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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96화 (196/412)

타자 인생 3회차! 196화

25. 스타즈의 신성(5)

“정확하게는 좌익수입니다. 우익수는 이동엽 선수를 생각하고 있어서요.”

“그럼 게릿 부시 선수와 재계약하지 않고 장영호 선수를 3루로 돌리시는 겁니까?”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장영호 선수도 외야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고요.”

2년 전 드래프트 1라운드로 데려온 장영호는 휘명 고등학교 4번 타자 출신이었다.

주 포지션은 1루수고 프로 입시를 위해 3학년 때부터 3루수로 전향했는데 정작 박흥선 감독은 내야수로 쓰기에는 유연함이 떨어진다며 우익수로 보내 버렸다.

당시 팬들은 박흥선 감독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3루나 코너 외야나 고생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임. 그렇다면 밀어줄 수 있는 코너 외야가 낫다고 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시켜보지도 않고 외야로 돌린다고 하는데 3루는 구멍 뚫리면 망합니다. 그나마 우익수는 공만 잘 쫓아다니면 되고요.

└아직도 박흥선 감독 결정에 딴지 거는 애들은 스타즈 팬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브리토의 수비 범위가 넓으니까 장영호도 우익수가 더 편할 거임.

하지만 정작 장영호는 올해까지도 라이너성 타구 판단에 애를 먹고 있었다.

“장영호 선수는 핸들링이 좋은 선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내야 수비가 불가능한 선수도 아니죠.”

“저도 개인적으로는 장영호 선수가 3루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비해 올해 몸무게가 더 늘어서 그런지 몰라도 외야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벅차 보였습니다.”

이제는 제3자가 된 김찬혁 대표가 보기에도 장영호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박준수보다 키는 작은데 몸무게가 5㎏이나 더 나가는 터라 외야보다는 내야가 나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영호가 계속 우익수로 뛰었던 건 외국인 타자 게릿 부시가 3루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릿 부시 선수는 파이터즈로 가는 겁니까?”

“그건 아직 모릅니다. 박흥선 감독님이 원한다 해도 파이터즈에서 게릿 부시 선수의 몸값을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나름 검증이 됐으니까 새 선수 뽑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하하. 말씀하시는 걸 보니까 정말 에이전트가 다 되셨습니다.”

“어이구. 저도 모르게 그만 건방을 떨었네요.”

“아닙니다. 저도 김 대표님하고 같은 생각입니다.”

스타즈의 원년 외국인 타자인 마이크 부시가 골든 글러브 시상에 불만을 표출하고 일본으로 가버리자 스타즈 구단은 다급히 대체 용병 찾기에 나섰다.

그때 수많은 타자가 물망에 올랐는데 박흥선 감독이 게릿 부시를 고집했다.

항간에는 마이크 부시를 못 잊은 박흥선 감독이 성이 같은 게릿 부시를 뽑은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지만.

결과적으로 게릿 부시는 어느 정도 제 몫을 해주었다.

핫 코너라 불리는 3루수에서 견고한 수비를 보여주었고.

5번 타자로 출전해 2할 후반과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냈다.

비록 프로야구 12개 구단 중에 모기업의 투자가 가장 많은 스타즈 팬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퇴출이 확정됐지만.

외국인 타자는 없는 셈 친다는 파이터즈 기준에서는 충분히 괜찮은 선수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무슨 소문 말씀이십니까?”

“전임 감독님이 게릿 부시를 3루로 두고 지명타순에 편애하는 선수들을 썼다는 소문 말입니다.”

“그건 소문이 아니라 팩트 아닌가요?”

2025년부터 스타즈에서 뛴 게릿 부시는 올해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게다가 구단에 대한 충성심도 높고 팬 서비스도 좋은 편이었다.

