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07화
26. 박유성 선수를 뽑아야 합니다.(4)
2
[스타즈가 블레이크 테일러를 영입한다.
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스타즈는 내야수인 블레이크 테일러와 계약금 90만 달러에 옵션 포함 총액 150만 달러에 계약을 확정 지었다고 한다.
아직 메디컬 테스트가 남아 있지만 지금껏 큰 부상 없이 경기를 치러왔던 만큼 메디컬 테스트 직후 정식 계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블레이크 테일러는 184㎝에 90㎏으로 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타자들 중에서는 체격 조건이 왜소하다.
우투우타에 주 포지션은 2루수이며 포수를 포함한 내야 전 포지션의 수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타격적인 기대감은 낮은 편이다.
스타즈 구단 관계자는 ‘박유성이 합류했고 다니엘 브리토가 잔류했으며 장영호와 이동엽 같은 힘을 써주는 타자들이 있는 만큼 공격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두고 영입했다’며 타 구단에게 원하던 선수를 빼앗긴 게 아니냐는 의혹을 일축했다.
오히려 블레이크 테일러가 합류하면서 막강 외야진에 이어 막강 키스톤 콤비가 완성됐다며 짜임새 있는 야구를 선호하는 김석률 감독 체제에 날개가 달렸다고 자평했다.
한편 스타즈 구단은 이달 말 박유성 선수를 비롯해 신인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의 합동 입단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스타즈 구단은 박유성 선수에 대한 팬들의 높은 관심을 고려해 500명 제한 소규모 팬 사인회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블레이크 테일러의 계약 소식은 기사 말미에 붙은 팬 사인회로 묻혀 버렸다.
└5백명 어떻게 뽑는 건지 아는 사람 있나요?
└저기 님. 트윈스 로고 달고 뭐 하시는 겁니까?
└제 최애 선수가 송현민 선수고 차애 선수가 박유성 선수라서요 ㅠ.ㅠ
└송현민 팬 하시다가 박유성한테 빠지셨나 보네. ㅋㅋㅋ
└일단 스타즈 팬 한정일 겁니다.
└다른 구단 팬은 정녕 안 되는 것인가요 ㅠ.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스타즈 팬클럽 가입하시고 팬 사인회 공지 나오면 신청하시면 됩니다.
└그럼 가능성 있는 건가요?
└그렇게 해도 안 될 거예요. 스타즈 구단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철새팬을 받을까요? 무조건 활동 오래 한 팬 중에서 선별할 겁니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겨요.
└그런데 블레이크 테일러 영입한 거 맞음? 왜 다들 아무 얘기가 없음?
└너무 뜬금없는 선수라 할 말을 잃은 듯. ㅋㅋㅋ
└그래도 스타즈 단장 양심 있네요. 다른 구단들 눈치 보이니까 알아서 페널티를 감내함. ㅋㅋㅋ
└괜찮아요. 스타즈는 박유성 선수가 있어서요.
└공격은 유성이가 하니까 괜찮아요. 유성이가 만든 점수만 잘 지켜도 이길 수 있음.
└솔직히 박유성 자체가 사기라서 용병 하나 빼고 해야 하나 싶었는데 차라리 잘됐음. 이제 성적 나와도 용병빨이라는 개소리들은 안 하겠지.
└오오, 저도 딱 이 생각 했는데. ㅋㅋㅋ 분명 나중에 스타즈 성적 보고 박유성 깎아내리는 애들 많다. 인정?
└무조건이죠. 베팍 원데이 투데이입니까?
└팬 사인회는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모든 선수들에게 사인받는 거 가능함?
└그때그때 다른데 이번에는 신인 선수들이 많아서 전부 다 사인받는 식으로 갈 것 같습니다.
└박유성 선수 사인은 따로 받고 싶은데 불가능할까요?
└유니폼을 두 개 준비하시면 됩니다. 스타즈 유니폼 하나에 박유성 선수 마킹 박힌 거 하나.
└오오,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
└헐, 대박. 지금 유니폼샵 일시 품절임. ㄷㄷ
└그거 수량을 많이 안 올려서 그래요. 새로고침 하다 보면 풀립니다.
