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88화 (188/412)

타자 인생 3회차! 188화

24. 역대급 신인(9)

“팬카페요? 그런데 요즘도 팬카페 같은 걸 합니까?”

“SNS 시대라고 해도 팬카페를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SNS 스친은 그냥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지만 팬카페는 다릅니다. 오히려 가입 절차가 까다롭다 보니까 어지간한 팬심이 아니면 가입을 안 합니다.”

“10만 명이면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아이돌 그룹도 많아야 30만 정도입니다. 물론 메이저 그룹은 100만을 넘기도 하지만요.”

“그럼 상대적으로 엄청 많은 거네요?”

“회원 수만 놓고 보자면 야구 선수들 중에서 3위입니다.”

“1위는 송현민 선수일 테고 2위가 누굽니까?”

“민찬수 선수입니다. 그다음이 민병규 선수였는데 박유성 선수가 제쳤고요.”

“흠……. 이거 또 변수가 생긴 기분인데요.”

박유성의 적정 계약금을 두고 어렵사리 가이드라인을 잡았던 김재식 단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실력이 엇비슷하면 인기가 많은 선수에게 한 푼이라도 더 얹어주는 게 운영의 기본이었다.

그 선수를 보기 위해 팬들이 한 명이라도 더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구단에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유성은 이렇다 할 비교 대상이 없었다.

“송현민 선수는 신인 때도 인기가 많았습니까?”

“팬카페 말씀하시는 거라면 송현민 선수도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야구 선수 송현민인가? 아무튼 그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회원 수가 얼마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 2년 차 끝나고 나서 한 개인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요.”

“개인방송이요?”

“유명한 여성 BJ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홍대 근처에서 방송을 하다가 송현민 선수를 발견한 겁니다. 야구 선수인 줄도 모르고 가서 인터뷰를 했는데 송현민 선수가 그날따라 또 잘 꾸미고 나와서요.”

“여심을 사로잡았군요.”

“네. 이후에 누가 송현민 선수 팬카페에 가면 알몸 사진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때 엄청 가입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팬카페 회원 중에 상당수는 허수겠네요.”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회원들도 꽤 될 겁니다.”

안재희 운영팀장의 설명을 들은 김재식 단장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송현민 팬카페의 성장 이력을 떠나 신인 시절에는 팬카페 규모가 크지 않았다고 하니까 골치가 아파졌다.

“민찬수 선수도 비슷한 케이스입니까?”

“민찬수 선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원래 잘생긴 운동선수로 유명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역으로 잠깐 출연한 경력도 있고요. 그래서 배우가 야구를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럼 팬클럽이 제법 컸겠는데요?”

“그래도 프로 입단 전 기준으로는 박유성 선수에 못 미칩니다. 제가 카페 이력을 확인해 봤는데 3만 4천 명 정도인가 그랬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그 세배네요.”

“지금 이 시간에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고요.”

“흠…….”

김재식 단장이 길게 신음했다.

당장 내일 신상욱 회장을 직접 찾아뵙고 보고를 해야 하는데 눈앞의 서류를 이대로 들고 가도 될지 걱정이었다.

김재식 단장과 안재희 운영팀장, 윤경태 전략분석 팀장이 지난 일주일간 고민한 끝에 내놓은 박유성의 계약금은 12억 원.

세금과 에이전트 수수료는 스타즈 구단에서 부담한다는 조건이었다.

세전 금액으로 환산하면 거의 20억이고 신성 그룹에서 추가로 광고가 들어갈 예정이다 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는데 왠지 신상욱 회장에게 한 소리 들을 것 같았다.

“지금 다른 선수들 상황은 어떻습니까?”

“계약금 말씀이시라면 다들 박유성 선수만 바라보는 중입니다.”

“박유성 선수를 기준으로 잡으면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 텐데요?”

“그래도 일단 박유성 선수의 계약을 보고 절충을 하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의 상황이 나와도 논란이 생길 테니까요.”

보통 우선 지명 선수와 1라운드 지명 선수의 계약 상황은 보통 11월 안에 마무리가 된다.

