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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98화 (198/412)

타자 인생 3회차! 198화

25. 스타즈의 신성(7)

애리조나 캠프에 도착했을 때 다니엘 브리토는 구단 직원을 통해 김석률 감독에게 부탁했다.

“식사는 편하게 하고 싶다고?”

“국내 선수들에게는 애리조나가 외국이지만 다니엘에게는 고국이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와서 한국식 식사를 하는 건 곤욕일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성공한 외국인 선수들처럼 다니엘 브리토도 먹는 걸 가리지 않았다.

가끔 슬럼프에 빠졌다 싶으면 반성의 의미로 매운 떡볶이를 시켜서 씩씩거리며 먹어댈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니엘 브리토의 식성이 한국식으로 바뀐 건 결코 아니었다.

“그래. 미국에 왔는데 먹고 싶은 걸 먹게 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포지션 변경에 대한 양해를 구해야 했던 김석률 감독은 다니엘 브리토의 자율 식사를 허락했고.

다니엘 브리토는 점심 저녁으로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으며 메이저리그에는 없는 마무리 캠프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박유성이 갑자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테스트가 오늘이야? 왜 얘기를 안 해준 거야?”

“난 오늘 썬이 오는 줄도 몰랐다고.”

“젠장할. 암튼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박유성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바로 캠프로 넘어올 줄 몰랐던 다니엘 브리토는 한국에서 즐겨 마시던 유산균 요구르트를 단숨에 들이켰다.

오늘 테스트가 있는 줄도 모르고 과식을 했으니 장이라도 비워야 몸이 좀 가벼워질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돌아왔는데 박유성이 터무니없는 서커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좌중간으로 깊숙이 뻗어 나가는 타구를 사선으로 내달려 잡아내더니.

유격수 키를 살짝 넘기는 드롭성 타구에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서는 중견수 머리 뒤쪽으로 넘어가는 타구를 쫓았다.

물론 박유성이 보여준 수비는 자신도 전부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저 수비들을 연달아 펼쳐내는 건 야구의 신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때 구단 직원이 핸드폰을 들고 다니엘 브리토에게 다가왔다.

“다니엘. 한국에서 전화 왔어.”

“한국? 내 에이전트?”

“할 얘기가 있다니까 받아봐.”

다니엘 브리토는 멍한 얼굴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김찬혁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니엘. 지금 캠프에 썬이 왔다면서?

“어, 그래. 지금 펑고 연습 중이야.”

-미안해, 다니엘. 썬이 바로 캠프에 합류할 줄은 몰랐어.

“…….”

-화난 건 아니지? 아무튼 오늘 테스트를 한다고 하면 거절해. 이건 약속 위반이야.

김찬혁 대표가 일부러 언성을 높였다.

김재식 단장과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테스트를 보겠다고 합의한 건 없지만 최소한 에이전트인 자신에게는 언질을 줬어야 했다.

하지만 다니엘 브리토는 더 이상 테스트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킴. 나는 괜찮아.”

-다니엘. 내 말 들어. 내가 바로 갈 테니까 그때까지 테스트를 미뤄.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럴 필요 없다니? 설마 테스트에 응할 생각이야?

“테스트는 보지 않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졌어. 킴. 저 녀석은 미쳤어. 난 썬처럼 내 몸을 던질 수가 없어.”

야구 선수는 자영업자다.

그리고 몸이 재산이다.

부상을 당하면 경기에 뛸 수가 없다.

경기에 뛰지 못하면 계약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지난 4년간 용병으로 살면서 다니엘 브리토는 제 몸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시즌 초에 계약한 친구들 중에 30퍼센트 정도가 부상으로 퇴출을 당했기 때문이다.

150만 달러에 계약한 선수라면 운이 나빴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은 뒤에 다음 기회를 노리겠지만.

다니엘 브리토는 무려 300만 달러라는 연봉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수령하는 보너스만 50만 달러 정도였다.

