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06화 (206/412)

타자 인생 3회차! 206화

26. 박유성 선수를 뽑아야 합니다.(3)

마무리 캠프가 끝나고 김재식 단장은 김석률 감독과 따로 술자리를 가졌다.

마무리 캠프에서 고생한 김석률 감독을 위로할 겸 새 시즌에 대한 구상이 궁금했는데 김석률 감독이 예상치 못한 답을 주었다.

“유성이는 조만간 메이저리그로 갈 겁니다. 단장님.”

“……?”

“그리고 스타즈는 박유성이라는 선수가 없는 야구를 해야 할 겁니다. 올 시즌 트윈스처럼 말이죠.”

“……!”

지난 시즌

트윈스는 우여곡절 끝에 포스트 시즌 막차를 탔다.

시즌 성적은 75승 3무 72패.

재작년 89승을 거둔 것에 비해 14승이 부족했지만 트윈스 팬들은 일단 가을 잔치를 즐기게 된 게 어디냐며 기뻐했다.

하지만 나눔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타이거즈에 3 대 0, 스윕패를 당하자 트윈스 홈페이지는 난리가 났다.

시즌 내내 부진했던 선수들을 시작으로 FA 영입 실패로도 모자라 용병 농사까지 망친 프런트까지 융단 폭격이 쏟아졌다.

오죽하면 트윈스 선수단에서 포스트 시즌에 탈락한 게 아니지 않느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올 정도.

“지난 시즌 트윈스는 송현민 선수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리그 MVP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인정합니다. 다만 14승이 빠진 건 선수단의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2027시즌 베이스볼 파크에서 산출한 송현민의 시즌 WAR은 무려 10.20

베이스볼 파크 기준 프로야구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WAR이었다.

그런 송현민이 빠졌으니 10승이 줄어드는 것 까지는 이해하지만.

송현민의 대체 선수들이 4승을 더 까먹었은 건 트윈스의 문제였다.

“송현민 선수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대체 기여 승수가 2승 정도 되는 타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렇게 되면 6승이 추가되니까 타이거즈를 제치고 2위였겠네요.”

“그 6승 중에 3승을 랜더스에게 뺏어 왔다면 랜더스와 막판까지 1위 경쟁을 했을지도 모르고요.”

“감독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참 아쉬운 시즌이네요. 트윈스는 물론이고 우리 스타즈에게도요.”

“그래서 제가 랜더스가 대단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랜더스는 구단주의 의지가 강해서 팀 전력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유일한 단점이 송현민 같은 선수가 없다는 거였지만 이제 민병규 선수가 거의 다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올 시즌에는 외야수로 변신까지 선언했으니까요.”

“잘 모르는 이들은 민병규 선수가 박준수 선수를 피해 외야로 나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보다는 국가 대표로 뛰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겁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감백호 선수의 발목 상태는 완치가 불가능한 상황이고 기정후 선수는 소속팀에서 요즘 우익수로 뛰고 있으니 좌익수 자리가 공석이죠. 지명타자로 뛰는 건 한계가 있고 대타는 성에 안 찰 테고요.”

“본래 트윈스 외야는 외국인 선수들 천국이었잖습니까. 중견수와 좌익수, 혹은 중견수와 우익수. 하지만 이제 좌익수 자리는 민병규 선수가 채웠고 FA로 조세준 선수까지 데려왔죠. 제 생각이긴 하지만 어정쩡한 외국인 선수들이 뛸 때보다 희망이 보입니다.”

“괜히 트윈스에서 다니엘 브리토 선수를 노리던 게 아니죠.”

박유성의 스타즈 입단이 확정되면서 트윈스는 제1 영입 대상으로 다니엘 브리토를 점찍었다.

평균 이상의 공격력에 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지닌 다니엘 브리토가 박유성에게 밀려 트윈스로 온다면 트윈스의 오랜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 브리토는 포지션을 옮기면서까지 스타즈 잔류를 확정지었고.

트윈스는 다급히 다이노스에서 FA로 나온 조세준을 영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조세준 선수는 어떻게 보십니까?”

“트윈스에서는 아마 테이블 세터로 활약할 테니까 다이노스에 있을 때보다는 성적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수비야 기본 이상은 하는 선수고요.”