성격이 급한 구단은 10월에도 계약을 마무리 짓곤 하지만 박유성처럼 해외 진출 가능성이 남아 있는 선수를 선발한 구단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올림픽 브레이크 때문에 신인 계약이 더 늦어질 거라는 게 정론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우선 지명 선수들의 계약 조건은 어느 정도 공유가 되게 마련인데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안 팀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저희가 급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유성 선수 쪽에 양해를 구하고 느긋하게 진행하시죠.”

“그러다 메이저리그 쪽에서 거절 못 할 오퍼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어차피 스타즈에 입단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그땐 그 핑계로 계약금을 올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더 줘야 한다면 명분이라도 쌓자는 거네요.”

“이 계약 조건을 발표하더라도 다른 구단에서 말들이 나올 겁니다. 송현민 선수도 8억에 사인을 했는데 그것보다 4억이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적극적으로 오퍼를 넣어준다면 군소리 못 하겠죠.”

“그럼 김혜성 선수 이하 나머지 선수들의 계약부터 발표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예 박유성 선수 핑계를 대지 못하게 만들자는 말씀이시죠?”

“그냥 대놓고 박유성 선수만 특별 대우합시다. 애당초 구단 방침이 그랬잖아요?”

“네. 저도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결정을 내린 김재식 단장은 박명우 사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야?”

“네. 예전에도 해외 진출을 두고 고민한 선수들을 빼고 계약을 먼저 발표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전례가 있다면 상관없겠네. 회장님께는 김 단장이 직접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전임이었던 김윤태 단장이 배임 행위로 퇴사하면서 박명우 사장은 운영에서 손을 떼버렸다.

스포츠단 운영에 대해 알지도 못하거니와 퇴임을 앞두고 예우 차원에서 내려온 거라 더 이상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허수아비 사장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았는데 김재식 단장이 꼬박꼬박 보고를 하러 와줘서 기분이 좋았다.

“그보다 우리 내년에는 우승할 수 있는 거야?”

“올해는 아쉽게 됐지만 내년 시즌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 내년에는 일 한번 내보자고. 나도 퇴임 전에 우승 트로피 한 번 구경해 보고 싶어.”

올림픽 브레이크가 끝이 나고 송찬우가 합류했지만 스타즈의 포스트 시즌 진출은 올해도 실패로 끝났다.

홍형태와 조우진이 빠지면서 선발 자리가 하나 더 비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 부임한 김석률 감독과 전임 박흥선 감독 라인의 코치들 간의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더그아웃 분위기도 삭막해졌다.

결과적으로 박흥선 감독을 일찍 쳐낸 김재식 단장의 잘못이 됐지만 박유성을 영입해서일까.

스타즈 팬들조차 올 시즌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사장실을 나온 김재식 단장은 홍보팀 송인영 팀장을 불러 신인 선수 계약 내용을 발표하라고 일렀다.

“박유성 선수는 빼고 발표하라는 거죠?”

“박유성 선수는 논의 중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분위기는 어떻게 잡을까요?”

“분위기요?”

“협상에 난항이 있는 것처럼 굴면 언론에서 불을 지필 거라서요.”

“일단 박유성 선수의 해외 진출 여부를 최대한 기다리는 쪽으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송인영 팀장에게 서류를 넘긴 뒤 김재식 단장은 다시 송광철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개인적으로 부탁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갑자기 전화하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거 겁이 나는데요?

“박유성 선수의 계약은 뒤로 미뤘으면 합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현시점에서의 계약 조건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저희한테는 좋은 일이네요.

“대신에 박유성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의 계약을 발표할까 합니다. 다른 구단에서 박유성 선수의 계약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렇지 않아도 저한테도 엄청 연락 옵니다. 계약 언제 하냐면서요.

“그럼 이해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그 정도야 당연히 이해해 드려야죠. 대신 계약이 늦어지는 건 적당한 핑계를 댔으면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최근에 미국 쪽에서 오퍼 들어온 거 없습니까?”

-오퍼야 계속 들어오고 있긴 한데…… 그걸로 시간을 끄시게요?

“저희 입장만 이해를 부탁드려 죄송하지만 계약금을 올리려면 명분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쪽에서 적당히 기사를 하나 내겠습니다. 이러다 스타즈 가면 결국 욕은 제가 먹겠지만요.

