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92화
25. 스타즈의 신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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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한 고깃집.
한참 동안 계약서를 살피던 송광철 대표는 타는 듯한 냄새가 나자 서둘러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드시죠, 단장님.”
“네. 그러시죠.”
따라서 젓가락을 집어 들면서도 김재식 단장은 송광철 대표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송광철 대표가 씩 웃으며 말했다.
“계약 조건에 상당 부분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안 보셔도 됩니다.”
“정말이십니까?”
“네. 그러니까 얼른 드시죠. 이거 한우라 조금만 방심해도 다 탑니다.”
그제야 김재식 단장은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어제 밤을 새우고 오늘 아침까지 계약의 세부 조건들을 수정하느라 샌드위치로 허기를 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업원이 구워놓고 간 고기들을 해치운 뒤 송광철 대표가 다시 분위기를 잡았다.
“일단 좋은 계약을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장님.”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다저스에서 박유성 선수에게 올인할 거라는 거 예상하셨습니까?”
순간 김재식 단장이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급하게 물을 들이켠 다음에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닙니다. 그리고 대표님 반응을 보니까 대답 안 해주셔도 될 거 같습니다.”
송광철 대표는 괜한 말을 꺼냈다고 미안해했지만 김재식 단장은 호흡이 진정되자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구단에서도 메이저리그 쪽에서 반응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국 지사 쪽을 통해 현지 소식을 주기적으로 체크했는데 분명 박유성 선수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은 있었거든요.”
“올림픽 브레이크 때문에 메이저리그 일정이 뒤로 밀려서 다들 정신없을 겁니다. 일단은 포스트 시즌 진출이 먼저일 테니까요.”
“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겠거니 했는데 다저스에서 저렇게 치고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송광철 대표가 이해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도 미국발 기사를 접하고는 다저스가 미쳤나 싶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그 올인이라는 표현에 놀랐습니다. 박유성 선수를 잡고 싶다는 의지를 그렇게 확실하게 드러낼 줄은 몰랐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박유성 선수하고 그 기사 보면서 웃었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뭐라고 하던가요?”
“이 정도면 템퍼링 아니냐고 하던데요?”
“정말 그렇게 말 했습니까?”
“단장님도 나중에 겪어 보면 아시겠지만 박유성 선수가 말을 잘합니다.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요.”
“빨리 박유성 선수를 겪어볼 수 있게 오늘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한 시간 가까운 식사가 끝이 나고.
테이블을 깔끔하게 정리한 상태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일단 계약금은 만족합니다.”
“만족하신다니 다행입니다.”
김재식 단장의 전화를 받고 사무실에서 출발할 때 송광철 대표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웠다.
본래 목표는 세후 15억 정도.
주변에서는 자꾸 6년 전 송현민의 계약 기준을 들먹이지만 사실 박유성과 송현민은 상황 자체가 달랐다.
당시 송현민도 고교 최대어라 불렸지만 동기 투수들을 압도할 만한 실력을 뽐낸 건 아니었다.
송현민이 메이저리그를 고집한 것도 유독 투수에게 후한 드래프트 분위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대우 못 받을 거면 그냥 메이저리그 갈래요. 타자라고 계약금이 적은 게 어디 있어요?”
그 당시에도 송현민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야구를 해 왔고.
당시 송현민을 우선 지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베어스에서 근무를 하던 송광철 대표도 그런 송현민의 뜻을 꺾지 못했다.
“그래. 너라면 3년 안에는 메이저리그 올라올 수 있을 거다.”
자신을 보고 야구를 한 조카의 의사를 존중해 송광철 대표는 사표까지 던지고 송현민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왔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쪽 반응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거의 모든 구단이 200만 달러 전후의 계약금을 제안했고.
메이저리그 콜업 보장 조건에 대해 고민해 준 구단은 레인저스밖에 없었다.
“정말 메이저리그 갈 거야?”
“삼촌. 돈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돈이 중요해 이놈아. 프로는 돈이야. 헐값을 받고 가면 넌 헐값인 선수가 되는 거라고.”
“그럼 어떻게 해요? 이제 와서 드래프트 참가하라고요?”
“남자라면 때로는 굽힐 줄도 알아야 해. 지금 분위기가 나쁜 건 아니니까 일단 국내에 남자.”
송현민을 어렵사리 설득한 송광철 대표는 트윈스와의 협상에 모든 걸 걸었다.
얼마 전까지 베어스에서 일하던 터라 전면에 나설 수 없어서 대리인을 내세웠는데 트윈스도 호락호락 당해 주지 않았다.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한 가지만 합시다. 한 가지만. 해외 진출 조건을 넣고 싶으면 계약금을 양보하세요. 우리가 땅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저희가 원하는 건 하나입니다. 송현민 선수의 자존심을 지켜 주세요.”
“지금도 충분히 지켜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구단 입장도 생각해 주세요.”
우여곡절 끝에 8억이라는 계약금이 책정됐을 때 트윈스 팬들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 갱신은 물론이고 최대 15억도 가능하다던 기사들이 쏟아졌는데 그 절반에 계약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후 세금 대납 조건에 해외 진출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야구 팬들도 납득을 했지만.
당시 계약이 최선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송광철 대표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최선은 개뿔.’
만약 그때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있었다면?