게릿 부시보다 무조건 좋은 타자를 뽑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성적만으로 게릿 부시를 포기하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하지만 박흥선 감독의 흔적들을 전부 지워내기로 마음먹은 김재식 단장은 일찌감치 게릿 부시의 재계약 불가를 결정했다.

“스타즈는 신생 구단이지만 생각보다 많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 고인 물을 다시 흐르게 하려면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하고요.”

“단장님께서 이번에 제대로 칼을 뽑아 드신 것 같습니다.”

“창단 초반에 고생한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제 스타즈도 스타즈 키즈들 중심으로 팀을 개편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2024시즌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들 중에 올해까지 살아남은 선수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박흥선 감독의 눈에 들어 주기적으로 출전 기회를 보장받던 선수들조차 김석률 감독 체제에서 예외 없이 벤치로 밀렸다.

신생 구단 특례를 통해 울며 겨자 먹기로 스타즈로 넘어온 선수들은 속이 쓰리겠지만 해당 선수들은 대부분 원소속 구단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경쟁력이 없어서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보니 스타즈에서 새로 키워낸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김재식 단장은 그 흐름에 확실히 힘을 실어줄 생각이었다.

“저는 박유성 선수가 송현민 선수처럼 트윈스 팬들에게 사랑받길 바라고 있습니다.”

“송현민 엔딩 말씀하시는 거죠?”

“네. 당장 내년은 힘들지 몰라도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떠날 때쯤 통합 우승이 가능한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때 스타즈에 몸담았기에 그런지 몰라도 벌써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그래서 다니엘 브리토 선수에게도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재식 단장이 다시 분위기를 바로잡았다. 그러자 김찬혁 대표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흠……. 그럼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좌익수와 지명 타자뿐인데 다른 외국인 선수를 지명 타자로 뽑을 생각이십니까?”

“그건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2루나 유격수로 뽑아도 상관없는데 일단 타격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지명으로 가고 코너 외야수를 새로 뽑는 계획도 가지고 계실까요?”

“물론 있습니다. 다만 괜찮은 코너 외야수가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지명타자로 뛰어줄지도 의문이고요.”

다니엘 브리토는 박유성 못지 않은 역동적인 수비로 스타즈 팬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공격이 안 풀릴 때는 수비를 통해 어떻게든 팀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선수에게 지명타자를 권유하는 건 그동안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었다.

“일단 구단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들어오니까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겠고요. 에이전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저도 박유성 선수를 중견수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에이전트로서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기회라 하시면……?”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박유성 선수를 위해 중견수 자리를 포기하도록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테스트가 필요하고요.”

“그러니까 누가 더 중견수 수비를 잘하는지 공정하게 테스트를 진행해 달라는 겁니까?”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그러더라고요. 박유성 선수가 자신보다 중견수 수비를 더 잘 본다면 얼마든지 센터를 양보할 수 있다고요.”

다니엘 브리토는 현 프로 야구 중견수들 중에서 수비를 가장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오리올스 시절에도 수비만큼은 메이저리그 톱클래스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

반쪽짜리 외야수인 장영호를 대신해 우중간을 홀로 커버하다시피 했으니 어지간한 선수로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겠지만 상대는 박유성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박유성 선수를 마무리 캠프 후반에 합류시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마무리 캠프 끝나고 국내에서 진행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다니엘 브리토 선수에게 불리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 정도 패널티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까?”

김찬혁 대표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제아무리 올림픽에서 날아다닌 박유성이라 해도 경험이 많은 다니엘 브리토를 이기긴 힘들 거라 여겼는데 김재식 단장의 반응을 보니까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한국은 날이 찹니다. 두 선수 중에 누구라도 무리해서 다치면 스타즈만 손해 아닙니까?”

김찬혁 대표는 자신의 요구 때문에 일이 커진 것 같아 미안해했지만 김재식 단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박유성의 마무리 캠프 불참을 두고 말들이 나오던 차였다.

