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02화
25. 스타즈의 신성(11)
2029 시즌 스타즈의 목표는 최소 포스트 시즌 진출이었다.
파이터즈의 에이스 송찬우가 합류했고.
20억 루키인 박유성과 대졸 최대어 김혜성에 청소년 국대 간판 타자였던 이동엽까지 합류했으니 용병 농사만 잘 지으면 가을 야구는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운이 따라줘야 했다.
올해 드림 리그 포스트 시즌 막차를 탄 이글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다이노스,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히어로즈를 연달아 잡아내고 한국 시리즈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글스 팬들은 작년 트윈스에 이어 올해는 이글스가 일을 낼 차례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로메오 클레멘스라는, 나눔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가로막혀 한국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실패했다.
“결국 단기전은 투수 싸움이야. 타자들이 해주는 건 한계가 있어. 투수 싸움에서 밀려 버리면 답이 없다고.”
스타즈를 포함해 대다수 구단이 이글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외국인 투수 전면 교체에 나섰다.
반면 우승팀인 랜더스는 외국인 투수들과 계속 함께하길 희망했는데 160㎞/h의 강속구를 던지는 레오 로드리게스에 이어 땅볼의 신이라 불리는 로메오 클레멘스까지 잡아내면서 우승 전력을 지켜냈다.
이런 상황에서 어중간한 투수들을 데려와 봐야 랜더스의 벽을 넘지 못할 터.
“김 대리. S급 명단 정리한 거 다시 가져와.”
“팀장님. 걔들은 절대 안 와요. 굶어 죽어도 마이너리그에서 버틸 겁니다.”
“그래봐야 경쟁에서 밀린 애들이야. 열심히 설득하면 한두 명 건지게 될지도 몰라.”
“그냥 현실적으로 픽 하시죠? 자칫 잘못했다가 전부 다 놓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김학수 대리는 눈높이를 높이자는 안준혁 팀장의 의견에 반대했다.
예전처럼 뒤로 몇백만 달러씩 얹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구단이 150만 달러 안에서 용병 선수와 계약해야 하는 상황에서 못 먹는 감을 찔러보는 건 시간 낭비 같았다.
하지만 안준혁 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내년 시즌 중반쯤 되면 한국 오겠다는 애들 나올 거야. 그때 우리가 낚아채려면 지금부터 선을 대야 한다고.”
“아예 교체를 염두에 두고 선수를 선발하자는 말씀이신 거예요? 그건 너무 도박 같은데요?”
“지난해 계약한 24명의 투수들 중에 12명이 조기 퇴출됐어. 올해라고 다를까? 둘 중 하나만 끌고 가도 다행이야.”
“박 대리. 뭐라고 말 좀 해봐.”
갑작스럽게 무리수를 두려는 안준혁 팀장이 답답했던지 김학수 대리가 박태영 대리를 끌어들였다.
그러자 잠시 고심하던 박태영 대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는…… 안 팀장님 계획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야, 박 대리!”
“일단 우리 팀 국내 선발진이 나쁘지 않습니다. 송찬우 선수야 말할 필요도 없고 김혜성 선수는 올해 사고 칠 분위기고요. 손지원 선수도 잘 키우면 홍형태 선수만큼은 해줄 느낌입니다.”
비록 마무리캠프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스타즈의 선발진에 대한 내부 평가는 상당히 후했다.
특히나 입스를 완전히 극복한 김혜성과 고졸 신인답지 않게 빠른 공을 자신 있게 던질 줄 아는 손지원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그러니까 더 안정적으로 가야지. 작년에 랜더스 토종 선발진 합산 승수가 몇 승인 줄 알아?”
“35승 아닙니까?”
“그래. 35승. 5선발이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토종 선발진으로 그만큼 했어. 전체 승리 대비 거의 40퍼센트를 책임진 거라고.”
2028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한 랜더스의 국내 투수 선발승은 12개 구단 전체 1위였다.
다른 구단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나은 건 아니지만.
송찬우나 임찬기처럼 팀을 대표할 만한 토종 에이스도 없고 5선발 자리를 시즌 내내 돌려막으면서도 팀이 거둔 승리(85승) 중에 41퍼센트를 국내 선발진이 만들어줬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컸다.
“우리는 이번 시즌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국내 투수들로요? 못해도 랜더스만큼은 할 겁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송찬우 선수가 최소 15승은 해줄 테고 김혜성 선수도 10승은 무난해 보입니다. 손지원 선수가 관건이긴 한데…… 부족한 승수는 송찬우 선수나 김혜성 선수가 조금씩 더 해주면 될 테고요.”
“송찬우 선수가 15승 이상 해줄까?”
“득점 지원 없는 파이터즈에서도 13승에 15승을 찍었잖아요. 작년에도 10승 찍고 넘어와서 15승 채웠고요.”
“송찬우 선수야 체력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연타도 잘 안 맞고요. 초반 실점해도 7회 이상은 무조건 채우는 투수니까 파이터즈 때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럼 두 사람이 기대하는 최대치는 얼마야?”
“최대치요? 글쎄요. 제 욕심대로라면 송찬우 선수 18승에 김혜성 선수 13승, 손지원 선수 10승?”
“그럼 합산 41승이네. 박 대리는?”
“저도 비슷합니다. 송찬우 선수 18승에 김혜성 선수는 15승쯤 해줄 것 같고요. 손지원 선수는 10승까지는 무리고 8승 정도요.”
“지난 시즌 랜더스 선발진보다 6승은 더 할 거 같다는 거지?”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40승 계산했어. 그래서 제대로 된 용병 선발을 뽑고 싶은 거야.”
국내 선발진에 대한 스카우트 팀의 기대치는 거의 비슷했다.
국가대표 우완 에이스인 송찬우에게 조금 더 승운이 따르고.