무상으로 제공되는 집과 차에 의료 혜택 지원까지 감안하면 500만 달러 이상이었다.

과연 메이저리그로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해.’

2년 전 0.335의 타율과 35개의 홈런, 104타점, 23도루로 외야수 부분 골든 글러브를 받았을 때.

다니엘 브리토는 메이저리그 유턴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스타즈 구단에서 장기 계약을 제안했지만 같은 조건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에이전트를 통해 받은 계약 조건은 형편없었다.

“스플릿 계약?”

“일단 들어봐. 스프링 캠프에서 눈도장만 받으면 바로 25인 로스터 안에 들 수 있어. 그럼 최소 200만 달러라고.”

“만약에 25인 로스터 안에 못 들면?”

“그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거나 다른 팀을 찾아봐야겠지.”

에이전트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고 판단한 다니엘 브리토는 그 자리에서 에이전트를 해고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시절에 알고 지내던 스카우트에게 대신 계약을 부탁했다.

하지만 다시 한 달이 걸려 받은 제안은 에이전트가 받아온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최선이에요?”

-다니엘. 아시아 리그에서의 성적은 그저 참고용에 불과해. 게다가 너 혼자 잘한 게 아니잖아? 비슷비슷한 성적을 낸 선수들이 많으면 좋은 조건을 받아낼 수가 없어.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다니엘 브리토는 스타즈 구단의 4년(2+2년) 계약에 군말 없이 사인했다.

그리고 벌써 앞선 2년의 계약을 마쳤다.

계약 당시 스타즈 구단은 다니엘 브리토를 위해 옵트 아웃 조건을 넣어주었다.

본래 추가 2년 연장을 결정하는 건 구단의 몫이지만 다니엘 브리토가 메이저리그로 돌아가거나 일본 리그에 도전한다면 얼마든지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타즈에서 4년을 뛴 다니엘 브리토는 스타즈를 떠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지금처럼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니엘 브리토는 박유성에게 호락호락 중견수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환호하며 평생 스타즈에 남아달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선수가 중견수를 봐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타구를 쫓아 달리는 박유성의 투지만큼은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다니엘.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봐.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단지 내가 처음 스타즈에 들어왔을 때처럼 타구를 향해 몸을 던질 수 있다고 착각했을 뿐이야.”

-착각이라니?

“킴. 난 이제 서른이야. 내가 앞으로 몇 년 더 야구를 할지 모르겠지만 난 스타즈가 좋아. 남은 2년 계약이 끝나도 계속 스타즈에서 야구를 하고 싶어.”

-연장 계약이라면 걱정하지 마. 테스트를 본다고 해서 스타즈가 감정적으로 나오지는 않을 거야.

“내가 예전만큼 열정적이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야. 아무튼 감독에게 말해서 포지션 변경을 받아들이겠어.”

-다니엘.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킴. 네가 말했잖아? 영리하게 굴면 스타즈도 좋아할 거라고. 물론 그렇다고 계약 때문에 경쟁을 포기하는 건 아니야. 지금의 나로서는 썬을 이길 수가 없어.”

다른 에이전트라면 해보지도 않고 약한 소리를 한다며 다니엘 브리토를 다그쳤겠지만.

통역으로 시작해 4년이라는 세월을 부대낀 김찬혁 대표는 다니엘 브리토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니엘 브리토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선수였다.

오리올스에서 보다 어린 유망주를 키우겠다며 다니엘 브리토를 외면하자 쌍욕을 날리고는 곧바로 타국 리그를 알아봤을 정도였다.

그런 다니엘 브리토가 테스트를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다는 건 박유성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의미.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 스타즈에 처음 들어왔을 때라면 테스트에 응할 거야?

“당연하지. 그때라면 내가 납득할 때까지 몸을 던졌을 거야.”

-납득할 때까지?

