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00화 (200/412)

타자 인생 3회차! 200화

25. 스타즈의 신성(9)

“지금 이 자리에 썬이 와 있네요. LA 올림픽의 MVP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신기한데요? 그래서 썬에게 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괜찮겠죠?”

로메오 클레멘스가 사회자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렇지 않아도 박유성의 참석 소식을 언급하고 싶었던 사회자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고.

로메오 클레멘스는 골든 글러브 트로피를 든 채로 단상 앞까지 나와 박유성을 내려다봤다.

“썬. 크리스 반스의 공은 때려냈을지 몰라도 내 공은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캠프 때 열심히 하라고.”

프로필 상 로메오 클레멘스의 키는 195㎝.

험상궂은 얼굴로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도 갱스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거구의 선수가 위협하듯 깔보면 어지간해서는 주눅이 들게 마련이었지만 정작 박유성은 피식 웃고 말았다.

‘뭐래. 올림픽은 나와보지도 못한 주제에.’

로메오 클레멘스가 내려가고 박유성은 옆에 앉은 송광철 대표에게 물었다.

“내년 시즌 첫 경기가 어디예요?”

“스타즈가 4위를 했으니까 랜더스나 타이거즈, 트윈스 셋 중 한 팀하고 붙겠지?”

“그건 저도 알아요.”

“왜? 개막전에 랜더스하고 붙고 싶어?”

“역시 아저씨는 제 성격을 아시네요.”

“아직 일정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랜더스전이 유력할 거야.”

“그럼 기사 하나만 내주세요.”

“무슨 기사?”

“쟤 일본에서도 오퍼 들어오잖아요.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찬가지고. 도망치지 말라고 해주세요.”

박유성의 말에 송광철 대표는 헛웃음을 흘렸다.

로메오 클레멘스는 평범한 외국인 투수가 아니었다.

스타즈에서 애지중지하는 다니엘 브리토와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아시아 시장으로 넘어오는 과정도 달랐다.

1999년생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드래프트를 통해 자이언츠에 입단한 후 2022년 후반기에 콜업되어 3승 2패, 3.55의 가능성을 보여준 뒤 3년 연속 풀타임을 뛰며 자이언츠의 영건으로 활약했다.

승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평가 속에서도 2025시즌에는 12승 6패 2.66의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후보에 올랐고.

2026시즌 초반에는 5연승에 1점대 평균 자책점으로 사이영 상에 대한 기대감을 드높였다.

하지만 6번째 등판에서 하드 싱커를 던지다가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 버렸고.

그 길로 수술대에 오르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자이언츠 구단은 로메오 클레멘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려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이언츠에 입단해 자이언츠 팜에서 성장한 미래의 에이스를 이대로 잃을 생각은 없다며 팬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정작 로메오 클레멘스는 재활이 끝나가던 2027년 초, 자이언츠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다.

‘지금 자이언츠에는 내 자리가 없습니다. 나는 내 팔꿈치를 단련할 환경이 필요해요. 아시아에서 뛰겠습니다.’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로메오 클레멘스의 구속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었던 자이언츠 구단은 연봉 조정 권한을 가지고 있던 로메오 클레멘스를 지명 할당 조치했다.

그리고 로메오 클레멘스는 모든 조건을 감내하겠다는 랜더스와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로메오 클레멘스는 평균 이하의 외국인 투수였다.

고작 24경기에 선발 등판해 10승 9패, 평균 자책점 3.55를 기록했으니 랜더스 팬들 입장에서는 침수 차를 비싼 값에 산 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로메오 클레멘스는 연봉 동결도 불사하고 랜더스에 남겠다는 뜻을 밝혔고.

랜더스도 후반기 들어 구위가 살아난 로메오 클레멘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걸었다.

그 믿음에 부응하듯 로메오 클레멘스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나눔 리그 투수 부분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승률)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로메오 클레멘스의 반등에 흥분한 랜더스 구단주 정영진 회장은 일찌감치 장기 계약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일본의 인기 구단들이 앞다투어 러브콜을 보낸 상태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원소속 구단인 자이언츠를 비롯해 여러 구단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구단주가 잡겠다고 선언했으니까 어지간하면 국내에 남을 거야.”

“그건 모르는 거죠. 메이저리그에서 똑같은 조건을 보장해 준다면 메이저리그에 가지 않을까요?”

실제로 1회차와 2회차 시절 로메오 클레멘스는 미국 복귀를 선언했다.

그러다 박유신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에 은퇴를 해서 어떻게 지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만약 이번 3회차에도 로메오 클레멘스가 다른 리그로 이적을 해버린다면 큰일을 보고 제대로 닦지 않은 찜찜함을 달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기사를 낸다고 로메오 클레멘스가 마음을 바꿀까?”

“그러니까 자극적으로 내주셔야죠.”

“뭐라고?”

“그냥 욕은 제가 먹을 테니까 이대로 기사 내주세요. 크리스 반스를 운운해서 미국 대표팀에 뽑힌 투수인 줄 알았다고요.”

“유성아. 그건…….”

“그대로 내주세요. 저 아직 미성년자잖아요. 이 정도로 까부는 건 팬들도 귀엽게 넘어가 줄걸요?”

다른 에이전트라면 박유성을 어떻게든 뜯어말렸겠지만 송광철 대표는 달랐다.

‘보나 마나 로메오 클레멘스가 떠들어댄 말 가지고 한동안 염병을 떨 테니까 유성이 말대로 그냥 맞불을 놓자. 욕이야 내가 먹으면 되는 거니까.’

예상대로 골든 글러브 시상식이 끝나고 기자들이 몰려들자 송광철 대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했다.

