니까 괜히 불안해지는데요?

-조인성: 그러면 프협을 멸망시켜야죠.

그로부터 이틀 후.

다소 늦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최종 명단이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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