“그럼 트윈스는 조세준 선수를 중견수로 두고 우익수를 뽑겠네요.”

“우익수와 1루수가 가장 이상적인데 우익수 자리는 대체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1루와 지명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1루와 지명이라. 그렇게 된다면…….”

“네. 공격력 측면에서는 송현민 선수의 부재를 어느 정도 채우게 되는 셈이죠.”

아시아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외국인 타자들 중에서 거포로 평가받는 선수는 대부분 내야수였다.

외야수로 뛰면서 홈런을 뻥뻥 때려내는 메이저리그 타자들도 많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공격력과 수비력을 모두 갖춘 특출난 선수들이고.

보통 공격 스탯에 몰빵했다는 평가를 받는 거구의 타자들은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민병규가 1루에서 성장하고 있었고 외야가 구멍이었으니 한정된 외야풀 안에서 외국인 선수를 선발해야 했지만.

당분간은 얼마든지 공격력만 보고 선수를 선발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럼 우리도 장타력 위주로 타자들을 선발해야 할까요?”

“그렇게 된다면 아마 스타즈의 단기 전력은 확 올라갈 겁니다.”

“단기 전력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유성이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다음이 문제입니다.”

“박유성 선수의 실력은 저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송현민 선수 그 이상의 공백이 생길지도 모르죠.”

“제 제자라서가 아니라 유성이는 대체가 불가능한 유형의 선수입니다.”

“감독님 말씀을 부정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내년 시즌에 송찬우 선수가 해외에 나갈 수도 있고 박준수 선수도 FA때 팀을 떠날 수 있지 않습니까?”

송찬우는 내년 시즌이면 해외 진출 자격인 5시즌을 채운다.

박준수는 올해 해외 진출을 포기했지만 두 시즌 앞으로 다가온 FA 때 어떤 선택을 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올 시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면 송찬우 선수는 몰라도 박준수 선수는 장기 계약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속을 다 들여다보고 계시네요. 네. 맞습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만 하면 박준수 선수는 FA에 준하는 계약을 할 생각입니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니까요.”

“아마 그 과정에서 송찬우 선수도 잔류를 선언할지 모릅니다. 파이터즈에서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스타즈는 다르지 않습니까?”

“만약에 송찬우 선수까지 남는다고 한다면 당연히 장기 계약을 해야죠. 송찬우 선수 같은 투수를 또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지만 유성이를 잡긴 힘들 겁니다. 돈도 돈이지만 올림픽에서 뛰는 거 보셨잖습니까?”

“네. 올림픽에서는 정말 잘했죠.”

“아뇨. 실력 말고요. 표정 말입니다.”

“표정이요?”

“저는 유성이가 그렇게 신나 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전 세계 야구 팬들이 박유성이 보여준 환상적인 퍼포먼스에 감탄을 했지만 김석률 감독은 다른 걸 보고 있었다.

상기된 표정과 반짝이는 눈동자.

파울을 치거나 좋은 공을 놓쳤을 때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모습까지 고교 리그에서는 볼 수 없는 반응들이었다.

“유성이는 큰물에서 놀아야 합니다. 그만한 실력을 갖췄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야구 전문가들이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떠드는 헛소리고요. 유성이 실력은 스타즈 선수들도 이미 다 인정을 했습니다.”

20억씩이나 받고 입단을 한 박유성이 뒤늦게 마무리 캠프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

일부 선수들은 나름의 신고식을 준비했다.

슈퍼 루키를 막 대할 수는 없으니 일부러 차갑게 굴어서 기강을 잡아보자는 유치한 속셈이었는데 막상 박유성이 지옥의 펑고를 끝마치고 나니까 반응이 달라졌다.

“반가워. 유성아. 내 이름은 알지?”

“그럼요. 최일준 선배님이시잖아요.”

“선배는 무슨.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친구 해도 상관없고.”

“네? 친구요?”

“너 다니엘하고 친구 먹었잖아? 나도 다니엘하고 친구 먹었거든. 우리 어뭬리칸 스타일로 가는 게 어때?”

“오오, 형!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그래. 유성아. 이렇게 된 거 그냥 말 다 까. 다 친구 하자.”

다니엘 브리토는 단순히 야구 잘하고 사교성 좋은 외국인 선수가 아니었다.

