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90화 (190/412)

타자 인생 3회차! 190화

24. 역대급 신인(11)

3

“진짜 왜 다들 우리 스타즈에 난리인 거야?”

“그러게 말이야. 별것도 아닌 걸로 물어뜯는 거 이해가 안 간다.”

“우리가 이해해 주자. 우리가 열심히 해서 야구 팬들의 불만을 바꿔놓으면 돼!”

“오오, 김병욱. 모처럼 맞말하네?”

“나야 늘 맞는 말만 하잖아. 안 그래 유성아?”

“…….”

“유성아.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야. 아무 것도.”

앞선 회차와 달리 신성 고등학교 선수가 무려 6명이나 호명됐을 때.

박유성은 몰래카메라인가 싶었다.

대통령 배 4강에 이어 청룡기와 봉황기를 연거푸 들어 올렸으니 프로 입시 결과가 잘 나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하니 10명의 졸업생들 중에 7명이 한 팀에 몰리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다.

“나나 감독님 때문에 저렇게 뽑은 거면 골치 아파지는데.”

처음에는 박유성도 오해를 했다.

자신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김석률 감독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일부러 신성 고등학교 선수들을 뽑은 줄 알았다.

하지만 송광철 대표에게 전해 들은 속사정은 달랐다.

“지금 스타즈가 왕따야.”

“왕따요?”

“고명환 팀장부터 시작해서 스카우트 팀 전부 다 쳐냈잖아.”

“드래프트 가지고 장난쳐서 그랬던 거 아니에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리고 다른 구단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거 없어. 비슷한 실력이면 팔이 안으로 굽는 거지.”

시즌이 끝난 이후도 아니고 올림픽 브레이크 때 기습적으로 감독과 스카우트 팀을 정리한 김재식 단장을 두고 외부에서는 독재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거기에 내부적으로 세웠던 신성 고등학교 우선 지명 금지 원칙을 깨고 박유성까지 데려가 버렸으니 스타즈에 우호적일 리 없었다.

“윤경태 전략분석팀장도 나름 빠꼼이 거든. 김혜성 선수 뽑고 나서 돌아가는 상황을 봤는데 다들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 거야.”

“그래도 동엽이는 잘 뽑았던데요?”

“이동엽 선수를 2라운드에 뽑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거야. 사실 실력으로는 우선 지명을 받아도 되는데 프로 야구에서 가장 키우기 어려운 1루수잖아. 신생 팀도 아니고 데려와서 포지션 변경부터 시켜야 하는데 잘될지 장담도 못 하니까.”

선인 고등학교 이동엽은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3번을 칠 만큼 실력 있는 타자였다.

하지만 4명까지 뽑을 수 있는 용병 선수 중에 한 명을 1루수로 뽑는 현 프로 야구 판에서 환영받기란 쉽지 않았다.

“솔직히 동엽이 1라운드에서 뽑힐 줄 알았어요.”

“유성이 네가 없었다면 그랬겠지.”

“또 저 때문이에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야. 네가 올해 드래프트 최대어라서 타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어. 현민이 때도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비슷했고.”

U-18 야구 월드컵에 이어 LA 올림픽까지 평정하고 돌아온 박유성은 고교 야구를 씹어 먹다 못해 아예 찢어버렸다.

청룡기에서 11개의 볼넷과 13개의 안타를 몰아치며 타격 타이틀을 싹쓸이했고.

전국 대회 강호들 위주로 치러진 봉황기에서도 12볼넷과 12안타로 누가 진정한 고교 최대어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올해 박유성의 고교 야구 성적은 15홈런에 49타점.

그리고 118득점.

0.766이라는 타율도 경이로웠지만 신성 고등학교 총득점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 박유성의 놀라운 득점 능력은 다른 타자들의 가치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동엽이도 잘했지. 그런데 비교 대상이 하필 너야. 동엽이 데이터를 봤는데 너한테 이긴 게 하나도 없더라.”

“홈런은 저보다 더 치지 않았어요?”

“선인 고등학교는 청룡기하고 봉황기 때 8강에서 떨어졌잖아. 그래서 너보다 하나 적어.”

“오오, 그럼 올해 고교 홈런왕도 저예요?”

