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95화
25. 스타즈의 신성(4)
3
올림픽 브레이크 전까지만 해도 스타즈 팬들은 창단 첫 포스트 시즌 진출을 꿈꿨다.
전문가들은 팀 전력상 열세인 랜더스, 트윈스와의 잔여 경기가 많이 남아 있어서 3위 수성이 쉽지 않을 거라 내다봤지만 스타즈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송찬우가 새로 합류하잖아. 송찬우가 후반기 5승만 해줘도 충분히 승산 있어.”
“송찬우가 원래 랜더스하고 트윈스에 강했잖아. 홈 원정 가리지 않고 잘 던지고.”
“3선발 자리에 홍형태 대신 송찬우 들어가니까 우리 선발진도 엄청 세 보이지 않냐?”
“국대 우완 에이스가 들어왔는데 당연하지.”
귀국하기가 무섭게 스타즈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송찬우는 스타즈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9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 2패를 거두며 2.65였던 평균자책점을 2.45까지 끌어내렸다.
특히나 랜더스와 트윈스를 상대로 4경기에 등판해 3승을 쓸어 담으며 진짜 토종 에이스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올림픽 브레이크 기간 동안 고향을 다녀왔던 용병 투수 듀오가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창단 첫 가을 잔치는 내년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기회에 싹 다 갈아 치워야 해.”
“진짜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올림픽 기간 동안 뭘 했기에 둘 다 살이 3㎏씩 쪄서 온 거야?”
“집에서 푹 쉬면서 휴가를 즐겼나 보지 뭐.”
“감독도 바꾸고 스카우트 팀도 전면 개편했으니까 이번에는 제대로 된 용병을 뽑아야 해. 용병 농사만 잘 지으면 내년 시즌에는 일낼 수 있다고.”
“박유성도 합류했으니까 다니엘 브리토 빼고는 싹 다 갈아 치워야지.”
“그런데 다니엘 브리토를 꼭 데려가야 해? 박유성하고 포지션이 겹치잖아?”
“다니엘 브리토 같은 효자 용병을 어디서 구하려고? 포지션 정리야 어떻게든 하면 돼. 용병 넷을 전부 바꾸면 분명 탈이 날 거야.”
정규 시즌이 끝날 무렵.
김재식 단장은 새로운 스카우트 팀장을 영입했다.
고명환 팀장 전에 스카우트 팀장으로 일했다가 개인사로 그만둔 안준혁 팀장을 데려온 것이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냈죠?”
“팀장님. 잘 오셨습니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하하. 이렇게 반겨주니까 고맙네요.”
스타즈 창단과 함께했던 안준혁 팀장은 3년 전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사표를 냈다.
자신보다 더 오래 살 줄 알았던 아내가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술 시기도 놓쳐서 항암 치료를 받아도 길어야 1년일 거라는 얘기를 들은 안준혁 팀장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작년에 아내를 먼저 보내기 전까지 주변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안 팀장 말처럼 살 사람은 살아야죠.”
“그때는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아닙니다. 날 생각해서 한 말이었잖아요? 암튼 단장님께 잘 말해줘서 고마워요.”
“전 아무 얘기도 안 했습니다.”
“하하. 그래요. 이 은혜는 두고두고 갚도록 하죠.”
안준혁 팀장이 스타즈를 그만뒀을 때 모든 직원이 아쉬워했을 만큼 안준혁 팀장은 좋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스카우트로서 능력도 좋았다.
스타즈의 효자 용병인 다니엘 브리토를 데려온 것도 다름 아닌 안준혁 팀장이었다.
하지만 안준혁 팀장은 한가롭게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가 없었다.
고명환 팀장이 던지다시피 하고 간 뒷수습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김재식 단장은 안준혁 팀장을 도와줄 조력자들을 미리 구해놓았다.
“둘 다 오랜만이야.”
“그러게요. 팀장님 밑에서 지긋지긋했는데 또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싫어?”
“싫어도 먹고살려면 열심히 해야죠.”
“김 대리는 사람이 참 한결같아.”
“한결같이 뺀질거린다고요?”
“알면 됐어.”