└그런데 다들 너무 성급한 거 아님?
└사인회 당첨 기다리고 주문하면 늦습니다. 기적을 바라며 바로 주문해야 해요.
박유성의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김재식 단장은 송광철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사인회 인원을 배로 늘리면 어떻겠냐는 말씀이시죠?
“어려울까요?”
-박유성 선수가 운동선수라 해도 100명 사인하면 지칠 겁니다. 지금도 500명이잖습니까. 팬 사인회 하다가 박유성 선수 손목 나갈 수도 있습니다.
김재식 단장은 팬 사인회의 열기를 신규 팬 유입으로 끌고 가고 싶었지만 송광철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종이에 사인을 받아 가는 거라면 미리 준비를 하겠지만 요즘 야구팬들은 유니폼이나 자신들이 소장한 장비에 사인받는 게 기본이다 보니 500명도 부담스러웠다.
그러자 박유성이 나름의 아이디어를 냈다.
“구단에서 같이 고생해 준다면 방법이 없진 않을 거 같은데요.”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팬 사인회 끝나고 사진 촬영만 하고 사인은 미리 만들어놓는 게 어떨까요? 대신 유니폼에 사인을 원하는 분들은 따로 받는 겁니다.”
“받아서 나중에 사인을 해주자는 거죠?”
“전지훈련 가면 딱히 할 일도 없거든요. 쉬엄쉬엄 사인이나 하죠 뭐.”
전지훈련만 40번 가 본 박유성은 훈련 후의 무료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올해 전지훈련장으로 확정된 애리조나 캠프는 훈련장에서 숙소까지도 차를 타고 한참 가야 했다.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거나 간단한 게임을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핸드폰만 붙잡고 살게 될 테니 소일거리 삼아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재식 단장은 박유성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만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박유성 선수. 아마 그렇게 하면 다른 선수들도 덜 무안할 것 같습니다.”
단체 사인을 권장한다 해도 시간이 촉박해지면 박유성에게 사인 요청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줄이 길면 길어질수록 함께 앉아 있는 다른 신인 선수들의 민망함도 커질 터.
그래서 그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간단히 사진만 찍는 거라면 소외받는 선수를 최소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저보다는 직원분들하고 상의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유성 선수는 종이 사인에 유니폼 사인까지 하는데 고작 그 정도로 불만을 품으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죠.”
김재식 단장은 전지훈련 스케줄에 맞춰 사인 용품 공급 계획을 세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소포가 들어간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조금 더 일찍 귀국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3주 안에 모두 소화하는 걸로 하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말씀이십니까?”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일단 후보 명단에 있으니까요. 사인이 늦어졌다고 박유성 선수 욕 먹이는 일 없게 해야죠.”
이번 202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3월 4일부터 3월 18일까지 보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었다.
B조에 편성된 대한민국은 일본, 중국, 호주, 체코와 도쿄에서 예선전을 치르게 되는데 여기서 조 2위 안에 들어가야만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다.
프로 야구 협회는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목표를 4강에서 결승 진출로 상향 조정했다.
20개국으로 확대 시행된 2023년 대회와 2026년 대회에서 4강까지 올라갔고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니 팬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야구팬들도 지난 LA 올림픽의 기세를 이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에 도전하길 바랐다.
“선발진이 좀 아쉽긴 하지만 타선은 해볼 만하지 않아?”
“박유성이 올림픽 때처럼만 미쳐준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100퍼센트 컨디션이 아닐걸? 대부분 시즌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할 테니까 올림픽만 못할 거야.”
“4강에서 미국만 피하면 결승 가능하다니까.”
“일단 조별 예선에서 일본 잡고 1위로 올라가야 해. 그래야 결승에서 미국을 만날 수 있어.”
그러나 뜨거운 기대감과는 달리 선수 선발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언론에서는 해외파 선수들의 참가 여부가 관건이라며 선수 차출에 비협조적인 메이저리그 구단들을 탓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왜 다들 못 보낸다는 거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병역 혜택이 없으니까요. 해외 진출과 거리가 먼 선수들은 내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올림픽 명단을 기준으로 가자고 했잖아?”