박준수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슈퍼 플레이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가끔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며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런 다니엘 브리토가 박유성의 수비를 보고는 진심으로 감탄해 버렸는데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군기를 잡겠다는 선수가 나올 리 없었다.

하지만 박유성의 쇼타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따악!

따악!

따악!

라이브 배팅이랍시고 송찬우를 상대로 연거푸 장타를 때려내더니 김혜성의 159㎞/h짜리 몸쪽 빠른 공을 잡아당겨 폴대를 직격하며 모두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다음으로 마운드에 올라온 손지원은 무려 8개의 홈런을 얻어맞았다.

마무리 캠프에서 5선발 경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받았지만 박유성 앞에서는 그저 이제 막 고교야구를 졸업한 신인 투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예열(?)을 끝낸 뒤.

박유성은 오후에 펼쳐진 자체 청백전에서 5타수 5안타에 5도루, 5타점, 5득점을 올리며 오유성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날 이후 스타즈 선수들 중 그 누구도 박유성의 실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다가가 박유성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단장님께서 저를 설득하실 때 하셨던 말씀 기억하십니까?”

“박유성 선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지도자는 감독님뿐이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그렇게 말씀하셨죠. 하지만 저는 유성이만의 감독이 되려고 스타즈에 온 게 아닙니다. 솔직히 유성이는 지도자들이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알아서 대성할 녀석이고요. 오히려 저는 유성이가 메이저리그에 간 이후를 보고 있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라…….”

“물론 그때 가서 시행착오를 겪고 서둘러 교통정리를 해도 상관은 없겠죠. 하지만 가능하다면 유성이가 있는 지금부터 단단한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단단한 야구요?”

“야구는 10점 차이로 이기나 1점 차이로 이기나 똑같은 1승입니다. 물론 팬들은 큰 점수 차이로 이기길 바라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한 점 차의 승리를 지킬 수 있고 한 점 차의 승리를 따낼 수 있는 팀이 진짜 강팀이거든요. 저는 스타즈가 그런 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수비란 말씀이신 거죠?”

“거창하게 떠들어댔지만 결론은 그렇습니다. 이미 외야는 유성이와 다니엘 브리토로 완성이 됐습니다. 동엽이는 한두 시즌 지켜봐야겠지만 정 안 되면 영호를 다시 돌려도 되는 거니까요.”

“말씀하시는 걸 보니까 내야가 걱정이신가 보네요.”

“일준이가 잘해주고 있지만 사실 버거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2루수가 시즌 중에도 몇 번이나 바뀌고 있으니까요.”

“그야…… 전임 감독님의 욕심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붙박이 2루수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번에 뽑은 오진욱 선수는 어떻습니까?”

“진욱이는 아직 많이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유성이 덕분에 실력이 급성장하긴 했지만 스타즈의 2루를 책임질 정도는 아닙니다. 백업이라면 몰라도요.”

“그렇다면 2루 쪽의 불안감을 해소해 줄 외국인 선수를 구하는 게 최선이겠네요.”

“아마 딱 맞아떨어지는 선수를 찾긴 힘들 겁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공격보다는 수비를 잘하는 선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유성이가 해외로 나갔을 때 그 간극을 채울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공격력 좋은 외국인 선수를 넣고 2루수는 오진욱 선수로 가겠다는 말씀이신 거죠?”

“진욱이가 됐든 누가 됐든 2루수를 키워내야 합니다. 일준이의 뒤를 이을 유격수도 키워야 하고요. 일단 제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그렇습니다.”

김석률 감독과 대화를 하면서 김재식 단장은 자신이 너무 근시안적이었다는 걸 인정했다.

당장 박유성을 앞세워 우승할 생각만 했지 박유성이 떠난 다음을 어떻게 버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충격은 큰 법.

박유성이 없더라도 최소 포스트 시즌 경쟁이 가능한 전력을 유지하려면 지금부터 스타즈의 미래를 책임져 줄 선수들을 키워내야 했다.

“우리 드라마에 주연은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해 줄 조연이 필요해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대신 계약금은 적당히 주시고 대신 옵션을 최대치로 걸어보세요.”

“열심히 해서 많이 받아 가라는 말씀이시군요.”

“주연만큼 받는 조연은 조연이 아니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