몇 년 만에 만났는데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김학수 대리와 악수를 나눈 뒤 안준혁 팀장은 박태영 대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 대리는 의외야.”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하고 일할 때 자주 부딪쳤잖아?”
“그래도 팀장님과 함께 일할 때가 재미있었습니다.”
스타즈에 오기 전 타이거즈에서 인연을 맺었던 김학수 대리와 박태영 대리는 얼마 전까지 파이터즈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다 스카우트 인력이 필요하다는 김재식 단장의 요청을 김경민 파이터즈 단장이 받아들이면서 박흥선 감독 라인과 맞트레이드가 됐다.
“회포는 나중에 풀고 일단 외국인 선수부터 정리하자고.”
“파트는 안 나누시게요?”
“스카우트 팀이라고 우리 셋뿐이잖아. 일단 급한 건 외국인 선수 선발이니까 새로 인력 충원되기 전까지는 업무 구분 없이 다 함께 움직이자고.”
“저는 좋습니다.”
“저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인 선수 계약 쪽 일도 배워보고 싶었으니까요.”
“일단 가이드라인부터 정하자고. 내년 시즌 선발 구성이 어떻게 될 거 같아?”
“업무 인수인계받기도 전에 바로 일인가요?”
“인수인계가 어디 있어? 사람들 다 나가고 우리가 전부 다시 해야 하는데.”
“김 대리님은 해외 파트 쪽이라 물어봐도 모를 겁니다.”
“뭐 인마?”
“이제 같은 대리인데 예의를 갖춰주세요. 김 대리님.”
“팀장님. 저 빨리 차장 시켜주세요. 네?”
“일을 잘해야 차장을 달지. 암튼 차장은 내부에서 올리기로 결정이 났으니까 열심히 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니엘 브리토 같은 선수 셋만 더 뽑자고.”
“그게 말처럼 쉽나요.”
“파이터즈에서 일할 때보다 연봉 올랐잖아? 그러니까 받은 만큼 더 열심히 하자고.”
프로 야구 구단이 계약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총 4명.
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건 최대 3명까지였다.
투수를 2명 이상 계약할 수 없는 현 제도상 최선은 타자 2명에 선발 투수 2명이었다.
그중 급한 건 역시나 투수 쪽이었다.
“일단 내년 시즌 선발진은 송찬우 선수 빼고 확정된 게 없습니다. 외국인 선수 원투 펀치와 송찬우 선수의 뒤를 받칠 국내 투수들을 찾아야 합니다.”
“일단 김혜성 선수가 한자리 꿰찰 거야. 나머지 한 자리는 스프링 캠프를 통해 결정될 테고.”
“김혜성 선수는 확정입니까?”
“일단 좌완이라는 이점이 있잖아. 박유성 선수만큼은 아니지만 대학 리그를 씹어먹었고. 그 정도면 내년 시즌 죽을 쑤더라도 전략적으로 키워야 할 거야.”
“그렇게 해서 양현중 선수처럼만 성장해 주면 더할 나위 없죠.”
타이거즈 역대 최다승 투수인 양현중도 입단 초기에는 미완의 대기였다.
2007년과 2008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79경기에 등판해 담금질을 했고.
그 결과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좌완투수로 성장했다.
게다가 김혜성은 양현중보다 체격 조건과 구속이 좋았다.
프로 리그는 아니지만 대학 리그에서 4년간 공을 던졌으니 어지간한 고졸 투수들보다는 나을 터.
“우완 송찬우에 좌완 김혜성은 확정이라 치면 용병 투수는 좌우 구분 없이 두 명입니까?”
“그래도 가능하면 좌우 한 명씩 뽑는 게 낫겠지.”
“아예 좌완 두 명은 어때요?”
“실력 있는 좌완 투수들이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고.”
예전에 비해 좌투수가 많아졌지만 프로 야구의 좌완 투수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좌타자들은 눈에 띄게 늘었다.
좌우 놀이만 가능해도 족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타선을 좌타자로 도배를 하는 게 가능했다.
야구에서 좌완투수가 좌타자에게 강한 건 상식.
프로 야구 구단들이 긴 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수준급 좌완 용병 투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몸값 비싼 좌완투수도 상관없다는 거죠?”