“그렇게 되면 특정 구단에 선수가 몰리게 됩니다.”
“올림픽 때는 별말 없었잖아?”
“그때야 실력으로 절반을 채우고 각 구단마다 병역 혜택이 필요한 선수들로 절반을 채웠으니까 좋게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다르니까요. 대회 때 무리해서 부상을 당하거나 슬럼프가 오면 구단도 같이 피해를 보지 않겠습니까?”
“올림픽 끝나고 문제가 됐던 선수들이 있었나?”
“금메달을 따서 구단마다 길게 휴식을 권장했으니 탈이 난 선수는 없었지만 무조건 올림픽 기준에 맞추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아. 나는 이게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
현역 시절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갔던 강기태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LA 올림픽에서 참패하고 돌아와 선수 구성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세대교체를 마친 상태에서 금메달까지 땄는데 다른 말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자 이병구 타격 코치가 달래듯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결국은 감독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왠지 또 이상한 짓을 할까 봐 겁나네.”
“이상한 짓이라면…… 설마 유성이요?”
“아니겠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유성이는 못 건드리죠. 당장에 올림픽 MVP잖아요.”
“지난 올림픽에도 아마추어 특례로 들어간 거잖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프로 선수들만 나가는 대회고.”
“유성이도 입단식 했으니까 프로 선수입니다. 그리고 유성이 대신 뛰려는 선수도 없을걸요?”
“없는 거 확실해?”
“일단 찬수는 근신 중이고 세준이는 FA로 팀을 옮겼잖습니까. 의신이는 작년 코시 때 수비하다 발목을 다쳤고요.”
“작년에 다친 거면 진즉 다 나았겠지.”
“그래도 몸 관리 하고 싶겠죠. 올림픽 MVP를 탄 후배 자리 밀어냈다고 욕먹고 싶겠습니까?”
“그럼 유성이 대체 선수가 없는 거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유성이 못 건드린다고. 못 믿으시겠으면 감독님이 직접 선수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마 전부 다 손사래를 칠 겁니다.”
강기태 감독의 걱정대로 선수 선발 위원회에서 박유성 대신 다른 선수를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긴 했다.
“올림픽에서 박유성 선수가 잘한 건 떼고 말합시다. 박유성 선수는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않은 신인입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프로들의 대회고요.”
“저도 이번 대회는 박유성 선수 없이 치렀으면 좋겠습니다. 박유성 선수도 좋은 선수지만 박유성 선수 없어도 강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유성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간 걸 불만스럽게 여기는 일부 구단이 동조하면서 대체 선수 논의가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이병구 타격 코치의 말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누굴 뽑습니까? 민찬수 선수요?”
“민찬수 선수는 징계 중이잖습니까.”
“설사 징계가 다 끝났다 해도 당분간 국가 대표로는 못 뽑죠.”
“뽑아도 못 올 겁니다. 지금 영화 촬영 중이라고 하네요.”
작년 성적만 놓고 봤을 때 가장 유력한 대체 자원은 민찬수였다.
애당초 민찬수가 뽑혔다가 음주 운전 방조 사건으로 박유성이 나가게 된 것이니 박유성을 대신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별도의 연락을 받은 민찬수는 코웃음을 쳤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촬영 중이라서요. 경기를 뛸 몸이 아닙니다.”
반시즌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민찬수는 4월 일정이 끝날 때쯤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찬수는 징계 해제일보다 영화 개봉일을 더 기다렸다.
비록 조연이긴 하지만 4월 초에 개봉하는 영화가 만에 하나 대박을 터뜨린다면?
진지하게 야구를 때려치우고 배우로 전향할 생각이었다.
민찬수와 함께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팀을 옮긴 지 얼마 안 되어서요. 팀 적응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발목 상태가 시원찮습니다. 정말입니다. 진단서라도 떼서 보내 드릴까요?”
“저 지난 시즌 죽 쒔는데 저더러 유성이 대신 뛰라고요? 농담이시죠?”
“죄송하지만 제가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