세후 10억 밑으로는 절대 도장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송광철 대표가 메이저리그에서 매력적인 오퍼를 받지 못했던 송현민에게 내린 냉정한 평가 금액이 세후 10억이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물가도 올랐고 선수들의 처우도 6년 전에 비해 좋아졌지만 그런 걸 떠나 박유성은 고교 최대어 수준이 아니라 역대 최고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그래서 송광철 대표는 기준점을 세후 15억으로 잡았다.
세전 기준으로는 25억 수준.
기존의 신인 최고 계약금인 10억은 물론이고 송현민이 받은 세전 금액을 가볍게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한 차례 계약을 미뤘던 김재식 단장도 최소 비슷한 금액을 가지고 왔을 거라 예상하고 계약서를 펼쳤는데…… 거기에는 예상치 못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계약금–2,000,000,000원
단 세금과 에이전트 비용은 구단에서 부담함.
세후 20억.
이건 송광철 대표는 물론이고 박유성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금액이었다.
게다가 추가적인 옵션도 훌륭했다.
리그 MVP 보너스
-5인의 최종 후보에 뽑힐 경우 5천만 원.
-3위를 할 경우 5천만 원 추가.
-2위를 할 경우 1억 원 추가.
-1위를 할 경우 3억 원 추가.
리그 신인왕 보너스
-3위를 할 경우 3천만 원 추가.
-2위를 할 경우 5천만 원 추가.
-1위를 할 경우 1억 원 추가.
다른 신인선수들에게는 그림의 떡이겠지만 박유성은 충분히 노려볼 만한 신인왕과 리그 MVP에 최대 4억 5천만 원이 걸려 있었다.
여기에 골든 글러브와 각종 타격 타이틀 보너스가 최대 1억씩 추가가 됐다.
박유성이 U-18 야구 월드컵 때처럼 타격 8관왕을 달성하면 골든 글러브까지 9억을 더 받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예상보다 더 후합니다.”
“대표님도 대표님이지만 저희 회장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만족하시던가요?”
“보고서 올리고 바로 대표님께 연락드린 겁니다. 아마 오늘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 간다면 만족하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송광철 대표의 반응이 예상보다 호의적이어서일까.
김재식 단장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송광철 대표가 계약 조건에 100퍼센트 만족한 건 아니었다.
“혹시 보너스도 혹시 세후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박유성 선수 계약은 전부 세후로 처리될 예정입니다. 그래야 다른 구단에서도 반발이 적을 거라서요.”
야구를 잘하는 선수에게 더 많은 돈을 주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특정 선수가 과도하게 많은 돈을 받으면 다른 선수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만은 각 구단을 통해 다시 스타즈를 향하게 될 터.
창단 초기야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프로 야구판에서 자리를 잡은 지금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 좋습니다. 좋은데 일단 개인 기록 관련 옵션들은 조금 더 추가했으면 좋겠습니다.”
“타이틀 보너스를 올려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타이틀 보너스는 괜찮습니다. 다만 3할 3푼짜리 타격왕과 4할 타격왕은 다른 거니까요.”
“세부적인 옵션을 추가하자는 말씀이시로군요.”
“물론 박유성 선수가 그럴 선수는 아니지만 도루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전반기에 한 50개쯤 성공시키고 난 다음에 도루왕이 확정되고 나면 안 뛰어도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내부적으로 비슷한 논의가 있었는데 제가 빼버렸습니다. 박유성 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요.”
“물론 단장님의 배려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선수가 항상 잘할 수도 없는 거고 집중 분석을 당하다 보면 기대만큼 성적이 안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뭐랄까……. DNA가 다릅니다.”
“DNA요?”
“좀 구닥다리 표현이긴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달라요. 제가 지금까지 본 야구 선수 중에 최고의 재능은 현민이었거든요. 그런데 박유성 선수 보고 나니까 현민이가 평범하게 느껴졌습니다. 방망이 쥐는 것부터 시작해 타격 메커니즘까지 그냥 클래스가 다릅니다.”
앞서 박유성에 대한 칭찬을 여러 번 들었던 김재식 단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스볼 파크를 비롯한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도 더 이상 박유성 vs 고교 시절 송현민의 비교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가끔 글이 올라와도 비추천 테러를 받고 사라졌다.
적어도 고교 레벨에서 박유성의 재능과 실력이 송현민을 한참 뛰어넘었다는 걸 모두가 인정한 것이다.
오히려 요즘에는 MVP를 차지한 지난해나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올 해의 송현민과 비교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마저도 처음에는 아직 프로에 데뷔하지 못한 선수와 현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를 비교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불만이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부 분석 자료들이 나오면서 박유성의 현 실력이 송현민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었다.
“아마 올림픽에서 귀국한 날일 겁니다. 그때 현민이하고 박유성 선수하고 셋이서 차를 타고 갔는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옵션 얘기가 나왔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박유성 선수는 옵션에 호의적이었고요.”
“그렇습니까?”
“현민이가 농담으로 4할에도 옵션을 걸고 5할에도 걸라고 했는데 박유성 선수가 씩 웃더라고요. 그걸 보고 박유성 선수의 성격을 알게 됐습니다.”
“목표 지향적인 선수네요.”
“프로 스포츠 선수 중에 최고라 불리는 선수들도 다 목표 지향적이고요.”
김재식 단장이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다수 프로 선수들이 보장 옵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옵션을 뺐는데 막상 송광철 대표의 말을 듣고 나니까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