“그래. 네가 다 해 먹었다. 안타부터 도루까지 전부 다 네가 1위야.”

박유성이 독식한 타자 쪽과 달리 투수 쪽은 여러 선수가 두각을 드러냈다.

김신우와 이관우, 안경호 등 기존에 이름값 있던 선수들에 손지원처럼 새롭게 치고 올라온 선수들까지 가세하면서 각 구단 관계자들을 머리 아프게 만들었다.

“사실 스타즈는 박준수 선수의 백업 개념으로 이동엽 선수를 뽑은 거야. 다른 구단은 반대로 외국인 용병의 백업을 박준수 선수보다 경력 많은 선수가 보고 있고.”

“동엽이를 뽑아도 그 선수들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자리가 나지 않는다는 거네요.”

“단순히 백업 정도면 3라운드 이하에서 뽑는 게 좋지. 기사 난 거 봤겠지만 이동엽 선수 계약금이 4억 5천만 원이야. 파이터즈 고윤식 선수보다 더 많아.”

스타즈의 전임 감독이었던 박흥선 감독이 우선 지명으로 데려오려 했던 동호대학교 고윤식은 파이터즈의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라이벌이었던 김혜성이 스타즈의 1라운드 1순위 지명을 받는 모습을 보며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던 고윤식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가 무섭게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뽑아준 파이터즈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마음이 아직 그대로일지는 의문이었다.

“윤식이 형 계약금이 얼마였죠?”

“2억 7천.”

“3천은 왜 뗀 거예요?”

“우선 지명이었던 강준기 선수가 3억에 사인했잖아.”

“준기도 청소년 국대 출신인데 3억은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말도 마라. 그것 때문에 강준기 선수 부모하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U-18 야구 월드컵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강준기는 호남에서 김신우 다음으로 인정받는 기대주였다.

강준기가 광일 고등학교 소속이었다면 타이거즈에서 임찬기의 뒤를 이어 좌완인 강준기를 뽑았을 거라는 얘기도 나돌 정도.

하지만 하필 파이터즈의 지명을 받으면서 3라운드에 뽑힌 손지원과 같은 계약금을 받게 됐다.

“준기는 진짜 해외 진출해야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벌써부터 파이터즈 떠날 생각만 하는 눈치던데 기회 잡기가 쉽지 않을 거야. 파이터즈 감독으로 박흥선 감독이 내정되어 있으니까.”

박흥선 감독은 스타즈 감독 시절부터 자기 라인 선수들을 챙기기로 유명했다.

5선발 로테이션 중에 두 자리를 외국인 선수로 채울 경우 남은 자리는 셋.

그중 두 자리는 송찬우와 팀을 맞바꾼 홍형태와 조우진이 맡을 테고 나머지 한 자리도 고윤식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으니 강준기가 계획대로 해외 진출을 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파이터즈는 왜 박흥선 감독님을 받은 거예요?”

“다 돈이지 뭐. 지금 하마평에 오른 감독들 중에 누굴 데려가도 전임 감독보다 연봉을 더 줘야 해. 하지만 박흥선 감독은 다르지. 스타즈에서 감독 생활을 했으니까 아마추어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프로 출신 감독들보다는 싸게 쓸 수 있잖아?”

“그런다고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까요?”

“나아지지. 조금이 아니라 엄청 나아져. 파이터즈 신인 계약 기사 봤지?”

“대충 보긴 했어요.”

“스타즈는 8라운드부터 1억으로 통일했어. 물가도 올랐고 하위 라운드 선수들은 해외 진출이나 FA가 쉽지 않으니까 구단에서 선심을 쓴 거지. 하지만 파이터즈는 3라운드부터 1억 대로 떨어졌어. 7라운드 이하로는 1억 미만이고. 아직 네 계약금은 발표도 하지 않았는데 너를 제외한 스타즈 신인 계약금 총합이 파이터즈보다 6억이나 많아.”

송광철 대표가 김경민 단장의 수완에 혀를 내둘렀지만 박유성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앞선 1회차와 2회차 때도 김경민 단장은 철저하게 지출을 아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해는 지명권 트레이드로 돈을 좀 벌어서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여전하네. 진짜 파이터즈 안 간 게 신의 한 수다.’

