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05화
26. 박유성 선수를 뽑아야 합니다.(2)
신성 제약에서 최근에 출시한 에너지 드링크는 맛과 밸런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타우린 함량 대비 지나치게 비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장 점유율을 좀처럼 높이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도 카페인하고 타우린 때려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진짜 마니아층만 마셔요. 웃긴 건 그 마니아층도 마시는 것만 마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레드 오션이죠.”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맛있네요. 이거.”
“네. 뭔가 에너지 드링크보다는 과일 맛이 첨가된 이온 음료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요?”
“처음에는 좀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었는데 확실히 괜찮은데요?”
“역시. 세계적인 선수는 감각이 다르네요. 이걸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촬영장까지 따라 온 개발팀장은 박유성이 알아줬다며 눈시울까지 글썽거렸고.
그런 개발팀장을 위해 박유성은 평소 잘 마시지 않는 에너지 드링크를 스무 병이나 들이켜야 했다.
“박유성 선수. 고생 많았습니다.”
“이거 두 번은 못 찍겠는데요?”
“아마 다음 촬영 때는 이만큼 마시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아,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촬영이 끝나길 30분 정도 기다렸던 안준혁 팀장이 뒤늦게 서류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타자네요.”
“네. 박유성 선수 덕분에 투수들을 잘 뽑아서요. 이번에도 조언을 구할 겸 찾아왔습니다.”
안준혁 팀장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했다.
앞서 저스틴 스몰과 제이슨 마이너는 박유성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계약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터.
그렇다보니 남다른 안목을 가진 박유성에게 자꾸 기대게 됐다.
따지고 보면 스카우트 팀의 일을 떠넘기는 거나 다름 없었지만 박유성은 기꺼운 마음으로 선수들을 살폈다.
‘가성비 맞춘답시고 이상한 선수 뽑아오면 피차 짜증이니까.’
제이슨 마이너와 저스틴 스몰을 찍어 줬을 때.
박유성은 둘 중 한 명만 데려와도 성공이라 여겼다.
제이슨 마이너가 앞선 회차에서 보여준 임팩트는 올 시즌 로메오 클레멘스 못지않았고.
저스틴 스몰은 장기적으로 1선발 노릇을 해줄 투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카우트 팀에서 자신의 조언대로 두 명을 전부 다 데려왔으니 박유성도 욕심이 생겼다.
‘일단 우리 타선에는 오른손 타자가 필요해. 좌타자는 지금도 충분히 많아.’
아직 스프링 캠프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팬들이 짜놓은 예상 스타팅 라인업에 포함된 좌타자만 5명이었다.
박유성에 다니엘 브리토, 박준수, 이동엽, 최일준까지.
우타자보타 좌타자가 더 많은 상황이었다.
여기에 좌타자를 추가해 버리면 상대 팀에서 좌완 투수들을 표적등판시키려 들 터.
좌투수에게 강한 박유성은 상관없지만 당장 박준수와 다니엘 브리토만 보더라도 우투수 상대 타율보다 좌투수 상대 타율이 2푼 이상 낮았다.
리그 내 우투수와 좌투수의 비율을 감안하면 거의 5푼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의미.
“일단 좌타자는 아닌 거 같아요.”
“실력보다는 타선의 구색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준수 형이나 브리토도 매일 좌타자 만나면 3할 못 칠걸요?”
5명의 후보 선수 중에 좌타자 두 명을 지우고 나니까 세 명만 남았다.
코너 외야수 한 명에 내야수 두 명.
“이 선수는 좌익수만 가능한 거죠?”
“일단 그렇습니다만 에이전트 말로는 우익수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그래 놓고 나중에 못하겠다고 드러누우면 저나 브리토가 우익수로 옮겨야 하잖아요.”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안준혁 팀장은 프로 야구 판에서 박유성을 다른 포지션으로 밀어낼 수 있는 외야수는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박유성은 이미 팬심을 등에 업은 여론에 등 떠밀려 코너 외야로 옮긴 경험이 있었다.
‘그때와는 다르겠지만 굳이 이런 선수를 데려 올 필요는 없지.’
스카우트 팀 내부 평가는 5명 중 1등이었지만 박유성은 그대로 넘겨 버렸다. 그리고는 남은 두 선수 중에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한 블레이크 테일러를 골랐다.