“내가 아까 말했잖아. 저 녀석은 미쳤어. 감독이 말도 안 되는 펑고를 때리고 있는데 그걸 전부 받아내고 있다고.”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어쨌거나 합리적인 선택을 해줘서 고마워, 다니엘. 포지션 변경 건은 내가 단장님께 직접 얘기할게.

통화를 마친 김찬혁 대표는 곧바로 김재식 단장에게 다니엘 브리토의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김재식 단장은 펑고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던 김석률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옥의 펑고는 끝나셨습니까?

“이것도 오랜만에 하니까 힘드네요.”

-제자라고 살살 하신 거 아니죠?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오랜만에 하니까 힘들다고요. 펑고도 체력과 정신력이 좋아야 힘 조절이 가능합니다. 갑자기 유성이 녀석이 펑고 때려달라고 해서 마음의 준비도 못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저 얄미운 녀석이 다 잡아내더라고요. 왠지 유성이가 제 펑고 패턴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석률 감독이 쓰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 입에서 봐줬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펑고를 때렸는데도 김재식 단장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건 누군가 불만을 가졌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냉큼 말을 받았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닌데 제가 오해를 하게 해드렸네요. 방금 다니엘 브리토 선수 에이전트에게 전화왔습니다.

“그래요?”

-박유성 선수 펑고 받는 거 보고 크레이지 보이란 소리가 나왔답니다.

“다니엘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소화할 텐데요?”

-하지만 다니엘 브리토 선수는 서른입니다. 가장이고요. 자신의 몸을 아끼면서 야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중견수는……?”

-네.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좌익수로 가기로 했습니다.

“잘됐네요. 끝까지 승복 안 하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김석률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다니엘 브리토와 박유성이 공생하게 됐으니 감독으로서 대만족이었다.

-어쨌거나 다니엘 브리토 선수는 잔류가 확정이니까요. 조만간에 기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외국인 선수들도 잘 뽑아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독님.

그로부터 이틀 후.

베이스볼 패치를 통해 스타즈의 애리조나 캠프 소식이 전해졌다.

[(포토) 우리 브리토가 달라졌어요.]

[박유성과 함께 몸을 풀며 활짝 웃는 다니엘 브리토.jpg]

[스타즈 외야진의 교통정리가 끝이 났다.

최연소 성인 국가대표 주전 중견수인 박유성이 스타즈에 합류하면서 프로 야구 최고의 중견수라 불리던 다니엘 브리토와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스타즈 구단은 다니엘 브리토를 좌익수로 옮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니엘 브리토는 테스트를 통해 우열을 가리길 원했고 스타즈 구단이 받아들이면서 박유성도 미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곧 바로 캠프에 합류했다.

하지만 모두가 기대했던 테스트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유성의 펑고 수비를 지켜본 다니엘 브리토가 박유성의 실력을 인정해버린 것이다.

“썬의 수비요? 제가 평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 가더라도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을 겁니다.”

지난 4년간 지켜온 스타즈의 중견수 자리를 양보했지만 다니엘 브리토의 표정은 밝았다.

박유성이 다니엘 브리토와 영어로 대화를 해주기 때문이었다.

“썬의 영어 실력이요? 나쁘지 않아요. 물론 아직 진지한 대화는 무리지만 금방 늘 겁니다. 제가 선생님이니까요. 하하하하.”

올해 골든 글러브가 유력한 다니엘 브리토가 좌익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스타즈는 프로 야구 최강의 외야 수비진을 확보하게 됐다.

아직 세 명의 외국인 선수를 새로 채워야 하지만 다니엘 브리토를 스타즈로 데려왔던 안준혁 스카우트 팀장이 복귀한 만큼 올 시즌보다 용병 농사가 나아질 거라는 팬들의 기대감이 상당하다.

한편 스타즈 선수단은 29일 훈련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캠프를 마친 뒤에 30일에 김포 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다른 구단들보다 일찍 전력 다지기에 들어간 스타즈가 내년 시즌 어떤 성적을 낼지 벌써 귀추가 주목된다.]

[베이스볼 패치 공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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