“스타즈가 돈 가지고 쩨쩨한 구단은 아니잖아?”
“그림의 떡이었던 선수들까지 전부 리스트업 해야겠네요.”
“그럼 투수 쪽은 김 대리가 맡고 타자는 박 대리가 좀 찾아봐.”
“그런데 다니엘 브리토 선수는 재계약하는 겁니까?”
“작년에 계약할 때 2+2년 계약이었다네. 다니엘 브리토도 스타즈 생활에 만족 중이니까 대체 선수가 없는 한은 그대로 갈 것 같아.”
“만약에 대체 선수가 있다면요?”
“왜?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마음에 안 들어?”
“다니엘 브리토 선수야 좋죠. 하지만 박유성 선수와 포지션이 겹치지 않습니까? 코너로 자리를 옮길 게 아니라면 무리해서 계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998년생인 다니엘 브리토도 내년이면 서른이었다.
4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20대 중반의 젊은 피였지만 프로 야구 5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스타즈 신인 선수들에게 선배 노릇을 할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이제 와 다니엘 브리토에게 포지션 변경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다니엘 브리토는 2026년과 2027년 나눔 리그 외야수 부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도 수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3년 연속 외야수 골든 글러브를 탄 최고의 용병 타자가 박유성 선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할 수 있을까요?”
“에이. 그건 좀 아니지. 다니엘 브리토 짬이 있는데 박유성 선수가 한두 해는 양보해야지.”
“대리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박유성 선수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야구 천재입니다. 계약금만 20억을 받았고요. 그렇다고 수비를 못하는 선수도 아닙니다. 올림픽 때 보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다니엘 브리토보다는 박유성 선수가 코너 외야수로 뛰는 게 낫지 않을까?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도움이 될 테고.”
“송현민 선수 얘기 못 들으셨어요? 구단을 위해서 중견수 뛰다 2루수로 전향했더니 내야 수비 경력이 짧다고 했다잖아요.”
“그래도 같은 외야수면 상관없지 않을까?”
“다니엘 브리토 선수를 중견수로 쓰려면 최소한 박유성 선수보다 중견수 수비를 월등히 잘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는 다니엘 브리토 선수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태영 대리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안준혁 팀장은 김재식 단장을 찾아갔고.
김재식 단장은 마무리 캠프에 있던 김석률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스타즈 선수단은 가을 야구가 한창 진행될 때 미국 애리조나로 마무리 훈련을 떠난 상태였다.
박유성은 계약 발표가 늦어서 마무리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지만.
올해 계약한 신인 선수들을 포함해 1군 선수들 전원과 장기 계약을 맺은 다니엘 브리토는 캠프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감독님. 내년 시즌 외야 구성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만 급한 일입니까?
“스카우트 팀에서 포지션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다니엘 브리토 선수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게 어떻겠냐고 합니다.”
-흠……. 일단 개인적으로는 다니엘 브리토 선수와 계속 함께했으면 합니다. 물론 유성이가 중견수로 뛰어야겠지만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다니엘 브리토 선수의 에이전트를 만나보겠습니다.”
국내 선수들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외국인 선수들은 달랐다.
방출 통보는 물론이고 성적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는 것도 에이전트를 통하는 게 기본이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구단이 외국인 선수보다 해당 선수의 에이전트를 상대하는 걸 골치 아파했지만 다니엘 브리토의 경우는 달랐다.
스타즈와 장기 계약을 하면서 다니엘 브리토가 자신의 통역을 맡은 직원을 에이전트로 고용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입니다. 김 대표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어이구 단장님. 그냥 편하게 이름 불러주십시오.”
“그래도 이제 에이전트인데 그럴 수야 있나요.”
“말이 좋아 에이전트지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그냥 매니저입니다.”
김재식 단장이 부임하고 나서 스타즈에 입사했던 김찬혁 대표는 김재식 단장을 은인처럼 생각했다.
다른 종목 스포츠 구단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경쟁자들을 대신해 자신을 직접 뽑아줬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옛정에 휘둘리진 않았다.
“그러니까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코너 외야수로 가길 원하신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