“블레이크 테일러는 주 포지션이 어디인가요?”
“원래 3루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루를 봤고요.”
“유격수도 가능한 거죠?”
“네. 1루수도 가능하고 심지어 포수도 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살아남으려고 악착같이 버텼나 보네요.”
박유성의 혼잣말에 안준혁 팀장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블레이크 테일러에 대한 이력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는데 박유성이 블레이크 테일러의 성격을 단번에 알아 맞춘 것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별명이 악바리라고 합니다. 수비는 어디에 가져다 놔도 평균 이상은 하는데 아쉽게도 공격력이 떨어집니다.”
“타율은 나쁘지 않은데요?”
“대신에 장타율은 형편 없죠.”
“장타야 준수 형하고 브리토, 영호 형이 쳐주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좀 보태고요.”
“박유성 선수까지 합류했으니까 작년보다는 확실히 낫겠지만 그래도 장타력이 있는 선수가 낫지 않을까요?”
“최종 후보로 올린 거면 팀장님도 블레이크 테일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저는 경기 분위기 넘어간 상황에서 홈런 치고 으스대는 선수보다 마지막까지 타구를 향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선수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
“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구단으로 돌아오는 내내 안준혁 팀장은 말없이 운전만 했다.
세 명의 스카우트 팀원 중에 블레이크 테일러를 고집한 건 박태영 대리였다.
블레이크 테일러의 수비 영상을 보고는 이런 선수가 스타즈 내야에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자신과 김학수 대리는 장타력이 떨어진다며 반대했다.
“스타즈 파크는 프로야구 홈구장들 중에서 제일 커. 박준수 선수조차 원정 경기 홈런이 더 많을 정도라고. 그럼 블레이크 테일러는 몇 개나 넘길 수 있을까? 20개는 칠 수 있을까?”
“박준수 선수처럼 원정에서 더 때리면 됩니다. 그리고 블레이크 테일러 선수는 득점권 타율도 좋습니다. 무작정 잡아당기고 보는 타자가 아니에요.”
“그거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 막말로 장타력에 자신 있어 봐. 하나만 걸려라 하는 생각으로 휘두른다고.”
“지금 필드에 빈 자리는 2루수 뿐입니다. 블레이크 테일러는 지난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2루수로 뛰었고요.”
“블레이크 테일러 데려오면 지명으로 못 돌릴 거야. 홈런 20개도 못 치는 타자를 무슨 수로 지명에 넣어? 욕을 얼마나 얻어먹으려고?”
“야구가 홈런이 전부는 아니잖습니까.”
“야구가 홈런이 전부는 아니지. 하지만 박유성 선수처럼 북치고 장구칠 능력 안 되는 용병은 홈런이 전부야. 게릿 부시 봐. 3루에서 나름 잘했지만 홈런 30개도 못 친다고 얼마나 까댔어?”
격렬히 부딪치는 김학수 대리와 박태영 대리 사이에서 안준혁 팀장은 침묵을 지켰다.
마음속으로는 김학수 대리를 지지했지만 외국인 용병 타자 쪽을 맡긴 박태영 대리의 의견도 마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 박유성을 끌어들였던 건데 박유성이 블레이크 테일러를 고를 줄은 미처 몰랐다.
‘혹시 동기인 장태수 선수 때문일까? 아니야. 그렇다면 2루수 자원인 오진욱 선수가 죽겠네. 동기들을 밀어줄 생각이었다면 에스테바스 루이스를 뽑았어야 했어.’
파드레스 트리플 A에서 뛰고 있는 에스테바스 루이스는 유격수 포지션의 오른손 타자였다.
만약에 박유성이 함께 스타즈에 입단한 오진욱과 장태수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던 거라면 주전 유격수인 최일준을 밀어냈을 것이다.
2021년 베어스에 입단한 이후 군복무를 하고 돌아왔다가 곧바로 스타즈의 신생 구단 특별 지명을 받은 최일준은 소위 말하는 반쪽짜리 선수였다.
수비 능력 하나만큼은 국가대표 유격수인 박찬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지만 타격은 멘도사 라인을 겨우 면하는 수준이었다.
반면 에스테바스 루이스는 여러 구단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내야 거포.