정식 계약을 하지 않은 선수를 마무리 캠프에 데려갈 수 없으니 당연한 노릇이지만 다른 신인 계약 선수들이 전부 참가한 마무리 캠프에 박유성만 빠졌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송광철 대표에게 마무리 캠프 합류를 조심스럽게 권유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유성이도 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감독님께 인사도 드릴 겸 며칠이라도 좋으니까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날짜 정해주시면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보름 남짓하는 일정도 아니고 김석률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11월 30일까지 25일간 진행되는 초장기 마무리 캠프이다 보니 박유성이 불참하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사흘 후 항공권을 예매했는데 비행기값이 아깝지 않을 이벤트가 생겨 버렸다.

“대신에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고 넘어가시죠. 내부 판단하에 박유성 선수가 낫다는 결론이 나오면 승복하는 겁니다.”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유성 선수의 컨디션 여부를 떠나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낫다는 게 확인되면 재계약을 부탁드립니다.”

“그야 당연하죠. 저희도 가능하면 다니엘 브리토 선수와 오래가고 싶습니다.”

탁상행정과 구단이기주의의 결정판이라는 비난을 받은 샐러리캡 제도는 폐지됐지만.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제와 연봉 총액제, 육성 용병 제도는 계속 유지 중인 상태였다.

첫 계약을 한 외국인 선수의 연봉 상한선은 150만 달러.

재계약 시 연봉 인상률은 최대 20퍼센트를 넘길 수 없으며 4명의 외국인 선수 연봉 총액은 1천만 달러 안에서 맞춰야 했다.

다만 국내에서 2년 이상을 뛴 외국인 선수에 한해 별도의 장기 계약이 가능한데 다니엘 브리토가 이 경우에 해당했다.

2025년 150만 달러를 받고 스타즈 유니폼을 입은 다니엘 브리토는 2026년 20퍼센트 인상된 180만 달러에 사인을 했고.

2026년 시즌이 끝나고 4년(2+2년)간의 장기 계약에 합의했다.

연봉 300만 달러에 옵션은 별도고 구단에서 집과 차량을 무상 제공하다 보니 다니엘 브리토는 물론이고 수수료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김찬혁 대표 입장에서도 포기하기 아까운 계약이었다.

올해 옵트 아웃을 선언하고 다른 구단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보나 마나 장기 계약보다는 1년 단기 계약을 통해 금전적인 이득을 챙기려 들 터.

밖에 나갔다가 찬바람을 맞느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타즈에 남는 게 최선이었다.

단장실을 나선 김찬혁 대표는 곧장 다니엘 브리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단장이 뭐래?

“테스트를 보기로 했어. 서로 결과에 승복하기로 했고.”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야?

“아니. 썬이 애리조나로 갈거야.”

-뭐? 정말?

“단장 말로는 테스트 중에 부상 선수가 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는데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이야기겠지.”

-이거 오랜만에 피가 끓어오르는데? 그런데 내가 한국의 슈퍼 루키를 제대로 눌러줘도 괜찮은 거야?

“브리토. 단장은 네가 코너 외야로 가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생각까지 하고 있어.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야 해.”

-걱정하지 마. 난 언제나 최선을 다 하니까.

그로부터 이틀 후.

송광철 대표와 박유성이 애리조나에 도착했다.

“어떻게 할래? 하루 쉬었다가 캠프로 넘어갈래?”

“지금도 기자들이 물어뜯으려고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바로 가요.”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휴식 없이 곧바로 애리조나 캠프에 합류한 박유성은 김석률 감독부터 찾았다.

“감독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잘못했으니까 벌로 펑고나 때려주세요.”

“펑고? 오늘 바로 시작하려고?”

“저기 보니까 미국 기자들도 잔뜩 와 있던데요? 판 깔렸으니까 바로 시작하시죠.”

“자신은 있는 거지?”

“감독님. 저 감독님의 지옥의 펑고를 유일하게 클리어한 박유성입니다. 저만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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