해마다 매각설이 나돌던 파이터즈 구단이 계속해서 버틸 수 있었던 건 김경민 단장의 덕이 컸다.

고정 관중이 생길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 악착같이 버텨냈고.

사정이 좀 나아진 이후에도 허튼 데 돈이 새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해서 다른 구단들이 역으로 벤치 마킹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타 구단만큼의 대우를 바라는 파이터즈 선수들에게 김경민 단장은 악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어때? 동기들하고 함께 뽑힌 기분이?”

“별로요.”

“하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가면 잘됐다고 생각할 거야.”

“과연 그럴까요?”

“뽑힌 선수들이 전부 다 올라올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손지원 선수나 장태수 선수는 1군에 합류하겠지. 그럼 너도 같이 놀 친구가 생기는 거고.”

“저는 찬우 형하고 준수 형하고 놀면 되는데요.”

“이 녀석아. 네가 그렇게 해버리면 또 이상한 기사 난다. 잘난 선수들끼리 파벌 만든다고. 그렇다고 네가 다른 팀 막내들처럼 고분고분하게 지낼까?”

“저 국대 생활 엄청 잘했는데요?”

“현민이한테 다 들었거든?”

“현민이 형 말은 걸러 들으셔야죠.”

“이 녀석아. 현민이가 가끔 실없는 소리는 해도 과장은 안 해. 너 대표팀에서 선배들 찜 쪄 먹었다면서?”

“에이. 다들 한참 선배들인데 제가 어떻게 그랬겠어요?”

“실실 웃는 거 보니까 맞네. 맞아. 그래도 스타즈에서는 적당히 예의를 차려야 해. 잘난 선수들끼리 모아놓은 국대는 그런 걸 그냥 넘어가 주지만 팀은 달라.”

“네. 저도 잘 알아요.”

송광철 대표가 알긴 뭘 아냐며 핀잔을 줬지만 박유성은 프로 야구판을 신물 나게 겪어왔다.

1회차와 2회차를 통틀어 도합 40년이니까 적어도 박유성에게 팀 생활 잘하라는 잔소리는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저 계약 언제 해요?”

“왜? 빨리 계약서에 도장 찍고 싶어?”

“계약금 받아야 현민이 형한테 빌린 돈 갚죠.”

“현민이는 느긋하게 줘도 된다는데 왜 그래?”

“빌린 사람 입장은 그게 아니죠. 지금도 이자 삼아 매일같이 살톡 보내고 있는데요 뭘.”

“살톡은 무슨. 현민이 얘기 들어보니까 채팅봇 수준이라고 하던데?”

“현민이 형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건 인정. 나하고도 한 번 통화하면 기본이 30분이다. 그중에 20분은 자기 자랑이고.”

“현민이 형은 진짜 현민이 형의 눈곱까지 사랑해 줄 여자를 만나야 할 것 같아요.”

“세상에 그런 정신 나간 여자가 있을까 싶다만…… 또 모르지. 짚신도 제짝은 있는 거니까. 아무튼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곧 미국에서 입질이 올 테니까.”

메이저리그 구단을 이용해 시간을 끌자는 김재식 단장과 송광철 대표의 계획은 반만 성공했다.

국내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있을 텐데도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가타부타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유성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라진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송광철 대표가 구체적인 기사를 내준 덕분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해진 상태였다.

“레이즈에서 연락은 왔어?”

“그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대체 뭘 얼마나 퍼주라는 거야?”

“레이즈가 원하는 건 아무래도 돈이 될 만한 선수인 거 같습니다.”

“돈이 될 만한 선수? 보너스 풀로 현금 장사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빅마켓 구단들에게 허락된 해외 아마추어 계약금 한도액은 550만 달러.

수준급 불펜 투수 1년 몸값 수준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선수 두세 명과 계약을 하고 나면 채 100만 달러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박유성이 메이저리그 쪽 에이전트가 아닌 송광철 대표와 계약했을 때 빅마켓 구단 상당수가 박유성과의 협상을 포기했다.

연말에 해외 아마추어 계약 조건이 바뀌면 박유성도 그만큼 일찍 메이저리그에 오게 될 터.

차라리 그때 돈을 앞세워 박유성을 잡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무려 15개 구단에서 오퍼가 들어갔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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