수비가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지난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3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왕 경쟁까지 했을 만큼 일발장타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블레이크 테일러는 마이너리그 판 최일준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최일준에 비해 체격도 좋고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낸 시즌도 있으니까 하위 타순에서 중량감을 채워주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에스테바스 루이스보다 나은 공격력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였다.
“이거 머리 아프네.”
답을 내리지 못한 안준혁 팀장은 마지막으로 김재식 단장을 찾아갔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웃으며 말했다.
“안 팀장님은 저희 아버지 같으시네요.”
“네?”
“저희 아버지가 그러시거든요. 본인의 뜻과 제 판단이 맞으면 아들 자식 잘 뒀다고 엄청 좋아하시는데, 제가 본인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내면 못마땅한 티를 팍팍 내시죠.”
“아, 네에.”
“물론 아버지 고집이 옳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제 판단이 맞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도 예전만큼 고집을 부리지 않으시고요.”
“그럼 블레이크 테일러 선수와 계약을 진행할까요?”
“안 팀장님. 스카우트 팀의 리더는 안 팀장님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박유성 선수에게 명단을 보여준 건 박유성 선수가 궁금해 하는 표정을 지어서였습니다. 정말로 조언을 구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박유성 선수가 말한 대로 됐습니다.”
“그럼 믿는 김에 한 번 더 믿어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팀장님이 원하는 선수는 블레이크 테일러도 에스테바스 루이스도 아니지 않습니까?”
김재식 단장의 말처럼 안준혁 팀장은 두 번째로 걸러진 오른 손 외야수 브라이스 텔레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김학수 대리와 박태영 대리는 이동엽을 키워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안준혁 팀장은 박준수-다니엘 브리토-장호영으로 이어지는 클린업보다는 박준수-브라이스 텔레스-다니엘 브리토가 더 파괴력이 클 거라 여겼다.
하지만 김재식 단장은 장타력에 의존하는 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 부시와 다니엘 브리토. 둘 중에 한 명을 고르라면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
“네? 그야 당연히…….”
“다니엘 브리토 선수겠죠. 순수한 장타력은 마이크 부시 선수에게 뒤질지 몰라도 성실하고 헌신적이며 수비도 잘하니까요.”
“제가 뽑아서가 아니라 솔직히 마이크 부시 선수와는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이만큼 잘 할줄 아셨습니까?”
“……네?”
“제가 봤던 기사에는 다니엘 브리토 선수도 중장거리 타자라고 소개가 됐었던데요.”
“그건…….”
뭐라 변명하려던 안준혁 팀장이 입을 다물었다.
당시는 창단 초기라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의 구심점 자체가 없었고 특히나 외야 수비가 엉망이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수비력을 인정받은 다니엘 브리토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정을 떠나 공격력을 배제한 것도 사실이었다.
“블레이크 테일러 선수가 다니엘 브리토 선수처럼 터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외국인 선수들이 얼마나 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용병 농사라고 하겠습니까? 블레이크 테일러 선수가 생각보다 장타를 많이 때려내 줄 수도 있고 에르테바스 루이스 선수나 안 팀장님이 원하는 선수가 죽을 쑤다 퇴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비만 놓고 보면 어떻습니까?”
“수비요?”
“어제 오랜만에 베이스볼 파크를 봤는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스타즈는 외야수를 둘로 제한해야 한다고. 박유성과 다니엘 브리토에 한 명을 더 뛰게 하는 건 반칙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글 밑에 어떤 댓글들이 달렸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박유성 선수에 다니엘 브리토 선수면 어지간한 팀 외야 라인보다 낫다고들 하더라고요. 한 두명이 그러는 게 아니라 거의 대다수가요.”
“아무리 그래도 두 명이서 외야 전체를 커버하는 건 힘들 겁니다.”
“야구팬들이 그걸 모를까요? 지난 4년 간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보여주었던 수비와 이번 올림픽에서 박유성 선수가 보여주었던 수비가 더해지니까 약한 소리를 하는 거겠죠. 시즌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약부터 치는 겁니다.”
“그렇겠네요.”
“어쨌거나 박유성 선수가 들어오면서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우리 팀이 갑자기 수비가 강한 팀이 되어버렸어요. 여기에 만약에 최일준 선수를 도와줄 만한 외국인 용병이 온다면 어떨까요? 우리도 박경호 선수가 있는 랜더스처럼 점수를 주지 않는 야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