“그만큼 박유성 선수를 더 챙기겠습니다.”

-하하. 그럼 됐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받는 만큼 저도 받게 되는 거니까요.

그로부터 두 시간 뒤.

스타즈 신인 선수 계약 기사가 떴다.

[2029년 스타즈 신인 선수 계약]

1라운드 김혜성(동호대학교 4학년 투수) - 5억 5천만 원

2라운드 이동엽(선인고등학교 3학년 내야수) - 4억 5천만 원

3라운드 손지원(신성고등학교 3학년 투수) - 3억 원

4라운드 홍진석(인천제일고등학교 3학년 투수) - 2억 원

5라운드 장태수(신성고등학교 3학년 내야수) - 1억 8천만 원

6라운드 오진욱(신성고등학교 3학년 내야수) - 1억 5천만 원

7라운드 김산(신성고등학교 3학년 포수) -1억 2천만 원

8라운드 성진호(성현고등학교 3학년 투수) - 1억 원

9라운드 김경준(신성고등학교 3학년 외야수) - 1억 원

10라운드 김병욱(신성고등학교 3학년 외야수) - 1억 원

“뭐야? 박유성이는 어디 갔어?”

“박유성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논의 중? 대체 얼마나 주려고 뜸을 들이는 거야?”

“김혜성이 5억 5천이니까 송현민보다 조금 더 챙겨주려는 거 아닐까요?”

“그걸 박유성이 과연 받아들일까?”

기사를 접한 다른 구단들은 저마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통상적으로 우선 지명 선수와 1라운드 지명 선수의 계약금 차이는 크지 않았다.

우선 지명이란 말 그대로 해당 구단의 연고 학교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뽑는 것.

12개 구단에서 뽑힌 우선 지명 선수가 1위부터 12위까지 선수라면 모르겠지만 지방 팀의 경우 뽑을 선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뽑는 경우가 많다 보니 1라운드 지명 선수가 알짜배기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들 김혜성의 계약금이 송현민에 근접할 거라 내다봤지만 스타즈는 예년 수준인 5억 5천만 원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러면 우리는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거야?”

“김혜성이 예상보다 적게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적게 받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1라운드에서 5억 5천을 받아버렸으니까 6억 원 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6억 원이 뉘 집 개 이름이야? 그리고 김혜성이는 대학 리그를 씹어 먹었잖아?”

“왜 저한테 화를 내십니까. 그리고 선수들이야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게 당연하죠.”

“그럼 FA 연수 예전대로 돌려놓으라고 그래. 7시즌만 뛰면 FA잖아?”

신인 선수 계약금은 FA가 될 때까지 선수를 구단에 묶어두는 것에 대한 보상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존 풀타임 9시즌이었던 FA 자격 조건이 8시즌을 거쳐 7시즌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무작정 계약금을 많이 받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그래도 스타즈가 상식적으로 대응하는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박유성이 계약 조건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무슨 흰소리야?”

“스타즈가 박유성에게 끌려갔으면 진즉 계약 나왔을걸요? 본인들도 알 겁니다. 박유성 정도면 국대 점수 포함해서 4년 후에 메이저리그 갈 거라는 걸요.”

“오호, 그러니까 그게 아까워서 치열하게 협상 중이라는 거지?”

“박유성한테 10억을 주면 1년에 2억 5천만 원꼴입니다. 김혜성은 이미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됐기 때문에 스타즈에 남을 확률이 높으니까 FA까지 연평균 9천만 원 정도고요.”

“5억 5천을 7로 나누는데 왜 계산이 그래? 아, 참. 김혜성이는 대졸이라 FA가 1년 빠르지?”

“단장님은 박유성이 김혜성보다 3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올림픽만큼 해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신인이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두 배 정도만 받아도 감지덕지지.”

“두고 보십시오. 스타즈에서 슬슬 언론 플레이를 시작할 테니까요.”

다른 구단들은 조만간 스타즈 쪽에서 기사가 터져 나올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기사가 난 건 스타즈가 아니라 박유성 쪽이었다.

[박유성 에이전트 송광철 대표. 메이저리그 15개 구단과 접촉 중. 최소 계약금은 25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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