김혜성이 마무리 캠프 때 보여줬던 구위로 타자들을 찍어 누르면서 손지원이 풀타임으로 5선발 자리를 지켜주기만 한다면 토종 선발 40승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가셔야죠. 작년 시즌 포스트 시즌 마지노선이 75승이었습니다. 그중에 선발 승리 80퍼센트쯤 잡으면 60승입니다. 우리 기대만큼 국내 투수들이 40승을 해주면 외국인 용병 투수들은 평균만 해줘도 충분합니다.”
“그 계산대로라면 10승짜리 외국인 선발 투수를 두 명 뽑자는 건데 전반기에 5승도 못 넘기면 바로 퇴출 아니야?”
“말이 그렇다는 거죠. 외국인 투수 저희만 뽑는 거 아닙니다. 한정된 풀에서 랜더스 뺀 11개 구단이 전부 달려드는데 계약할지도 모를 S급 선수들 탐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김학수 대리가 열변을 토했다.
지원이 부족한 파이터즈에서 외국인 선수들 스카우트를 담당해 온 터라 스타즈에서 제대로 된 용병 선수를 뽑고 싶은 욕심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안준혁 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난 잘하면 올해 우리가 통합 우승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네? 통합 우승이요?”
“박유성 선수 합류했다고 너무 높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물론 박유성 선수가 얼마만큼 해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꿈이 큰 거 맞아. 하지만 두 사람 다 말했잖아? 국내 선발진으로 40승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만약에 거기에 15승짜리 외국인 선발 둘을 보태면 어떻게 될까?”
“그럼 합산 선발승이 70승이니까 랜더스하고 우승 경쟁도 가능하겠죠.”
“만약에 둘 중에 한 명을 20승 짜리로 뽑으면?”
“그럼…… 우리가 우승인데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야.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난 우리 팀 타선이 정말 강해졌다고 생각해. 선발진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팀장님 말씀은…… 밥상이 잘 차려졌으니까 숟가락만 얹지 말고 스카우트 팀에서 메인 디시 하나 밀어 넣자는 거죠?”
“나는 그랬으면 좋겠는데…… 김 대리는 반대야?”
“아니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야죠. 포스트 시즌만 진출하면 된다고 하시니까 제가 목표를 낮게 잡은 거잖아요.”
뒤늦게 안준혁 팀장의 속내를 확인한 김학수 대리가 볼멘 목소리를 냈다.
아직 선수단 파악조차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 우승을 운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말조심을 하고 있었지만.
김학수 대리도 송찬우가 있는 올해가 통합 우승의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송찬우 선수가 MVP 찍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MVP?”
“송찬우 선수가 국대에서 더 잘 던지는 이유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일종의 동기 부여가 된다는 거지?”
“네. 이번 시즌 끝나고 해외로 나갈 예정이라면 진짜 이 악물고 할 겁니다. 용병까지 잘 뽑아서 초반부터 우승 경쟁 하면 아마 국대 버전 송찬우 나올걸요?”
“이건 뭐 말만 들으면 우승 확정인데요?”
“그래서 용병 농사가 한 시즌 성적을 좌지우지한다고 하는 거야. 그만큼 우리가 잘해야 한다고.”
내부 의견을 정리한 스카우트 팀은 원점에서 다시 외국인 투수 선발을 시작했다.
“이 선수는 최소 200만 달러는 줘야 움직일 겁니다.”
“200만 달러 정도면 가능하지 않겠어? 집에 차까지 지원해 주는데?”
“이 선수는 어떻습니까? 제구가 좀 불안하긴 하지만 좌완에 158㎞/h까지 나옵니다.”
“나이가 좀 많은 것 빼고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예상 금액이 얼마야?”
“300만 달러요.”
“흠……. 일단 리스트에 넣어봐.”
“이러다 1천만 달러까지 올라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다른 구단들은 몸값이 비싸서 거들떠보지 않는 S급 매물들 중에 10명을 추린 안준혁 팀장은 조심스럽게 단장실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단장실에 박유성이 앉아 있었다.
“박유성 선수가 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아닙니다. 그냥 사담 중이었으니까 들어오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박유성과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 받은 뒤 안준혁 팀장이 리스트업 된 용병 투수 명단을 내밀었다.
“이거 지난번에 보여주신 것과 다른 것 같은데요?”
“네. 그때는 현실적으로 계약 가능한 선수들 중에서 추렸고요. 이번에는 눈높이를 조금 더 높였습니다.”
“눈높이를 높여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잔류하지 않았습니까. 올 시즌 랜더스와 순위 싸움을 해보려면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에 견줄 만한 투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흠……. 그런데 예상 계약 금액이 다들 높네요.”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니까요. 그중에서 아시아 리그에 관심을 갖는 선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20억 슈퍼 루키라 해도 스타즈 구단 관계자는 아니다 보니 자리를 피하거나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있어야 했지만.
박유성은 안준혁 팀장이 건넨 리스트가 궁금했다.
‘내가 또 용병 투수 쪽은 빠삭한데.’
프로 야구판에서 40년을 뛰면서 박유성은 수많은 용병 투수들을 겪어왔다.
당연하게도 누가 한국으로 넘어오는지부터 시작해 실제 실력이 어느 정도이며 평판이 어떤지까지 전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미친 척하고 보여달라고 말할까? 아니야. 일단 안 팀장님 나가고 나서 분위기를 보자.’
건방진 신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박유성은 나름 호기심을 꾹 억눌렀지만.
그런 박유성을 제법 지켜봐 온 김재식 단장은 박유성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
“박유성 선수가 한번 추천해 줄래요?”
“네? 제가요?”
“그냥 한번 쭉 보고 괜찮겠다 싶은 선수들 있으면 말해주세요. 참고만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