“혹시 오늘 시상식에 별도로 초대를 받은 건가요?”

“오늘 시상식이요? 이미 기사로 나갔지만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저희 송 에이전시의 새 식구가 됐습니다. 거기다 박준수 선수도 생에 첫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죠. 그래서 두 선수를 축하해 주기 위해 온 겁니다.”

“박유성 선수가 다니엘 브리토 선수와 친한가요?”

“기자님 SNS 안 하십니까? 사진 찍은 거 올라갔을 텐데요? 캠프 때 다니엘 브리토 선수하고 박유성 선수하고 꼭 붙어 다녔잖습니까. 요즘 박유성 선수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브리토 선수하고 영어로 농담 따먹기 하는 게 목표라면서요.”

“다니엘 브리토 선수는 물론이고 박준수 선수도 박유성 선수의 합류로 스타즈의 전력이 강화됐다고 말했는데요.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유성 선수가 스타즈 전력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실망인데요. 우리 박유성 선수가 아무리 신인 선수여도 그렇지 올림픽에서 MVP까지 받았는데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닙니까?”

“무시는 지금 대표님이 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요?”

“제가 누구를 무시했는지 소속과 성함을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처음 뵙는 기자님이라서요. 김 팀장. 이것 다 찍고 있죠?”

송광철 대표가 고개를 돌려 구석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찬혁 팀장이 캠코더를 든 채로 다가왔다.

“그럼요, 대표님. 다 찍고 있습니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저희 송 에이전시에서 미튜브 채널을 준비 중이라서요. 채널에 올릴 영상을 찍고 있습니다. 가끔 악의적으로 인터뷰 내용을 왜곡해서 보도하는 기자님들 때문에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니까 염려하지 마시고요. 아까 박유성 선수가 스타즈 전력에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하신 기자님 소속이 어디라고 하셨죠?”

“그렇게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그럼 뭐라고 질문하셨는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찬혁 팀장이 캠코더를 들이밀자 모종의 지시를 받고 나선 여기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기사로 나가는 멘트는 뉘앙스를 숨길 수 있지만 영상으로 나가는 건 달랐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 해도 박유성을 무시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가 없었다.

“대표님 이런 식으로 인터뷰하지 마세요.”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인터뷰 약속을 잡지도 않고 무턱대고 핸드폰 내민 사람이 누구입니까?”

“박유성 선수는 공인입니다. 인터뷰에 응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아직 미성년자고 이제 막 입단한 신인 선수죠. 저는 그런 박유성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에이전트고요.”

여기자를 두둔하듯 나선 동료 기자가 눈을 부릅뜨자 송광철 대표가 캠코더를 한 번 바라보며 말했다.

“암튼 이 영상을 그대로 미튜브 채널에 올려놓고 반응을 지켜보겠습니다. 현명한 야구팬분들이 어느 쪽 말이 맞을지 판가름해 주시겠죠.”

송광철 대표가 미튜브를 앞세워 으름장을 놓자 기자들이 동시에 침묵했다.

다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야구팬들 앞에서 자신들의 민낯을 깔 용기는 없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런 기자들의 얼굴을 쑥 훑던 송광철 대표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때 오선 스포츠 정윤철 기자가 냉큼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대표님.”

“소속과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하아. 오선 스포츠 정윤철 기자입니다.”

“누군가 했더니 정윤철 기자님이셨네요. 말씀하세요.”

“아까 로메오 클레멘스가 한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구요?”

“로메오 클레멘스요. 올 시즌 MVP와 나눔 리그 투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투수요.”

골든 글러브 시상식 전주에 열린 MVP 시상식에서 로메오 클레멘스는 민병규를 더블스코어로 제치고 2028시즌 나눔 리그 MVP를 차지했다.

민병규가 포스트 시즌에서 날아다니며 랜더스의 통합 우승에 크게 이바지하긴 했지만 애석하게도 MVP와 신인상은 오롯이 정규 시즌 성적만 가지고 투표했다.

그런 로메오 클레멘스의 이름을 못 알아듣는 척 구는 것 자체가 어이없었지만 정윤철 기자는 뭐라도 하나 건지겠다는 심정으로 손에 쥔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러자 송광철 대표가 이때다 싶어 미끼를 물어주었다.

“아까 박유성 선수가 그러더라고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잘했냐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크리스 반스는 미국 대표팀의 에이스 투수이고 메이저리그 전체를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투수다. 하지만 로메오 클레멘스는…… 나도 잘 모르겠다.”

송광철 대표의 너스레에 몇몇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라 불리는 게릿 벌렌더와 크리스 반스를 연거푸 두들긴 박유성에게 그들보다 못한 로메오 클레멘스가 시비를 거는 게 우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윤철 기자는 이때다 싶어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를 모르십니까?”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잘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 잘 던지긴 했는데 글쎄요. 그랬다면 미국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을까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미국 대표팀에 합류하기를 희망했다고 하던데 결과가 어떻게 됐나요?”

“그건…….”

“그런데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 말입니다. 랜더스에 남는 거죠? 설마 이대로 떡밥만 던져놓고 도망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말들은 박유성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송광철 대표는 마치 자신이 발끈해서 떠든 것처럼 기자들에게 내뱉었다.

그리고 그 발언들은 곧바로 기사화됐다.

[송광철 대표, 로메오 클레멘스가 잘했다면 미국 대표팀에 뽑혔을 것.]

[박유성 에이전트 송광철 대표 실언 남발. 로메오 클레멘스가 누구죠?]

[송광철 대표. 로메오 클레멘스가 랜더스에 남기를 바란다. 도발에 맞대응.]

[슈퍼 루키 vs MVP 투수 맞대결 성사되나? 로메오 클레멘스 잔류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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